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신용대출, 담보대출, 성형수술, 성형, 지방흡입, 임플란트, 라색, 라식, 화환, 꽃배달, 기념일, 선물, 주식, 펀드, 금융, 여행, 신혼여행, 결혼


[맛집] 소문난 맛집의 비밀은?

[맛집] 소문난 맛집의 비밀은? 요리 맛집 정보 2008.11.02 18:12

[맛집]  소문난 맛집의 비밀은? 

 


 


며칠 전 유명한 콩국수집에 콩국수 개시를 하러 갔습니다. 딱 끼니때가 아니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더군요. 자주 갔던 집이지만, 이 집의 콩국은 먹을 때마다 적잖은 감동을 줍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집이 두유에 물을 탄 듯, 우유보다도 묽은 콩국에 국수를 담가 놓고 콩국수라고 우기는 집입니다. 최소한 콩국수의 콩국이라고 우기려면 요구르트만은 못해도 동지팥죽만큼은 걸쭉해야죠.

(그러니까 이런 스타일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싫어하는 콩국수집들은 특이하게도 하나같이 토마토를 얹어 나오더군요. 다행히 구별하기 아주 좋습니다.)

이 집의 콩국수는 탄탄한 콩국에다 땅콩이 들어가 고소한 맛을 냅니다. 물론 이것뿐만이 아니라 뭔가 별미를 내는 비법이 있을텐데 그런 걸 맛 보고 알아낸다면 정말 식신의 경지겠죠. 그런데 이날 따라 특이한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카운터에 앉은 주인이 '뭔가'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고 일하는 직원을 야단치고 있던 겁니다. 그 '뭔가'가 없으면 제대로 장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 왜 그걸 진작 간수하지 못했느냐고 성화가 대단했죠.

그 '뭔가'는 바로 해파리였습니다. 게다가 주인은 곧이어 식재료상에 전화를 걸어 "마지막으로 물건 떼간게 언제냐(자주 이용했다는 뜻!)"고 어느 쪽의 실수인지를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눈길은 그 집의 메뉴판으로 향했습니다. 불고기. 삼겹살. 아무리 봐도 해파리가 들어갈만한 메뉴는 보이지 않더군요.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와 동행인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그 유명한 이 집 콩국맛의 비밀이 혹시 해.파.리.?

물론 다른 일이 쓰시려는 이유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해파리는 콩국맛의 비밀이 아니라 역시 명성이 자자한 이 집 불고기의 비밀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메뉴를 봐선 정상적으로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식재료를 급하게 찾는 식당 주인의 모습이라니, 묘한 상상을 하게 하더군요.

아무튼 콩국수 얘기는 여기까지.

사실 소문난 맛집의 비결이라는 것은 특급 비밀에 해당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TV에 나오는 맛집 주방에서 할머니가 '파, 마늘, 당근, 쑥갓, 3년 된 묵은지...'를 되뇐다고 해서 그게 진짜 맛집의 비밀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분들은 없겠죠. 그런 장사 비밀은 절대 공개하지 않습니다. (맛집 프로그램 스태프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비결이 미원'인 집도 꽤 된다는군요.)

이것도 오래 전 일입니다만, 부산의 한 유명한 밀면집을 지인과 함께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비빔국수와 물국수가 있었습니다. 한껏 착한 표정을 짓고 서빙하는 아주머니에게 어느 게 더 많이 나가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대답.

"비빔은 그냥 그래요. 물국수 드세요."

작은 목소리도 아니고 큰 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런 얘길 그렇게 크게 하셔도 괜찮아요?"
"뭐 어때요. 사장님은 낮에 안 계세요."

한번 더 놀랐습니다. 아무튼 물국수의 육수 맛은 기가 막히더군요.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한 듯 한데, 대추 맛도 살짝 나는 듯 하고, 계피향도 은은히 깔려 있는 듯 묘한 맛이었습니다. 이 집의 단골인 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집 사장님은 육수의 비밀이 새나가는게 싫어 분점도 내지 않는 분이라더군요.

이 사장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주방 문을 잠그고 혼자 들어가 육수를 배합하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답니다. 그 안에서 온갖 재료를 배합해 거대한 통 가득 육수를 채워 놓으면, 그길로 사장님은 골프장으로 간다는군요. 이 집의 영업 시간은 그 육수를 다 쓸때까지입니다. 물론 손님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초저녁이면 육수는 바닥을 드러낸다는군요.

