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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이와미 은광'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이와미 은광'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20:22

TRONG>[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이와미 은광'




 

세계문화유산 '이와미 은광'



영어 명칭 Iwami Ginzan Silver Mine and its Cultural Landscape
프랑스어 명칭 Mine d'argent de Iwami Ginzan et son paysage culturel
등록 구분 문화유산
등록 연도 2007년


시미즈다니의 정련소 터이와미 은광 (일본어: 石見銀山 이와미긴잔[*])은 예부터 은을 채굴하였던 광산으로 센고쿠 시대 후기부터 에도 시대 전기에는 대규모의 은광이었다. 광맥은 이와미 국 동부로 현재 시마네 현의 오다 시 오모리를 중심으로 니마 정과 유노쓰 정 지역까지 분포되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광산유적으로 1969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같은해 일본의 지질백선에 선정되었다.


이와미 은광의 역사




개발
《긴잔규키(銀山旧記)》 등에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 엔쿄년간 (1308년 ~ 1310년)에 스오의 오우치 히로유키가 이와미를 방문했을 때 은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있다. 오늘날의 이와미 은광을 본격적으로 개발한 사람은 하카타의 상인 가미야 히사사다라고 한다. [1]《石見銀峯山清水寺天地院縁起》에 따르면, 바다로부터 산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본 히사사다는 영주 오우치 요시오키의 지원과 이즈모의 동광산을 운영하는 미시마 세이에몬의 협력을 얻어 1526년 3월 긴푸 산의 산허리에서 지하의 은을 채굴했다. 요시오키 사후, 오우치 요시타카가 규슈 공략에 눈을 돌린 1530년 지방의 소영주 오가사와라 나가타카가 은광을 탈취하였지만, 3년후 다시금 오우치 가문에 귀속되었다. 주변에 야마부키 성을 쌓아 광산 경영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 해 8월 중국의 은 제련기술인 회취법[2] 을 가미야 히사사다가 오모리에서 처음 성공하였다.[3] 그 결과 효율적 은의 채취이 가능하였고, 전국으로 퍼져 일본에 있어 은 채취에 크게 공헌하였다. 회취법이 확립되기 전에는 니마 정, 유노쓰 정에서 광석을 채굴하여 은을 채취하였다.

은광 쟁탈
1537년 이즈모의 아마고 쓰네히사가 이와미를 공격하여 은광을 빼아았다. 2년후 오우치 가문이 탈환했지만, 그 2년후 아마고 가문이 오가사와라 가문을 이용해 다시금 은광을 점령했다. 은광을 둘러싼 양가문의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오우치 요시타카 사후, 모리 모토나리가 오우치 가문의 뒤를 이어 아마고 가문간의 은광 쟁탈전이 전개되었고, 1562년 최종적으로 모리 가문이 승리해 은광을 완전히 손안에 넣었다. 1584년 모리 가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복속해 은광은 모리 가문과 도요토미 가문이 공동으로 관리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때의 군자금은 여기서 충당되었다.[4]


상업에서의 영향

이와미 은광이 개발되었을 시기는 일본 경제의 상업적 발전을 이룬 시기와 겹친다. 이 때문에, 정련가공된 은《조긴》은 기본적으로 통화로써 유통되었다. 16세기 후반부터 마카오를 거점으로 활동을 한 포르투갈과 17세기 초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를 거점으로 활동을 한 네델란드와의 교역에도 사용되었다. 당시 여기서 산출된 은의 양은 전세계의 1/3에 달해[5],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현재 볼리비아 포토시의 세로 니코 은광과 더불어 은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긴은 칭량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원형이 남아있는 것은 드물다.

번성하였을 시기에는 당시 지도에도 기재되어 있다. 항해술의 발전과 더불어 서유럽의 왕들, 특히 스페인 국왕은 이슬람권으로부터 입수한 지도가 많았고, 이들 토대로 독자적인 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를 가진 함선들이 인도, 말레이 반도, 중국, 일본으로 무역장을 넓혀 이와미 은광에서 산출된 은을 요구하였다.

