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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1 (1,2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1 (1,2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2:47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1 (1,2일)
 



2008년 2월 16일 오전 9시.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다. 울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시까지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어제가 졸업식이었는데 졸업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벌써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 안은 정말 널찍했다. 자리도 한 40석 정도 되어보였는데 8명 정도밖에 안 탄 것 같았다. 이래가지고 장사가 되겠나.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중간에 천안 근처에 있는 금강휴게소에 들렀는데, 김밥 몇 개가 3000원이었다. 망할 놈들, 충무김밥을 3000원에 팔다니, 충무공에 대한 모욕이다. 울산대 후문 분식집에선 한 줄에 500원인데. 그래서 김밥을 사 먹진 않고 2500원짜리 스태프 핫도그를 사먹었다. 배가 고팠지만 값이 값인지라 조금만 먹고 나왔다.

오후 3시 30분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이 세계적인 수준의 공항이란 건 말로만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보니 규모가 엄청났다. 그리고 외국인도 많았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러 식당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는데, 젠장, 이놈의 공항은 오지게도 크다. 무료 카트를 이용했지만 걷는 게 힘들었다. 일단 로밍폰을 2대 임대했다. 내가 쉽게 행방불명이 되는 편이라 비상용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2대를 빌렸는데, 하루 임대료가 2000원이고 1분 통화료가 약 2400원이다. 이런. 그런데 여기서 느낀 점은 서울 사람들의 말투는 경상도 사람들에게 꽤나 상냥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귀가 간지러웠다. 서울 사람들에게 경상도 말투는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던데. 어쨌건 힘들게 여행사 만남 장소인 L과 M 카운터 사이에 도착했다. (한 2시간 동안 공항에서 시간 때우다가 도착했다) 우리 가족(나, 동생, 엄마)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될 사람들이 공항에 앉아있었다. ‘아, 이제 여행이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곧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짐을 부치고 표를 받고 출국 수속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젠장할! 시계를 하나도 안 들고 온 것이었다! 무슨 옷 준비한다고 시간 다 써놓고 정작 중요한 시계를 안 들고 오다니. 그래서 면세점에서 스워치 시계를 50유로 정도 주고 샀다. (무한도전을 못 봤다)

그렇게 해서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전부터 ‘비행기에 몸을 싣다’는 표현을 해보고 싶었다) 비행기 편명이 CX419였다. Cathay Pacific은 처음 이용해본다. (사실 비행기는 중국동방항공을 타본 게 전부지만) 비행기를 타러 가는 동안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망할, 이놈의 좌석은 왜 이렇게 좁은거야?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뭘 움직일 수가 없다.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좌석 앞에 승객들 지루하지 말라고 붙여놓은 화면은 고장이란다. 아이고, 분통터져라. 이렇게 4시간을 이동해서 홍콩에 도착한 후 또 30분 정도를 기다려서 로마행 비행기 CX293편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난 왜 검색대에서 항상 걸리는걸까? 인천에서도 수상한 사람처럼 날 들여다보더니, 홍콩에서도 난리다. 비행기를 타서는 수면제를 먹고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한 10시간 정도 후에 깨어났다.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정도였는데, 그 동안 좌석 앞에 있는, 홍콩 갈 때는 고장 나서 나오지 않던 그 모니터를 보면서 놀았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많았는데, 재밌었던 것들은 Friends, Bee Movie, Rush Hour 3, The Simpsons, Fifa Futbol Mundial(영화 Hands of the God의 프리스타일러들이 나왔다!), The Truman Show 정도가 되겠다. Simpsons는 한 3번정도 봤다. 알고 보니 똑같은걸 반복해서 틀어주고 있었다. 대사를 대충 외우겠다. 그렇게 14시간을 공중에서 보낸 후 로마 퓨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이쯤에서 우리 가족과 동행한 18명의 일행들을 소개해야겠다. 먼저, 우리를 인솔한 이혜경 가이드 분. 처음에 화려한 패션을 보고 약간 놀랐다. 처음엔 서울 사람들의 말투를 잘 몰랐을 때는 조금 불친절한 줄 알았다. 그리고 어린 여자 애들 2명과 함께 오신 선생님 부부. 통칭 예원이네라고 불렀는데, 부부 중 한 분은 중학교 컴퓨터 선생님이시고 한 분은 고등학교 보건 선생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호 형님네 가족. 종호 형님께서는 작년 12월에 갓 군대를 졸업하신 형님이시다. 나와는 밀라노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말을 텄다. 젠장할, 근데 넘 웃기다! 이 형과 논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종호 형님께선 어머니와 함께 오셨다. 그리고 정아 누님네가 있다. 고려대 전자공학과에 재수를 해서 들어갔다고 한다. 정아 누님네도 모녀 2명이 오셨다. 정아 누님네 어머니께서는 아드님께서 축구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나한테 내가 여행중에 산 축구용품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난 축구에 대한 대화는 언제나 대 환영이다! 비나 누님네. ‘비나’가 이름이었다. 그 누님께선 서울교대에 들어가셨는데, 재수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누님은 외할머니 한 분을 데리고 오셨는데, 진주에서 오셨다고 한다. 이 가족만이 우리와 함께 유일한 경상도 가족이었다. 우리가 왕할머니라고 불렀다. 활기가 넘치시는 분이셨다. 나중에 집에 올 때 비행기에서 내 팔걸이에 발을 떡하니 올려놓고 계셨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에는 수재가 많았나보다. 수재 특집인가, 고려대 출신이 한 명 더 있는 것이다! 슬기 누님은 고려대 3학년생인데 디자인 전공이라고 한다. 이쁘고 똑똑하시니 남자들이 줄을 서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누님께선 이모와 어머니를 동반하셨는데, 내가 볼 때 제일 가족관계를 짐작하기 힘든 가족이었다. 처음엔 자매인줄 알았다. 조금 지나서는 엄마 1 딸 2이라고 생각했고 자기소개를 듣고 나서야 엄마 1 이모 1 딸 1 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 성씨가 제각각인 것 때문에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가족의 이모님께서 내가 볼 때는 장난 아닌 동안이다. 눈으로 보면 20대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잘 모르겠다. 이모라고 하시니 30대 어느 선에서 왔다 갔다 하지 않나 싶다. 퇴사기념으로 오셨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에 나 다음으로 신기한 분이 아닐는지. 그리고 마지막 어머니 되시는 분. 젊으신 것 같다. 고교생 아들 둔 우리 엄마도 어리지만 그 분도 만만찮게 젊으신 것 같았다. 가게를 하신다는데, 나 같은 독특한 놈을 만나본 경험이 있으신 것 같았다. 그리고 성진이네가 있다. 성진이는 이제 중3인데, 나보다 1살 어리다. 그런데 이 놈은 당췌 말이 없다. 바티칸에서 말 걸기 시도하다가 어색해서 X 됐다. 성진이네 아버지께서는 정말 나의 이상형이라고 할만하다. 여성 이상형이 아닌 남성 이상형. 특히 후덕한 느낌을 주는 말투와 그 자태는 정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덕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상이셨다. 신문을 통해 관상공부를 하다 보니 얼굴만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대충 알 수 있는데, 실제로도 무척 훌륭하신 분이셨다. 마지막으로 신혼부부가 있다. 이 부부께선 사실 노부부신데 우리가 신혼부부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따로 놓은 호텔 침대를 붙여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별명이 지어졌나보다. 그런데 신혼부부 아저씨는 정말 재밌으신 분이다. 그 분께선 일부러 재밌으라고 하신 말이 아니겠지만 그냥 재밌어 보이시고 즐거워 보이시는 분이시다. 분당에서 오셨는데, 아내 되시는 분께서는 문경 쪽에서 오셨나보다. 경상도 사투리가 약간 묻어나왔다. 어쨌든 인상이 정말 좋은 가족이었다. 가이드까지 합쳐서 총 21명이다. 그리고 수재들이 많다. 명문대 입학생, 학생이 3명이다. 종호 형님께선 어떻게 되시는 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신혼부부님께서도 수재 자녀들을 데리고 있으신 것 같았다. 그리고 동안 이모 선주 누님께서도 수재가 아닐는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수재가 아니다. 나는 천재다. 지능지수 158에 영재로 2번이나 판별되고 4년간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7개 국어를 구사하는 나도 이 수재 여행단에 당당하게 들어갈 자격이 된다. 성진이는 공부를 좀 잘하게 생겼고, 내 동생도 좀 하는 편이다. 또 선생님들이 많다. 난 선생님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들도 공부를 잘 한다. 근데 다들 나를 대학생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를 내 누나로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솔직히 나를 대학생으로 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랑 똑같이 생긴 놈을 보면 대학생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매일 대학 도서관에 출근하다보니 내 자신이 중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때문에 엄마가 누나로 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객 소개는 이까지 하도록 하고, 본격적인 여행 이야기를 해 보자. 오전 6시쯤에 로마 퓨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렌즈를 안 껴서 그 날은 안경을 껴야했다. 짐을 찾는데 소매치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소매치기 찾는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사실 그렇게 걱정할 것 까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짐 찾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공항은 낡아서 꼭 지하철 역 같은 느낌이 든다. 전용버스에 탑승해서 이탈리아 지역을 함께 여행할 그곳의 가이드 분을 또 만났다. 이 유럽 지역의 가이드 시스템은 각 나라마다 있는 가이드들이 패키지 여행객을 안내하는 그런 형식이었다. 이 가이드 분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꽤 훌륭한 가이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폴리로 향했는데, 나폴리는 사실 그냥 거쳐 가는 코스에 불과했나보다. 그냥 도로를 달리면서 가이드가 ‘여기가 나폴리입니다’ 이러고 끝이다.

그래서 우린 폼페이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이 터지면서 화산재에 묻힌 로마시대의 도시이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의 일이다. 여기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는데, 이놈의 현지가이드들은 하는 일이 대체 뭐지? 난 현지 이탈리아인을 만난다는 게 설레였는데 사실은 우리랑 같이 걸어 가주는 일로 시간당 10유로를 받는다. (그래도 Come grande! 하고 이탈리아어로 감탄사를 해주니까 웃는다.)폼페이의 포르타 마리나를 지나 폼페이 안으로 들어갔다. 엄청나게 넓었다. 로마시대 도시가 이렇게 넓었다니. 아직 다 발굴이 안 된 상태란다. 문마다 다 들어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참았다. 그리고 사진이나 글로만 보던 화산재에 뒤덮인 사람 캐스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로마시대 사람들이 살던 흔적들이 (마차길, 사람들의 손에 닳은 돌들) 여실히 남아있었다.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창녀의 집’이었다. 창녀의 집이라. 창녀는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했다. 폼페이는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는데 이 창녀의 집만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역시 일본인들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어딜 가나 많았다. 한 4개 정도의 방이 있었고 방마다 돌침대가 있고 벽에 야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흥미로운 곳이었다. 폼페이에서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갔다.

점심은 스파게티와 무슨 오징어 튀김이 들어있는 샐러드였다. 그런데 이 유럽의 식당들은 자리를 절대 안 남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 테이블에 4개의 의자가 있으면 4명이 앉아야 한다는 소리이다. 3명이 앉으면 안 된다. 그런데 여차저차해서 내가 튕겨버렸다. 엄마랑 동생은 성진이네 2명과 앉고 나는 튕겨서 슬기 누님네 3명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나는 슬프게도 가족에게서 계속 버림을 받았다. 메인요리는 조개가 들어간 스파게티였다. 처음엔 주위사람들과 어색해서 그냥 먹기만 먹었다. 난 말을 붙이는 재주는 없거든. 그래도 아주머니께서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등을 물어봐주셨다. 그때마다 난 경상도식으로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울산이요, 버스타고요, 이렇게. 서울 사람들이 보면 답답해 미칠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냥 스파게티만 후루룩 들이 삼키고 있다가 아주머니께서 스파게티를 더 달라고 웨이터를 부르셨다. 그런데 씹히셨다(푸훗). 그래서 내가 시도했다. 이탈리아어로 ‘Di piu spaghetti, per favore.’ 라고 부탁했다. 영어로 하면 Give more spaghetti, please 이고 한글로 하면 스파게티 더 주세요, 제발 이런 뜻이다. (이탈리아노 웨이터가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놀람)
그런데 per lei 라고 해야 아주머니한테 주라는 뜻인데 이 웨이터가 나한테 엄청난 양을 들이붓는 것이었다. 이런. 그냥 먹었다. 배 터지는 줄 알았다. 서양에선 남기는 게 미덕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어서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그러다가 남겼다. 도저히 못먹겠더라. 그래도 그것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는 약간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자 3명중에 2명이 화장실가고 1명만 내 앞에 앉아있으면 분위기는 정말 어색해진다. 그래서 슬쩍 화장실 가는 척 자리를 떴다. 엄마는 맛있게 식사를 한 모양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소렌토로 가는 버스를 탔다. 소렌토의 풍경은 기가 막히게 멋졌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한 번 내리고 사진 찍고 그게 끝이었다. 그래도 소렌토에서 돌아오라 소렌토를 이탈리아어로 불렀다. 학교에서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수행평가를 했기 때문에 그걸 부르는 건 대충 할 수 있었다. 산타 루치아도 불렀다.

그러다가 이제 무슨 가구점으로 갔다. 이탈리아제 원목으로 만든 가구점이었다. 여행 중에 그런 식으로 상점 같은데 많이 들렀다. 그게 별로 좋진 않았지만 한번 가 볼만은 했다. 가구 공장은 거의 다 쓰러져가는 형편이었다. 공장과 판매점이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에는 가제토 델로 스포르트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개 두 마리가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역시 스포츠와 개들을 좋아하는가보다. 거기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조잡했다. 중국산처럼 보이는 오르골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버스를 탔다.

저녁은 호텔 근처 라티나에 있는 Ristorante Cinese에서 먹었다. 중국 식당이라는 뜻이다. 난 현지식이 더 먹고 싶었는데 중식을 먹게 되어 약간 아쉬웠다. 그래도 중식도 먹을만했다. 좀 짜고 느끼한 건 있었지만 괜찮았다. 이번에는 신혼부부네와 함께 식사를 했다. 5인 식탁에 5명이 앉아서 먹었다. 신혼부부 아저씨네는 딸이 둘인데, 한 명은 캐나다에 유학중이고 세계 각국을 여행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부부도 부부끼리 자주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동남아를 많이 가시는 듯 했다. 나와 내 동생 인상이 좋아보인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분당에서 오셨다고 했고, 서울 강남에 있는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한다고 하셨다. 말씀하시는 게 무척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경북 문경에서 배가 고팠던지라 밥을 두 세 번 퍼다 먹었다. 그런데 쌀이 맛이 없었다. 그래도 식사한 것이 기억에 제일 남는 것 같다. 본 것은 기억 못 해도 먹은 것은 기억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로 향했다.

나는 호텔이 로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버스로 한참 이동해야 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라티나라는 곳인데, 우리가 묵은 호텔은 엑셀시오르 라티나라는 호텔이었다. 별 4개짜리 호텔이었다. 이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동생이 로밍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식당에 전화를 하고 로마로 돌아간 이탈리아 가이드한테 전화하고 난리를 펼쳤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외투 소매 안에 핸드폰이 끼어있었다. 젠장. 엘리베이터는 불편했다. 우리가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문이 닫히지 않는다. 하지만 호텔 상태는 괜찮았다. 바닥이 전부 대리석이었다. TV도 잘 나왔다. 욕조에는 월풀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 동생이 샤워를 했는데 한국식으로 욕조 밖에서 물을 끼얹다가 방 안으로 물이 새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막 수건으로 방바닥을 닦고 방을 걸레질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엄마가 화를 내서 동생이 우는 또 다른 진풍경도 벌어졌다. 유럽에는 욕조밖에 배수구가 없다는 걸 숙지하고 갔음에도 그런 참담한 일이 벌어지다니. 첫날 밤은 이렇게 약간의 스트레스와 불만 속에 저물어갔다. 우리는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2 (3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2 (3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2:46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2 (3일)
 
 



작전명 678. 6시 기상, 7시 아침식사, 8시 출발이란 뜻이다. 이혜경 가이드와 함께 여행한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데 새벽 3시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젠장, 도대체 누군데 새벽 3시에 전화를 하는 거야? 거절버튼을 누르자 문자가 도착했다. ‘승호야, 제진이 엄마인데 빨리 연락 좀 해라.’ 제진이는 내 친구이다. 이런, 급한 일인가? 그래서 새벽 3시에 문자를 했다. ‘무슨 일이신데요?’ 답장이 왔다. ‘승호야, 등굣길 카풀 할래?’ 허허.

새벽 3시에 그렇게 일어나고 나니 잠이 안 왔다. 작전명 678이니 아직 3시간이나 남았는데 뜬 눈으로 지샜다. 하하하. 제기랄, 시차 때문인지 도저히 잠이 안 온다. 결국 6시까지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씻었다. 우리 가족은 3명이라 옷을 많이 싸오면 짐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옷을 못 갈아입었다. 또 거기서는 렌즈를 끼고 빼기가 힘겨웠다. 렌즈가 하수구 밑으로 빠지면 완전 개 되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이탈리아의 새벽을 만끽했다. 호텔 로비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우리 일행들뿐이었다. 이탈리아인은 없었다. 메뉴는 동일했다. 크로아상, 비스킷, 잼, 버터였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건, 우유, 커피, 뜨거운 물, 시리얼 따위였다. 하, 유럽의 호텔에서 컨티넨털 조식을 먹다니. 내가 항상 상상해오던 거였다. 사대주의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여유롭게 차나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즐겨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선 시간 때문에 허겁지겁 밥 먹고 나가기 급하거든.

만족할 만한 아침식사를 즐기고 방으로 올라가서 오늘 바티칸과 로마 일정에 가지고 갈 짐을 챙겼다. 소매치기 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만반의 준비를 했다. 나갈 때 쯤 MTV를 틀어보자, Riot이라는 Rock 밴드와 Caparezza라는 이탈리안 래퍼, 그리고 내가 요즘 내한공연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Maroon 5의 Won't Go Home Without You,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라하는 Linkin Park의 Shadow of the Day의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역시 음악은 만국공통 언어구나. 내가 좋아하는 Rock, Hip-hop 계열 뮤직비디오가 나오니 정말 반가웠다. 그렇게 해서 버스를 타고 로마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폴리 쪽으로 내려갈 때는 차가 막히지 않아서 수월하고 빠르게 이동했지만 이번에는 출근차량이 많아서 그런지 꽤 막혔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가는데 이탈리아인들과 손 인사를 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정이 많고 우리랑 정서가 비슷해서 그런지 손으로 ‘잼잼’ 하듯이 인사를 하니 전부 받아준다. 차를 타고 가면서 느낀 건데, 이탈리아인들은 선글라스를 많이 끼고 다닌다. 운전자 중 80~90% 정도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선글라스는 남녀를 불문한다. 햇빛 때문인지 외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이유 모두 타당한 것 같다. 이탈리아의 햇살은 정말 따사롭다. 겨울인데도 햇살이 따뜻한 걸 보면 여름엔 말할 필요도 없다. 로마 문명을 키운 햇살이니 강렬하지 않겠는가? 겨울에 지중해의 햇살은 정말 반갑다. 그리고 이탈리아인은 두상이 작아서 선글라스를 끼면 굉장히 잘 어울린다. 또 코도 우리에 비해 매우 크니까. 머리 작고 코가 크니까 얼굴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다른 인종이 아니면 못생긴 사람이 별로 없다. (사실 난 라틴인종치고 못생긴 사람을 못 봤다. 전부다 걸어 다니는 모델들이다. 외모나, 패션 감각이나.)

도로가에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니 로마 시내에 다 왔는가보다. 로마 시내를 보면 정말 건물들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국과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국과 다르다고 해서 절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여유로움, 유럽적인 느낌이 난다. 한국 돌아가서 느낀 건데 이젠 고층건물이 신기하다.

로마 시내로 진입하여 바티칸 시국의 경계에 다다랐다. 로마 안에 있는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그래서 성벽으로 경계를 짓고 있었다. 그래도 여권 제시 없이 검색만으로 통과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처음 성벽을 보면 굉장히 놀라게 된다. 성벽 때문에 놀라는 것이 아니고 그 크고 긴 성벽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관광객 행렬 때문이다. 대략 5, 600미터는 되어보였다. 나의 거리 감각이 틀릴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행렬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가이드가 이건 ‘한 시간짜리군’ 이러면 한 번 더 놀란다. 보통 여름에는 두 세 시간은 기본이라고 한다. 하하, 겨울에 가서 다행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었다. 우리는 결국 30분 기다려서 바티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로마 시내를 즐길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 잡상인들도 역시 빠질 수 없다. 사람이 많은지라 엽서 묶음 따위를 1유로 받고 파는 잡상인들이 많다. 난 나중에 하나 샀다. 싼 값에 선물하기 좋다, 하하. 1유로가 1400원 정도이니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기선 이게 싼 가격이다. 휴게소 충무공 김밥이 3000원이라고 불평했던 게 참으로 우스웠다. 이 나라에선 물 700ml가 1500~2000원 선이니 충무공 김밥은 한 4~5000원 하겠다.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여차저차해서 바티칸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는데, 인천과 홍콩에서 검색을 당한 적 있는 나는 가방과 외투는 물론 휴대폰, 동전, 벨트도 다 풀고 들어갔다. 그래서 안 걸리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삼엄하게 경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젠장. 그냥 들어갈 걸. 어찌됐든 우리는 수신기를 달고 들어갔다. 라디오 수신 장치가 되어있어서 가이드가 하는 말이 반경 100여 미터 내에서 들린다. 그런데 사실 수신기가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가 않다. 전자음이라서 잘 안 들릴뿐더러 돌아다니다보면 볼거리에 정신 팔려서 전혀 안 듣게 된다. 그리고 전혀 안 듣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관광객이 많이 몰려있는 것이 유명한 볼거리요, 그리고 친절하게 영어설명까지 앞에 곁들여져 있으니 굳이 가이드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약간은 듣는 것이 좋겠지.

먼저, 우리는 토르소 상을 보았다. 말로만 듣던 그 토르소인가? 난 미술에 별 흥미가 없어서인지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대충 보면 사람이 조각으로 새겨져있는데 구멍이 나 있구나, 이런 느낌이다. 그리고 로마 시대의 욕조, 등을 관람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잘 기억도 안 날뿐더러 사진으로 봐도 이게 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방이 수십 개 달린 다산의 신은 볼만하다. 신기하고 기괴하다.

