역사탐방-장애인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올해 3월, 새날도서관에 막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받은 기금으로 ‘서울 근대사 여행 - 역사탐방’이란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망설여졌다. 역사탐방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면서 무엇부터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프랭카드를 만들고 새날도서관 회원들과 이들을 도와줄 활동보조인을 모집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내가 정말 이 사업을 끝까지 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5월부터 시작된 총 다섯 번의 역사탐방은 고궁과 한옥마을, 박물관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고궁 탐방 때는 휠체어 장애인들과 함께 경사로를 찾아 열심히 헤매었는데, 막상 경사로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경사로가 무색할 정도로 안을 볼 수 없었다. 덕분에 휠체어 탄 회원들은 그냥 휠체어에 앉아서 아쉬운 구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이 ‘장애인은 오지마라’는 식의 도전으로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왜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이동권이 확보되면 장애인 뿐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걸 생각하지 못할까?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흔하디흔한 식당이야말로 휠체어 장애인이 접근하기에는 편의시설이 태부족한 실정이다. 이번에 서울 곳곳의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회원들의 이동권과 접근권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리 회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입맛을 다시며 다섯 번의 탐방을 마쳐야 했다.
길고도 짧았던 ‘맛깔스런’ 역사 탐방
첫 번째 탐방일인 5월 13일은 경복궁의 역사와 조상들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끼는 시간이었다. 경복궁 탐방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인사동 구경을 한 후 인사동 골목 식당에서 오삼 불고기와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었다. 그곳은 미리 답사했을 때 2시간 만에 찾은 ‘귀한’ 식당이었다. 인사동 주변에는 번지르한 식당이 많았지만 하나같이 장애인이 접근하기엔 문턱이 너무 높았다.
접근이 가능한 식당을 찾는 내내 우리 회원들에게 평소에 먹지 못했던 맛난 먹거리를 제공하고 싶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회원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오삼불고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으로 오삼불고기를 먹어본 회원들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 장애인들은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처음으로 참여한 회원과 처음으로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보조를 해 본 사람 중에는 “무심코 지나친 턱 등 여러 가지 것들이 휠체어 장애인에게 크나큰 산이라는 걸 느꼈다”며 “처음부터 장애인을 위해 이동권과 접근권을 고려한다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6월 6일, 두 번째 탐방지인 덕수궁에서는 나이 지긋한 해설자의 안내를 받으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관헌과 왕의 생활처인 함녕전, 인목대비의 유배처였던 석어당 등 볼 것이 많았다. 그리고 일행 모두 샤브샤브를 먹었다. 샤브샤브를 먹으면서 두 번째 만난 회원들 끼리 인사를 나누었고, 서로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활동보조인들의 모습에서 문득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 탐방지인 종묘와 창경궁은 7월 8일에 진행되었다. 햇살 뜨거운 더운 날이었지만 일행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해설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진 맛있는 점심식사는 혜화동에 위치한 바비큐 보쌈 음식점에서 이루어졌다. 기름을 쪽 뺀 돼지고기가 정말 맛깔스럽게 차려졌고 같이 나오는 음식들도 정갈해서 먹기 좋았다.
바비큐 보쌈이라는 생소한 메뉴에 다소 의아해 했던 회원들은 “막상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 “이렇게 잘 먹어도 되는 거냐”, “매달 너무 잘 먹어서 왠지 미안하다”며 칭찬해주었다. 실무자로서 회원들에게 정말 더 많은 걸 보여주고 더 많은 걸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는데 회원들이 이렇게 칭찬해 주니 몸 둘 바를 몰랐다.