은광을 손에 넣은 무장 가문인 오우치 가문, 아마고 가문, 모리 가문, 도요토미 가문은 적극적으로 이들 해외 여라나라와 무역을 하였으며, 그 수입품 안에는 당시 귀중품이였던 화승총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영국 함선과 네델란드 함선은 이와미에서 산출된 은을 《소마 은》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지만, 이것은 은광이 있는 오모리 지구의 옛 이름이 사마(佐摩)에서 유래된 것이다.

막부 직활령
세키가하라 전투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와미의 에노 강의 동쪽 지역을 막부직활령으로 삼았고, 초대 은광 관리인으로 오쿠보 나가야스를 임명했다.[6] 나가야스는 광산경영자로 야스하라 덴베를 두어 이와미 은광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야스는 막대한 은을 토대로 해외무역을 하였다. 은광개발의 비용, 자재를 충당하기 위해 주변의 마을을 직활령으로 삼아 오모리에 행정집행소인 부교쇼를 설치했다.[7] 야스하라 덴베가 가마야 갱도를 발견함에 따라 17세기초의 은 산출량은 최고조에 다달으게 되었다. 《当代記》(당대기)에 따르면, 1602년 상납된 은는 4 ~ 5천관에 달했다고 적고있다.[8] 그 후, 은산출량은 점차 감소하였고, 1675년 은광 집행소의 관직인 오모리 다이칸의 지위를 낮추었다.

당초 산출된 은은 현재 오타 시의 니마 정과 유노쓰 정으로부터 배로 반출되었다. 겨울이면 동해쪽의 계절풍이 강해 항해에 어려움이 많았기때문에 오쿠보 나가야스는 오모리로부터 오노미치까지 가기위해 주고쿠 산지를 넘어 세토 내해에 다달으는 육로를 정비하였고, 오노미치로부터 교토 후시미의 긴자(銀座)로 운송하였다. 이들 육로가 지나는 길의 각 마을의 주민들은 노역을 제공하여야 했기때문에 큰 부담이 되었다. 경우에따라서 소송와 쟁의가 일어났지만, 이 수송은 막부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1731년 오오카 다다스케의 천거에 따란 임명된 제19대 다이칸 이도 마사아키라는 60세의 고령과 임기 2년과 상관없이 영민으로부터 "이모 다이칸"로서 공경받았으며, 현재 시마네 현뿐만아니라, 돗토리 현, 히로시마 현에서도 그의 공덕을 기리는 많은 공덕비가 건립되어 있다. 그 공적은 교호 대기근으로 고통받는 영민을 위해 사쓰마 번으로부터 고구마를 도입하여 보급하였고, 기근이 있을 때는 자신의 재산과 유복한 농민으로부터 쌀을 샀고, 막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채 다이칸의 미곡창고를 열어 곡식을 풀었고, 영민들의 연공을 면제 감면해 주었다.

이와미 은광은 에도 시대 전기에도 일본의 팽대한 은수요를 지탱하였고, 동도 산출했지만, 17세기말이 되자 점차 산출량이 줄어들어 에도 말기에는 깊게 파지않으면 은이 산출되지 않을 정도로 되었으며, 지하수 누수문제도 있어 채산성이 떨어졌다.

1866년 음력 6월 제2차 조슈 전쟁에서 막부는 이와미 국에 기슈 번, 빈고 후쿠야마 번, 하마다 번, 마쓰에 번의 병사를 보냈지만, 조슈 군의 무라다 조로쿠(후의 오무라 마스지로) 부대를 저지하지 못했고, 음력 7월 하마다 성이 함락되었다. 이렇게 되자, 조슈 군의 이와미 은광 영지로의 진격을 예상한 이와미 은광의 오모리 다이칸 나베타 세이켄은 음력 7월 20일 밤, 빗추 국 구라시키로 도주하였다. 이로써 이와미 은광의 막부지배는 막을 내리게 된었다.[9]

이후, 옛 이와미 은광 영지는 조슈 번에서 관리하였고, 1868년 음력 1월 이와미 은광의 영지가 막부로 부터 조슈 번의 위탁된 후 , 1869년 음력 2월 오모리 현이 설치되어 조슈 번에 의한 관리는 막을 내렸다.[10]