그렇게 관람을 하고 박물관에서 시스티나 소성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천사와 악마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를 읽고 들어가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나중에 루브르 박물관에 갈 때는 다빈치 코드가 도움이 된다. 시스티나 소성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선거인 콘클라베를 실시하는 곳이다. 지난번에 베네딕토 16세도 여기서 선출되었다. 그리고 시스티나 소성당에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사실 맞는 지 잘 모르겠다. 나의 예술사적 기질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도록.) 사진을 못 찍게 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노골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하. 그래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구나 싶었는데, 이런 망할! 차 안이랑 바티칸 박물관 안에서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배터리가 다 되었다. 하하. 이렇게 중요한 시스티나 성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의 성역을 더럽히지 말라는 하늘의 장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껐다 켰다하니 찍혔다! 하늘이 나의 뜻을 받아준 것이겠지. (사실 바티칸은 너무 빨리 지나가서 뭐가 뭔지도 잘 모르고 그냥 넘어간 게 많았다. 사실 이 여행 자체가 너무 빡빡하다보니 거의 대부분을 그렇게 넘어간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나. 내가 선택한 일정인데. 이렇게 일정을 다니고 다음번엔 자유여행이나 한 곳을 집중적으로 다니는 일정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유명한 곳에 안 가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시스티나 성당을 나와 성 피에트로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이 여행사에선 시스티나 소성당을 시스틴 성당, 성 피에트로 대성당을 성 베드로 성당이라고 불렀다.) 성 피에트로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는데, 과히 그러고도 남을 만하다. 장난 아니게 크다. 근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디카는 아예 작동불능이고, 내가 들고 온 내 핸드폰은 스타택이라 카메라 기능이 없다. 허허허허허. 난 카메라 없는 게 이럴 때 불편하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기랄!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로밍폰으로 사진을 찍고 호텔에서 디카로 로밍폰 화면을 찍어서 디카로 옮기는 법이다. 화질은 극도로 떨어지지만 방법이 있겠는가. 배터리는 두 개로도 부족할 일이 있다. 그리고 사진 용량은 2기가로도 부족할 일이 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절대 사진을 많이 찍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계속 찍다가, 나중에 중요한 곳에서 못 찍게 된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찍은 사진은 처음에는 신기해서 찍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짜증날 정도로 고속도로 사진이 많다. 그리고 전부다 똑같은 초원이다. 이런.

성 피에트로 대성당에는 베드로가 묻혀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영원한 성역이다. 하지만 천사와 악마를 보면 진짜 베드로는 성 피에트로 성당의 깊숙한 지하에 묻혀있다고 한다. (천사와 악마에서 그러더군.) 이건 극소수만 아는 사실이랜다. 성 피에트로 성당에서 잠깐 기도를 하고 어떤 동상의 발을 만졌다. 그게 유명한 것인가 보다. 뭐 행운이 온다나. 뭔지도 모르고 그냥 만졌다. 내 생각엔 베드로 사도 동상이었던 것 같다. 발이 완전 달아있었다. 그리고 판테온의 청동을 떼다가 만들었다는 거대한 청동 단상도 보았다. 로마 시민들의 반발이 장난 아니었다지? 그리고 성 피에트로 성당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잠깐 기도를 한 후 성당을 나갔다. 신에게 내가 당신이 만든 우주의 질서를 알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건 모든 이론 물리학자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성 피에트로 성당을 나가니 성 피에트로 광장이 바로 보였다. 6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 피에트로 광장은 책 속에 사진으로 항상 나오는 광장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스위스 근위병을 볼 수 있었다. 이 근위병의 군복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실패작이라고 하지만 난 매우 만족하는 디자인이다. 성 피에트로 광장 한 가운데에 이교도의 상징이 서있으니 굉장히 재미있었다. 역시 천사와 악마가 도움이 되는군. 이 광장을 베르니니가 설계했다고 했나? 베르니니도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처럼 행세한 이교도로서 일루미나티의 회원이다. (일루미나티에 관해서는 천사와 악마를 볼 것.)

여기서 성진이네 아저씨가 일 때문에 우리를 떠났다. 내일 다시 만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남은 성진이와 말을 해 볼 요량으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일산이요. 너희 아버지 왜 가셨어? 일 때문에요. 끝. 하하. 이러면 뭐 대화가 안 된다. 결국 우리는 어색하게 헤어지게 되었다.

점심은 중국식이었다. 이름은 Ristorante Cinese였다. 여긴 중국식당이 많다. 사실 중국식당은 전 세계 어딜 가나 있는 것 같다. 중식, 일식은 찾아보기 쉬워도 한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놈의 식당은 왜 이렇게 한국인이 많은 거야? 자유투어에서 온 사람들인가 보다. 이 사람들은 우릴 파리까지 계속 따라오게 된다. 내 앞에는 종호 형님과 성진이가 앉았고, 옆에는 엄마랑 동생이 앉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종호 형님과 말을 트지 않아서 약간 어색했다. 그래도 종호 형님과 성진이는 약간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매우 어색하게도 난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혼자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치웠다. 나중에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러다가 엄마가 고추장을 꺼내서 사람들과 나눠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난 음식 고유의 맛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추장을 먹지 않았다. 음식 고유의 맛을 해치기 때문이다. 탕수육과 느끼한 고기, 느끼한 샐러드가 나왔다. 배가 고프니 그런대로 맛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보면 정말 초라한 식단이지만, 배가 고파서 밥을 3번 덜어먹었다. 여행 경비가 싸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래도 여기선 아무리 먹어도 금방 배가 고파진다. 바티칸에서도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초콜릿 몇 조각으로 버텼다.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니 내 앞에 몇 대의 클래식, 앤틱 자동차와 포르쉐 카레라GT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나라는 차들이 정말 다양하다. 내가 처음 본 차들이 수두룩하고, 벤츠가 그렇게 귀하지 않다. 그래도 포르쉐와 페라리는 귀하다. 마티즈와 아토즈(현지 이름은 Getz였나.)도 많고, 대우 차가 꽤 많다. 대우 에스페로도 봤다. 한국에서도 드문 차량이다. 갤로퍼와 산타페, 소렌토, 렉스턴도 몇 대 봤다. 그걸 보면서 잠깐 자랑스러웠는데 심각할 정도로 많은 도요타와 닛산 차를 보면서 금방 질투하게 되었다. 하하.

식당에서 버스로 이동하는데 로마 시내의 한 초등학교를 보았다. 라틴어 형식으로 SCUOLA 라고 조각된 로마식의 건물이었다. 초등학교가 무슨 유적지 같았다! 파르테논 신전을 방불케 하는 이 학교에서 이탈리아 초등학생들이 놀고 있었다. 점심시간인 것 같았다. 운동장 쪽으로 갔다. 여기 학교들은 전부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었다. 나는 창살 사이로 보이는 조그만 애한테 Buon giorno. 라고 인사했다. 그러니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인사하면서 Buon giorno. 라고 답한다. 여기 유럽 애들은 너무너무 이쁘고 귀엽다. 한국 애들은 눈에 안 들어온다.

우리는 로마에서 ‘로마 시내 벤츠 투어’라는 선택 관광을 하기로 했다. 1인당 가격은 60유로였다. 어제 여행기에서 쓰지 않은 것 같은데, 카프리 섬은 아무도 가는 사람이 없고 여행사에서도 비추천해서 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여행후기에 정말 좋았다고 하는 것 같아서 가보려고 했더니. 어쨌든 벤츠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원이네 가족은 벤츠 투어를 안 한단다. 그래서 예원이네 가족과 헤어진 후 우리는 예정된 장소에서 벤츠를 탔다. 벤츠가 세단이 아니고 밴이었다. 밴 하나당 5명이 탔다. 난 세단이 타고 싶었는데. 이 벤츠 투어는 NCC라는 회사에서 주관하는 사업이었나 보다. 관광객이 탄 벤츠마다 NCC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일본인들은 세단을 탄다는 점이다. 욕 나온다. 그래도 다들 밴을 타니 참아야지.

우리는 벤츠를 타고 트레비 분수, 나보나 광장, 스페인 광장, 판테온, 콜로세움, 진실의 입, 대전차 경기장,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아 언덕 등을 순회했다. 기사가 옆에 앉은 가이드에게 이탈리아어 할 줄 아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Io parlo italiano un po.' 라고 말했다. 그러니 기사가 ‘Conoscento!' 하며 웃는다.

트레비 분수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로마의 휴일을 보고 갔는데, 오드리 헵번이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핥은 줄 알고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것이다. 제길! 사실은 스페인 광장에서 핥았는데! 아이스크림 2개해서 4유로 줬으니 5600원 날렸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맛있었다. 초콜릿 무스 맛이었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는 동전을 오른손으로 집고 뒤돌아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면서 로마로 다시 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정말 다시 오고 싶은 도시이다. 분수 안에 세계 각국의 동전들이 잔뜩 있다. 난 10원짜리를 던졌다. 하하. 이렇게 모인 동전은 자선활동에 쓰인단다. 사실일까?

스페인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고 ‘키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연인이 생기면 여기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잘생기고 이쁜 사람들이 많았다. 명품 상점들이 많아서 그런지(Gucci, Chanel, Salvatore Ferragamo, Luis Vuitton 등) 멋쟁이들이 많았다. 로마는 정말 낭만적이고 멋진 도시이다.

나보나 광장에는 화가들이 많았다. 가이드 말로는 대학로 화가들보다 못하다고 한다. 한 화가가 나한테 cinque minuti 라며 초상화 그려주겠다고 그런다. 그림을 어떻게 5분 만에 그리지? 신기할 노릇이다. 나보나 광장에도 베르니니가 갖다놓은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광장, 오벨리스크, 그리고 산탄젤로 성을 보고나니 정말 천사와 악마의 무대에 온 느낌이 들었다.

판테온에도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판테온도 천사와 악마의 무대 중 하나이다. 랭던이 판테온을 일루미나티의 표지가 있는 곳 중 하나로 착각한 곳이다. 여기에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라파엘로는 판테온에 묻히길 간절히 희망했다고 한다. 사실 라파엘로는 처음부터 여기 묻혀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18세기가 되어서야 판테온에 묻혔다. 그 동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에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라파엘로의 무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거기서 한국인이 큰일을 냈다. 라파엘로 무덤 앞에서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모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3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이 자기 키 만한 철제 모금함에 기대서다가 모금함을 쓰러뜨렸다! 대리석 바닥에 육중한 철제 모금함이 떨어져 엄청난 굉음이 났다. 특히 판테온 안은 건물이 돔형이기 때문에 한쪽에서 속삭이면 다른 쪽에서 들릴 정도로 소리 전달이 확실하다는데, 그 굉음이 판테온 안에 얼마나 크게 들렸는지 대충 상상이 될 것이다. 가이드는 그게 총소리인줄 알았다고 한다. 내가 쓰러지는 모금함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놓쳤다. 결국 이탈리아 여자가 그 모금함을 들어올렸다. 한국인 모자는 냉큼 빠져나갔다. 판테온에서 신기했던 것은 바로 돔이었다. 그 거대한 돔이 따로 조립된 것이 아니고 한 조각이라고 한다. 정말 건축사의 불가사의이다. 현대 기술로도 어려울 일을 로마 사람들이 해낸 것이다. 지금은 판테온을 교회로 쓰고 있다. 그리고 천사와 악마에서 비토리아가 읽었던 안내문도 볼 수 있었다. ‘라파엘로의 무덤은 라파엘로가 죽은 후 몇백년 뒤 여기로 옮겨졌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대전차 경기장은 거의 형체가 허물어지고 잔디가 깔려있어 시민들이 공원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유적지가 널려있으니 공원처럼 이용해도 될 만하겠지. 로마 시대가 끝나면서 귀족들이 대전차 경기장의 좌석으로 깔려있던 대리석을 채석하면서 많이 망가졌단다. 거기서 이탈리아 소년 한 명과 소녀 한 명이 축구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둘은 약간의 리프팅과 개인기를 선보였다. 남자애는 자꾸 사포를 하려다가 실패했다. 여자애는 ATW를 하려는데 역시나 실패했다. 내가 가서 보여주고 싶었지만 대전차 경기장 경사가 너무 심하고 거의 5분만 사진 찍고 가야했는지라 그러지 못했다.

대전차 경기장 근처에 있는 진실의 입 쪽으로 갔다. 진실의 입은 거짓말을 하면 손을 문다는 그런 입이다. 그냥 웃기게 생긴 동그란 조각 얼굴이 있고 입이 구멍으로 뚫려있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거기서 장난짓거리를 했다.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고, 가니까 막 문을 닫으려던 시점이어서 하지 못했다. 결국 진실의 입 뒤에 있는 성당에서 간단한 기도를 하고 나왔다.

진실의 입을 보고 고대 로마를 보러 포로 로마노로 향했다. 대충 로마 공회장이라는 뜻이 될 것 같다. 건물들이 다 으스러져 있었다. 멀리 콜로세움이 보였다. 거기서 웬 노인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연발하며 1유로짜리 엽서 묶음을 팔았다. 아이스크림 사먹고 남은 잔돈으로 그걸 샀다. 포로 로마노 뒤에 로마 시장이 근무하는 사무실 건물이 있었다. 600년이 된 거라고 한다. 그 건물을 아직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니 정말 놀랠 노자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되었다고 하는 숭례문은 불타 없어졌는데. 사실 로마는 2000년 된 건물이 많다. 500년 된 건물은 정말 많다.

로마 시청 건물을 지나가니 캄피돌리아 언덕이 나왔다. 무슨 박물관, 시청 등이 3면을 막고 있고 안 막힌 쪽에는 미켈란젤로인가 라파엘로가 설계한 계단이 있는데, 사람이 가장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계단이라고 한다. 허허. 걸어보니 조금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그래서 쉴 새 없이 계단을 뛰어서 오르내렸다. 캄피돌리아 언덕은 로마가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에 의해 건국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덕 옆에는 마리아 성당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엄숙한 분위기였다. 거기도 꽤 컸다. 하지만 하도 큰 성당과 건물들을 보다보니 어느정도 큰 건물은 별로 커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콜로세움을 방문했다. 거기서 예원이네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가족은 많이 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로마까지 와서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많은 관광지들을 다 둘러보지 못하다니. 어쨌거나 콜로세움 안은 너무 늦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콜로세움 주변을 두 바퀴 돌았다. 난 학교에서도 유명한 장거리 주자인데, 중학교 육상 선수들과 맞먹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콜로세움 한 바퀴 도는데 2분 30초가 걸린다. 둘레가 거의 500미터 이상이라는 소리이다.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보니 콜로세움이 정말 크게 느껴졌다. 콜로세움 바로 앞에는 개선문이 있다. 나폴레옹과 조선이 베낀 그 개선문이다. 개선문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 못한다.

로마 시내 일정을 모두 끝내고 난 후 가이드 아저씨가 나한테 카푸치노 사준다는 약속을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첫 날 로마에서 나폴리로 갈 때 아저씨가 낸 퀴즈의 정답을 맞췄기에 카푸치노를 한 잔 사준다고 약속을 했었다. 정답은 부가티였다. 페라리보다 한 수 위인 자동차는 분명 부가티뿐이다. 물론 양산되는 자동차 중에서는. 부가티 베이론이 전 세계 양산 자동차 중 속도가 1위이다. 시속 406km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가이드 아저씨를 따라 로마의 한식당으로 향했다.

로마의 한식당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외관이 중국식당보다 못했고, 테이블과 식단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현지인들이 보면 한국식을 뭐라고 생각할까. 역시나 한국인 패키지 여행객 몇 명이 앉아있었다. 메인 요리는 육개장과 매운 오징어 볶음이었다. 테이블에는 우리 가족 3명과 고려대 가신 정아 누님께서 앉았다. 그래서 지난번에 일본 간 이야기랑 누님께서 재수하신 이야기,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갔다는 이야기 등을 했다. 좋은 학교다. 우리 일행 중에는 수재가 많다. 하지만 난 고려대를 가지 않을 것이다. 고려대 물리학과도 훌륭하지만 KAIST와 Postech, 그리고 미국의 대학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와 동생은 육개장이 너무 느끼하다고 먹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잘 먹었지만 엄마와 동생은 정말 못 먹었다.

저녁 9시쯤이 되어서야 라티나의 엑셀시오르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드림렌즈를 끼고 자야 내일 시력이 돌아오는데 너무 끼기가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앞으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렌즈를 낄 수밖에. 내일 하루가 기대된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3 (4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3 (4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2:44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3 (4일) 
 


오늘은 피렌체로 가야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일어나야했다. 작전명이 5시 반, 6시 반, 7시 반이었던 것 같다. 5시 반에 일어나기 힘들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는 활동하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눈은 잘 떠졌다. 그러니까 의식은 있는데 몸은 죽어있는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엑셀시오르 호텔에서는 마지막 날이어서 짐을 챙겨야 했다. 짐 챙기는 것 때문에 엄마는 나와 동생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쳐야 했다. 엄마는 디카 배터리도 교환해야 되고 짐도 챙겨야 해서 잠을 설쳤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잘만 잤는데. 어제와 같은 아침 식사를 먹었다. 다만 컵라면 (신라면) 2통을 들고 내려갔다. 아! 신선놀음이 따로 없도다! 매콤한 라면 국물이 그리도 달콤할 줄이야! 라면 한 그릇을 후딱 먹어치우고 크로아상을 하나 베어 먹고 배부르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이 호텔 앞에는 기차역이 있었는데, 새벽부터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기차역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약간 돌아다녔다. 이탈리아인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쳐다봤다. 꼭 한국에서 우리가 벽안의 외국인들을 쳐다보듯이. 그리고 종호 형님께서 호텔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한 장 찍어주셨다. 그때만 해도 그 형님이 그렇게 재밌는 형님인지 몰랐다. 다른 사람들과는 말을 별로 안 하시니 약간 어색했다. 사실 난 우리 일행 전부와 어색했다.

사진 몇 장 찍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어제 버스에서 너무 추워서 신혼부부네 아저씨께서 기사 아저씨(이름은 루치아노라고 한다.)한테 ‘카 히터 온!’ 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신혼부부 아저씨는 웃기라고 한 소리가 아니었겠지만 엄마와 동생은 지금도 그 일을 회상하며 웃는다. 결국 내가 영어로 기사와 대화를 시도했다. ‘It's so cold here. Could you please turn on the heater?’ 이러니까 기사가 못 알아듣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영어를 못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유창했나? 하하. 결국 이탈리아어로 ‘Ho freddo!’ 이러니까 ‘Ah! Freddo! Cinque minuti! Five minutes!' 이런다. 버스가 열을 받을 때까지 5분만 기다리란 소리였다. 뭐, 대충 문제는 해결된 것 같은데 이렇게 영어를 못하나? 대단하기도 하고 우리나라가 부끄럽기도 했다. 한국에선 한국어를 써야지 웬 영어 교육인지. 영어는 쓸 놈들만 잘 쓰면 된다. 나 같은 놈만. 나머지는 영어 알아도 별 쓸 데가 없다. 국가 예산 낭비란 뜻이다. 그리고 이왕 가르치려면 잘 가르치던가. 이야기가 딴 데로 샜는데 어쨌든 영어 못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며 괜히 영어를 강요하는 한국에 환멸감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놈의 히터는 5분이 되어도 제대로 틀어지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추운 분위기 속에 피렌체로 이동했다. 피렌체까지는 약 3~4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어느 호텔 앞에 내렸다. 물론 우리가 묵을 호텔은 아니었다. 고급 호텔이었으니까. 하하. 쓴 웃음이 나온다.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다음 호텔들은 꽤 쓰라린 경험이 되었거든. 어쨌든 점심을 먹으러 이동해야했기에 걸어야했다. 이 유럽의 도시들은 대형 버스가 다니기 어려운가 보다. 뭐 도시에 버스가 진입하려면 120 유로 정도를 지불해야한다니. 이 나라는 관광객을 별로 반기지 않는 나라라서 그렇다고 한다. 하긴, 광고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관광객은 수두룩하게 쏟아지니, 그럴 만도 하겠다.

피렌체에 처음 내려서 받은 느낌은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거리가 한산했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차들은 많이 다녔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약간 복잡한 느낌을 받은 로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매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니 그 전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횡단보도가 빨간 불일 때도 사람들이 그냥 건너간다. 물론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는. 그리고 빨간 불에 사람들이 지나가면 차들도 알아서 멈춰준다. 도로가 보행자 중심이라 그런가보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데. 이래서 선진국이 선진국이란 것인가.

점심을 먹으러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가 피렌체의 주택가에 들어서게 되었다. 젠장! 완전히 달력에 나올만한 그림 같은 거리였다! 여기서 내가 진짜 유럽에 왔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거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뭐, 여기 사는 사람들은 매일 봐서 지겹겠지만 내 눈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는 여기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오래된 흰색 집들이 줄을 지어있는데 바닥의 돌길하며, 거리에 주차된 낡은 자전거, 클래식 카를 비롯해서 오래됨과 낡음이 조화롭게 아름다움을 구성하고 있었다. 무조건 새로 지은 것, 빨리빨리, 날림 공사를 선호하는 대한민국이 안타까웠다. 옛 것을 가꾸어야 하는데. 사대주의적인 발상은 아니다. 분명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거리에 개똥이 많은 점은 주의해야 할 점이다. 질펀한 것 하나 밟을 뻔했다. (거리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서)

점심 식사를 하러 한 식당에 도착했다. 겉에서 보기엔 굉장히 작은 식당처럼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컸다. 왜 이렇게 큰 거야! 이 식당은 1층도 엄청나게 큰데다가 2층(화장실 있음)까지 있다. 역시나 한국인들이 앉아있다. 대체 한국인이 없는 식당으로 가면 안 되는 건가? 어쨌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번에는 4인 테이블에 우리 가족 3명과 홀로 남은 성진이가 앉았다. 역시나 이 녀석은 말이 없다. 엄마는 그래도 말을 걸어보려고 애쓰는데 나보다 더 말이 없다. 나는 그래도 말할 때는 잘 하는데. 식사는 먼저 스파게티가 나왔다. 배가 고팠던지라(시차 때문에 쉽게 배가 고파진다고 한다.) 스파게티 한 접시를 금방 해치웠다. 그리고는 나한테 카푸치노 한 잔 사준다고 했던 가이드한테 카푸치노를 사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니까 가이드가 ‘Un cappucino per lui, per favore.’라고 말했다. 젠장! 가이드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겠어! 이탈리아에서 14년 동안 가이드로 일했다는 분이 너무 쉬운 이탈리아어를 구사했다. 이탈리아인들이 하는 말은 잘 못 알아듣겠는데 이 가이드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 카푸치노를 마셔봤는데, 윽! 제기랄! 왜 이렇게 쓴 거지? 에스프레소도 아닌데? 결국 엄마가 마셨다. 스파게티를 더 달라고 말했다. ‘Di piu spaghetti, per favore.’ 그러니까 더 주는데, 이 나라에서는 조금 주는 게 아니고 엄청나게 들이붓는다. 더 먹는다고 하면 아직 ‘한참’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는지 스파게티를 들이붓는다. 결국 반절은 남겼다. 돼지새끼가 아니고서야 그 정도 양은 못 먹는다. 이 나라에선 먹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데 또 웬 쇠고기 스테이크가 나온다! 이런. 그래도 그냥 먹었다. 맛이 있는지라. 나는 괜찮았는데 엄마랑 동생은 매일 스파게티, 밀가루 음식만 먹어서 못 먹겠단다. 그래서 내가 먹었다. 나한테는 스파게티용 배랑 스테이크용 배가 따로 존재하나?

점심을 다 먹고 또 피렌체의 거리를 걸어 다녔다. 옆에 게임 상점이 있었다. PSP 게임을 팔았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시에스타라고, 점심시간처럼 이 시간에는 영업을 절대 안한다고 한다. 낮잠 자거나 집에서 커피마시는 시간이란다. 참으로 여유로운 나라이다. 근처에는 학교가 있었다. 학교가 무슨 집 건물 같았는데 유리문 안으로 애들이 노는 게 보였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로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써 있다. 방문을 하려면 문 옆에 앉아있는 경비한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데, 경비는 여자였다. 다른 여자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또 개똥을 밟을 뻔했다.