자, 이러니 더욱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인은 또 여기에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보탰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다발을 싸 와서 맛의 비밀을 물어보는데도 전혀 사장님이 대꾸를 하지 않자 주위에서 비밀을 캐내려 애를 썼다는 겁니다. 이렇게 탐문 수사를 하던 사람들에게 희한한 단서가 포착됐습니다. 바로 이 사장님이 동네 약국에서 하루에 두세상자씩 뭘 샀더라는 겁니다.

바로 이거였죠.

그런데 식당 사람들은 사장님이 이 드링크를 마시거나, 누구에게 권하는 걸 본 적이 없더라는 거죠. 그렇다고 그 양의 피로회복제 드링크를 혼자 다 마셨다면 매일 밤을 새도 모자랐을 겁니다. 그럼 결론은 자연스럽게...

물론 그 드링크제를 이용해서 신비의 육수 맛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육수 맛,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실 부산 지역에서 다른 밀면집에 갔다고 빛깔과 고명까지 똑같은, 그러나 맛은 천양지차인 육수를 몇번 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맛의 비밀을 쫓다 보면 가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사실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그 비결이 '미원(다시다나 감치미는 안됩니다)'인 경우도 있고, 설렁탕 맛의 비밀이 커피크림(흔히 프림이라고 불리는)이라든가, 콜라를 넣지 않으면 돼지갈비가 되지 않는다든가, 사이다를 넣어야 고깃집 냉면 육수가 만들어진다든가 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미원만 빼면 나머지에 대해선 뭐라고 불만을 제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커피크림이건, 콜라건, 사이다건 이건 다 먹어도 아무 문제 없는 것들이죠. 콜라 대신 캐러멜 섞인 설탕(물)을 넣거나, 사이다 대신 설탕(물)을 넣거나 그건 별 차이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뭐 고기와 뼈 우려낸 물이 아니라 커피크림으로 뽀얗게 한 국물이 사기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설렁탕 가격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애교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먹으면 안되는 물건으로 장난을 친 놈들이거나, 싼 재료를 비싸게 속여 판 놈들, 그리고 다른 손님이 먹다 남긴 물건으로 고급인척 한 놈들은 주리를 틀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중국 갖고 뭐라 하는 일이 잦지만 우리도 비닐 껍질로 만든 순대, 벽돌가루로 만든 고춧가루, 담배꽁초로 만든 엽차나 커피, 신문지를 태워 만든 메밀국수 등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린게 그리 옛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최근엔 일본의 유명 식당이 18년 동안 손님들이 먹다 남긴 회를 다른 손님에게 팔았다는 기사가 나와 '일본은 선진국'이라고 굳게 믿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수입 고기로 한우라고 속여 팔다 걸린 식당은 갯수를 세는게 의미가 없을 정돕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다이아몬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의 아슬아슬한 절단 이야기

[다이아몬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의 아슬아슬한 절단 이야기 보석정보/다이아몬드 2008.10.31 13:51

[다이아몬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의 아슬아슬한 절단 이야기





1905년 1월 2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프레미어 다이아몬드 광산.

프레더릭 웰스(Frederick Wells)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개로 판 갱의 벽에 목숨을 받칠만한 보석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주먹만한 크기의 500g이나 나가는 거대한 다이아몬드였다. 거기에 홀린 웰스는 잠시 후 주머니칼로 그것을 파냈다.

그것은 그때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으며, 왕에게나 어울릴만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 정부는 그것을 75만 달러에 사서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에 생일선물로 바쳤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광산에서 파낸 다이아몬드는 완전한 보석이 아니라 원석이었다. 다이아몬드 특유의 아름다운 빛을 내기 위해서는 원석을 여러 소각으로 쪼갠 다음, 각각의 조각을 잘 다듬어 광택 나게 해야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원석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최고의 다이아몬드 가공 인으로 알려진 아스처(J.Asscher)에게 보내졌다. 아스처는 그 원석을 어떻게 쪼갤까 몇달 동안 궁리하였다. 만약 제대로 쪼개기만 한다면, 다이아몬드 조각들은 무한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잘못 쪼갠다면, 다이아몬드는 산산조각이 나고, 왕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스처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아무도 아스처의 다이아몬드 가공기술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실패한 사람으로 유명해질 것이다.