메이지 시대 이후

이와미 은광 경영은 1868년 다조칸(太政官)[11]에서 공포한 법령에 따라 민간에 매각되어 다나카 요시타로가 경영권을 취득하였다. 하지만, 1872년 하마다 지진의 피해로 휴광하였다.[12] 그 후, 1887년부터 오사카 시의 후지타구미(현 DOWA 홀링스 주식회사)에 의해 재개발을 시도하여, 채광시설, 사무소 등을 오모리로부터 고지 계곡으로 이전하였지만, 1923년 휴광하였다.[13] 그 후,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중, 군수물자로 필요한 구리의 국산화 요구에 따라 1941년 구리 채광을 시도해오지만, 1943년 수해로 갱도가 수몰되는 큰 피해를 입어 폐광되었다. 광업권은 DOWA 홀링스 주식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은광 채굴을 위해 판 “마부(間歩)”라고 불리는 갱도 500여개가 남아있고, 류젠지 마부(龍源寺間歩)의 일부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와미 은광의 부산물
이와미 은광에서 은이 채굴될 때 비소가 함유된 비석이 채석되지 않았지만, 같은 이와미 국에 위치해 있는 사사가다니 은광에서 구리가 채굴될 때 비석도 함께 채석되었다. 비석은 맹독성 비소화합물인 삼산화 비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잘게 갈아 살서제로 사용하였다. 이 살서제 판매상들은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이와미 은광의 이름을 사용해 판매하였다.
금은의 정련공정에는 회취법 기술이 사용되었고, 정련공정에서 나오는 납 증기를 흡입한 광부들은 급성 또는 만성 납중독에 걸렸다. 또, 갱도내의 출수, 고온다습, 슬래그와 분진 등의 열악한 환경도 한몫하여 당시 광부의 평균 연령은 30세 정도였다. 광부들의 가족구성은 대개 독신이거나 부부뿐이였다고 전해진다.
1977년 작가 스기모토 소노코가 집필한 소설 《종언》은 이와미 은광의 다이칸이였던 이도 마사아키라라는 인물을 재재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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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예도'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예도'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20:14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예도'







세계문화유산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예도'



영문명 Sacred Sites and Pilgrimage Routes in the Kii Mountain Range
프랑스명 Sites sacrés et chemins de pèlerinage dans les monts Kii
등록구분 문화유산
등록년 2004년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예도 (일본어: 紀伊山地の霊場と参詣道 기이산치노 레이조토 산케이미치[*])는 와카야마 현, 나라 현, 미에 현에 있는 사원과 참예도 등을 말한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등록 유산
※부분은 유산 이외의 명소 등


요시노 산・오미네 산
면적 44.8ha

요시노 산 (吉野山)
긴부센지 (金峯山寺)
뇨이린지 (如意輪寺)
사쿠라모토보 (桜本坊)
요시노미쿠마리 신사 (吉野水分神社)
긴부 신사 (金峯神社)
요시미즈 신사 (吉水神社)
오미네 산 (大峰山)
오미네산지 (大峯山寺)
류센지 (龍泉寺)

구마노
구마노산잔 (熊野三山)
구마노하야타마 신사 (熊野速玉大社)
구마노혼구 신사 (熊野本宮大社)
구마노나치 신사 (熊野那智大社)
나치 폭포 (那智大滝)
세이칸도지 (青岸渡寺)
후타라쿠산지 (補陀洛山寺)
나치 원생림 (那智原生林)

고야 산
고야 산 (高野山)
곤고부지 (金剛峯寺)
곤고산마이인 (金剛三昧院)
지손인 (慈尊院)
니우칸쇼부 신사 (丹生官省符神社)
니우쓰히메 신사 (丹生都比売神社)