거리를 계속 걷다보니 눈앞에 어떤 거대한 성당이 보였다. 난 그게 피렌체의 두오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거기 앞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Aghilieri di Dante'라고 한다. 단테 기념관인가? 어쨌거나 컸고 앞에 광장까지 있었다. 우린 거기를 지나 다비드 상이 있는 곳까지 갔다. 내 생각에는 피렌체의 어느 박물관과 시청이 있었던 광장이었던 것 같다. 다비드 상은 복제된 제품이고 진짜는 건물 안에 있다고 한다. 다비드 상의 고추를 잡은듯한 앵글로 사진을 찍으면 행운이 온다는(?) 가이드의 말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찍었다. 우리 일행 중 그렇게 찍은 사람은 우리 가족뿐이다. 그래도 나 없었으면 그렇게 안 찍었을 거다. 주위에서 일행 몇 명이 대리만족을 느끼듯 웃는다. 그럼 그렇게 찍어보면 될 것이지. 그리고 그 광장 주변 가판대에서 엄마 친구 줄 선물을 몇 개 샀다. 냉장고에 붙일 자석을 4개정도 샀다. 그리고 목각 피노키오 연필을 2개 샀다. 중국제처럼 보였지만 뭐, 요즘은 중국제 아닌 게 없으니. 그런데 가격이 4개 10유로다. 가격이 왜 이래. 장난 아니다. 하나당 4000원? 여기선 1유로를 100원 보듯이 한다. 그런데 반대편 가판대에서도 4개 10유로란다. 전부 똑같은 가격이다. 담합이라도 했나? 정말 경쟁이라고는 모르는 사회이다.

늘 그랬듯이 발도장과 사진만 찍고 다비드 상이 있는 곳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진짜 피렌체 두오모(이탈리아어로 대략 성당이란 뜻)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다. 첫 번째는 바티칸의 성 피에트로, 두 번째는 영국의 세인트 폴즈, 세 번째는 밀라노의 두오모, 네 번째가 피렌체 두오모이다. 1,3,4위가 모두 이탈리아에 있다. 여기 피렌체의 두오모는 바로 냉정과 열정사이의 감동적인 무대가 되는 그 곳이다. 나도 영화에서처럼 두오모 꼭대기까지 올라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된다고 한다. 돈 버는 건 잘 하는 나라이다. 운동을 하는 몸이라 계단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 자신이 있다. 그래도 가이드가 그러길 나중에 대학생 되면 배낭여행 와서 한번 올라가보라고 한다. 이런. 그래서 안 올라가고 그냥 들어가 봤다. 그런데 밖에서 볼 때는 어마어마하게 큰데(두오모 첨탑의 높이가 약 300미터라고 한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 가보는 사람이 보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하도 큰 건물들을 많이 보니까 이젠 그러려니 한다. 하하. 그런데 이놈의 성당은 지하에 기념품점도 있다. 일본인이 대다수이다. 여기 피렌체 두오모에는 일본인, 한국인, 미국인 순으로 관광객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기념품점만 있는 게 아니라 안내 책자도 기부를 하고 가져가란다! Offerta 라고 기부함이 놓여있는데 그 위에 ‘이 책자를 가져가려면 꼭 기부를 하시오’ 라고 한다. 그냥 가져왔다. 미안하지만 동전이 없어서. (사실은 안내책자 가져가는데 기부하기가 너무 싫었다.)

두오모 관광을 약 30분 만에(30분도 많은 시간이었다. 보통은 10분 정도 준다.) 끝내고, 두오모 앞 어느 병원 앞에 모였다. 그런데 왜 어제 디카 배터리가 그렇게 빨리 닳았는지 알았다! 해상도를 엄청나게 높게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젠장! 왜 여기서 이런 망할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두오모 근처 주택가에 웬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가이드가 그러는데, 사람들이 여기에 실례를 많이 하다 보니 십자가를 걸어놓아 성스러운 곳처럼 보이게 해놓았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다.) 여기서 피렌체 현지가이드인 일리아노와 헤어지게 되었다. 일리아노는 피렌체 소재 축구 팀인 피오렌티나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피오렌티나, 굿 팀이라고 해 주니까 좋다고 그라찌에(Thanks.)란다.

두오모에서 버스를 타러 가는데, 단테의 생가에 잠깐 들렀다. 단테라 함은 바로 단테의 신곡으로 유명한 그 단테이다. 엄마는 단테 생가가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내 눈에는 그냥 집처럼 보였는데. 물론 단테 생가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입장료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테 생가는 일정 안에도 없었으니까. 그냥 지나가는 경로에 단테 생가가 있었을 뿐이다. 유적이 하도 많으니 걸어 다니는 곳마다 유적이다. 사람들이 사진 찍고 있을 때 살짝 들어가 봤는데, 1층에는 작은 서점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인기가 없는 관광지 같았다. 아무도 없었다. 직원도 내가 들어왔음에도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나간다. 서점에는 결국 아무도 없었다. 뭐 훔쳐가도 모르겠더라. 어쨌든 그냥 나왔다. 단테의 생가 앞에는 웬 거리의 악사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앞에는 천을 깔아놓아 동전을 수금했다. 우리 일행 중 몇 명이 그 사람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런데 사진 찍은 일행들이 돈을 안주고 그냥 갔다. 그 연주자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단테의 생가를 보고 난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밀라노로 이동했다. 이탈리아에서 우리를 안내해주던 이탈리아 소재 한국인 가이드와는 작별했다. 버스 안에서 놀라울 정도의 역사 지식으로 이동 내내 떠들던 훌륭한 가이드였다. 그러나 정식 라이센스는 없어서 항상 시간당 10유로를 주고 현지가이드를 대동해야했다. 이놈의 현지가이드들은 하는 일은 없지만 돈은 잘 받는다. 밀라노로 이동하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가이드가 제안한 건데,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 밥도 같이 먹어야 하고 하니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1조라 제일 먼저 소개를 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먼저 말을 했다. ‘전 미친놈으로 태어나 미친놈으로 죽고 싶습니다.’ 대충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에게는 인상적이었나 보다. 다들 나랑 말을 할 때면 그 일을 꺼낸다. ‘야, 너 말 잘하던데, 뭐라 그랬더라, 미친놈?’ 하하. 난 평범함을 거부한다. 평범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내가 내 소개를 하기 전까지는 전부 날 대학생으로 알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엄마를 내 누나로 생각했단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봐도 난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는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대학교 도서관 들어가도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소개시간에서 놀라게 되었다. 우리 일행 중에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명문대 학생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자매라고 생각했던 두 누님들이 사실은 이모와 조카 사이였다는 것. 이모가 오히려 더 젊어보였는데? 충격적이었다. 뭐, 어쨌든 자기소개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종호 형님과 성진이, 그리고 신혼 부부 아주머니께선 소개를 하지 않으셨다. 종호 형님은 그때 자는 척했다. 남들은 다 잤다고 알고 있지만 난 안 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한테 ‘너 미친놈이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 이랬으니까. 잤다면 그렇게 말하진 못 했을 거다. 여행이 끝나서 하는 말인데, 종호 형님은 가이드한테도 불만이 많아보였다. (형, 미안해요)

고속도로에서 잠깐 휴게소에 내렸는데, 휴게소에서 카페처럼 음식을 팔았다. (여기 휴게소는 다 그렇더군.) 아직 버스 문이 잠겨있는 걸 확인한 나는 시간이 남은 줄 알고 ‘피자 마르게리따’를 주문했다. 피자 마르게리따는 이탈리아의 대표 피자로서, 이탈리아에 대한 애국심이 깃들어있는 그런 피자이다. 현지인들도 가장 많이 사먹는 피자다. 그런데 오늘 일정이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이기 때문에 이걸 먹어볼 수 없을 것 같아 하나 주문하기로 했다. 할머니 점원에게 ‘Una pizza margheritta, per favore.'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나한테 계속 'Di che?’이러는 것이었다. 디 께? 영어로 하면 대충 Of who(=whom)? 정도가 되겠다. 누구에게 줄거냐는 뜻인가? 그래서 몰라서 가만히 서있는데 할머니가 젊은 남자 직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남자 직원이 하는 말이 ‘Ticket’이란다. 디 께? 이게 아니고 티켓이란 말이었다. 하. 그냥 ‘Biglietto'라고 말하면 알아들었을 것을. 어쨌든 3.40 유로(5000원 정도)를 지불하고 피자 마르게리따 한 조각을 주문했다. 화덕에 구워서 바로 받았다. 한 조각이 한국의 한 조각이 아니고 꽤 컸다. 한국의 두 조각 정도 되어보였다. 피자를 들고 뛰어가는데 벌써 사람들이 다 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날 찾아다니고 있었다. 제길! 나 때문에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건가?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피자는 맛있었다. 이젠 못 먹을 건데 피자라도 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먹어보니 도우가 무척 얇았다. 그리고 화덕에 구워서인지 도우 밑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온도는 따뜻했고, 토핑은 뭐,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밀가루 도우 위에 모짜렐라 치즈와 뽀모도로(토마토) 소스가 전부였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원래 차에서 먹으면 안 되는데 기사 양반 몰래 먹어서 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밀라노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나는 내가 늦어서 늦게 도착하는 줄 알고 죄책감이 자꾸 들었다. 그런데 가이드 말이 원래 밀라노에 밤에 도착하는 일정이라고, 이번은 좀 더 일찍 도착한 거래서 그나마 안심했다. 밀라노 가는 길이 멀어서 그 동안 냉정과 열정사이를 시청했다. 버스 안에 TV가 두 대가 있었는데, 하나는 맨 앞에, 하나는 중간 비상 출입구 앞에 있었다. 나는 비상 출입구 바로 뒤라 잘 보였다. 그 자리가 좋은 것 같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자고 싶었는데 좀 전에 작별했던 그 가이드가 시차 적응을 위해서 하도 자지 말라고 그래서 참는다고 힘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도 괜찮았던 것 같다. (빡빡하고 피곤한 일정이니까) 괜히 안자서 더 피곤했던 것 같다.

저녁 6시, 7시 쯤 되어서야 밀라노에 도착했다. 밖은 벌써 많이 어두웠다. 밀라노의 거리는 화려했다. 로마나 피렌체보다는 현대식 건물이 더 많았다. 북쪽 지방이 더 잘산다는 말이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북쪽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난한 남쪽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밀라노 시내 한복판에 내려서 밀라노의 두오모로 이동했다. 밀라노의 두오모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첨탑들이 삐죽삐죽 많이도 서있었다. 작은 조각상들이 3000개 정도 붙어있다고 한다. 첨탑도 1000개였나? 하여간 많았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어쨌든 피렌체 두오모보다는 색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 더 컸다. 밀라노 두오모 앞에는 큰 광장이 있었다. 작년 챔피언스리그를 AC 밀란이 우승할 때에는 이 광장에 밀라노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열기가 엄청났던 곳이다. 여기서 성진이네 아저씨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두오모 근처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가 있다. 여기에는 두바이에 있는 버즈 알 아랍(7성 호텔)보다 더 고급스런 호텔이 있다고 들었다. 버즈 알 아랍은 비공식 7성 호텔이지만 여기 아케이드에 있는 호텔은 최초의 공식 7성 호텔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딨는지는 안 보였다. 아케이드 내부는 명품 상점가로 가득 차 있었다. Gucci, Luis Vuitton 등 많은 명품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데 그 명품 상점들 사이에 반가운 축구 용품점이 보였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의 유니폼과 잡다한 축구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이 닫혀있어 구입하지는 못했다. 맥도날드도 보였는데, 명품 상점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고급스러워 보였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이 아케이드 앞에 있는 가판대에서 AC 밀란 레플리카를 샀다. 로마에서도 살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가격만 물어보고 나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어로 물어보면 영어로 대답해준다.) 여기서는 영어로 가격을 물어봤다. 그런데 영어를 못 알아먹는다. 이탈리아인들은 외국어에 약한 모양이다. 로마에선 10유로였는데 여기선 15유로를 달란다. 또 카카 마킹이 되어있는 레플리카는 많이 팔려서인지 사이즈가 S와 XL 밖에 없었다. 구입을 하고 나가려는데 친절해 보이는 가게 아저씨가 재패니즈? 하고 묻는다. 나는 No, sono coreano. 하고 답하고 나왔다. 영어도 유창하게 했는데 왜 일본인이라고 생각할까? 일본인은 영어를 진짜 못하는데. 다 국력 때문이겠지. 옷을 입고 아케이드 앞 광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를 지나면 라 스칼라 극장과 밀라노 시청, 그리고 거대한 은행 건물이 보인다. 라 스칼라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역시 여기도 3분 정도 기념 촬영하는 시간만 갖고 나왔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나에게도 별 감흥은 없었다. 그저 시청 건물이 정말 오래되어 보인다는 생각뿐.

관광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하러 또 현지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나 메뉴는 스파게티였다. 뭐, 조금 지겨웠지만 먹을 만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정말 못 먹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그런데 스파게티를 다 먹고 나니 샐러드와 포크 커틀릿(돈까스)이 나왔다. 젠장! 휴게소에서 피자를 먹고 왔더니 배가 불러! 그래서 샐러드와 고기는 맛만 봤다. 그런데 성진이네 아저씨가 모든 테이블에 피자와 와인을 돌렸다. 그래서 피자 한 조각,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내가 휴게소에서 먹은 피자와는 조금 달랐다. 이 피자는 치즈고 소스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밀가루 도우뿐이었다! 그래도 가볍게 먹을 만은 했다. 이탈리아 와인은 앞으로 먹어볼 기회가 없으므로 한 모금 마셔보았다. 좀 씁쓸했지만 포도 주스처럼 마실 만은 했다. 그래서 계속 한 모금씩 마시다 보니 한 잔을 비웠다. 하! 미성년자가 술 한잔을 비웠어! 난 술을 절대 입에 안 대겠다고 맹세한 몸인데 오늘 그 맹세를 깼다. 그런데 옆에 어르신들과 종호 형님은 얼굴이 벌게져서 알딸딸한 모양이었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식당에서 드디어 종호 형님과 말을 텄다. 종호 형님이 내 옆에 앉았는데 처음엔 이 형님이 조용하신 줄 알았는데 말도 꽤 많았다. 젠장! 이 형 뭔가 재밌는데? 군대를 갓 제대했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든다.

남들보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나는 식당 안의 TV 앞으로 갔다. 인터 밀란과 리버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점원 한 명과 식사하던 아저씨 두 명이 앉아서 관전하고 있었다. 나도 서서보고 있다가 점원에게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봤다. 된단다. 그래서 밀라노(인터 밀란의 정식 이름은 인테르나치오날 밀라노이다.)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그러니까 밀라노는 내일 한단다. 엥? 이게 밀라노 아냐? 알고 보니 밀라노는 AC 밀란을 뜻하는 거였고, 인터 밀란을 부를 때는 꼭 인테르라고 말한다. 그래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이브라히모비치를 좋아한단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 아까 내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내가 Ciao! 하며 인사를 하니 Ciao 라고 답례한다. 인사한 김에 어느 팀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인테르라고 답하면서 나를 가리키면서 노 밀라노! 이런다. 그 때 내가 AC 밀란의 레플리카를 입고 있었거든. 역시 살인적인 라이벌 의식이다. 어쨌든 대화를 하다가 이 사람들도 역시 이브라히모비치를 가장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축구 선수는 골 잘 넣는 게 최고구나. 정감 있는 그 아저씨들과 작별했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밀라노 시내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이번 호텔은 시내에 있었다. 지난번 로마에서의 호텔은 로마 시내가 아닌 근교의 라티나에 있어서 이동이 오래 걸렸는데 이번엔 시내에 있어서 좋았다. 시내에 있는 호텔은 꽤 비쌀 텐데? 일정표에는 밀라노에서 묵는 호텔은 표시가 안 되어 있었다. 9시가 조금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한 것 같았다. 호텔 프론트에 있던 남자 직원은 키가 훤칠하고 굉장히 잘 생겼다. 전형적인 라티노였다. 모델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은 꽤 늙어 보인다. 동양인들은 동안이 많은데 여기선 조금만 나이 먹어도 정말 나이 들어 보인다. 엘레베이터가 고장 났대서 걸어 올라갔다. 방안에 들어가니 바닥은 대리석이었다. 호텔은 전부 바닥이 대리석이었다. 엑셀시오르도 그랬다. 대리석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란다. 나무 바닥이 오히려 비싸단다. 침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일단 TV에 소리가 안 나왔고, 리모콘은 망가져있었고, 화장실 수도꼭지는 너무 사용하기 불편하게, 한국의 70년대 수도꼭지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있겠나. 엑셀시오르는 편했는데. 밀라노 시내에 있는 호텔이라 그런가. 여기는 별 3개짜리였고 엑셀시오르는 별 4개였는데, 별 3개에선 편하게 자기를 기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여관이나 모텔과 비슷한 수준이다. 별 4개는 되야 편하게 잘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많이 돌아다녔고 버스로 이동도 오래 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불편한 것도 모르고 그냥 잠들었다. 내일은 더 힘들텐데. 작전명도 567이란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5 (6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5 (6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2:19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5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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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is Hotel에서 지금까지의 여행일 중에서 가장 늦은 시각에 기상했다. 7시에 일어나 늘 그랬듯이 렌즈를 빼고 세수, 세안하고 머리 감고 옷을 입는다. 오늘 처음으로 바지를 갈아입었다! 늘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이 괜찮기는 하지만 점점 길어지면 곤욕이 된다. 그래서 여행 후에는 씻는 것을 즐기게 된 것 같다.

8시가 되어 아침식사를 먹으러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이탈리아에서와 똑같이 크로아상과 잼, 버터, 주스가 놓여 있었고 시리얼과 우유나 커피는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우린 컵라면을 들고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 끓여먹었다. 라면을 제대로 먹으려면 유럽으로 가야 하겠다. (??) 대강 식사를 배부르게 마치고, 로비에 놓여있던 여러 신문들 중 레퀴프 지(스포츠 전문)를 꺼내 읽었다. 여기 프랑스에서도 축구 소식을 가장 크게 전하는 것 같았다. 90 퍼센트가 축구 뉴스로 이루어져 있었고 10 퍼센트 가량이 럭비 월드컵 뉴스로 짜여 져 있었다. 일면에는 자국 리그인 르 샹피오나의 중상위권 팀 중 하나인 보르도의 대승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신문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며 파리지엥의 여유를 즐겼다. 하하.

8시 30분경이 되어 버스를 타러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문 앞에는 수십 가지의 파리 시 관광 안내 책자가 놓여있었다. 몇 개 가져왔는데, 물랭 루주 쇼와 리도 쇼에 관한 책자를 챙겨 온 것은 기억에 남는다. 피자집 광고지도 가져왔다! 피자 모양은 한국과 많이 달랐지만 광고지 짜임새는 한국과 비슷했다.

호텔 밖 주차장 근처에 피자집 광고지에 나왔던 바로 그 피자집이 있었다. 호텔 주변에는 버스 정류장과 맥도날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근처에 꽤나 많았다. 3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리 시민 몇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자, 나도 정류장에 가서 버스 노선도와 시간표를 유심히 관찰했다. 여기선 버스 노선이 하나인 것 같았다. 고로, 어떤 번호의 버스를 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단 말씀이다. 한 버스가 멈춰 섰는데 내가 안타니까 의아하게 서 있다가 지나갔다. 근처에 맥도날드 주변도 둘러보았는데, 한국이나 유럽이나 전 세계 어디나 맥도날드는 무척 많은 것 같다.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버스에 탈 때 기사 아저씨 (베르나르 베르베르 닮은 그 아저씨)에게 Bonjour! 하고 인사하니 Bonjour! 하고 답한다. 여기선 인사하고 답을 받는 것이 꽤나 큰 즐거움이다. 이 곳 사람들은 누굴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상황이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꼭 대화하기 전 그 시간대에 맞는 인사를 한다. 예를 들어 휴게소에서 뭘 주문하려면 (아침일 경우) 이탈리아에선 Buon giorno, 프랑스에선 Bonjour, 영국에선 (Good) Morning 이라고 인사한다. (영국에선 Good을 자주 생략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이동했다. 시내로 가는 동안 대략 5개 정도의 축구 전용 구장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축구에 관한 관심이 많다는 뜻일까? 유럽은 축구 선진 지역이라 그런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축구를 즐길 수 있게 곳곳에 잔디구장을 설치해 놓았다.

파리 시내로 진입하여 개선문 근처에 내렸다. 거기서 파리 관광을 도와줄 ‘성기자’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이 분을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가이드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에게 매우 특별한 가이드로 남게 되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무척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름도 ‘성기자’일 뿐만 아니라, 성격, 외모도 많이 비슷하다. 특히 성격이 정말 외할머니와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엄마가 인정했다.) 버스에서 안내 멘트를 하는데, 멘트에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함께 뿜어져 나왔다. 몇 개 일화를 소개하자면, 에펠탑 정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가 아닌데 우리 일행의 왕할머니께서 잘 모르시고 내리려고 하셨다. 그러니까 “안 돼요!” 하고 소리치며 왕할머니의 목덜미를 확 잡아채 끄는 것이 아닌가!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킥킥 웃으며 진짜 똑같다며 놀라워했다. 또 한 번은 에펠탑에서 데모를 하던 중에 내가 가서 그걸 보려고 뛰어가니까 “어딜 가는 거야, 지금! 그렇게 마음대로 하면 절대 못 찾아!” 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못 들었지만 엄마와 동생은 들었다. 하여간 장난 아닌 카리스마의 소유자이시다. 또 무척이나 당당하셨고, 불어 실력도 당당한만큼 훌륭했던 것 같다.

카리스마 가이드를 만나고 나서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시간은 45분정도 주었던 것 같다. 이 성기자 가이드는 시간을 많이 줘서 좋았던 것 같다. 여행 중에 여유롭게 다녀야지 급하게 다니면 여행이 아니라신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지점에서 지하도를 타고 개선문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하도는 마치 내가 아시아에 온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게 뭐야! 한국인과 일본인뿐이잖아! 프랑스인은 드물었다.

지하도에서 올라와 개선문에 당도했다. 밖에서 보는 개선문과 개선문 바로 밑에서 보는 그림은 또 달랐다. 개선문 앞에는 세계 1차 대전 중에 전사한 어느 무명 병사가 묻혀있는데, 국경일이 되면 언제나 프랑스의 국가 원수가 여기에 헌화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를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 원수들도 방문하여 헌화하는 곳이란다. 또 개선문에는 여러 장군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수백 명은 족히 되어보였다. 전사한 장군의 이름 밑에는 하나의 밑줄이 그어지게 된다.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로마의 콜로세움 옆에 있는 그 개선문을 본떠 만든 것인데, 나폴레옹은 단지 개선문의 기반 공사만 끝냈고 나폴레옹이 죽은 후 한참 후에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개선문 앞에는 샹젤리제(Champs Elysee) 거리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이다. 여기는 명품 상점들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들도 자리 잡고 있었다. 카타르 대사관과 노르웨이 대사관이 보였던 것 같다. 샹젤리제 거리를 끝까지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반쯤 걸어보았다. 여기 거리를 걸으면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리도 쇼 간판도 볼 수 있었다. 가이드 선생님께서 그러시길, 요즘 샹젤리제 거리에 ‘디럭스 상점’들이 많이 생겨서 문제라고 한다. 엄청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샹젤리제에 마지막 남은 약국마저 다음 달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대신 명품 디럭스 상점들이 잔뜩 들어설 예정이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명품 상점이 들어선다고 해서 직원들 월급도 명품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이드 선생님의 말은 정말 명쾌하다.