아스처는 떨리는 손으로 원석을 쐐기에 고정시켰다. 그는 쪼개야 할 지점을 금을 그어 표시했다. 그는 표시된 금 위에 신중하게 강철 정을 망치로 내리칠 준비를 했다. 입이 바싹 탔고, 작은 땀방울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혔다. 망치를 들어올리는 순산,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이었다. 다이아몬드는 산산조각 날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모양으로 쪼개질 것인가? 그 다음 순간은 아스처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망치로 정을 내려쳤다.

 그러나 강철 정이 산산조각 났다.

 다이아몬드가 너무 단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스처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깔깔대고 웃었으며, 그의 정신은 산산조각 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스처는 그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다이아몬드를 쪼개는데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수 주일동안 치료를 받은 후 아스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날이 왔다. 이번에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옆에 의사도 대기했다. 아스처는 두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땀에 젖은 손으로 정을 잡았다.

그리고 망치를 내려쳤다. 다이아몬드는 정확하게 제 모양으로 쪼개졌다. 그러나,

아스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기절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쿨리난(Cullinan)다이아몬드 원석은 105개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쪼개져 가공되었다. 이 다이아몬드 한 개당 가격은 수십억 원이나 했다.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것에는 '아프리카의 별' 이라는 이름이 부었고, 영국 왕의 홀에 박혀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다이아몬드 이야기] 다이아몬드의 저주

[다이아몬드 이야기] 다이아몬드의 저주 보석정보/다이아몬드 2008.10.31 12:20

[다이아몬드 이야기] 다이아몬드의 저주









흔히 '저주' 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은 일생동안 불행한 삶을 살면서 지내야하는 운명 이라고 한다. 이런 불행한 운명 가운데. 대부분의 저주들은 불행한 삶으로 연속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에 걸렸을 때 바로 죽게된다. 예를 들면 이집트의 투탕카멘저주 라든지. 아니면 종교의 관한 저주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이 다이아몬드 저주는 약간 다르다.
다이아몬드의 저주라고 하기보단 다이아몬드가 걸린 저주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수도 있다.

존 밥티스트 태버니어는 16세기에 호프라는 이름의 112.6캐럿짜리 푸른색 다이아몬드를 인도에서 프랑스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어디서 그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미얀마 만달레이의 어느 사원에 있는 종교적 우상의 눈에 박혀 있던 것이라고 한다.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 태버니어라는 사람은 그 보석을 프랑스에 가지고 온 뒤, 그 당시에 가장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팔았다.

저주의 시작은 처음 인물의 시작이었다. 태버니어는 후에 사업에 실패하고 러시아에서 죽었다고 한다. 반면 루이는 제명대로 살았고 후손들에게 그 보석을 물러주었다.
루이 16세가 보석을 물러받았을 때, 그는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후에 이 들은 '프랑스 혁명' 이 나서 그들은 기요틴 (단두대. 물론 기요틴은 기요틴이란 박사가 만든 작품이여서 기요틴이라고 한것입니다.)에서 목숨을 잃는 비운을 당했다.

추측 된 것으로는 이 다이아몬드는 혁명기간에 도난 당했다고 한다.
이 프랑스에서 사라진 것은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 112.5캐럿짜리 푸른색 다이아몬드는 런던에서 드러났을때 44.5캐럿으로 크기가 줄었다고 한다.
이 다이아몬드를 산 사람은 은행가 헨리 호프 였다. 그는 그 특별한 '저주'를 받지 않고제 명대로 살았다. 그리고 그 다이아를 가족들에게 물러주었고 역시 저주는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호크의 아내 메이 요어는 다이아가 자신에게 불운을 왔다고 투덜거려댔고. 요어는 투자 잘못으로 간난에 시달리다 1938년에 죽었다. 호프가족에게서 받은 소유자들은 불운을 겪게 되었다. 그 다음 소유자와 또 그 다음 소유 자는 둘 다 보석상이었는데 한 사람은 파산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살했다.