참예도 (구마노 옛길)
오미네오쿠가케미치 (大峯奥駈道)《요시노 산・오미네 산 - 구마노산잔, 약140km》
미센 산 (弥山)※
다마키 신사 (玉置神社)
고헤치 (小辺路)《고야 산 - 구마노산잔, 약70km》
나카헤치 (中辺路)《다나베 - 구마노산잔》
다이몬자카 (大門坂)※
구마노 강 (熊野川)
구모토리고에 (雲取越え)
오헤치 (大辺路)《다나베 - 구시모토 - 구마노산잔, 약120km》
이세치 (伊勢路)《이세 신궁 - 구마노산잔, 약160km》
이세 신궁(일본어: 伊勢神宮, いせじんぐう)은 미에 현 이세 시에 있는 신사이고, 신토의 중심적인 시설이자 조직이다. 법적으로는 종교 법인이며, 일반 사무소에 해당되는 조직은 진구 지청으로 불린다.
정식으로는 신궁라고 칭하며 내궁, 외궁을 시작해 별궁, 섭사, 말사, 소관사 등 총수 125개의 사의 총칭이다. 이 경우에 소재지는 이세 시가 아니라 4시 2군에 걸치게 된다.
가장 주요한 시설은 황대 신궁과 이세 신궁의 2궁중 하나이다.
관련된 시설으로는 신궁 미술관, 신궁 농업관, 신궁 문서 등이 있다.

하나노이와야 신사 (花窟神社)
오니가 성 (鬼ヶ城)※
사자암 (獅子岩)※
시치리 해변 (七里御浜)《미에 현 구마노 시 - 미에 현 미나미무로 군 기호 정》
고야산초이시미치 (高野山町石道)《곤고부지 - 지손인》
기이치 (紀伊路)《오사카 - 다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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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구스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구스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20:07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구스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






세계문화유산 '구스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

영문명 Gusuku Sites and Related Properties of the Kingdom of Ryukyu
프랑스명 Sites Gusuku et biens associés du royaume des Ryukyu
등록구분 문화유산
등록년 2000년


구스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 (일본어: 琉球王国のグスク及び関連遺産群 류큐오코쿠노구스쿠 오요비 간렌이산군[*])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구스쿠 등과 류큐 왕국의 사적지이다. 구스쿠는 류큐어로 성(城)을 의미한다. 사적지 대부분은 오키나와 섬 남부에 있다.


등록 유산



나키진 성터 (今帰仁城跡)

 

자키미 성터 (座喜味城跡)

 

가쓰렌 성터 (勝連城跡)

 

나카구스쿠 성터 (中城城跡)

 

슈리 성터 (首里城跡)



슈리 성(일본어: 首里城/しゅりじょう 슈리 죠[*], 오키나와어: sui ugusiku)은 오키나와 현 슈리(현재의 나하 시의 일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해외무역의 거점인 나하 항을 내려보는 언덕에 있던 성이다.

류큐 왕국의 왕성으로, 오키나와 현 내 최대 규모의 성(구스쿠)이다. 전쟁 전에는 세이덴등이 국보였지만, 1945년의 오키나와 전투과 전쟁 후의 류큐 대학 건설에 의해 완벽하게 파괴되어, 얼마 안되는 성벽이나 건물의 기초등의 일부가 남아있다. 1980년대 전말의 류큐대학의 니시하라 정으로 이전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은 1980년대 말부터 행해져, 1992년에, 세이덴 등 옛 유적을 묻어서 되돌리는 형태로 복원되었다. 1993년에 방송된 NHK 대하 드라마 《류큐의 바람》의 무대가 되었다. 2000년 12월, “구스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으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등록은 “슈리성 터”(しゅりじょうあと)로, 복원된 건물이나 성벽은 세계유산이 아니다.

주위에는 같은 세계유산에 등록된 타마우돈, 소노햔우다키 석문 외, 제2쇼씨의 보다이 절인 엔카쿠 절 터, 국학 공자 묘적, 뱃놀이가 행해진 연못인 류후치, 베자이덴도 등의 문화재가 있다.

 
소노햔우타키 석문 (園比屋武御嶽石門)

 

다마우돈 (玉陵)

 

시키나엔 (識名園)

 

세이화우타키 (斎場御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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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닛코의 사원'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닛코의 사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9:07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닛코의 사원'






세계문화유산 '닛코의 사원'


영문명 Shrines and Temples of Nikko
프랑스명 Sanctuaires et temples de Nikko
등록구분 문화유산
등록년 1999년


닛코의 사원 (일본어: 日光の社寺 닛코노 샤지[*])는 도치기 현 닛코 시에 있는 사원을 말한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닛코의 사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니샤이치지(일본어: 二社一寺)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 건조물 103동은 국보 9개동, 중요문화재 94개동이 있다. 그 밖에 이들을 둘러싼 주변 경관이 있다.