샹젤리제 거리를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에펠탑으로 이동했다. 그 유명한 에펠탑. 말로만 듣던 그 에펠탑. 내가 에펠탑을 바라보고 서있다는 사실이 잘 수긍이 되질 않았다. 파리를 상징하는 그 에펠탑, 책이나 사진으로 수없이 인용되고 등장하는 바로 그 에펠탑이다! 다빈치 코드 초반부에서도 에펠탑을 가지고 DCPJ 경관과 로버트 랭던이 대화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 중에서 거대한 남근상 에펠탑만큼 프랑스를 잘 나타내는 것을 없을 것이라고. 에펠탑은 1900년에 만국박람회 기념으로 귀스타프 에펠이 지었다고 하는데 전부 조립식이라고 한다. 각각의 철골을 잇는 데에는 나사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다.)

에펠탑 앞에는 역시나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래도 예상보단 적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엄청난 인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한산했다.) 그래도 30분 정도는 기다려야했다. 성기자 가이드님이 입장권을 나눠주셨다.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데 웬 남자가 나보고 표를 달란다. 어, 이 자식 뭐야? 갑자기 왜 나한테 표를 달라는 거지? 사기꾼인가? 그래서 Why? 라고 되물으면서 표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막 답답하다는 듯이 자기 점퍼의 에펠탑 그림을 가리키며 여기 직원이라고 설명한다. 주변에 똑같은 옷 입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냥 줬다. 그러자 나한테 영어로 몇 번 게이트라고 설명해주며 떠났다. 대체 뭐지? 난 게이트 따윈 알 필요가 없는데? 그냥 일행 줄 따라가면 되니까.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지만 그 에펠탑 직원에게는 못 믿을 프랑스의 관광 행정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에선 왜 관광 사기꾼이나 소매치기를 방치해두는 걸까? 사실 단속할 방법이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또 자기들도 그냥 두는 게 속 편하겠지.)

들어가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했다. 먼저 갖고 있는 가방을 전부 열어 검색요원에게 보여줘야 했다. 우리네 평범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위험한 물질이 있을 리 없겠지. 그냥 통과되었다. 그리고 가방 검색이 끝나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서 공항에서처럼 약간의 수색을 받게 된다. 그러면 입장할 수 있는데, 유럽과 서방 각국에서는 테러에 대한 공포와 위협으로 인해 이렇게 수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여기서 생각나는 성기자 가이드님의 명언이 있다. “에펠탑 안에서도 소매치기를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오는 소매치기들도 있으니까. 입장료 값 하려고 더 기를 쓰고 덤벼들지 않겠습니까?”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 넘치는 카리스마적 기운과 카리스마 가운데의 웃음 포인트를 배합한 그 엄청난 명언에 크게 웃었다. (그래서 아까 에펠탑 직원을 의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에펠탑 안으로 진입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에펠탑의 꼭대기까지 가는 엘리베이터이다. 꼭대기까지 가는 중간에 한번 내리는데, 왕할머니께서 모르시고 내리려고 하시다가 성기자 가이드님께 목덜미를 붙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하여간 정말 대단하시다. 에펠탑 정상에 도착했다. 부산에 있는 무슨 타워나 서울의 무슨 타워 꼭대기와 많이 비슷한 느낌이 났던 것 같다. 동서남북으로 세계 각국의 국기와 도시가 표시되어 있었고 밑에 그 도시까지의 거리가 쓰여 있었다. 서울까지는 8991km, 부산까지는 9321km라고 한다. (얼마나 먼 거야?)

에펠탑 꼭대기에서 귀스타프 에펠의 작업실 모형을 볼 수 있었다. 밀랍 인형으로 에펠과 동료들이 실제 크기로 재현되어 있었다. 또 에펠탑 건축을 귀부인들에게 설명하는 장면(?) 또한 재현되어 있었다. 대충 감상하고 에펠탑 꼭대기에서 보는 파리 시내를 감상했다. 안개 때문에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과연 장관이었다. 근처에 돈 넣고 보는 망원경이 있었다. 1유로 동전을 넣고 관찰을 시작했다. 뭐, 잘 보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보기만 했다. 돈 넣은 것이 약간 후회되기도 했지만 에펠탑에서 망원경으로 한 번 봤으니 만족한다.

사진은 에펠탑 중턱에서 더 잘나온다고 해서 거기서 모두를 만나기로 하고 중턱으로 내려갔다. 중턱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나는 들여보내 주는데 엄마랑 동생은 들어오지 말란다. 알고 보니 화장실에도 정원이 있어서 사람이 가득 차면 화장실 청소부 아줌마가 들여 보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남자 화장실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금방 입실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우리 여행객 일행이 화장실에 줄을 지어 서있었다! 으허허. 공짜 화장실이라니까 이렇게 한국인들이 몰리다니. 일행이 화장실에 줄 서 있을 동안 주변의 기념품 상점들을 돌아보았다. 일본인들이 무척 많았다. 내가 일본에 온 것인지 프랑스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얼굴은 못났지만 헤어스타일과 화장술, 그리고 독특한 패션은 세계 제일을 구가하는 일본의 젊은 남녀들이 줄줄이 몰려 기념품을 고르고 있었다. 대충 주워들은 바로는, “이거 좋은데? 누구누구한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흠, 그럴 것 같은데? 근데 여긴 완전 일본이다.” “그러게.” 이랬던 것 같다. 그래, 거긴 정말 일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에펠탑 아래로 내려왔다. 사람들이 모여 벌 모양 복장을 하고는 데모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데모, 파업을 매일같이 벌이지만 한국처럼 강경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평화로웠고, 주변의 질문에 자세히, 열정적으로 대답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사는 울산에서는 모 대기업 자동차 노조를 비롯해 각종 노동조합이 훌륭한 근무조건에 일하면서도 배부른 소리를 하며 폭력적 파업을 일삼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요즘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울산 시민들의 눈에는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보여 진다.) 성진이네 아저씨가 여기에 한국의 기술을 전수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농담을 던지신다. 여기서 한국을 배워야 될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여기를 배워가야 한다.

데모하는 사람들 가까이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금지 표시가 되어있고 CRUISER 라고 되어있는데 벌과 크루저가 대체 무슨 상관이지? 불어로 CRUISER의 뜻을 모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려고 다가갔더니 일행들이 돌아오라고 소리친다. 하하. 이것도 그 성기자 가이드님 덕분이다. 하는 수 없지. (내 생각에는 양봉 금지를 위한 시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에펠탑 관광을 마치고 나서 파리 시내의 한 레스토랑으로 점심 식사를 먹으러 이동했다. 외관상으로 볼 때는 좋은 레스토랑처럼 보였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서 떼거지로 앉아있는 한국인들을 보며 또 실망했다. 지긋지긋한 한국인들! 그래도 아래층에는 현지인들이 많이 앉아있었다.

이 레스토랑으로 오기 전 버스 안에서 베르사유 선택 관광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원래 파리 시내 관광 옵션은 야간 센느강 유람선 탑승이었다. 베르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르사유를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가족은 베르사유를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베르사유 옵션에 찬성했다. 그런데 신혼부부네와 예원이네 가족은 그냥 원래 일정대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예원이네는 로마에서 벤츠 투어도 선택하지 않고 로마 시내 전체를 걸어 다녔다!) 그런데 큰 문제는, 베르사유는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선택을 하지 않으면 전체가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혼부부 아저씨는 미안하셨는지 식당에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그리하여 파리 시내 한 식당에서 베르사유 선택 관광에 대한 토론이 각 테이블마다 열렸다. 우리 가족은 6인 테이블에 슬기 누님네 가족 3명과 함께 앉았다. 그 가족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베르사유를 안 보고 가면 안 되죠.” 슬기 누님이 말했다. 물론 나도 동감이다. 돈은 좀 비싸지만(1인당 80유로) 그래도 야간 센느강(원래 1인당 50유로) 일정이 포함된 것이니 괜찮았다. 또, 파리까지 와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베르사유를 안 보고 그냥 가면 정말 섭섭할 것 같았다. 뭘 보고 관광하는 데 돈을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선택 관광이란 것이 왜 존재하는가이다. 가이드 말로는 선택 관광에서 여행사와 가이드들이 이문을 남긴다고 한다. 여행경비가 워낙 싸다보니까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선택 관광을 전부 본다면 여행 경비가 1인당 200만원에 육박한다. 다른 여행사와 비슷한 가격이다. 그러나 다른 데서도 전부 선택 관광을 진행하고 있으니, 이건 여행사 전체의 문제이지 뭐 따로 불평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전채 요리로 그 유명한 에스까르고(프랑스 달팽이 요리)가 나왔다. 이 요리를 나르는 웨이터는 한국말을 꽤나 잘한다. 언니, 아줌마, 이거 드세요, 감사합니다 막 이런다. 그걸 듣는 한국 사람들은 또 좋다고 난리친다. 어쨌든 이번 여행과 선택 관광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던 우리는 잠시 그걸 접고 달팽이를 먹게 되었다. (여기서 프랑스의 그 유명한 브리짓드 바르도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개는 안 되고 달팽이는 되니?) 달팽이 고기(?)는 달팽이 껍데기 안에 들어있었는데, 그걸 집을 수 있도록 특수한 집게를 제공했다. 그 집게로 달팽이 껍데기를 집고 긴 포크로 고기를 빼 먹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그건 사실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기자 가이드님의 말씀에 따르면 손으로 집고 먹어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단다.

그래서 그걸 손으로 집고 긴 포크로 빼내어 먹었다. 초록색 국물이 뚝뚝 떨어져 나오는데 약간 해산물 냄새가 나면서 한국의 골뱅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맛은 부드러웠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고소함? 어쨌거나 형용할 수 없는, 그러나 어디서 한 번 맛 본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부드럽게 가공된 큰 골뱅이를 영덕 대게 몸통에서 나오는 녹색 내장에 비빈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80 퍼센트 정도는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한 접시에 6개가 나왔다. 엄마와 동생이 다 못 먹어서 난 대략 9개 정도 먹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성기자 가이드가 가지 않으려는 예원이네를 위해 1인당 옵션 가격을 80에서 60유로로 줄여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제일 어린 예원이에게는 옵션 가격을 받지 않겠단다. 응?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도대체 마진이 얼마기에 그만큼 가격을 깎을 수 있는 거지? 패키지여행의 세계는 정말 복잡하다. 신혼부부네는 베르사유 옵션을 선택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사실 웬만한 사람 아니고는 옵션의 강요를 피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그래도 안 간다던 예원이네 가족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테이블의 주제는 다시 옵션 이야기로 돌아왔다. 선주 누님이 비싼 여행사들은 옵션이 적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어디나 옵션은 다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뭐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테이블은 전부 옵션 선택한다는 쪽이었기에 마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슬기 누님네도 슬기 누님은 혈기왕성한 대학생이었고, 선주 누님은 혈기왕성한 나이는 아닌 것 같았지만(?) 내일 그 피로했던 런던 일정에서도 가이드가 농담으로 오후 투어 더 할까요? 했더니 주저없이 네!를 외쳤었다. (대단) 또 아주머니도 분명 선택 관광을 원하셨던 것 같았다. 물론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난 말할 것도 없고 엄마도 분명 확실한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동생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무심한 녀석.) 그래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와서 베르사유행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은 예원이네를 제외한 일행만 베르사유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선택 관광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강요하는 분위기여서 여행사에 항의를 하겠다고 하셨단다. (들은 이야기) 맞는 말이다. 솔직히 만약 내가 정말 가기 싫었던 사람이라도 분위기상 가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안 간 예원이네 가족도 정말 대단한 가족이다.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그 태도가 훌륭했던 건지 어땠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가게 돼서 다행이긴 했다. 그래도 예원이네 가족이 함께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씁쓸했다. 같이 했었다면 모두 함께 아름다운 파리를 조금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파리 일정의 중요한 알맹이들이 베르사유, 몽마르뜨, 야간 센느강 유람선 관광 옵션이었으니.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자유이지만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파리 일정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옵션, 선택 관광은 사실 파리에서가 마지막이었으니 끝을 맺도록 하자. 또 베르사유는 원래 일정에 없던 옵션이었다. 또 카프리 섬 옵션도 기상조건으로 인해 선택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뭐 꼭 강요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추천정도? 사실 베르사유 갔다와보니까 왜 가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에스까르고(달팽이)를 다 먹고 나니 쇠고기 스테이크를 가져다준다. 유럽의 스테이크는 조금 질기고 두꺼우며 짠 것 같았다. 내가 예상했던 스테이크가 아니었다. 뭐 웰던 미디엄 이런 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나니 웨이터가 디저트를 가져다준다. 디저트는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우리 테이블에서 2명이 커피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 웨이터가 내 것까지 커피를 3잔 가져다준다. 난 커피 선택 안했는데. 그래서 이 프랑스인 웨이터에게 아이스크림 달라고 “I don't have ice cream!" 이렇게 간단한 영어로 설명을 하니 대충 알아듣는데 수를 세어보며 아이스크림 3개, 커피 3잔, 됐나? 이런 눈치로 나에게 설명을 한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있나. 네가 잘못 알아들은 거잖아~ 그래서 그냥 커피 좀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그냥 나눠먹으려는데 다른 웨이터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가져온다. 미안했던 건가? 아니면 웨이터끼리 의사소통이 잘 안됐던 건가? 그래서 그 아주 계륵과 같은 아이스크림을 테이블 가운데 두고 6명이 나눠먹었다. 허허.

식당을 나서는데 아래층에는 (우린 2층에서 먹었다) 현지인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음, 한국인들로 꽉 찬 것보다는 훨씬 기분이 나았다. 한국인 패키지 여행객들이 많은 식당에 가서 먹게 되면 꼭 사육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식당을 내려왔는데 클래식 벤츠가 보였다. 한국에선 삼성 핸드폰이 많듯이 여긴 벤츠, BMW가 널려있다. 그래도 페라리는 드물다. 지금까지 3대정도 본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2대, 런던에서 1대.

점심을 먹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우리의 여행은 세계 3대 박물관을 모두 방문한다. 바티칸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대영 박물관. 그런데 아침에 루브르 박물관이 파업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에 우린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회의 끝에 정상 영업하기로 결정이 났단다. 대체 이 나라는 왜?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 특히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가지고 온 여행객들은 생각도 안 하는 걸까? 참 우스운 나라이다.

루브르 박물관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지난 번 새벽 1시에 전화를 걸다가 엄마가 끊어버린 일 때문인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어디냐고 물어봐서 루브르로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돈 걱정 하지 말고 여행 즐겁게 잘 다녀오란다. 엄마를 바꿔달라고 할 때는 “엄마 지금 전화 받을 수 있나?”면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하하하. 아빠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너무 웃겼다.

루브르 박물관은 15세기였나? 하여간 수백 년 전에 성채인가 요새인가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이름에 대한 유래가 두 가지 있다고 하던데, 켈트 어로 루브르가 요새란 뜻이었나? 대충 그랬던 것 같다. 왕정시대에는 궁궐로 쓰였다고 들은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다빈치 코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리 피라미드가 보였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라는데, 유리 조각이 총 666개 사용되었다고 하는 풍문이 있다. 그래서 악마의 건축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빈치 코드에선 솟아오른 삼각형이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몇 번의 동영상 촬영과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리슐리외, 쉴리, 드농관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은 ㄷ 자 형태로 되어있다. 또 유리 피라미드 근처에는 분수대가 있어 수많은 프랑스인들과 어린이들이 앉아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데도 약간의 검색이 있었다. 금속 탐지기를 통과한 후 박물관 안으로 입장했다. 박물관 내부에서 (쉴리 관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본 미술품은 밀로의 비너스였다. 말로만 듣던 그 밀로의 비너스. 밀로는 그 비너스 상이 발견된 장소의 이름이라고 했다. (앞으로 예술품에 관해 설명하는 모든 것들은 불확실함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런데 이 비너스 조각상은 그리스 시대의 작품인데, 왜 그리스 식으로 아프로디테라고 부르지 않고 로마식으로 비너스라고 이름을 붙였냐면 발견 직후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그 조각을 보고 ‘이건 분명히 비너스다!’라고 감탄했기 때문이란다.

많은 사람들(특히 일본인들)이 조각상을 사진 촬영하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어디서든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바티칸에서는 시스티나 성당을 제외한 장소에서만 허용되었다. (사실 허용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요원들이 서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었으니. 노골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쨌거나, 밀로의 비너스를 찍는데, 슬기 누님이 당당하게 비너스 상 앞으로 가 비너스 상과 사진을 찍는다. 그 전까진 아무도 비너스 상을 배경으로 인물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그런데 슬기 누님이 인물사진을 찍으니까 서양인들도 갑자기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허허. 한국인들에겐 인물사진 찍는 게 대수가 아니지만 서양인들은 좀 새로워하는 눈치였다. 하하, 대단한 한국인들이다. (물론 우리도 찍었다.)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회화 작품이 있는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천장이 무척 높았다. 천장에도 예술작품이 떡하니 그려져 있다. 그림보다 그게 더 대단했다. 그림들은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유리로 감싸져 있었고 높은 곳에 매달려있었다.(아닌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건 좀 값싼 거란 뜻이겠지.) 만약 NBA 농구선수 야오밍이 왔다면 어땠을까하고 상상해보았다. 야오밍 정도면 그림을 만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본 유명한 작품들은 어떤 누워있는 여자 그림(???), 나폴레옹의 대관식 모습, 난파선, 그리고 프랑스 혁명? 자유? 의 여신 그림이었다. 이 그림들은 책으로 많이 봤던 그림(난 예술사 관련 책은 잘 안 읽지만 역사 책은 자주 읽는다. 역사책에 항상 인용되는 그림들이라 그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이었다. 전체 작품들을 다 보지는 못하였다. 시간상 불가능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든 작품들 앞에 1분 동안 서서 관람할 경우 수학적으로 9달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러 저러하게 유명 작을 감상하다가, 드디어 초 유명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모나리자이다. 모나리자에 대한 경비는 다른 작품보다 훨씬 심했다. (생각보단 약했지만) 모나리자와 관람객 사이의 거리는 약 2m 이상이었고, 방탄 유리 처리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모나리자 그림 옆에는 모나리자만을 지키는 경비원이 2명 서있었다. 입구에서는 이 방에 모나리자가 있다고 표시가 있었는데, 모나리자 그림 밑에 La Joconde (Mona Lisa) 라고 되어있었다. 정식 이름은 조꽁드 백작 부인이란다. 모나리자의 이름에 대한 해석은 다빈치 코드에서도 나온다. 모나리자는 이집트의 정력의 신 아몬신의 이름에 대한 애너그램이란다. 하하. 흥미로운 분석이다. 모나리자를 보며 다빈치 코드에서 말한 여러 가지 측면들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그 방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감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Linkin Park 내한 공연의 스탠딩석, 미군들이 몰아붙이는 슬램의 천지를 견뎠던 내가 아닌가? 손쉽게 모나리자와 가장 가깝고 제일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Linkin Park 내한 공연의 경험이 앞으로 대영 박물관에서도 큰 활약을 해 주었다.

모나리자를 보고 나서 조각상이 많은 곳으로 이동했다. 성기자 가이드가 너무 빨리 이동하는 바람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갔다. 가니까 거기서 제일 유명한 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이름은 뭔지 모르겠지만, 관람객들이 많았다. 미켈란젤로였나?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라는데, 교황의 명령을 받아 만들던 걸 계획 중지로 인해 그만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남자의 상이지만 여자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어로 말하면 hermaphrodite 인 것이었다. 자웅동체인가? 다빈치 코드에서 좋아할 만한 소재였다. 이런 예술가들이 정말 시온 수도회의 회원이었을까? 실제 존재했던 단체라는데. 미켈란젤로가 이런 이교도적인 조각을 하다니.

우리와 함께 여행한 일행들은 몰랐겠지만 난 그 방을 면밀히 조사했었다. 조사 결과 이교도적이었던 사람의 작품이 꽤나 많았다. 그 사람은 바로 베르니니이다. 성 피에트로 광장을 설계했고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작품 천사와 악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이 그 방에 꽤나 많았다. 예술엔 무지하지만 베르니니라는 이름만을 보고도 일루미나티의 흔적을 따라온 것 같아 무척이나 흥분되었다.

대강 그곳을 관람하고 나오니 드농관 쪽으로 나왔던 것 같다. 나오니 내가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유리 피라미드 안에 있었다. 거기서 랭던처럼 무릎을 꿇었다. 성배가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가까이 있었으니 그냥 무릎을 꿇었다. (난 기독교인도 아닌데, 하하) 여기 파리에는 다빈치 코드의 내용을 따라가는 관광 일정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해보고 싶었다.) 나오는데 웬 프랑스 초등학생들이 출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뻔뻔해 보이는 어떤 녀석이 계속 날 보면서 웃기에 손 인사를 해주니 그 녀석도 인사한다. 하하.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대한항공에서 스폰서해서 루브르 한국어 안내 한다던데, 왜 우린 못 해봤지?)

루브르 박물관을 나와 꽁꼬르드 광장으로 이동했다. 꽁꼬르드(Concorde)는 불어로 화합을 뜻한다. 우리가 잘 아는 초음속 비행기 프랑스의 콩코드 비행기 이름과 같다. 예전에는 이름이 달랐다는데 비교적 최근(100년 전?)에 꽁꼬르드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서있는데, 이건 절대 약탈한 것이 아니란다. 이집트에서 증가하는 서구 열강의 위협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 잘 보이려고 선물한 것이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이제이라는 것.) 무척이나 이교도적이었다. (책들을 읽고 오니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게 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무척 도움이 된 것 같다.)

꽁꼬르드 광장에는 내리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바로 베르사유로 향했다. 예원이네 가족은 타지 않았다. 가는 도중에 프랑스 대통령(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거주하는 엘리제 궁이 보였다. 파리에서 약 40분을 이동한 끝에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다. 처음 받은 인상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하도 큰 건축물을 많이 봐서 그런지 프랑스 절대 왕정 시대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도 평범해보였다. 베르사유 궁전은 현재 공사 중이다. 혁명 후 그냥 방치되던 베르사유 궁전을 미국의 록펠러 재단에서 관심을 보임으로서 프랑스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베르사유 궁전은 혁명 전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공사 중인데, 2020년에야 완공이 된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베르사유 관광의 메인 메뉴라고 할 수 있는 거울의 방은 2005년? 쯤에 보수가 완료되었다고 했다.

베르사유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줄이 굉장히 길었다. 바티칸에서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그만큼 육박하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동안 베르사유 궁전의 외관을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옆으로 지나가는 프랑스인 가족들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 어린이들은 너무 귀엽다! (한국에 오니 애들이 못나진 것 같다.)

베르사유 궁전은 현재 유럽 각국의 왕실(스웨덴 등)에서 빌려온 은 식기와 왕실 생활 용품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우리가 가니까 그 전시회를 했다. 하지만 전시품들에 대해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단다. 전시중이지 않은 모든 물건에 대해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궁전은 정말 화려했다. 천장은 역시나 무척 높았고, 벽면이며 천장이며 전부 예술적인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옛 왕실에서 쓰던 그릇에는 칼질한 자국이 있었으며, 의자, 쟁반, 촛대 등 전부 보석과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실용성은 없어보였다. 만약 내가 여기서 살 권리가 주어진다면, 며칠 살다가 집을 팔게 될 것 같았다. 집은 너무 넓은데 정작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별로 없었다. 뭐, 그런 거야 가져오면 된다지만 이렇게 넓은 집을 돌아다니며 사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 것 같았다. 베르사유 궁전도 좋지만 난 우리 집이 더 좋다.