바야흐로 다이아몬드의 저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 했다.
그 다음 소유자인 러시아의 귀족은 러시아의 혁명가에게 칼을 맞고 죽었다. 또 그것을 소유했던 그리스 보석상은 절벽에서 떨어져 주었으며 터키의 술탄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나중에 카르티에라는 사람이 미국의 언론재벌 상속인인 에드워드 B.메클린에게 그 보석을 팔았다. 불운은 끝이 아니었다. 메클린의 외아들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메클린은 자신의 아내인 베벌린과 이혼하고 나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거기서 생을마감했다.
에벌린 메클린은 재난이 계속되어도 그 다이아를 계속 지니고 있었다.
1946년에는 메클린의 딸이 자살했다. 이듬 해 에벌린 메클린은 나이보다 약간 일찍 죽었다(나이에 비해) 메클린 집안으로 인해 호프 다이아몬드가 저주를 부른다고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 다음에 뉴욕의 보석상인 해리 윈스턴은 그 보석을 구입하여 몇년간 전시했다가 1958년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결국 그 다이아는 그에 어울리는 화려한 팡파레를 받지 못한 채 뉴욕에서 워싱턴 시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행히 그 다이아 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렇게 다이아는 3국 여행을 떠나면서 (프랑스,영국,미국) 이제는 편한히 잠을 잘수있는 휴식처로 옮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다이아가 소유자들에게 불운을 주는 그런 물건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중간 사이사이에 호프나 에벌린, 해리 윈스턴은 자신에게 아무런 불운을 겪지 못했다.
에벌린 같은 경우는 자신이 소유하는 자식이나 아들이 죽었지, 자신에게서는 직접적으로 나이보다 좀더 일찍 죽은 것 외에는 직접적으로 불운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Tokaj 와인에 담긴 이야기

Tokaj 와인에 담긴 이야기 와인정보 2008.10.15 18:34

Tokaj 와인에 담긴 이야기






 
세계의 와인의 명주에는 나름대로 얽힌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다.

헝가리 와인의 명주로 세계적 반열에 들어있는 토카이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토카이 와인은 헝가리 동북지방 슬로바키아 국경지대 토카이 마을에서 나는 화이트 와인을 가리킨다. 이에는 테이블 와인으로서 토카이 화이트와 감미가 넘치는 디저트용의 Tokaj Aszu가 있다.

보편적으로 토카이 와인이라 할때 바로 이 아쑤를 의미한다. 이는 늦 가을에 귀부병에 걸린 포도송이를 손으로 따 그 즙을 발효 중에 있는 기초 와인에 첨가하여 양조한 것을 가리킨다.

흥미 있는 일은 귀부병에 걸린 포도송이에 의한 디저트와인을 세 나라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토카이가 가장 먼저 양조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독일이 1775년, 라인가우의 슐로스 요한니스버그(Schloss Johanis-berg)가 처음으로 'Spaetlese'(늦 수확에 의한 단맛의 와인)를 빚었고 1847년 프랑스 보르도 소떼른의 샤또 디켐이 sauternes을 양조했다. 이에 비해 헝가리 토카이는 1600년 초에 이미 양조를 했다하니 이들보다 한결 앞섰다고 할수 있다.

1686년 헝가리는 긴 세월동안 지배해오던 무슬림을 쫒아냈으나 다시 함스부르그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어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했던 페렌츠 라코치(Ferenc Rakozi)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711년 화약에 응한다. 이 기간 라코치는 루이 14세 왕가에 토카이를 선물로 보내게 된다. 또한 함스부르그 왕가도 러시아 피터 대제의궁정에 이 와인을 소개하게 된다. 토카이는 일찍이 세계적 명주의 번열에 들어선다.

루이 15세가 그의 정부인 마담 드 퐁파르드와 술잔을 나누면서 토카이를 가르켜 "이 와인은 군왕의 와인이며 와인의 군왕이다."라고 격찬했는데 이 말은 오늘날까지 토카이 와인에 부쳐지는 최고의 찬사가 되었다. 생페트로에 있는 러시와 황제의 궁정에 이 와인을 보급하기 위해 정례적으로 러시아 황실의 군대를 현지에 주둔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궁정까지 수송하기 위해 용맹으로 이름난 코삭크 기병대가 동원되기도 했다고 한다. 수천 km거리에 있는 러시아 황실에서는 이 와인을'생명수'로까지 받들면서 즐겼다고 한다.