 

등록 유산

닛코 도쇼궁 (日光東照宮)


닛코 동조궁(日光東照宮)은 일본 도치기 현 닛코 시에 있는 동조궁(도쿠가와 사당)이다.
1617년 건립되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골이 안장되었다. 이후 막부의 중요한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닛코 후타라산 신사 (日光二荒山神社)



닛코 린노지 (日光輪王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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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고도 나라의 문화재'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고도 나라의 문화재'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8:56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고도 나라의 문화재'





 

세계문화유산 '고도 나라의 문화재'




영문명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Nara
프랑스명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Nara
등록구분 문화유산
등록년 1998년


고도 나라의 문화재 (일본어: 古都奈良の文化財 고도 나라노 분카자이[*])는 나라 현 나라 시 지역에 있는 사찰을 말한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등록 유산

도다이지 (東大寺)



쇼소인 (正倉院)



고후쿠지 (興福寺)



가스가 신사 (春日大社)



간고지 (元興寺)



야쿠시지 (薬師寺)



도쇼다이지 (唐招提寺)



헤이조 궁 (平城宮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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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이쓰쿠시마 신사'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이쓰쿠시마 신사'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8:45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이쓰쿠시마 신사'

 



세계문화유산 '이쓰쿠시마 신사'




영 문 명 Itsukushima Shinto Shrine
프랑스명 Sanctuaire shinto d'Itsukushima
등록구분 문화유산
등록년도 1996년

 


이쓰쿠시마 신사(일본어: 厳島神社 이쓰쿠시마 진자[*])는 히로시마 현 하쓰카이치 시의 이쓰쿠시마 섬(미야지마 섬)에 있는 신사이다.

헤이안 시대 말에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가 세운 1400년의 역사를 갖는 신사로 1996년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사가 있는 이쓰쿠시마 섬은 "아키노 미야지마"(安芸の宮島)라고 불리며 일본 삼경(日本三景)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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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8:28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영어 명칭 Hiroshima Peace Memorial (Genbaku Dome)
프랑스어 명칭 Mémorial de la paix d'Hiroshima (Dôme de Genbaku)
등록 구분 문화유산
등록 연도 1996년


원폭 돔(일본어: 原爆ドーム)은 본래 1915년 건설된 히로시마 시의 상업전시관으로, 1945년 8월 6일 제2차 세계 대전중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피해로 반파되고 남아있는 전쟁유적 중 하나이며, 1996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원폭 돔 위치

주소는 히로시마 현 히로시마 시 나카 구 오테 정 1정목 10이다. 서쪽에는 원자폭탄투하의 목표였다는 아이오이 다리가 놓여있다. 남쪽으로는 모토야스 강에 인접해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이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는 히로시마 시민구장이 인접해있다. 동쪽으로 약 200m 쯤 떨어진 곳에 폭심지인 시마 병원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시내 노선전철을 타고 원폭 돔앞 역에서 내리면 되고, 버스인 경우, 시민구장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원폭 돔 연혁

준공에서 전시까지

히로시마 현 상품진열소 (1921 ~ 33년경)현재 원폭 돔의 명칭으로 알려진 폐건물은 원래 지상 3층, 지하 1층의 벽돌로 지어졌으며, 건물 중앙에는 돔 지붕을 둔 지상 25m 높이의 건물이다. 1915년 4월 5일 준공하여 같은 해 8월 5일 히로시마 현 물산진열관으로 개관하였다. 건물은 체코인 건축가 얀 렛트르가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빈 분리파 풍으로 세부 장식을 했다. 1919년 개최된 독일 작품 전시회에서는 제과업자 캄 유하임[1] 이 일본에서 처음 바움쿠헨을 제조판매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후 1921년 히로시마 현 상품진열소로 되었고, 같은 해에는 제4회 전국 과자 대박람회의 회장으로 사용되었다. 1933년 히로시마 현 산업장려관으로 개칭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활발히 미술전을 개최하여 히로시마에 있어 미술 보급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1944년 이후, 산업장려관의 업무는 중지되었고, 내무성 주고쿠 시코쿠 토목사무소, 히로시마 현 지방 목재주식회사, 일본 목재 히로시마 지사등, 행정 기관 및 통제조합 사무소로 사용되었다.