그런데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는데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한국인들은 못 봤지만 일본인들(일본인들은 없는 데가 없다.)과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등 세계인들이 한데 몰려있었다. 한 프랑스 꼬마 애는 계속 동양인인 내가 신기한지 쳐다보았다. 그래서 내가 Bonjour! 하고 인사하니까 수줍어서 웃기만 웃는다. 루브르 박물관의 그 뻔뻔한 녀석은 대체 뭐야? 애들은 원래 다 순수한가보다. 그런데 이 복잡한 사람들 틈에서 어떤 프랑스인 소녀(내 나이 또래처럼 보였음)가 갑자기 내 근처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 뭐야? 갑자기 날 한번 슬쩍 보더니 옆에 있던 할아버지를 슬쩍 본다. 할아버지와 그 소녀는 함께 웃는다. 뭐지? 왠지 껄떡거리는 것 같아서 전시회장을 나와 주머니를 확인해봤다. 내 점퍼 지퍼가 열려있는 것이었다. 어, 분명히 닫고 왔는데? 이 망할 소녀가 내 주머니를 연 것 같았다. 아까 그 인자해 보이던 할아버지, 한 패 아냐? 그래도 나한텐 훔쳐갈 물건이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동전 몇 푼이 전부였다. 도둑맞은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 소녀도 소매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탈리아에서도 못 느낀 소매치기의 공포를 여기서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오히려 이탈리아가 안전한 것 같다.) 앞으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게 되었다.

전시회장을 나와 거울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울의 방은 그야말로 거울이 많은 방이다. 화려하긴 화려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던 거울의 방은 아니었다. 책에서 읽은 거울의 방은 온 사방이 거울로 뒤덮여있어 광채가 찬란하다고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실제 거울의 방은 벽의 한 면만 일부 거울로 되어있고 반대 벽은 창문으로 되어있는 형태였다. 방이 아니고 사실 복도나 마찬가지였다. 거울의 방 끝에는 종이 모형으로 복원해놓은 왕좌가 있다. 멀리서 보면 정말 그럴듯하게 보인다. 여기는 사람들이 몰려 사진 찍기 바빴다. 거울의 방에서 왕의 침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 문으로 들어가 왕의 침실을 구경했다. 왕의 침실뿐만 아니라 여왕의 침실, 전부인(마리 앙뜨와네뜨)의 침실, 신하들을 접견하는 곳, 소개의 방(?), 국정을 토론하는 방 등 여러 방을 보았다. 그 중 왕의 침실이 단연 압권이었다. 왕의 침대가 정말 눈길을 끌었다. 그 방에는 루이16세 자신의 흉상도 놓여있는데, 침대가 영화 속에서 공주들이 누워 자는 그런 형식의 침대였다. 그런데 꼭대기에 큰 깃털도 두 개 달려있다. 우스꽝스럽기도 했고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그런 침대보다는 그냥 평범한 침대에서 자는 게 편하다. (루이의 침대는 별로 푹신해 보이지는 않았다.)

거울의 방을 나와 궁전 외부로 나왔다. 엄마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그랬다. 그래서 화장실 표시가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가보니 엥? 이게 뭐야? 금속 탐지기가 있다. 화장실로 가려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되었다! 하! 엄마와 동생은 금속 탐지기가 보여서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역시나 배짱 좋은 내가 먼저 실험삼아 들어갔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가 들어가는 걸 보고 안심한 엄마와 동생은 편히 볼일을 봤다. 베르사유의 화장실은 어떨까 상상을 해 보았는데, 실제 화장실에선 그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개인 변기가 아니고 정말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90년대의 매우 후진 고속도로 휴게소나 가야 볼 수 있는 변기였다. 개인 변기가 따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긴 철통에 소변을 봐야 했다. 상시 물이 흘러나와 오물이 하수구로 흘러내려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Le Cafe 앞에서 엄마와 동생을 기다렸다. 엄마와 동생을 만나 그 Le Cafe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어느 프랑스 노신사가 Toilet? 하면서 묻는다. 우리가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 헤매는 줄 알았나 보다. (근데 바로 앞이 화장실인데 왜 우리가 헤맨다고 생각한 거지?) 어쨌든 No.라고 말하니까, Oh. 하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프랑스 사람들 중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군.

Le Cafe로 결국 들어가 보았다. 가격은 역시나 관광지답게 안 그래도 비싼 유럽의 물가를 1.5배 이상 뛰어넘었다. 이탈리아에선 0.90 유로이던 초콜릿 빵이 여기선 1.40유로이다. 그 초콜릿 빵, (불어로는 Pain au chocolat 이더라.) 그걸 2개 주문하고 찬 우유 한 잔을 주문했다. 대략 동전으로 4.5유로를 썼다. 그런데 영어로 물어보니까 여기 점원 아주머니가 상당히 불친절한 느낌을 줬다. 불어로 하는 사람한테는 친절한 것 같던데. 자기 나라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건지, 언어가 딸려서 불친절해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빵은 맛있었다.

베르사유 궁전 내부를 다 둘러보고 외부의 정원을 보러 나갔다. 예정 만남 시간이 3시 30분이었는데 그 때가 약 3시 10분경이었다. 20분밖에 없는데 정원은 엄청나게 넓었다. 우리는 정원을 다 봤다고 생각하고 돌아가려는데 또 엄청난 크기의 정원이 밖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까지 다 내려가 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고 급하게, 우리랑 마찬가지로 시간에 쫓겼던 정아 누님네와 만나 베르사유 궁전 앞으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시간은 딱 맞게 3시 30분이었다. 성기자 가이드님이 “뛰지 마세요. 여행 와서 뛸 것 뭐 있습니까? 늦은 것 아니예요. 딱 제 시간에 오셨네요.” 라고 말씀하신다.

베르사유를 다 둘러보고 버스를 타서 다시 파리 시내로 들어갔다. 가는 동안 성기자 가이드님이 나폴레옹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셨다. 우린 나폴레옹이 다녔던 옛 프랑스 육군 사관학교 건물에 도착했다.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ARTILLERIE라고 정문에 쓰여 있었다. 무슨 포병학교인가? 나폴레옹도 포병 출신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육군 사관학교 건물 앞에는 에펠탑이 바로 보였다. 에펠탑 바로 앞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 공원에는 어떤 프랑스의 장군 상이 세워져 있었고, 내가 난생 처음 보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평화’라고 쓰여 있는 유리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 아랍어 등으로 쓰여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예원이네 가족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에 내 나이 또래정도 되어 보이는 프랑스 소년 2명이 공을 가지고 공원에 마련된 작은 축구 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약간의 발재간을 선보이며 느릿느릿 구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내가 프리스타일 스킬을 선보여주지 못한 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다. 유럽에는 사람들이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진 것 같다.

공원에는 자전거 대여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파리 시는 점차 자동차를 없애는 분위기가 되어간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거리, 그렇게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도 2020년경이 되면 전부 인도로 변할 거라고 한다. 샹젤리제 거리도 인도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파리 시민들은 자전거 대여 카드를 만들어서 카드를 기계에 찍고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아무 목적지에나 자전거를 30분 이내에만 가져다 놓으면 이용료는 없다. 그러나 이용시간이 30분씩 늘어날 때마다 2유로, 4유로, 8유로 이런 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단다. 파리 시민이 아닌 경우 150유로 정도? 분실 시를 대비해 자전거 값을 담당 기관의 통장에 예치해 두어야 한단다. 유럽은 자전거가 다니기 편한 동네이다. 한국은 자동차가 없으면 안 되는 사회인데, 여기선 담배피고 자동차 끌고 다니는 사람이 제일 부자란다.

장 드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파리 시 곳곳을 보면 JCDecaux라고 쓰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는데, 이 드꼬라는 사람이 옛날에 파리의 광고권을 사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꼬는 옛날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회사는 아직까지 파리 시내의 광고권을 갖고 있는가보다. 아까 그 자전거 대여기에도 광고권을 가지고 있단다. 광고권을 갖는 대신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참 대단하다. (심지어 런던에서도 JCDecaux를 볼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한식이었다. Dammie(다미)라는 식당이었다.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고 식당도 작았다. 현지인은 볼 수 없었다. 이 식당은 로마에서의 한식당과는 달리 꽤 만족스러웠다. 식당 외벽의 작은 모니터에서는 대장금 드라마가 상영 중이었다. 인테리어도 깔끔했다. 음식은 한국의 여느 식당들과 비슷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만족스러웠다. 여기는 큰 테이블에다가 자리도 널찍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앉았다. (현지 식당은 테이블도 너무 작고 좌석도 너무 좁았다. 서양인들은 덩치가 큰데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예원이네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향했다. 대신 우리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몽마르뜨는 Mont Martre(?), 순교자의 산, 대충 이런 의미이다. 영어의 순교자란 뜻의 Martyr가 여기서 몽마르뜨의 마르뜨에서 유래한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 어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는데 그걸 기리기 위해 언덕 위에 성당이 세워졌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몽마르뜨에 도착하자 점점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성기자 가이드님이 꼭 붙어 다니라고 했다. 그래도 꼭 붙어 다니라고 붙어 다니는 내가 아니지 않는가? 막 떨어져서 다니다가 웬 흑인이 하나 접근한다. 이런 제기랄! 인터넷에서 봤던 그 흑인이잖아! 이 녀석들은 손가락에 실을 감아주면서 행운을 빌어줬다며 돈을 요구한다. 인터넷에 여행기를 올렸던 한 분은 한 흑인 녀석의 주먹에 맞았다고 했다. 망할! 이 흑인 놈이 나한테 접근하잖아! 단박에 그런 놈임을 알아챈 나는 No, no, no, no! 하며 거리를 두었다. 뭔가를 시도하려고 했던 녀석은 나한테 걱정하지 말라며 Don't worry, no problem. 이러면서 그냥 지나가란다. 호, 이 자식은 그래도 약간의 매너는 갖춘 모양이군. 그걸 보며 성기자 가이드님이 꼭 붙어 있으라신다. 엄마와 동생은 날 보고 웃는다. 젠장.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당당하게 맞섰다가 주먹으로 맞으면 책임질 거야?)

사진은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서야 찍을 수 있었다. 올라가는 도중에 상점들도 많았지만 소매치기 같은 못된 놈들이 있을까봐, 또 가이드의 주의 때문에 찍지 못했다. 걸어서 대충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리프트가 있었다. 표를 끊어 리프트를 타고 최종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데 옆에 프랑스 여자 애(10살 정도? 자매처럼 보였음.) 2명이 나란히 앉았는데, 너무 예쁘다. 크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애들은 너무 귀엽고 예쁜 것이 이 나라인 것 같다.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서 여러 상점들을 구경했다. 꼭대기에는 로마의 나보나 광장에서처럼 화가들이 잔뜩 있었다. 개중에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Five minutes! 라며 호객 행위를 하는 초상화 작가도 많았다. 제길. 아무리 값이 싸고 아무리 빨리 그려도 미안하지만 들고 가는 게 곤란해서 못 산답니다. 이 화가들도 아무래도 영업 방식을 바꿔야 될 것 같다. 누가 한국어로 ‘쉽게 들고 갈 수 있어요!’ 그랬다면 하나 샀을지도 모른다.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 주변에는 상점들, 까페, 특히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는 피아노 까페들이 많았다. 밖으로 웨이터들이 나와서 호객 행위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다 둘러보진 못했다. 몽마르뜨에서 만났던 일행들도 시간이 없어서 너무 아쉽다며 하소연한다. 패키지로 와서 볼게 아니라 이런 걸 다 둘러보려면 자유여행을 와야 한다. (그런데 왜 한국의 카페나 레스토랑, 식당들은 인테리어나 외관을 유럽처럼 깔끔하게 해 놓질 못할까? 한국에 오니 다들 너무 똑같아서 삭막한 느낌을 준다.)

대충 보고 나서 몽마르뜨 꼭대기의 큰 성당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엄청나게 엄숙한 분위기였다! 여긴 관광지가 아닌가보다! 조명은 촛불로만 밝혀져 있고 현지인 6명 정도가 출입구에서 먼 쪽에서 찬송가 같은 걸 부르고 있었다. 여기가 성심성당이라고 했나? 하여간 정말 엄숙한 분위기였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온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근처의 의자에 앉아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인의 신, 하느님께 ‘내가 당신이 우주를 창조하신 질서를 인간들 중 가장 먼저 알게 해 달라’고 빌면서 기도했다. 하하. 주제넘은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언덕을 내려와 다시 리프트가 있는 곳까지 왔다. 이번에는 걸어 내려가야 했다. 계단이 엄청나게 많았다. 게다가 가파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계단 옆으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그 집들 안에 사람이 정말 살고 있다! 유럽에 와서 놀라게 되는 점들 중 하나는, 정말 한국에서는 유적지처럼 보이는 건물들 안에도 사람이 산다는 점이다. 몽마르뜨에서 내려오는 길에 내 발 근처에 작은 창문이 있길래 들여다봤더니, 서재가 마련되어있고 한 아저씨가 거기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갑자기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았다. 하! 이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우리에겐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그래도 여긴 여전히 일본인이 많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또 흑인을 만났다. 아까와는 다른 녀석이었지만 이 흑인들은 수가 많았다. 이번에도 놈은 나한테 달라붙는다. 내가 No, no, no. 라고 거부하니까 막 It's a tradition here. Look!(이건 여기 전통이야, 저거 봐!)하면서 옆에 진짜 하는 사람을 보여준다. 그 사람이 불쌍하다. 일본인이었던 것 같다. 해놓고 돈 달라 하겠지. 그래도 No를 반복하니 Augh! 하며 포기한다. 그 후로는 계속 일행 곁에 붙어 있게 되었다. 하.

이번엔 에펠탑의 발광 쇼를 보러 갔다. 오후 8시가 되면 에펠탑이 10분 동안 번쩍거리는 쇼이다. 어두워지면 에펠탑은 새벽 2시까지는 조명을 켜고 있는데, 번쩍거리는 발광 쇼는 10분간만 진행한다. (2000년도부터 8년간 계속한 일이라고 한다. 앞으로 2년 동안 더 한다나?) 성기자 가이드님이 프랑스의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는데, 2000년 밀레니엄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하는 시계가 프랑스 거리 곳곳에 놓여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밀레니엄을 맞아 샴페인을 사들고 집 근처의 카운트다운 시계에 모여 축하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각국 신문사들의 기자들도 여기에 모여 취재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을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0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밀레니엄의 순간에 시계들이 한꺼번에 고장이 난 것이란다. 하하하. Y2K 버그인가? 정말 웃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온 샴페인을 전부 버려 청소부들이 샴페인을 수거해서 팔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우리가 내린 곳은 파리에서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는데, 이곳은 영화 러시아워3에서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8시가 되자, 에펠탑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친 듯이 발광한다. 우린 그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일본인들이 역시나 많았다. 일본인들은 행색이 한국인들과는 분명 다르다. 여행 온 게 아니라 놀러 온 것 같다. 사진을 찍고 버스로 8시 10분까지 돌아와야 했다. 8시 30분에 센느강 유람선을 타야했으니까. 그런데 5명이 안 온다. 그러자 카리스마 있는 성기자 가이드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직접 나가서 그 5명을 찾는다. 그 5명은 슬기 누님네 3명과 정아 누님네 2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성기자 가이드님은 “여긴 항상 5명이 분위기에 심하게 취하시네요.” 이러셨던 것 같다. (전부 고려대 가족이네.)

다행히 유람선 시간에는 늦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온 것 같았다. 승선권을 받아 기계에 넣었다. 기계가 승선권의 일부를 찢는 형식이었다. 찢긴 승선권은 다시 사용할 수가 없는가보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바또무슈라는 회사의 소유였다. 파리에서 가장 큰 유람선 회사란다. 지금까지 1억 명(?)의 승객을 나른 유람선 회사란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이니 음료수를 사 마시면서 기분 좀 내 보려고 했는데 잔돈이 없어서 그냥 안 샀다. 사실 안사길 잘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강바람의 영향으로 2층은 무척이나 추웠으니까. 추위에 강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바람막이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도 추워서 떨었다. 물론 처음엔 괜찮았다. 그런데 한 9시쯤 되니까 점점 바람이 심해지더니 9시 30분쯤에는 1층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살 것 같더군.

추위 이야기는 이쯤하고, 센느강 유람선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다. 유람선 안에서는 안내방송을 불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이렇게 6개 국어로 방송하였다. 그 6개 국어 안에 한국어가 들어간다는 게 신기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긴 한가보다. 사실 유람선 안에선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한국인 60%, 프랑스인 25%, 중국인 10%, 일본인 5% 정도 되었던 것 같다.(체감) 한강 유람선도 서울사람들은 잘 안탄다더니, 여기서도 그게 맞는 법칙인 것 같았다. 죄다 동양인이다. 지나가면서 어느 고급 유람선(레스토랑 있는 유람선)이 지나갔는데, 사람들 전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가 내가 손을 크게 흔드니까 그쪽에서도 손을 흔들어준다. 여기서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 등 파리 시내의 유명 건물들을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시내 유명 건물들이 센느강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유람선이 처음에는 정말 로맨틱하고 좋았는데 나중에 10개정도 되는 다리를 통과하고 나면(수많은 다리를 통과한다.)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배 위에서 랩을 했다. Eminem의 Big Weenie, The Way I Am, Lose Yourself 등 몇 개의 명곡들과 몇 개의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불렀다. 한 6곡정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부르다보면 추워서 입이 저절로 다물어지고 지친다. 1시간 20분짜리니까. 결국 9시 30분에 1층으로 내려가 안내 방송, 풍경 따위는 다 무시하고 지쳐서 잤다. (그래도 센느강에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봤다. 미국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 자유의 여신상을 축소해서 보내준 선물이란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선물해 준 것이다.)

유람선 일정까지 모두 마치고 버스로 귀환했다. 성기자 가이드는 유람선에 타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타세요. 나중에 사진으로 찍어뒀다가 안내 책자 보면서 확인하는 게 더 편합니다. 저게 뭘까 고민하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입니다.” 이러시고는 우리가 도착할 선착장으로 가셨다. 도착해서 가이드를 만나 버스에 탄 후, 가이드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외곽의 Relais Hotel로 향했다.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

도착하고 나서 버스에서 내린 후 늘 그랬듯이 호텔 안에 들어가 키를 받고 방 안에 가방을 내려놓은 후 씻고 렌즈를 끼고 누워 잤다. 오늘은 정말 고단한 하루였다. 내일은 지금까지의 최고 수준인 4시 반, 5시 반, 6시 반이다. 런던까지 유로스타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하. 기운이 쭉 빠진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6 (7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6 (7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1:58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6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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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척이나 피로하게 느껴진다. 어제 꽤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서 그런가? 사실 여행 오기 전에는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일정보다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더 많이 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 와서 생각해보니 더 많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고(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만), 또 잠시 들렀다가 사진 몇 장 찍고 이동하는 것도 이젠 질릴 지경이다. 조금만 더 제대로 관람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아마도 그건 나의 과도한 희망사항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빡빡한 일정과 제대로 된 관람은 모순된 것일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4시 30분부터 난리다. 일본인이나 다른 유럽 관광객들은 여유롭게 관광한다던데. 패키지여행의 큰 단점 중 하나이면서 큰 장점이기도 하다. 힘든 것이 단점이지만 남들이 일찍 일어나니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만큼 자유여행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다.)

5시 30분쯤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먹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레퀴프를 꺼내들어 읽었는데, 뭐야? 어제 신문이랑 똑같잖아? 신문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건가? 하여간 크로아상과 주스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잠을 떨쳐버리기 위해 에스프레소 커피를 병아리 눈물만큼 마셨다. 무척이나 쓰다.

6시 30분에 호텔에서 출발했다. 오늘이 실질적으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만큼 제대로 돌아다녀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출발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사 아저씨(청년)가 짐을 실어준다. 얼마 안 되어 파리 역에 도착했다. 우린 여기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게 된다. 해저터널을 지나가는 기차인데, 런던까지는 겨우 2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시차 덕분에 한 시간 벌기 때문에 8시쯤에 출발해 9시 30분에 도착한다.)

우린 대략 7시경부터 도착해 랜딩 카드를 작성하고 출국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런던으로 가는 길은 같은 EU 국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보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부 통과하는데 우리 일행은 대략 30분을 가만히 서서 보냈다.

7시 30분경이 되자 우리의 이혜경 가이드님이 드디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린 그룹이라 그런지 일반 승객들과는 다른 통로로 빠르게 수속을 했다. 그런데 내가 영국인 수속 직원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한 프랑스 여성이 프랑스어와 영어로 ‘7시 45분’을 반복해서 외친다. 7시 45분 기차가 거의 출발 직전이었기 때문에 수속을 8시 몇 분 기차였던 우리보다 먼저 해주었다.

결국 내 차례가 되어 영국인 수속 직원 앞에 섰다. Morning. 이라고 인사하니 저도 Morning. 이라고 답한다. 하하! 인사는 정말 재밌다. 여권을 주니까 얼마나 머물 건지 물어본다. 하루 머문다고 답했다. 왜 가냐고 물어본다. 관광하러 간다고 답했다. 그러니 저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당신 일행이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말했다. 당신이 투어 리더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가이드 누님이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그러니까 들여보내 준다.

언제나 그랬듯이 외투와 가방을 풀어 엑스레이 검사대에 올려놓고 금속 탐지기를 통과했다. 다행히 이번엔 검색을 당하지 않고 바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검색대 통과 과정이 정말 일이 아닌 일이다. 뭘 많이 들고 가면 짐 풀고 검색도 받아야 되기 때문에 힘들다. 간단히,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챙겨가는 것이 장기간 여행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여기 면세점에서 잠깐 쇼핑할 시간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그냥 벤치에 앉아있었다. 영국인 꼬마를 구경하면서. 애들은 무척이나 귀엽다. Eminem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이 많다. 한 꼬마 녀석이 걸어 다니는데 무척이나 잘 넘어진다. 우리 일행이 앉아있는 벤치 앞에서 계속 넘어지기에 아버지 되시는 분이 ‘얘는 항상 넘어져요.’ 이렇게 설명해준다. 하하. 너무 귀엽다.

시간이 되어 유로스타 플랫폼으로 향했다. 유로스타는 엄청나게 길었다. 우리가 4번 Coach(칸)였는데, 플랫폼 입구에서 그까지 걸어가려니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다. 신혼부부 아저씨는 “아니, 이거 왜 이렇게 먼 거예요?” 하시며 불평하셨다. 왜 이렇게 먼 건지는 나도 알 길이 없지만 그 분은 할 말은 꼭 하시는 분이신 것 같았다.

가족이 3명이다보니 좌석은 엄마와 동생, 내가 또 따로 배정되었다. 2인 좌석 하나, 1인 개인 좌석 하나. 고로 한 명은 다른 사람과 앉아야 한다는 말이다. 역시나 내가 개인 좌석에 앉았다. 영국으로 가는 만큼 30대 영국인 남성 축구팬이 옆에 앉기를 바랐다. 역시나 불가능한 바람이다. 대신 슬기 누님이 옆에 앉으셨다. 이런. 싫은 건 아니었지만 정말 친하지 않은 여자가 아니고서는 무슨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는 나로서는 약간의 단점이었다.

유로스타를 타면서 꼭 해저터널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절대로 잠을 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Linkin Park의 2007년 내한공연 음원을 음량 최대한으로 설정시켜놓고 들었다. 아, 유럽에서 내한공연의 즐거움을 되살리는 것 같아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마음 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헤드뱅잉을 하면서 설칠 수는 없었다. 옆에 누님이 앉아 계셨기 때문에. 설치지 않고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지루했다. 그래서 Pink Floyd의 Dark Side of the Moon 앨범을 듣다가 잤다. 허허.