화산토에서 나는 이 와인이 숙성되어 최고조의 와인이 되면 감미가 넘치고 아몬드, 초콜릿, 구운 토스트의 냄새 등의 복합적인 맛과 향이 베어난다. 이 와인을 빚는데 쓰이는 주된 품종은 Furmint이며 Harslevelu도 함께 쓰인다. 그리고 Tokaj 와인에는 Aszu가 표기되고 이에는 감미의 등급을 '푸토뇨스'(puttonyos)로 표시하고 있다. 아라비아 숫자로 몇 개의 'puttonyos'인가에 따라 와인의 감미와 숙성 그리고 질의 등급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3puttonyos에서 6puttonyos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7 puttonyos도 있다. 이는 '토카이 이쑤 에쎈시아(Tokaj Aszu Esszencia)'의 경우로서 최고조의 당을 함유하고 있는 매우드문 토카이이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대통령과 와인 사랑의 이야기 - 제퍼슨 대통령

대통령과 와인 사랑의 이야기 - 제퍼슨 대통령 와인정보 2008.10.15 08:37

대통령과 와인 사랑의 이야기 - 제퍼슨 대통령

 


 

몬티셀로(Monticello)의 포도원

숱한 명사들의 와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한 나라를 통치했던 대통령과
와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흔치 않다.
미국 제 3대 대통령이며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남달리
와인과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와인을 취미로 즐긴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와인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리고 깊은 식견을 보였다. 원래 버지니아 농촌 출신인 그는 1807년, 자신이 직접 포도 묘목을 심고 미국 와인 산업의 희망을 걸어 보기도 했다. 그는 몬티셀러(Monticello)에 포도원을 가꾸고 그의 정열을 기울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퍼슨이 남달리 와인과 깊은 인연을 맺은데는 나름데로 유리한 기회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 주재 미국 초대 대사로서 무려 5년간(784-9) 그곳에 머물면서 이 나라가 자랑하는 질 좋은 와인과 명품들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을 사랑하기에 스스로 전문가적 식견을 넓혀가면서 프랑스의 일류 와인 산지를 두루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태리와 독일까지 여행하면서 그들 지방의 와인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가꾸어 나갔다. 숱한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이 제퍼슨에게 와인에 대한 자문과 선택을 의뢰해온 일화는 널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더 그의 전문지식이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케 해준다.
한편, 기회 닿는데로 와인 테이스팅을 증기면서 주변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토대로 기록을 정리해 두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구입하거나 취득한 와인은 반드시 레이블에 흰 팽키로 표지를 하고 그의 와인 셀러가 있던 몬티셀로로 보내졌다고 한다. 특히 제퍼슨 대통령은 보르도 와인데 대해 남다른 사랑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보르도의 샤또 주인들은 그들의 와인을 알아주는 이국의 대사를 식탁에 초청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1787빈티지

1987년, 제퍼슨이 구입했던 1787년 빈티지의 샤또 라피트(Chateau Lafit) 한 병이 정확히 2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87,000 미불(한화 약 2억원)에 팔린 일이 있었다.
이는 미국의 거부이며 포버스 잡지의사주인 말콤 포버스(Malcom Forbes)에게 세기적 가격으로 낙찰되었던 것이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200년이 지나고서도 이 와인이 애초의 그 질을 그래도 유지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사람 좋은 말콤 포버스는 이 와인에 대해 한 번 보고 싶어 안달을 하는 친구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 그에게 잠시 빌려준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의 뉴욕 와인샵에다 자물쇠를 잠그고 제퍼슨의 와인을 전시해 두었다. 어느 날 가게 안으로
매우 중요한 단골 손님이 들어오기에 주인은 자랑삼아 이를 보여 주고픈 유혹에 끌렸다.
보관함에서 200년 묵은 와인을 끄집어내는 그 손님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려고 했다. 그에게 다가서던 순간
그만 주인은 지나친 흥분에 못이겨 마루바닥에 엎어지고 병은 산산조각이 났다.
마침, 곁에 있던 홀 지배인이 부랴부랴 티스푼을 들고 와 마루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 와인을 담아 보았다.
아뿔싸! 이미 와인은 식초로 변한지 오래였다. 산화가 수해 전부터 진행되었음이 분명했다.




[ 글 | La revue du vin de France 인용 ]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하단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