피폭시 상황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이었고, 투하는 15분 이후 16분에 폭발했다고도 전해진다. 원폭 돔 남동쪽 상공 약 600m 지점에서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작렬했다.

원폭 작렬후, 건물은 0.2초 동안 열선에 둘려싸였고, 0.8초후 충격파에 따른 폭풍을 맞이하였다. 그로부터 1초도 안되어 순식간에 붕괴했다고 사료된다. 3층 건물의 본체부분은 대부분 전파되었지만, 중앙의 돔부분은 전파를 면했고, 외벽을 중심으로 건물일부가 잔존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충격파를 받은 방향이 대부분 건물과 일직선이었기 때문에 충격을 덜 받았다.[2]
건물에 창이 많았기 때문에 후폭풍의 위력이 반감되었다.
본체부분의 지붕은 충격에 의해 형태가 찌그러졌지만, 돔 부분의 지붕은 철보다도 녹는점이 낮은 동판이였고, 후폭풍이 도달하기 직전 열선에 녹았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덜 받았다.
건물내에 있던 직원등 약 30명은 열선과 폭풍으로 전원 즉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3] 또한 전날 밤 숙직을 했던 현지방 목제회사의 직원 4명중 한명은 피폭직전인 8시를 전후하여 자택으로 귀가하였기 때문에 숙직자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 후, 잠시 동안 창틀 등이 불타지 않고 남아있었지만, 곧 가연물에 불이 붙어 산업장려관은 전소하였고, 벽돌과 철골 등만 남게되었다.

원폭 돔의 보존

원폭 돔은 원자폭탄의 참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참한 전쟁을 떠오르게 한다며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존폐의 여부가 논의되어 왔었다. 히로시마 시는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원폭 돔의 보존에는 소극적이였다. 그러나, 1960년 평화운동가 가와모토 이치로를 중심으로 원폭 돔의 보존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주동자인 가와모토 이치로는 피폭 휴유증의 일종인 급성백혈병으로 죽은 여고생의 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1966년 히로시마 시의회가 영구보존을 결의하였고, 그 후 풍화을 막기위해 정기적으로 보수공사를 하게되었다. 199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더욱이 다음해인 1996년 12월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의 등록이 결정되었다. 최근에는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 낙서를 하는 등 문제가 되고 있다.

또, 2004년 이후, 원폭 돔의 보존방침을 검토하기 위해 《평화기념시설 유지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박물관으로 이설하거나, 지붕을 단다거나 하는 방법 등이 의논 되었지만, 2006년에 앞으로도 원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방침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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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시라카와고·고카 산의 갓쇼즈쿠리 마을'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시라카와고·고카 산의 갓쇼즈쿠리 마을'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8:20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시라카와고·고카 산의 갓쇼즈쿠리 마을'




 

세계문화유산 '시라카와고·고카 산의 갓쇼즈쿠리 마을'





영어 명칭 Historic Villages of Shirakawa-go and Gokayama
프랑스어 명칭 Villages historiques de Shirakawa-go et Gokayama
등록 구분 문화유산
등록 연도 1995년


시라카와고・고카 산의 갓쇼즈쿠리 마을 (일본어: 白川郷・五箇山の合掌造り集落 시라카와고・고카야마노 갓쇼즈쿠리슈라쿠[*])은 히다 지방의 시라카와고(白川郷:기후 현 오노 군 시라카와 촌)와 고카 산(五箇山:도야마 현 난토 시)에 있는 갓쇼즈쿠리로된 지붕을 가진 마을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갓쇼즈쿠리는 에도 시대부터 시작된 양잠을 위해 지붕 안에 선반을 설치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폭설로 인한 눈치우기 작업의 경감과 지붕안의 공간 확대를 위해 지붕을 크게 경사지게 지어, 지금의 독특한 세로지붕으로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 갓쇼즈쿠리 지붕은 어느 가옥도 동서로 향해 있다. 이것은 지붕에 빛이 잘 들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마을은 남북으로 길쭉한 골짜기에 있다. 그래서 남과 북으로는 강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바람을 맞는 면적을 작게 하기 위함도 있다고 한다.