자다가 한 정거장에서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몇 프랑스인들이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잤다. 계속 자기만 하다가 잠깐 일어나보니 사방이 깜깜했다. 와우! 해저터널 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방이 어두우니 창문이 거울 역할을 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이 현상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었다.) 찍으면 내 사진이 나왔다. 하하.

터널을 지나자 영국 땅에 도착한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이 초원이었다. 로밍폰도 갑자기 시간 설정을 다시 하겠냐고 물어본다. 프랑스보다는 한 시간 늦고, 한국보다는 9시간 늦다. 영국은 그리니치 표준시가 적용되는 지역이다. 대학생이 되면 그리니치에도 가보고 싶다. 영국 땅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기차 안의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화장실은 비행기 기내 화장실과 비슷했다. 별 놀라운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기내에서처럼 변기물이 폭탄 터지듯이 내려간다. 그것 때문에 살짝 놀랐다.)

영국 땅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런던 St. Pancras 역에 도착했다. 와! 감회가 남달랐다. 내가 9년간 영어를 배운 것이 오늘을 위해서였던가? 처음으로 영어권 국가에 도착했다. 특히 영국식 영어는 내가 정말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런던에 도착해서 엄청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9시 30분쯤에 St. Pancras 역에서 내려 수많은 영국인들을 보았다. 역 내에는 영어로 Way Out과 불어로 Sortie가 병기되어 있었다. Way Out을 보고 정말 내가 영국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영국! Great Britain! 수많은 영국인 밴드들과 그들의 음악, 그들의 문화, Monty Python 등 영국에 관한 것들이 죄다 떠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동경만 하던 그들의 문화를 이제 직접 느낄 수 있다니! 또 영국은 Newton이 태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앞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역할 모델들 중 한명인 뉴턴의 고향이 바로 여기, 영국이다!

St. Pancras 역에서 간단한 입국 수속을 하고 역 내를 걸었다. 매우 깨끗했다. 영국식 악센트가 곳곳에서 들렸다. 혓바닥을 내밀고 발음하는 것 같은 강한 영국식 악센트는 꼭 독일어나 불어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쨌든 듣기 좋다.

역에서 얼마를 걸어가니 버스가 보였다. 우리가 하루 동안 타고 다닐 버스이다. 좌석이 일본처럼 한국과 반대였다. (프랑스와 반대로 하려고 그랬다지?) 버스 기사는 인도인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흑인들이 무척 많았던 것 같은데, 여긴 인도 출신이 꽤 많았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 흑인들이 잡일을 많이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인도, 아랍 출신이 역이나 공항 청소와 같은 기피 업종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 같았다. 계급 사회가 없다고는 하지만 계급 사회가 있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영국은 진짜 계급 사회가 있다. 귀족과 평민, 왕족이 구분된다.)

버스에서 내 고정 좌석(비상 출구 바로 뒤)에 앉으려고 했는데, 거기 쓰레기봉투가 걸려있었다. 오물이 뚝뚝 떨어졌다. 뭣도 모르고 앉았다가 손에 오물을 묻혔다. 냄새가 심했다. 젠장. 청소를 안 하는 건가? 나중에 느낀 거지만 한국 버스가 최고다. 정말로.

버스 안에서 런던 일정을 책임질 가이드를 볼 수 있었다. 30~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 분이셨는데, 푸근한 인상이 좋았다. 이 가이드는 초장부터 영국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영국 집은 허름해 보이지만 속은 정말 살기 좋다. 도시 가스가 다 들어온다. 과학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이작 뉴턴과 스티븐 호킹이 여기 출신이다. 영국에는 계급 사회가 있다. 영국 왕실이 오랜 군 복무 전통을 자랑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왕실을 자랑스러워한다. 이혼녀들은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복지가 잘 되어있다. 학생들은 박물관 출입이 무료다. 학생들에게 엄청난 편의를 제공해준다. 의료 혜택이 무료다. 뭐, 이런 내용을 줄줄 읊으셨다.

런던 이동 중에 Kings Cross역과 Pink Floyd의 앨범 Animal의 표지에 나왔던 공장을 볼 수 있었다. Kings Cross역은 해리 포터에 등장했던 역으로, 9와 4분의 3 승강장이었나? 그걸로 유명하다. 정말 거기 들어가 보고 싶었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그 부근은 관광객들로 넘쳐나겠지. (진짜 벽에 카트를 들이받는 바보들도 넘쳐나겠지.) Animal 앨범 표지에 나왔던 그 공장은 옛날 화력 발전소 공장이었다고 한다. 옛날 잭 더 리퍼가 날뛰던 영국의 19세기 후반은 (셜록 홈즈가 살던 그 시절) 석탄 시대였으니 화력으로 발전을 해야 했겠지. 그러면 당연히 매연이 발생할거고, 그래서 런던의 하늘이 우중충한가보다. (추측) 하여간 런던의 하늘은 엄청 우중충하다. 그래도 비는 중간에 아주 찔끔 내리다 그쳤다. (다행히 우산 필요 없었음.) The London Dungeon 이란 곳도 있었다. 입구에 Enter at your peril 이라고 쓰여 있는데, 가상의 잭 더 리퍼도 볼 수 있는 가상의 공포 체험 공간 같았다. 이것도 먼 훗날의 자유여행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 유명한 2층 버스와 맥도날드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맥도날드 없는 대도시는 정말 있을까?

런던 시내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대법원 건물 앞에서 내렸다. 법관들이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담배 피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얼마 걸어서 달걀 모양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혁신적인 형태의 신식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달걀 모양의 건물은 런던의 랜드 마크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 건물 앞 광장에서 그 유명한 타워브리지를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시간은 45분 준다고 했다. 오? 꽤 많은 시간이다. 간단한 타워 브리지 관광에 45분이나? 로마의 가이드는 그냥 스쳐지나갈 정도로만 시간을 줬는데. 시간 많이 주는 점은 좋았다.

난 뛰어서 타워브리지까지 올라갔다. 차가 많이 다녔다. 몇몇 관광객들도 보였다. 그러나 타워브리지 건물 꼭대기로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문이 잠겨있었다. 그래서 다리 위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왔다. 왕관이 보관되어 있다는 성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차례의 절도 시도만 있었단다.)광장 근처에 탬즈 강변에 영국 해군의 군함이 있었다. HMS Belfast였다. 퇴역 후 지금은 박물관 정도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까지 또 뛰어갔다. 영국인들은 학생에게 박물관 출입 요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가려했더니 상점처럼 보이는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야 했다. 시간이 없어 상점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학생용 티켓은 무료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겐 돈이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문제였다. 제길. 프랑스 학생들 천지였던 HMS Belfast호를 뒤로 하고 버스로 돌아갔다. (근데 이건 엄마가 해준 이야기인데 어떤 행인이 걷다가 자전거에 치일 뻔하자 자전거 타던 사람이 IDIOT! 하고 외쳤단다. 하하.)

그런데 이번 런던 가이드는 정말 무척이나 무심하다. 대체 손님들을 챙기는 거야, 안 챙기는 거야? 약속장소에 대충 사람들이 모인 것 같으니까 그냥 버스로 자기 혼자 멀찍이 떨어져서 간다. 16년 동안 여기서 가이드 일을 해서 손님들 상태는 대충 꿰고 있다더니.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사람 수는 세보고 가야지. 허허허. 그래도 설명하는 것은 잘 해주신다. 결국 버스까지 5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기다리다가 다 모이자 출발했다. 가이드의 어떠한 허술함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에는 빅벤과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했다. 잠깐 내려 걸어서 이동했는데, 신호등이 이상하게 생겼다. 버튼이 있었고, WAIT 라고 불이 들어와 있었다. 버튼은 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WAIT 불이 꺼지니 걸어가도 되었다. 신호등도 신기하군. 걷다가 누가 손가락으로 툭툭 친다. 선주 누님이 나한테 “그, 에단 호크 나오는 분수대에서 뽀뽀하는 영화 있잖아, 그 영화 이름 뭔지 알아?” 하고 물어보신다. 응? 그 신혼부부 아저씨에 이어 이해하기 힘든 질문 작렬이다. 내가 알 것 같이 생겼나? 난 영화에 대해선 잘 모른다. (밀리터리, 미스터리 영화 쪽은 좀 알지만.) 그때는 에단 호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에단 호크와 귀네스 팰트로 주연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아저씨가 지난번에 레만 호에 관한 소설 있냐고 물어본 것과 비슷한 맥락이겠다. 생각해보면 서울 사람과 경상도 사람의 차이가 아닌 그저 내가 ‘똑똑해보여서’ 물어본 것 같다. 하하. 몰라서 당황하긴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계속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진짜 빅벤과 국회의사당 앞으로 간 것이 아니고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국회의사당은 강 건너편에 있었다. 잘 보이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는데. 이번 여행은 가히 사진 촬영 여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면세점에선 1시간 30분 시간 주면서. 제발 쓸데없는데서 시간 보내지 말고 제대로 된 데서 제대로 된 관광을 좀 합시다! 이것이 대한민국 패키지여행의 크나큰 문제점 중 하나이다. (돈 싼 건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거기서 아주 런던에 온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난 기분에 취해서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Part 2), Radiohead의 Creep, Idioteque 등을 불렀다. 제길! 너무 기분이 좋아! 기분이 너무 좋아 당시에는 불평할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성에 안차서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의 첫 번째, 세 번째 Scene의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 남들은 날 미친놈으로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때 너무 즐거웠다.

빅벤에서 버스를 타고 피카딜리 광장으로 이동했다. 피카딜리 광장은 영화 Das Boot (한국명 특전유보트)에서 U보트 승무원들이 부르던 It's a Long Way to Tiperarry에 등장하기도 한다. (밀리터리 영화에 대해서나 좀 물어봐주지.) Good bye Picadilly, farewell Leicester square! It's a long, long way to Tiperarry, but my heart's right there! 이 구절을 계속 반복하면서 피카딜리 광장에 온 기분을 만끽했다. (그 광경을 보고 혹시나 놀란 영국 수병이 있을지도?)

피카딜리 광장에는 런던에서 유일하게 전광판 광고가 실시되고 있단다. 거기에 당당하게 박혀있는 제일 큰 광고판이 바로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의 광고였다. 정말, 세계 곳곳을 다니다보면 삼성 광고판 없는 지역이 없다. 로마의 퓨미치노 공항은 완전히 삼성 광고판으로 도배를 해 놓았었다. (정말 뻥 안치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삼성 광고였음.) 하지만 내가 눈 여겨 본 것은 삼성 광고가 아니었다. 바로 Monty Python 광고였다! 젠장! Monty Python이 여기 런던에서 상영 중이란다. 비행기 안에서도 Monty Python 틀어준다더니 (못 봤지만) 영국에서 Monty Python의 인기는 정말 대단한가보다. 하긴, 아는 외국인들도 전부 Have you ever heard about Monty Python? 하면 전부 Sure, Definitely, Absolutely hilarious, You should watch it 등의 답변을 했었다. 그게 내가 Monty Python을 보게 된 계기였다. 어쨌든 2, 30년 전의 코미디를 지금도 공연 형식으로 극장에서 한다니, 정말 놀라웠다.

피카딜리 광장에서도 역시나 사진 촬영만 하고 나왔다. 점심때가 다 되었기에 우린 한식을 먹으러 런던의 골목을 걸었다. Korean Kitchen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는 파리에서보다 더 훌륭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버스 안에서 너무 배가 고파 기사 몰래 몽쉘 카카오를 몇 개 먹었더니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많이는 못 먹고 밥 한 공기만 먹었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꼭 한명이 2인분을 먹을까? 그러면 처음부터 2인분 분량을 1인분으로 정하면 되잖아?) 옆에 앉으셨던 성진이네 아저씨가 나보고 더 먹으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성진이네 아저씨는 정말 좋으신 분 같았다. 나에게 배낭여행 하는 법도 몇 가지 알려주셨다. 3일중에 하루는 일정을 잡고 이틀은 무 일정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좋고, 친구 한 두 명 정도 같이 다녀야 외롭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아저씨는 테이블마다 소주도 돌리셨다. 소주가 꽤 비쌌던 것 같다. 한 병에 우리 돈으로 약 만원 했던 것 같다. 통이 크셨다.

식당에는 현지인 3명이 우리와는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 한번 와 본적이 있었던 사람들 같았다. 자기가 김치 먹어봤다면서 뭐 이거 시키면 괜찮겠네 이런다.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 이었던 것 같다. 뭘 시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식을 먹는 현지인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한국에 와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카페인 Redcafe.net에서 알게 된 건데, 여기 사람들은 한국 음식에 대해서 꽤 알고 있었다. 한 팬은 Park이 Kimchi와 Ginseng(인삼)을 먹어서 Fulham전에서 활약했다면서 Ginseng은 자기도 영국에서 Ginseng을 try 해 보겠단다.)

식사 후에 면세점으로 이동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 봤던 한 백화점이 있었는데, 이름은 일본식으로 Mitsukoshi(미쯔꼬시)였다. ‘어, 여긴 백화점 이름도 일본식이네. 한국식 이름은 없겠지.’ 이렇게 생각해보았던 백화점이 바로 우리가 들른 면세점이었다. 점원들도 거의 다 일본인들이었고 손님들도 전부 일본인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런데 더욱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것은 여기서 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간에 대영박물관에 조금 더 일찍 갔더라면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이집트와 중남미의 유적들을 더 많이 보고 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이집트와 중남미 문명 유적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게 메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쨌거나 불만은 일단 접고 미쯔꼬시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하 1층에는 명품 가방이나 지갑 등을 팔았고 2층에서는 옷을 팔았다. 지하에는 일본 서점과 기념품점이 있었다. 한국인 직원의 설명을 대충 듣고 면세 카드를 받은 후 쇼핑을 시작했다. 사실 지상 1, 2층에서는 살 게 없었다. 엄마와 동생을 내버려두고 바로 지하로 내려갔다. 일본인 천지였다. 서점에 들어갔다. 영어책을 파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부 일본어 책이었다. 일본 만화책도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염색하고 화장 떡칠한 젊은 일본 여자 두 명이 서점에 들어와 하는 말이, “에, 여긴 일본이잖아. 영국이 아냐.” “맞아, 여긴 일본이야. 딴 데로 가자.” 바로 옆에 있는 기념품점으로 가서는 귀여운 척을 하면서 “아, 여긴 일본이 아냐. 이 초콜릿이 뭐지?” 하며 두 명이 입을 맞춰 귀엽게 (나한텐 역겹게) “고!” “디!” “바!” 한다. 으허허.

나도 기념품점을 둘러보았다. 초콜릿, 홍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청난 코너를 발견했다. 축구 기념품 코너! 눈이 돌아갔다. 아까 피카딜리 광장 주변의 가판대에서 잉글랜드 국가 대표나 런던의 유명 구단 레플리카를 팔았었다. 그런데 시간과 파운드가 없어서(아쉽게도 유로로만 환전했음. 스위스 프랑과 파운드로 환전을 했으면 좀 나았을걸.) 거기서는 사지 못했다. 런던에선 기념품을 못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유로를 받는 면세점에서 드디어 구입할 기회가 생겼다! 여러 가지 기념품들이 있었다. 비니, 머그 컵, 목도리, 담요, 공, 열쇠고리, 깃발, 필기구 등이 있었다. 하여간 종류는 엄청 많았다.

종호 형님을 거기서 만났는데 그 형님은 공을 두 세 개 정도 사셨다. 그런데 공은 정말 질이 떨어졌다. 한국 마트에서 5000원 정도 하는 공 수준이었다. 그 형님은 그걸 친구들한테 선물해 준다는데, 만약 친구들이 공 좀 볼 줄 안다면 꽤 난처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공은 좀 안 좋아 보인다고 했지만 그냥 구매하셨다. 맨유 마크가 붙어있는 공은 한국의 어느 마트에서든 살 수 있다. 맨유 마크 붙어있으면 축구를 눈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다 사니까. 좋은 줄 알고.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공 좀 차 본 사람들은 안 산다. (종호 형님이 축구를 많이 안 해 봤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했다.)

난 잉글랜드 현지 팬들처럼 목도리를 사려고 했다. 스탬포드 브리지든 어디든 응원에는 목도리가 빠질 수 없지. 응원용으로 쓸 뿐만 아니라 방한용으로도 훌륭해보였다. 그런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돈은 엄마가 갖고 있는데? 뭐야? 온 건물을 다 뒤져도 안 보인다. 나갔나? 전화를 해 보았는데 연결이 안 된다! 면세점 안에 있다는 소리 같았다.

한참을 찾은 끝에 엄마와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한테 50유로를 받아서 바로 계산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첼시 목도리는 7.99 파운드였다. 거스름돈이 꽤나 나올 것 같았다. 역시나 계산하러가니 거스름돈이 꽤 되는데 잔돈은 전부 파운드로만 나온단다. 이런. 우물쭈물하고 있던 차에 뒤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선주 누님이 내 50유로를 5유로 10장으로 교환해 주셨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일로는 여겨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정말 사고 싶긴 한데, 돈 바꾸는 것 때문에 안 살 순 없고, 난처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백골난망할 따름이다. 고맙습니다! 1시 30분까지 면세점 입구에 있으면 되었는데 시간은 약 30분정도 남았던 것 같다. 그래서 런던 시내 거리를 걸어 다녔다. 헤헤, 나도 어엿한 Chelsea의 Blues라구!

쇼핑을 끝내고 버스를 타고 세계 3대 박물관 중 마지막 코스인 대영박물관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Monty Python이 상영되는 극장과 엄청 웃긴 광고들도 보았다.) 약 2시경이었다. 가이드는 3시 30분까지 북쪽 게이트로 오면 일행을 안 따라다녀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난 그리스 로마시대의 조각이 있는 곳까지만 따라다니고 나머지는 자유로 돌아다녔다. 오히려 그게 훨씬 나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겐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 없었으니까. 가이드(모든 가이드들)의 설명은 유익했지만 오히려 관광을 거슬리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이게 뭔지, 솔직히 돌아가서 기억도 못할 것들을 괜히 길게 설명해서 정작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놓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웬만한 설명들은 다 영어로 나와 있었으니 이해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대영박물관 건물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델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영박물관 안에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중국 유물 전시회를 하는 듯 했다. First Emperor이란 이름의 전시회였다. 그건 유료였던 것 같아 볼 수는 없었다. 아, 대영박물관의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박물관 입장이 완전 무료라는 점이다. 가이드님의 말로는 대부분의 소장품들이 외국에서 약탈한 것들이기 때문에 체면상 입장료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은 가이드를 따라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본 유물은 아주 아주 유명한 로제타스톤이다. 로제타스톤은 큰 바위에 히에로글리프, 민중문자, 그리스어로 적힌 비문인데, 자세한 내용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로제타스톤은 고대 언어 해독, 비문 해독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돌덩어리다. 프랑스의 샹폴리옹이 로제타스톤을 통해 고대 이집트어 해독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동안은 이집트어가 표의문자라고 생각했었다.) 히에로글리프는 분명 표음문자이고, 암호학 역사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로제타스톤 실물을 보고 잠깐 접었던 히에로글리프의 해독 공부를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대영박물관에선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이라고 상형문자 해독의 베스트셀러도 출간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도 LP 내한공연의 힘으로 가운데로 파고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글자가 자세하게 나오진 않는다. 정말 아쉽다.

다음으로 본 유물들은 아시리아의 유물들이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아시리아의 반인반마의 괴물상(?)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아시리아 유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쐐기문자였다. 암호와 비문 해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런데 쐐기문자의 해독에 관한 책은 왜 별로 없지? 나중에 꼭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 옛날 아시리아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조각을 했을까?)

다음 장소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들이었다. 터키에서 가져왔다는 어느 신전을 보았다. 파르테논 신전을 본 딴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여러 자기, 그릇 조각, 조각상(어느 유명한 비너스상도 봤음.)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 잘 몰랐으니까. 아는 게 힘이다. 그런데 아는 것이 하나 나왔다. 페리클레스의 흉상이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페리클레스를 여기서 보다니. 기억은 가물가물했지만 페리클레스 하면 항상 나오는 사진이 이 조각상이었다. 그래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시 벤치에 앉아있었다.(박물관내 벤치에서 뽀뽀하는 커플은 뭐야?) 그러자 가이드 선생님이 가까이 오시더니 힘드냐고 물어보셨다. 물론, 힘들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북쪽 게이트로 3시 30분까지만 오라신다. 오! 그 말을 들은 즉시 난 다리 아픈 것도 모르고 뛰쳐나갔다.

역시 난 한국인이니까 대영박물관에 신설된 한국관이 꼭 보고 싶었다. 가이드를 따라간 엄마와 동생도 한국관을 보았다고 했지만, 난 사실 그런 생각도 못하고 바로 한국관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대영박물관은 너무나 넓었다. 그래서 면세점에서 거슬러 받은 동전으로 지도를 하나 샀다. (젠장! 지도 하나가 거의 4000원이야! 한국에선 공짜로 줄 것 같은 지도였는데. 무료입장이라 이런 걸로 수익을 내는 것 같았다.) 지도를 보면서 한국관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탐색했다.

내가 간 길이 가장 빠른 길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한국관으로 가는 길을 디카를 들고 다니며 전부 녹화했다. 먼저 King's Library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왕의 도서관인가? 진짜 왕이 이용하는 도서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고서들이 꽂혀있었는데, 책은 꺼낼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도서관 안에 로제타스톤이 있었다. 이게 왠일? 어느 영국인 모자가 로제타스톤을 만지고 있었다. 귀여운 꼬마 녀석이 말하길, “엄마, 이거 진짜야?” 엄마 왈, “아니, 이것 봐, PLEASE TOUCH IT 이라고 되어 있잖니. 한번 만져봐.” 애도 실컷 만진다. 호. 비록 가짜였지만 진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손을 대 보면서 내가 해석할 줄 아는 히에로글리프 몇 개를 발견했다. 샹폴리옹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King's Library를 지나 잘 모르는 유물들이 있는 복도(너무 빨리 지나가서 뭔지 잘 기억을 못하겠다.)를 지나 중국, 인도관에 도착했다. 중국, 인도관에는 어린이들이 50여명정도 앉아서 어느 선생님의 열정적인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젊은 선생님은 온갖 의성어를 내며 (ex. 룰룰룰룰룰~, 피유~BLOAH!) 어린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그 뒤에선 몇몇 어린이들이 마분지 따위를 잘라 모자를 만들고 쓰고 있었다. 뭔가 연극 같은 걸 할 모양이었다. 그 재미있는 선생님을 잠깐 보다가 바로 중국, 인도관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면서 본 유물들은 융성했던 중국과 인도의 문명답게 무척 화려했다. 앉아서 인도의 어느 유물을 관찰하던 한 여성 관람객의 엉덩이 골이 보여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여러 계단을 올라가고 헤맨 끝에 드디어 한국관에 도착했다. 한국관은 매우 조용했다. 한 노인 관람객이 내 앞을 가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약간 서운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나 적다니. 관람객이 2, 3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도자기, 보자기, 불교 관련 그림, 항아리와 선사 시대 유물 등을 볼 수 있었다. 꽤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국관 안에 재현된 사랑방의 모습이었다. 기와집의 형태로 양반들이 살던 사랑방이 지어져 있었다. 한 현지인 학생이 그 사랑방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올라가지 말라는 표지판 때문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미를 어느 정도 외국인이 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표현해 놓았던 것 같다. (엄마는 화려하고 복잡해서 정신 사나웠던 다른 문화의 관들보다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한국관이 더 좋았다고 했다.)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난 한국관이 인기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국관 안의 경비원에게 Non-Korean들이 여기 자주 오냐고 물어봤다. 경비원은 “Yeah."하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오? 그것 다행이로군. Redcafe에서 현지 팬들이 박지성을 인정할 때 느꼈던 쾌감처럼 Yeah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도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더 많은 현지인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려면 다양한 방면의 문화적 가치들을 대영박물관 안으로 옮겨 놓아야한다. (박지성이 더 성장해야 하듯이.) (사료를 기증한 어느 한국인 박사에 대한 감사의 글도 볼 수 있었다.)