사연 많은 서울 여행
9월 9일, 네 번째 탐방지였던 남산골 한옥마을은 마침 아침부터 비가 왔다. 일행들은 비를 맞거나 우산을 쓴 채 탐방을 시작했다. 이곳은 그동안 방문했던 고궁에 비하면 휠체어 장애인이 구경하기에 너무 협소했다. 경사로가 있긴 했지만 말만 경사로일 뿐, 너무 높아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경사로에 오를 수 있었다. 더구나 비에 젖은 모래바닥 때문에 휠체어 바퀴가 자꾸 빠져서 정작 갈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이곳은 정말 이동권의 확보가 절실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옥들을 옮겨 놓은 곳이라는데 장애인들이 접근하기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고, 특히 이 날은 비가 와서 더 힘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우산을 쓴 채 이곳저곳 열심히 탐방을 했다. 휠체어를 탄 회원들은 부족한 나의 설명에 진심으로 호응해 주었다. 처음으로 하는 해설이라 부족한 점이 많아서 회원들이 질문할 때는 답변하느라 진땀을 뺐다. 유일하게 답변을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 모두들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다. 한옥집 기둥에 새겨진 한문문장의 뜻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죄송합니다. 답사할 때 무심코 지나치는 바람에 미처 뜻을 알지 못했네요.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정말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회원님들이 웃어주어서 무안함을 뒤로 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날은 비가 오는 가운데 탐방을 해서인지 더 운치 있고 정말 좋았다. 조금 불편했지만……. 충무로 역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 간사가 수고 했다고 회원들이 하나같이 얘기해 주어서 정말 감사했다. 힘들었지만 (내 나름대로) 회원들의 그 말에 피로가 다 풀리는 듯 했다. 우리 회원들과 활동보조인들도 비가 와서 힘들었을 텐데 우선 열심히 준비한 실무자를 챙기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10월 14일 진행된 마지막 탐방지는 용산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이곳은 현대시설이어서 그런지 접근권과 이동권이 확보되어 아주 수월하게 탐방을 마칠 수 있었다. 전시실 안에 있는 석탑의 해설을 시작하면서 지난 번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회원들에게 맞는지 물어 보았다. 몇몇 회원들의 보충 설명 덕분에 풍성한 탐방을 할 수 있었다. 석탑을 지나 역사관을 둘러볼 때는 다행히 전문해설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열심히 질문하고, 열심히 듣고, 또 열심히 장난을 치는 회원들의 모습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 날의 점심은 용산국립중앙박물관 안의 한식당에서 먹었다. 그리고 외부의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다. 마지막 탐방이라 그런지 회원들은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정하게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웠다.
다섯 번의 답사와 탐방이 남긴 것
나는 휠체어를 타지 않는다. 그냥 몸만 불편할 뿐 아무 제약이 없다. 걷는 것도 다른 어떤 것도. 그런데 이번 역사탐방은 지하철부터 탐방 장소까지 휠체어를 탄다는 마음으로 진행을 했는데 정말 불편했다. 지금의 나는 그냥 쉽게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갈 수 있고, 턱을 넘을 수 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면 지하철에서 내려 역사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리프트를 타기 위해 이리저리 휠체어 바퀴를 돌리면서 열심히 지하철 역사에서 헤매야 한다.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없을 경우 휠체어 장애인들은 지하철 구경조차 못할 것이라는 암담한 현실도 상상해봤다. 결과적으로 장애인에게 세상은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소외되는 환경에 더 가깝다.
고궁을 구경할 때는 옛날 건물이라서 턱이 높았다. 경사로가 있긴 했지만 안을 보기 위한 이동은 가능해도 가깝게 접근하는 건 불가능했다. 경사로를 지나 안을 보려면 바닥이 시멘트가 아닌 돌바닥이라서 휠체어로 이동하기가 힘들었으며, 그곳을 지나 건물의 내부를 보려고 해도 계단이 있어서 걷지 않으면 볼 수 없었다. 입구에 경사로를 만들어서 잔뜩 기대하게 만든 후에 막상 구경도 못하게 만들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내부를 볼 수 있게 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을…….
정말 세상의 모든 건물이 장애인 위주로 지어졌다면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더불어 살면서 서로 웃고,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장애인들에게 복지든 뭐든 조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편한 점과 고쳐야 할 점이 많은 것이다. 청계천을 보라. 정말 아름답게 가꾸었다. 하지만 휠체어 장애인들이 함께 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그 곳을 장애인들과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장애인 단체에서는 열심히 얘기 중이다. 청계천이든 고궁이든 한옥마을이든 모두가 장애인들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하고 건축을 했다면 지금처럼 장애인들의 항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탐방을 하면서 고궁의 멋스러움을 더욱 돋보이게 할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고궁을 둘러보기 위해 장애인들은 왜 하필 모두가 구경하고 나오는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정문으로 들어가서 후문으로 나오는 현실이 되었으면 참 좋았을 것을. 이것도 장애인들의 차별이라 생각된다. 세상의 약자이지만 강자가 될 수 있고 강자이지만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자기만 편하면 좋겠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가지면 서로가 좋을 텐데 말이다.
류경미 님은 새날도서관 간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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