갓쇼즈쿠리로 된 집을 사수하기 위한 지역주민의 연대형식인 《유이(結)》에 의해 지붕의 보수와 교체가 30년 ~ 40년에 한 번 이루어지고 있다. 지붕의 띠 교체에는 많은 일손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전체의 지붕의 띠를 교체하는 데에는 이틀이 걸린다.

시라카와고와 고카 산의 지역은 폭설지역으로 인해 주변 도로정비가 늦어져 갓쇼즈쿠리로 된 주거구조가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인구의 감소와 주민의 고령화 때문에 유이(結)의 활동에 의한 갓쇼즈쿠리의 유지활동에도 제동이 걸린 실정이다.

세계유산 등록후, 급격히 관광객이 증가하였다. 근처에 놓여있는 고속도로의 전면개통 예정인 2008년도 앞두고 있다. 지역사회의 생활과 관광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가령 현주거지와 상관없이 관광객이 멋대로 문을 여는 등, 주민들의 사생활를 존중하지 않는 몰상식한 행동 등이 있었다.

시라카와고와 고카 산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시라카와고의 오기 정(荻町)과 고카 산의 아이노쿠라(相倉), 스가누마(菅沼) 세 마을이다. 오기 정은 1976년, 아이노쿠라와 스가누마는 1994년에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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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8:11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

 


영어 명칭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Kyoto
프랑스어 명칭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Kyoto
등록 구분 문화유산
등록 연도 1994년

고도 교토의 문화재 (일본어: 古都京都の文化財 고토 교토노 분카자이[*])는 교토 부 교토 시, 우지 시, 시가 현 오쓰 시에 있는 사원등을 말한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등록 유산

가모와케이카즈치 신사 (賀茂別雷神社)



가모미오야 신사 (賀茂御祖神社)



교오고코쿠지 (教王護国寺)



기요미즈데라 (清水寺)



엔랴쿠지 (延暦寺)



다이고지 (醍醐寺)



닌나지 (仁和寺)



뵤도인 (平等院)



우지가미 신사 (宇治上神社)



고잔지 (高山寺)



사이호지 (西芳寺)



덴류지 (天龍寺)



로쿠온지 (鹿苑寺)(킨카쿠지: 金閣寺)



지쇼지 (慈照寺) (긴카쿠지: 銀閣寺)



료안지 (龍安寺)



니시혼간지 (西本願寺)



니조 성 (二条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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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야쿠 섬'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야쿠 섬'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7:30

[세계자연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야쿠 섬'


 



세계자연유산 '야쿠 섬'



영어 명칭 Yakushima
프랑스어 명칭 Yakushima
등록 구분 자연유산
등록 연도 1993년


야쿠 섬(일본어: 屋久島, やくしま)은 규슈 오스미 반도에서 남남서쪽으로 약 60 km 떨어져 있는 가고시마 현의 섬이다. 다네가 섬, 구치노에라부 섬 등과 함께 오스미 제도를 이룬다. 면적은 504.88 km²로 오각형에 가깝다. 아마미 제도에선 2번째, 일본 전체에선 9번째로 큰 섬이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되었다.


고층습원 《고하나노에고》섬의 둘레는 132km이며 대부분은 화강암으로 이루어 져있다. 중앙부에는 일본 100명산 중하나인 미야노우라 산이 위치해 있다. 그 외에도 다수의 1,000m급 산들로 이루어 져 바다위의 알프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런 연유로 바다로부터 습한 공기가 산을 타고와 많은 비를 뿌린다. 연강수량은 평지에서 약 4,000mm, 산지에서 약 8,000mm에 달한다. 아열대 지역에 위치하지만, 높이 2,000m 가까운 산들로 인해 아열대에서 아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식물군이 자라고 있다. 섬 중심부에는 일본 최남단의 고층습원인 하나노에고, 고하나노에고 외에도 산 정상부근은 연평균기온 약 5도로 저온이기 때문에 적설을 관측할수 있다. 일본에서 적설을 관측할 수 있는 최남단 지역이다.

야생동물로는 원숭이, 사슴이 다수 살고 있다. 또, 외래종 너구리가 살고 있어 민가의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다.

야쿠 삼나무, 대만고무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섬 북부 연안의 모래톱은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지이며,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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