한국관을 지나 근처에 있던 일본관에도 들렀다. 엥? 이게 뭐야?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잖아! 왜 이런 거야? 일본인처럼 보이는 어느 할머니께서 영어로 일본의 다도를 설명하고 계셨고, 현지인들에게 실제 차를 마셔보는 기회도 주어졌다. 하. 일본은 벌써부터 이렇게 앞서가는군. 그 현장을 녹화하려는데 저장 공간이 부족하단다. 몇 개의 동영상과 사진을 지우고 촬영을 재개했다.

일본관의 유물들도 관람했다. 일본의 고대 유물들은 내가 볼 때에는 중국, 인도, 한국과 비교해서는 보잘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유물 수는 꽤 많았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제국주의를 부르짖을 당시의 유물들이었다. 이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한 적이 있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것은 ‘일만교역대쌍육(맞나?)’이라고 Monopoly 게임같은 것이 있었다. (한국의 부루마블처럼.) 그런데 이 게임엔 여러 도시가 등장하는데, 중국의 몇 도시와 한국의 경성이 등장한다! 경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숭례문이 등장한다. 일본인들은 조선을 완전한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나보지? 또 자신들이 세운 만주 괴뢰국의 국기와 일본 국기를 여기저기 그려놓았다. 아마 만주국 설치 기념으로 만든 게임인 듯 했다. 이런.

일본은 이미 1990년부터 방금 본 THE MITSUBISHI CORPORATION JAPANESE GALLERIES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명단도 볼 수 있었는데, 미쯔비시 상사를 포함한 아사히신문, 코니카 미놀타 등 여러 대기업들의 이름도 볼 수 있었다. 일본이 못된 짓을 많이 하긴 하지만 배울 점도 분명히 있다. 한국도 한국 문화 알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시늉만 하지 말고.)

일본관을 보고 나서 돌아가려는데 일행들을 만났다. 엄마를 만나 디카를 돌려주고 이집트 미라들과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제기랄! 이집트 미라들이야! 물론 더 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그럴 수가 없었다. 이집트관을 재빨리 넘어간 후, 중세 유럽, 로만 브리튼 시대 유적, 중동지역 유물들을 보고는 북쪽 게이트로 갔다.

북쪽 게이트에 사람들이 와 있었다. 바로 앞에 있던 노점상에서 콜라 한 병을 샀다. 콜라 700ml가 0.9파운드, 우리 돈으로 1600원이 조금 넘는다. 한국에서 1.5리터 페트병을 살 수 있을 가격이다.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대영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버스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이동했다. 난 웨스트민스터 사원 방문을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Newton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꼭 Newton의 묘를 참배하고 싶었다. 나의 장래와 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Newton은 나의 분명한 우상이다. 참배의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또 Newton의 묘는 소설 다빈치 코드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크립텍스의 열쇠는 APPLE이었다지? 다빈치 코드에 묘사된 대로 행성들의 모형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시간상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망할! 그럼 면세점 갈 시간은 어디서 난거냐? Newton의 묘를 코앞에 두고 사진만 찍으라고? 멍청이들! 속으로 짜증이 났다. 빅벤이랑 국회의사당 직접 안 간 것도 참고 있었더니. 일행들 때문에 혼자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뉴턴에게 빌었다. “Sir Isaac Newton, please let thy little fellow figure out the order of the universe. Amen." Newton이 제발 내 바람을 들어주기를. 여기서도 후일의 자유여행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충 사진을 찍고, 버킹검 궁전으로 향했다. 버킹검 궁전을 가는 줄은 몰랐다. 일정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버킹검 궁전은 생각보다 작았다. 베르사유보다 많이 작았다. 어쩌면 조금 실망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만약 첫 날에 버킹검 궁전을 봤다면 반응이 달랐을지 모른다. 하도 큰 건물들을 많이 보다 보니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또 악재가 생겼다. 배터리가 다 된 것이었다. 여분 배터리를 가져왔는데 버스에 두고 왔다. 허허허. 그냥 눈으로만 담아두기로 했다. 투구 쓰고 말 탄 병사도 볼 수 있었다. 하. 사진 찍지 못 한 걸 애석하게 생각한다. 결국 버스에 타서 살짝 지나갈 때 몇 번 찍었다.

버킹검 궁전이 우리 런던 일정의 마지막 관광지였다. 이제 저녁 식사를 현지식으로 먹고 나면 모든 관광 일정이 끝이다. 내일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저녁 식사는 영국식 식사라는데, 영국 음식이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라고 한다. 과연 어느 정도나 맛이 없을는지?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데, 영국 음식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국에 왔으니 맛없는 것도 한번 먹어봐야지. 맛으로 뇌에 강력한 기억을 새기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걸어갔다. 영국의 주택가도 꽤 운치가 있었다. 피렌체만큼은 아니었지만, 살기 좋아보였다. Monty Python에 나올법한 거리와 집들을 내가 실제로 걸으며 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식당에 도착했다. 이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되어 있었다. 뭐? 이탈리안? 왜 영국에 와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여행사의 기이한 레스토랑 선정에 또 한 번 불만스러웠지만 뭐, 어쩔 수 있겠나. 이 식당에는 한국인도, 현지인도 아무도 없었다. 우리 일행뿐이었는데 또 2층 구석진 곳에 또 무척이나 비좁은 좌석에 꽉 들어차 앉아야했다. (역시나 가이드는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성진이네 아저씨와 신혼부부 아저씨네와 함께 앉았다. 우린 신혼부부 아저씨의 일(강남의 어느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신다고 하셨다.)과 울산 이야기(울산이 전국에서 제일 잘사는 동네라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난 지 시간이 꽤 되었지만 아직도 대화거리가 부족해 중간 중간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벽 곳곳에는 영국 왕들의 초상화와 그에 관한 설명이 붙어있었다. 우리가 앉았던 식탁 옆의 벽에는 그 유명한 헨리8세가 그려져 있었다. 식탁에는 유럽의 여느 식당들과 똑같이 딱딱한 빵과 버터가 놓여있었다. 그걸 먹었는데 목이 너무 건조해졌다. 빵은 너무 딱딱했다. 가루는 사방으로 떨어졌다.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들어 올렸는데 물병이 엄청나게 무거웠다. 유리 물병에 물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두 손으로 들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였다. (사실 한 손으로 들기는 무리였다.)

곧 수프가 나왔다. 대략 색깔은 뻘건 색이었고, 당근, 양송이 등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 있었다. (내 생각엔 그 갖가지 재료들을 그냥 냄비에 아무렇게나 넣고 끓인 것 같았다.) 맛을 보았다. 어르신들은 한국의 육개장과 비슷한 맛이라고 하셨는데, 난 동의할 수 없었다. 육개장과 약간 비슷했지만 육개장이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아닌 육개장에 케첩이나 머스터드소스를 넣은듯한 기괴한 맛이 났다. 먹을 만은 했다. 절반 이상 먹었다. 기름이 둥둥 떠 있었지만 먹을 만 했다. 그 맛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에 그 맛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그러나 처음 먹어본 듯한 맛이어서 에스까르고처럼 묘사하지는 못하겠다.)

수프가 나온 후 메인으로 쇠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이건 사실 스테이크가 아니었다. 아주 얇았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 패티보다 얇았다. 고기는 질겼고, 짰다. 옆에 감자도 함께 나왔는데, 다 타있었다. 감자를 씹으니 탄소 맛이 느껴졌다. 으허허. 이건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잖아! 영국 음식이잖아! 그런데 Ramsey's Kitchen Nightmare나 여왕의 만찬 같은 프로를 보면 영국 음식도 맛있어 보이던데. 실력 있는 요리사도 많았던 것 같은데. 먹을 수는 있지만 돈 주고 먹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음식이었다.

식사를 마친 우린 식당에서 다시 버스로 돌아 가야했다. 종호 형님이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다. 영국 음식이 제일 맛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슨 나라의 무엇이 제일 어떻다는 형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죄다 다른 것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많이 변형이 되는 것 같았다. 종호 형님이 하나 확실하게 말했던 것은 결혼상대로는 일본 여자가 최고라는 것. 순종적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에. 난 거기에 그다지 수긍하지 않는다. 결혼상대로 좋은 여자 같은 건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 여자가 ‘다른 민족에 비해’ 순종적인 건 맞는 것 같다. 종호 형님은 또 군대 이야기도 하셨다. 작년 12월에 공군 제대하셨단다. 나보고도 공군 가라신다. 누구한테 비행장 청소가 할 일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건 운 좋은 사람이란다. 그리고 군대도 사실 편하단다. 군대에서 살찌우고 왔다고 하셨으니. 고등학교 졸업도 금방이고 금방 군대 간다고 날 겁주셨다. 제길. 잡소리는 그만해야겠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묵을 호텔인 St. Giles 호텔로 이동했다. 이 호텔은 런던 근교 Heathrow에 있다. 공항이 매우 가깝다. 여행 출발 전 한국에서 조사해본 결과 St. Giles는 꽤 큰 호텔 체인이었던 것 같았다. 버스에서 짐을 모두 내리고 방 키를 받았다. 방 키가 열쇠 형식이 아니고 카드 형식이었다. 유럽에선 처음 보는 방식이었다. 저급 호텔에선 쓰지 않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가이드가 숙박 명렬표까지 나눠주었다. 누가 몇 호실에 묵는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여행이 다 끝나니까 이런 것도 주는군. 이 호텔은 10층까지 있었던 것 같다. 가이드가 이 호텔은 정말 좋다고 말했다. 특히 아침식사가 좋다고 한다.

우린 216호였다. 객실 안은 정말 훌륭했다. 일본에서 묵었던 젠닛쿠 호텔을 연상케 했다. 엄마는 오히려 그 호텔보다 더 좋았다고 했다. 침대는 정말 푹신푹신했고, 더운 물도 잘 나왔다. 무척 만족했다. TV를 틀어보니 칼링컵 결승전에 관한 뉴스가 쉴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결승전에서는 토트넘과 첼시가 경기를 하게 되는데, 난 첼시가 이길 거라고 확신했다. 전력상으로 훨씬 우세하니까. 또 나는 첼시의 팬이다. 비록 제일 좋아라하는 Shevchenko는 부진하지만 첼시는 나의 팀이다. 하지만 토트넘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뉴스에 나오던 여러 사람들이 첼시 60 토트넘 40 퍼센트의 확률로 승리를 점쳤다. 첼시 서포터즈 회장과 토트넘 서포터즈 회장이 뉴스에 나와 서로 자기 팀이 이길 거라고 토론하는 모습도 정말 재미있었다. (결국 토트넘이 우승했다. 예상 밖의 결과다. 라모스 감독에게 그 공이 있을 것이다.)

TV를 보던 중 엄마가 하나 제안을 했다. 함께 여행 온 남자들, 나랑 종호 형님, 성진이랑 호텔 로비의 바에 내려가서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를 하면서 여행을 마치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도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종호 형님과는 조금 말이 되지만 성진이와는 대화가 어려웠다. 이번 기회에 한번 말을 터보고 싶었다. 엄마가 부르는 김에 성진이네 아저씨도 불러보라고 했다.

난 기념품으로 산 AC밀란 레플리카와 첼시 목도리를 입고 종호 형님의 방을 찾아갔다. 종호 형님은 똥 좀 누고 내려간다고 하셨다. 하여간 정말 재미있는 분이다. 성진이네 방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니 성진이가 나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성진이도 내려오겠단다. 근데 아버지는 샤워를 하고 계셔서 나중에 말씀드리겠단다.

난 바에 내려가서 기다렸다. 직원에게 유로를 받냐고 물어봤다. 파운드만 받는단다. 그러니 유로는 건너편 노란 가게에 가서 바꾸란다. 횡단보도를 건너 노란 가게에 갔다. 그 가게의 점원은 옆의 초록색 가게에 가서 바꾸란다. 이건 뭐야? 다시 녹색 가게에 갔더니 바꿔주었다. 근데 나중에 자기 전에 계산해보니 점원이 틀리게 준 것 같았다. 허허. 당한 건가. 그런데 이 직원들은 전부 토종 영국인들이 아니었다. 아랍인, 인도인 등 다른 인종들이었다. 그래서 발음과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

환전을 하고 바에 갔더니 성진이네 아저씨가 계셨다. 성진이네 아저씨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계셨다. 성진이네 아저씨께 들어가자고 말씀드렸더니 무슨 딴 소리를 자꾸 하셨다. (이건 정말 못 알아들어서 기억이 안 난다.) 엥? 왜 이러시지? 또 서울 사람들의 말장난인가? 내 생각엔 성진이가 제대로 전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저씨는 내가 내려오라고 한 것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설명을 드렸더니 그럼 일행 전원을 다 부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신다. 그래서 똥 누고 내려오셨던 종호 형님과 난 가이드 누님의 방을 찾아가 모든 방에 전화를 돌렸다.

그래서 바에 내려오신 분들은 엄마, 나, 동생, 성진이, 성진이네 아저씨, 종호 형님, 종호 형님 어머님, 슬기 누님, 선주 누님, 슬기 누님 어머님, 가이드 누님 이렇게 11명이었다. 난 성진이와 말을 해보고 싶었기에 옆에 앉았다. 성진이도 축구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처럼 학교에서 공도 차는 녀석이었다. (너무 얌전해서 실전은 안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질문, 대답 같은 말은 거의 내가 다하고 성진이는 네, 아니오 같은 간단한 대답만 한다. 어유, 축구에 관심이 있으면 나한테 조금만이라도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성진이가 한 질문이라곤 ‘축구화 뭐 신으세요?’ 뿐이었다. 간간히 경기 결과가 어땠나, 이런 것도 물었지만 자기가 스스로 한 제대로 된 질문은 축구화 질문뿐이었다. 그때 난 설명을 하려 했지만 축구를 오랜 시간 안 한 탓에 잊어버렸다. 젠장. 하필 이런 때에. 난 그저 아디다스 프레데터라고만 설명했다. 아디다스 프레데터 압솔라도 TRX HG 하와이안 블루라고 설명했어야 되는데.

아쉽게도 성진이는 먼저 가보겠다며 가버렸다. 자기 친구들과 축구할 때는 그렇게 과묵하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축구할 땐 과묵하면 안 되니까. 에이. 그래도 공통 관심사에다가 축구 좋아하는 남자는 의사소통이 만나자 마자 바로 된다던데. 성진이에게 프리스타일 축구를 배우라는 소리만 하고는 나머진 했던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성진이가 먼저 일어나자, 가이드 누님도 먼저 가보겠다며 일어났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난 주위 어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성진이네 아저씨께서 내게 성진이랑 말 해보니까 어땠냐고 물어보셨다. 성진이가 말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니 약간 섭섭해 하셨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가 또 성진이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언제나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살짝 감도니까 종호 형님네 아주머니께서 이 일을 주최한 내가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난 이런 거 시켜주면 잘 한다. 그냥 이 일의 원래 목적을 말씀드렸다. 원래 남자들끼리 모이려고 했던 건데, 아저씨께서 다 부르라고 하셔서 이렇게 되었다고. 그러니 옆에서 슬기 누님네 아주머니께서 너 공부 잘하지, 너 뭐 될 거야 이런 걸 물어보셨다. 근데 공부 잘하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잘 한다하면 자랑하는 거고 못 한다하면 거짓말한다고 하니. 뭐 될 거냐고 물어보셔서 물리학자 되고 싶다고 했더니 놀라시는 눈치다. 하긴. 물리학자 된다는 사람은 거의 없지. 선주 누님이 너 잘하는 건 잘하고 못하는 건 못하지?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하게 잘하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하게 못한다고 내 생각대로 말씀드렸더니 됐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그럼 왜 물어 보신거야?

그러다가 또 주제가 종호 형님으로 넘어갔다. 종호 형님 어머님께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형님보고 넌 직업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한 일을 설명하셨다. 너무 웃겨서 코미디언은 따 논 당상이라고 하셨단다. 정말 형님은 웃기셨다. 그런데 여기선 한 마디도 안하셨다. 허. 정말 이상할 따름이다. 주위에서 누님들이 띄워줬는데도 뭐 별 반응이 없으시다. 나중에 털어놓으시길, 군대에서 갓 제대해보니 여자들이 불편하단다. 예전에는 여자 앞에서도 말 잘했는데 지금은 정말 어색하단다. “야, 너도 군대 한번 갔다와봐. 나처럼 돼.” 이러신다. 나 앞에선 말 잘하시네. 근데 난 군대 안 갔다 왔는데도 불편한데.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내가 대학생인줄 알고 엄마가 내 누나, 동생이 엄마 딸인줄 알았다고. 슬기 누님네 아주머니께서 엄마 나이를 물으셨다. 엄마가 그냥 40대 초반이라고 그랬다. 하하하. 난 그걸 들으면서 엄마가 나이를 얼버무려서 속으로 너무 웃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파리의 에스까르고를 주던 레스토랑에서 한국말 하는 웨이터가 엄마랑 젊은 누님들에겐 ‘언니’라고 부르고 그 아주머니께는 ‘아줌마’라고 불렀었다. 여자는 나이에 민감하다던데 기분이 상하셨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난 처음에 3 자매인줄 알았으니 그 분도 정말 젊어 보이신다. 그 분은 가게를 하신다던데, 40대 중후반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결국 소재가 다 떨어지자 대화가 또 끊기고 말았다. 어색한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성진이네 아저씨가 일어나자고 말씀하셨다. 우린 전부 해산했다. 에이. 여행 마지막 날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난 엄마한테 근처에 맥도날드가 있다던데 한번 가보자고 제안했다. 엄마는 별로 내키지 않는 듯 했지만 일단 갔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호텔 오른편에 있다고 그랬다. 그런데 맥도날드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안 보였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로비에서 종호 형님을 만났고, 형님과 맥도날드 찾기에 다시 도전했다. 로비에서 만났던 누님들이 맥도날드가 아직 열었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가보기로 했다.

어이쿠, 종호 형님은 정말 재밌으시고 말도 많으시다. 아까와는 어찌나 다른지. 그 조용하고 과묵하던 형님이 나랑 둘이 있으니 입이 술술 열리신다. 군대, 학교 이야기, 우리 일행들에 대한 이야기, 이 나라 사람들, 유럽 풍습 등 여러 가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또 맥도날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가게를 찾아 그곳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혀있었는데 열리지 않는 자동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갔다. 거기 점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래서 내가 이유를 설명하고 맥도날드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한 직원이 친절하게도 정말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무슨 다리 위인데, 저기 앰뷸런스 지나가는 거 보이시죠? 이런 식으로. 계속 걸어 맥도날드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 제길! 우리가 가니까 이제 문을 닫고 있었다. 마지막 손님이 거기서 먹고 있었다. 망할! 결국 거기를 그냥 쳐다만 보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종호 형님도 바에서 그냥 일을 이렇게 끝낸 게 정말 아쉽다고 하셨다. 나 또한 그랬다. 여행 마지막 날이니 오버버닝 할 수도 있었다. 밤새고 놀고 돌아다니고 싶었다. 마지막인데. 종호 형님은 우리 일행들 뒷담화도 하셨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정말 미남 미녀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형님은 그렇게 놀랄 정도의 사람들은 못 봤다고 했다. 딱 3번 보셨단다. 이탈리아에서 한번, 프랑스에서 한번, 또 한 번은 모르겠다. TGV 열차 짐칸에 앉아 쉬고 있는데 웬 아리따운 프랑스 여인이 똑같이 바로 앞에 앉아 전화를 걸더란다. 그러다가 갑자기 형님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나왔다고 한다. 잘 됐을 수도 있는데 하면서 아쉬워하셨다. 그리고 유럽 오니까 한국 여자들 못 사귀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호텔로 귀환했다. 종호 형님은 심심하면 올라오라는 작별인사를 하고는 올라가셨다. 난 방에서 씻고 그걸로 바로 잠이 들었다. 아, 내일은 정말 한국으로 가는구나. 이젠 정말 끝이야. 무척이나 아쉬웠다. 두 달 동안이나 공부를 하면서 외국어도 배우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공부하고 준비를 많이 하고 설레였었는데 이렇게 일주일 만에 끝난다니까 허무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작이 있는 모든 일에는 끝도 있는 법. 내일도 행운이 있기만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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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4개국 - 과거로의 초대

서유럽 4개국 - 과거로의 초대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0:33

서유럽 4개국 - 과거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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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2일 출발

정혜정 가이드 언니와 15인 동행자들과 함께 홍콩을 경유하여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은 갑작스럽게 가게 되었고,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우리는 친구 4명이 함께 하였고, 소중한 이들과 함께한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 좋은 인연은 역시나 기분을 좋게 한다. 비록 헤어짐이 있더라도.

정헤정 가이드 언니와, 이태리에서의 우리들에게 왕교주라 불리운 왕성철 현지 가이드님.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연들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고,
우리들의 가슴속에 들어왔다.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인생 뭐 있다! 는 왕교주의 말이 귀에서 맴도는 듯 하다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느꼈다.

내생에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좋았다.
물론 표현은 잘 못했지만, 그 분들도 우리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함께한 15인들.
혼자오신 어머니, 큰오빠 이씨아저씨, 윤씨 - 어느 덧 우리의 일행이 되어 버린, 이쁘신 미용실 언니들, 조용한 솔로 2명, 귀여운 신혼부부 뉴메리드 커플들.

너무너무 좋으신 분들 함께 하게 되어 반가웠어요~

어린아이 마냥 철없이 행동하기도 했고, 이기적인 마음에 우리만 생각 할 때도 있었지만,
10일간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동행자분들, 가이드님들 모두 이쁘게 봐줘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 이태리

: 성베드로성당, 포로로마노, 콜로세움, 트레비분수, 로마벤추투어. 이태리 피자, 파스타


이제껏 귀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던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니,
과거로 초대된 기분 이랄까.
나라 자체가 신화였고, 그곳의 뮤즈라도 된 듯 들떠서
어린아이 마냥 신났다.

짧은 기간이라 기대가 크지 않았지만,
우리의 왕교주를 만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왕교주가 말이 많았던 것도 우리에게는 큰 득이 되었지만.;ㅋ

아무래도,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하나만 던 질 걸 후회가 된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비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2개 던졌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기를.)

로마의 휴일에서의 오드리가 자른 미용실을 지나 트레비분수, 젤라또 아이스 크림을 먹고, 스페인광장을 갔다. 헤질 무려 스페인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연인들의 사랑이 넘쳐났다.

오드리가 고백받은 그 계단에 올라 사진을 찍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 스위스

: 몽블랑 등정

로렉스를 보았고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몽블랑 산에 등정하였다.
역시 스위스는 작고, 깨끗하고 자연이 아름다웠지만 짧게 머물러 가장 인상깊지는 않다.

그러나 그 만년설을 보노라면 머리가 깨끗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적어도 3개국을 써야 맥도날드에 취업이라도 된다는 말에 벌컥 겁부터 났기에 역시
여행이나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 파리

: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콩코드 광장,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전망대, 야간 세느강, 베르샤유 궁전, 에스까르고.

첫느낌은.역시 파리구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지린내가 났기 때문!;;

물론 생각보다 거리가 더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위스를 둘러서 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교가 되는 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이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역시나 낭만 있는 도시였고, 꼭 혼자서 다시 와야겟다는 생각을 하였다.
혼자 거리도 거닐고,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고 싶었다.

가이드 언니의 샹송과 미노보 다리아래 사랑은 흐르고,
시를 읇어줬던 때가 문듣 떠오른다.

파리 현지 가이드님도 너무너무 유머러스 하여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으셨고,
개인적으로 하하 어머님 이미지였지만, 너무 멋지신 분이었다.

언젠가 꼭 혼자 와 거리를 맘껏 거닐 고 싶다.


* 런던

: 런던시내, 런던아이, 빅벤, 시청, 국회의사당, 대영박물관.

파리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왔다.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했기에
가이드 언니의 장난으로 혼자 가서 해보란 말에 벌컥 겁도 났지만 무사히 패스.v

역시 mental hospital nurse!라고 장난 치던 때가 생각난다.
입국심사하던 분이 너무나 멋졌기에 꺄 >.< 했었던.ㅎㅎ

가이드 언니는 런던은 마지막이고 이태리를 많이 돌았기에 힘도 들고

실망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닷컴은 틀리다고 칭찬을 하던 가이드 언니가 마냥 귀여웠다 그 말에 힘입어 우리들 또한 힘이 났다~

나라마다 특색이 있었고, 런던은 역시 깔끔하고, 깨끗한 이미지 였다.

사람이 특히 멋졌다.
이곳은 살고싶은 나라 리스트에 포함

마지막날은 친구들과 마지막 밤을 아까워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물론 중간에 다들 잠들었지만.ㅋ


그 날 밤은 별이 유난히 빛났다.



[출처 : 인터넷, 어딘지도 잘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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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에 홀로 떠나는 서유럽 여행

69세에 홀로 떠나는 서유럽 여행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8 18:58

이탈리아/밀라노 - 69세에 홀로 떠나는 서유럽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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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나는 무조건 떠나고 싶었다.
여러사람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사정이 있고, 다녀왔다고도 했다.
여행사에 알아봤더니 4일후에 서유럽 여행이 있다고 했다.
내 나이 69세인데 건강좋고 부담안줄거라고 했다.
무척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결혼한 딸애한테 알리면, 혼자는 먼 길 가면 안된다고 틀림없이 말리리라 싶어,
말없이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간접적으론 충분히 경험을 했었다.
서유럽쪽 책을 많이 읽어봤으니까.
이젠 직접 경험해봐야지.
하지만 막상 경험해 본 서유럽은 상상을 초월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등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대성당의 규모도 어마어마했고 과연 천재냐 신이냐하고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었을 때 500여년 전 사람이 어찌그리 앞서갔을까 생각했는데 이제 이해가 되었다.
세느강 폭은 한강보다 좁았고 물도 탁했지만 아폴리네르의 詩를 읽어주는 인솔자가 고마웠고 보고싶은 사람이 있어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문화가 이렇게들 앞서갔구나. 커다란 모험은 탁월한 선택으로 변했다.

우리 일행 15명은 나외엔 다 젊었다.
대부분 아가씨들이었는데 그들을 만난것은 또하나의 행운이었다.
다들 정말 친절했고 인솔자도 꼭 가족같았다.
다음 목표는 하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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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리워진 여행 (1)

벌써 그리워진 여행 (1)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8 18:31

해외여행/유럽여행/영국/런던 - 벌써 그리워진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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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에 노총각 결혼식을 했다.
내일 신혼여행 가는거에 관심도 없는듯 뒷풀이에서 거의 필름이 끊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밤에 본가에서 이쁜 울각시와 형수님이 내 옷가지들을 대충 채우고, 렇게 결혼 첫날밤을 술과함께 잤다.

날이 밝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하지만 오늘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마음에 술이 화악~ 깼다.
"너 내 옷 챙겼어?, 칫솔은?" 등등..
꾸역꾸역 가방에 짐들을 챙기고 (그 놈의 가방은 왜그리 큰지)

허겁지겁 공항에서 햄버거 하나 먹고, 열흘이 넘게 같이 보낼 여행식구들을 만났다.
일행을 만나는 순간부터는 단체 행동이 시작되었다. (혹시 나만 빼고 갈까바.)
루프탄자 비행기에 몸을 실고 날아갔다.
과음으로 속이 안좋고, 자리도 좀 좁고, 하여간 먹고 자고를 하니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두어시간 있으니깐 런던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첫번째 숙소는 런던에서 였다.
그렇게 하루밤을 보내고 아침 7시에 모닝콜해서 아침을 먹으러 호텔식당에 갔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그리 김치가 먹고 싶은지.
확실히 난 한국인이 맞긴 맞나보다.

자,이제부터는 사진찍기 시간인가 보다. 타워브릿지에서 한컷.
오늘은 요기까지....


Posted by 비회원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7(8,9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7(8,9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7 11:39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7(8,9일) 

 


하. 이제 여행도 끝이구나. 참으로 허무하도다. 장장 9일간의 여행, 그리고 엄청난 여행경비(?)가 오늘로 끝이라니. 허무한 마음으로 아침식사를 먹으러 로비로 내려갔다. 지금까지 묵었던 호텔에는 우리 일행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했었는데 오늘은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외국인들도 꽤 있었다. 익숙하지 못한 풍경이라 약간 의아했다.

아침식사는 가이드의 말보다는 실망스러웠다. 아마도 가이드 누님이 너무 띄워놓아서 잔뜩 기대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난 별천지를 예상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다른 호텔들이랑 비슷했고, 1회용 시리얼 상자만 엄청나게 많았다. 종류가 10여종은 되어보였는데, 난 코코팝스와 이름 모를 설탕 친(frosted) 현미 시리얼을 먹었다. 그 시리얼은 꼭 한국의 첵스와 닮았는데, 고소하지만 맛은 별로였다. 시리얼 두 통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렀다.

디저트도 있었다. 하지만 못 먹었다. 가이드 누님의 말로는 돈 낸 사람만 먹을 수 있다나. 푸딩과 갖가지 맛나 보이는 디저트들을 구경만 했다. (한국의 식당 음료수 보관함 비슷한 곳에 들어있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영국의 신문과 퍼즐 잡지를 읽었다.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버스를 타고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묵었던 St. Giles 호텔은 Heathrow에 있었으므로 공항과 무척 가까웠다. 얼마 안 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려 내부로 들어갔는데 우리 가족만 모르고 다른 길로 들어갔다. 성진이네 아저씨께서 큰 소리로 불러주시지 않으셨다면 아직 런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항 안은 전부 인도인 천지였다. 공항 청소나 안내 같은 일은 전부 인도나 중동 사람들이 맡고 있었다. 법적으로는 인종 차별이 없지만 뭔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신분은 구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비행기는 9시 30분 비행기였다. Cathay Pacific 창구에서 짐을 맡기고 표를 1인당 2장씩 받았다. 하나는 홍콩행, 하나는 인천행. 직원은 이름을 보아 일본인인 것 같았는데, 엄마가 그 직원의 이상한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약간 헤맸다.

출국할 때에도 약간의 검색 과정을 거쳤다. 여기선 신발까지 벗겼다. 외투와 가방은 당연히 방사선 검색 대상이었고, 벨트까지 풀어야했다. 난 이상하게도 여기선 전혀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신발 벗기고 자세히 검색했다. 난 빨리 통과해서 자세히 검색 당하던 일행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가이드와 예원이네 가족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우린 다 도착했는데 그 5명은 행방불명이었다. 이런. 인솔자가 일행을 잃어버리다니. 정말 재밌는 상황이었다. 우린 스스로 게이트 넘버를 알아냈고 탑승 시간에 모이기로 하고 해산하려고 하는 순간 5명이 우릴 찾았다. 하하.

공항 내 면세점에서 보낼 시간은 꽤 길었다. 1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난 편의점 같은 곳에서 남은 동전을 처리하기 위해 잡지 몇 권을 샀다. Chelsea의 3월호 잡지(가격은 3.25 파운드, 우리 돈 6000원 정도였고, 어린이용 잡지까지 끼어있었다.)와 Scientific American 2월호(가격은 3.95 파운드, 7500원)를 구입했다. Scientific American 2월호에는 물리학의 미래가 큰 주제였다.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거기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잡지들이 있었다. 리버풀 Chronicles와 페라리 모음집, Four Four Two, 그리고 기타 축구와 자동차, 게임 잡지들이 산더미같이 많았다. 다 구입하고 싶었지만 동전이 없었다. 아쉽군. 게다가 책들도 엄청 많았다. 나중에 Chelsea 잡지에서 읽게 된 Joanna Trollope의 Friday Nights도 볼 수 있었는데, 그걸 사지 않은 걸 무척이나 후회했다. (한국에선 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Wayne Rooney의 자서전도 있었다.

동전을 다 쓰고 전자제품 판매점으로 갔다. 엄마가 iPod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 결국 하나 샀다. iPod nano 3rd generation으로. 2008년에 새로 나온 신선한 놈이다. 그런데 처음엔 3세대인줄 몰라서 100유로면 충분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99파운드고, 130유로 달라 그랬다. 응? 엄마가 그냥 줬다. 나중에 슬기 누님한테 들었는데, 싸게 산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그 가격보다 1~2만원 비싸다나. PSP, NDS 게임들도 있었는데 한국보다 가격이 비싸 그냥 안 샀다.

이번엔 음반점으로 향했다. 비디오, DVD, 음반, 게임 등을 팔고 있었다. 제일 신기했던 건 Monty Python's Flying Circus DVD Set였다. 가격은 거의 20파운드였다. 꽤 갖고 싶었지만 그냥 안 샀다. 음반을 사야했기 때문에. 난 Eminem, Maroon 5의 음반을 찾았다. Eminem 음반은 그냥 재미로 찾은 것이고, Maroon 5는 이번에 다가오는 내한공연(3월 7일)과 나의 증가하는 관심으로 인해 찾은 것이다. 못 찾겠어서 점원에게 물어보니 금방 찾아준다. 이전 앨범 Songs About Jane은 없었다. It Won't Be Soon Before Long만 있을 뿐. 난 이전 앨범을 사고 싶었다. 그게 첫 앨범이니까. 그런데 나중에 비행기에서 It Won't Be Soon Before Long을 사지 않은 걸 후회했다. (이유는 나중에.)

돌아다니다보니 Radiohead의 신보 In Rainbows가 눈에 띄었다. 집에 없던 것이고 한국에서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 구입했다. 또 Led Zeppelin의 베스트 앨범 Mothership을 볼 수 있었다. 그냥 CD만 들어있는 것이 아닌 2CD+1DVD 형태의 Limited Deluxe Edition이었다. 이것도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 것 같아 구입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 쉽게 구할 수 있더군. 제길. 계산하는데 20파운드가 조금 넘었다. 20파운드짜리 지폐는 있었지만 몇 펜스 정도가 부족해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된단다.

면세점 쇼핑을 끝내고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 탑승할 때 게이트에서 비행기로 들어가는 길에서 얼마나 마음이 심란했는지 모른다. 정말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났다. 제기랄! 난 가고 싶지 않아~!

비행기에 탔다. 좌석은 제멋대로였다. 난 또 가족들과 떨어져 앉았다. 그런데 자리를 일행들끼리 자리를 바꿔서 가족끼리 3명 앉을 수 있었다. 거기 좌석은 3-4-3 시스템이었다. 이륙을 하고 자려는데 한 승무원이 한국인이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 영어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 설문지를 한 장 주면서 펜 줄 테니 작성해 달란다. 로마 갈 때도 설문지 주더니 이번에도 그러네. 사람을 봐가면서 주는 건가? 헤헤. 공짜 펜 2개 챙겼다.

비행기는 우리가 유럽으로 올 때 탔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Boeing 747이었다. 지난번에 탔던 건 Airbus 330이었다. 망할. Boeing이 훨씬 좋잖아? 좌석 앞 디스플레이가 훨씬 좋았다. 99퍼센트 만족했다. 그 디스플레이 덕분에 10시간을 잠 안자고 지루하지 않게 올 수 있었다. 영화, TV 프로그램, 음악, 게임 등을 제공했는데, 인터페이스가 정말 멋졌다. TV처럼 방송되는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해서 볼 수 있는 형식이었다. 그게 VOD 형식이라고 했던가?

난 Monty Python's Flying Circus와 The Simpsons, Bee Movie, The Truman Show, Fifa Futbol Mundial, World's Famous Football Clubs, Friends, America's Next Top Model 등을 봤다. Monty Python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Ministry of Silly Walk였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 Sketch는 정말 웃겼다. 그리고 World's Famous Football Clubs에는 FC Barcelona와 AC Milan이 소개되었다. 해외의 클럽들은 정말 대규모이고 팬들도 무척 열정적이다.

그리고 절대 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음반들도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반들이 여럿 있었다. Beatles, AC/DC, Black Sabbath, Eric Clapton, Avril Lavigne, Nirvana, Radiohead, Led Zeppelin, Deep Purple, Maroon 5의 음반들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런던에서 산 음반 2개도 다 있었다. 기내에서 한번 시험 삼아 Maroon 5의 It Won't Be Soon Before Long을 들었다. 첫 트랙은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이었는데, 제길, 이거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첫 곡부터 바로 중독된 나는 5번째 트랙인 Won't Go Home Without You에서 미쳐버렸다. 로마의 Excelsior 호텔에서 아침에 MTV 뮤직비디오로 처음 들었던 그 곡에 나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지금 내 처지랑 똑같잖아! 집에 가기 싫어! 지금도 매일같이 듣고 있는 그 곡은 들을 때마다 여행 생각이 나게 만든다. 그 앨범만 계속 들으며 5시간을 보냈다.

음악 감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계속 의자를 치는 느낌이 들었다. 뒤에는 외국인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음악 감상을 하면서 너무 흥분하셨는지 박자를 맞춘다고 기내식 놓는 트레이를 계속 두들기고 계셨다. 하하. 할아버지치고 너무 애 같으시다. 그래도 계속 치니까 거슬렸다. 결국 Excuse me, sir, please. 하고 말하는데 알았다며 멈춘다. 하하.

우린 비행기 맨 뒤편에 앉았는데(항상 그랬다. 값싼 좌석이라 그런가?) 화장실이 없었다. 어? 원래 앞에 있는 게 아닌가? 나의 예상 화장실 위치에선 승무원들이 음료수를 나르고 있었다. 뭐야?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니 화장실이 비행기 맨 뒤편에 있었다. 제길. 화장실 안에서 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변기 물은 폭탄 터지듯 내려간다. 놀라지 않게 조심해야한다.

잘 가던 중 갑자기 디스플레이 화면이 고장이 났는지 다 꺼졌다. 사람들은 전부 놀랬다. 잘 보고 있던 영화와 잘 듣던 음악이 갑자기 멈추다니. 30분 정도를 기다리자 다시 켜졌다. Linux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켜지는데 한참 걸렸다.) 엄마는 보던 영화가 꺼지자 잠이 들었고 동생도 하던 게임이 꺼져서 잤다. 난 음악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그런데 컨트롤이 안 되었다. 뭐야? 승무원을 불러 왜 이러냐고 물어보니 다시 켜주겠단다. 다시 켜지니 되더라. 이런 잔고장이 잦은 모양이지? 서울에서 홍콩 갈 때는 아예 나오지도 않더니.

날이 밝았다. 우린 기내식을 먹었다. 가는 동안 대략 3번 정도 기내식을 먹은 것 같은데, 돼지고기, 오믈렛, 파스타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와인도 한 잔 마셨다. 옆에선 전부 컵라면 달라고 난리였다. 컵라면도 주는 모양이었다. 돼지고기는 너무 느끼했다. 먹을 것이 못 되었다. 오믈렛이 그나마 나았다. 짰지만 그나마 괜찮았다. 파스타는 엄마는 맛있다는데 난 찰흙을 씹는 느낌이었다. 다 느끼했는데 오믈렛 선택이 그나마 나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다 먹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오전 6시쯤 되어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 공항은 좀 작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게이트는 75번이었다. 로마로 갈 때는 홍콩 공항이 너무 작아보였다. 어쨌든 내려서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엄마는 아빠 사 줄 티셔츠를 사기 위해 Ralph Lauren 매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L과 S사이즈만 있고 M은 없대서 그냥 나왔다. 한 서점도 둘러보았다. 여러 종류의 책들과 장난감들을 팔고 있었다. 런던에서 본 책들이랑 대강 비슷했는데, 나의 눈길을 끈 것은 The Bourne Legacy 라는 책이었다. 엥? Robert Ludlum은 죽고 Bourne 시리즈는 3부작으로 끝났는데? 알고 보니 처음 듣는 작가가 쓴 것이라는데, 무슨 배신 이런 것들이 연관되어 있었던 것 같다. The Bourne Ultimatum 책도 사야 되는데, 이것까지 나오다니.

대충 둘러보고 우린 75번 게이트로 향했다. 로마로 갈 때는 4번 게이트였다. 엄청 가까웠다. 그 때는 공항이 무척 작아보였다. 그런데 이젠 절대 작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런. Fuck. 욕이 절로 나온다. 이놈의 공항은 진짜 장난 아니게 크다. 진짜 죽어라 걸어가도 쉴 곳 하나 없다. 물론 걷지 않아도 이동시켜주는 컨베이어가 있었지만 한국인의 급한 성질 상 우린 걸어야 했다. (여기선 한국인만 걷는다.)

한참을 가야 30번대 게이트가 보였다. 제기랄. 그럼 75번은 어디란 말인가? 역시나 한참 더 가야한다. 가이드가 게이트까지 가는데 30분 걸리니 넉넉잡아 출발하라던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망할. 왜 효율적으로 짓지 않고 이런 식으로 지어놨지? 공항 설계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정말 짜증이 났다. 한참을 더 가야 쉴 곳이 있었다. 뭔가를 마시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다. 흡연실에 자판기가 있었지만 홍콩 달러 동전이 없었고 난 담배냄새를 더 싫어했다. 거기서 또 한참을 더 가니 식당이 나왔다. 직원이 우리가 말라 죽을 것 같다는 것을 이미 잘 안다는 듯이 Drink? 하고 물어본다. 우린 포카리 스웨트 한 병을 샀다. 앉아서 좀 마시고 나니 살 것 같았다. 거기서 또 한참을 걸어 제일 마지막에 있는 75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가이드와 몇몇 일행들은 벌써 앉아있었다. 거기서 서울행 비행기가 뜨는 모양이었다. 한국인 배낭여행객 몇 명과 한국으로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 보였던 외국인이 앉아있었다.

앉아서 런던에서 산 잡지와 음반들을 보고 또 봤다. 그런 중에 신혼부부 아주머니 아저씨께서 도착하셨다. “이거 왜 이렇게 먼 거예요?” 하신다. 하하. 노부부 유럽 효도 관광 보내주는 것은 효도 관광이 아니라 고려장이라더니, 여기서도 그 말이 사실임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오전 9시쯤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역시나 또 좌석이 이리저리 나뉘어졌다. 나 혼자 또 떨어져 앉게 되었는데, 내 옆에는 처음엔 가이드 누님이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 아저씨가 영어로 자기 자리라면서 표를 제시했다. 가이드 누님도 자리 없는 줄 알고 앉았다고 영어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한국 사람이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속으로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가이드 누님의 패션(?), 외모(?)가 이국적으로 보였는지 아저씨가 영어로 말을 한 것이었다. 하긴,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았다.

난 창가에 앉았다. 처음으로 창가에 앉았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나중엔 전혀 신기하지 않았다. 햇빛 때문에 창문을 닫았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 팔걸이에 발이 떡하니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왕할머니께서 편히 누워 계시면서 내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은 것이었다. 허허. 이걸 어찌 해야 하옵니까? 나중에 말씀 드리지 않았는데도 내려 주셨다.

안전벨트를 매고 누웠다. 승무원이 기내식을 나눠 주었는데 난 사양했다. 그리고 바로 잠이 들었다. 홍콩까지 가는 10시간동안 밤을 지새워서 피곤했다. 자고 일어나니 3시간이 금방 가고 없었다. 눈을 뜨니 서울이란다. 황해안과 경기도가 훤히 보였다. (그런데 로마로 가는 데는 거의 18시간 걸렸는데 돌아오는 데는 13시간밖에 안 걸려서 신기했다. 바람의 영향이라나?)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았다. 공항에서는 수속이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며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수된 물을 공짜로 마시게 해주는 공항은 유럽에는 절대 없을 것이다. 너무 좋았다. 한국이 역시 살기는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짐을 찾으러 가는데 우린 뛰어야 했다! 짐이 엄청나게 빨리 나왔던 것이었다. 벌써 우리 짐은 끝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못 찾을 뻔 했다. 이건 그래도 너무 빠른 것 아냐? 그런데 짐들이 다들 비슷해서 정아 누님네 아주머니께서 우리 짐을 들고 계셨다. 하하.

짐을 찾고 나와서 Nothing to Declare 창구로 나오니 TV로만 보던 그런 풍경이 보였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귀국하면 환영 인사들이 있듯이 자기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미있었다. 우린 출구를 나와서 9일간 여행을 함께한 일행들과 헤어졌다. 가이드 누님은 나보고 여행사 홈페이지에 여행기를 올려보라고 하셨다. 나 같은 독특한 녀석과 대화를 더 나눠봐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쯤 또 여행을 떠나셨겠지?

난 로밍폰을 반환하고(SK Telecom 대리점에 반환했는데 대기자들이 너무 많았다. 번호표 뽑고 다른 일을 하고 가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엄마는 울산행 버스표를 샀다. 그리고 Dunkin Donuts에서 도너츠를 사먹었다.

버스를 타러 공항을 나서는데 또 분당으로 가는 신혼부부 아주머니 아저씨를 만났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탔다. 사람은 10명 쯤 밖에 없었다. 휴게소에서 한번 내린 걸 제외하고는 곧장 울산으로 향했다.

밤 9시 30분이 되자 정말 울산에 도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마, 피렌체, 파리, 런던 거리를 걷던 내가 울산의 무거동에 오다니. 정말 신기할 노릇이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 아빠를 볼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끌어안았다. 아빠와 신복 로터리 앞에 있는 콩나물 해장국 집에서 곰탕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집에 온 것 같지가 않았다. 광활한 지역을 계속해서 이동하고 바쁘게 걸어 다니다가 집 안에 들어오니 정말 느낌이 이상했다. 정말로. 이젠 정말 여행이 끝이다. 끝이야. 끝.

집에 돌아오니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더군요. 겨우 9일 갔다온 것 뿐인데 꼭 한 달 살다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호텔에 온 것 같은 느낌? 감옥에 갇힌 듯 답답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도 보고 도서관에도 가 봤지만 역시 답답함은 사라지질 않았습니다.(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_-;; 밤에는 2시 전에는 잠이 안들어요.)

이게 정말 여행 후유증인 것 같았습니다. 학교 갈 때까진 전혀 적응이 되질 않았습니다. 학교 가니까 좀 낫더군요. 그래도 또 여행가고 싶습니다. 정말로.

이번 글은 좀 늦었는데, 학교에서 10시까지 매일 자율학습을 시켜서 쓸 시간이 없더군요. 하하. 이제 긴 여행기가 드디어 끝이네요. 저의 하찮은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출처 : 인터넷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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