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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송김석기의 터키 스케치 여행기 - 이스탄불

우송김석기의 터키 스케치 여행기 - 이스탄불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6:20

우송김석기의 터키 스케치 여행기 -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 잇는‘축복받은 땅’  
 
한국의 혈맹국가로 한국전쟁 당시 1만5000명의 토이기 병사를 파병하여 우리나라를 도왔던 형제의 나라 터키로 향한다. 모스크바행 비행기의 창에 비친 망망대해와 같은 하얀 설원이 광활하게 전개된다. 시베리아의 상공을 따라 서 쪽으로 서 쪽으로 비행을 한다. 태양을 낚는 어부가 되어 떨어지지 않는 낙조의 아름다운 노을을 즐긴다.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열 세 시간 만에 아시아의 서쪽 끝이며 유럽의 문턱인 터키의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한다.

터키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최초로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신 ‘에덴동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이다. 또한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고, 그 잔해가 남아있는 아라랏산(해발 5185m)이 있는 축복 받은 땅이다.

터키의 이스탄불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이다. 이곳은 초기에 그리스 미케네인에 의하여 비잔티움으로 불렸고, AD 305년에는 동로마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재건되었으며, 그 이후 오스만제국이 점령하여 이스탄불을 형성하였다. 1923년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에 의하여 터키는 공화국으로 출범하면서 수도도 현재 터키의 제2도시인 앙카라로 옮겼다.

이스탄불에는 오늘날까지 세계 최대의 걸작으로 불리는 성 소피아 성당이 있다.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로마양식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성 소피아의 자리에는 본래 비잔틴 황제 콘스탄틴에 의하여 최초 목조교회가 건축되었으나 화재로 인하여 완전 소실되었고, 그 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하여 건축된 두 번째 교회도 반란군에 의하여 완전 파괴되었다. 537년에 이르러 현재의 성 소피아가 건설되어 916년간 교회로 사용되었다. 그 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던 것을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회벽 속에 가려졌던 비잔틴시대의 모자이크가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돔의 높이가 55.6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며, 입구 복도의 길이만도 60m나 되는 장대한 규모다. 건축당시 5년 간 100명의 기술자와 1만 명의 노동자를 투입하였고, 가장 좋은 건축석재를 나라 전역에서 수집하여 건축했다.

성 소피아 사원 곁에는 술탄 마호멧트 사원이 있다. 1616년에 건축된 이슬람사원으로 모든 면을 타일로 장식하여 꾸며놓은 것이 유명하여 ‘블루모스크’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여섯 개의 첨탑과 여러 개의 돔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사원의 모든 바닥에는 아름다운 양탄자가 깔려 있어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중앙의 돔 높이는 43m이고, 2만1043개의 타일과 260개의 창문들이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충분하다.

이곳의 보물관에는 스픈 제조업자가 발견하였다하여 이름 붙여진 86캐럿짜리 스픈메이커스 다이아몬드가 있다. 주위에는 49개의 조그마한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선지자 모하메드의 무덤에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촛대에는 6666개의 다이아몬드가 있다. 종교관에는 모세의 지팡이를 비롯한 이슬람 지도자들이었던 칼리프들의 칼과 모하메드의 망토, 칼, 깃발, 활, 발자국, 이빨, 수염, 그리고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로 곁에 있는 히포드럼 술탄 마흐멧 광장에는 서릿발같이 차가운 위엄이 느껴지는 기둥들이 서있다. BC 15세기경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오벨리스크를 BC 390년에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집트 룩소에 있는 카르낙의 아몬 신전에서 이곳으로 가져와 현재 위치에 세웠다. 100년마다 한 번씩 강진이 이 도시를 강타했어도 이 오벨리스크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1600여 년의 긴 세월을 이곳에 굳건히 서있다. 그 곁에는 목 잘린 뱀 기둥과 콘스탄틴 기둥도 있다. 기둥을 돌며 달리던 기마병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잇는 이스탄불의 호수와 같은 잔잔한 보스포러스 해협의 길이는 31.7㎞이다. 마르마라 해에서 흑해 쪽으로 흐르는 물은 바다 표면으로 흐르고, 흑해에서 마르마라 쪽으로 흐르는 물은 40m 깊은 바다 속에서 흐른다. 이 때문에 흑해와 마르마라 해의 염도와 높이가 다르다. 해협을 따라 작은 숲, 카페, 찻집, 술집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에 관광객들이 엉켜 화려함을 더한다. 별장 앞에는 넘실대는 물결 따라 요트들이 출렁이고, 멀리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러스 대교가 보인다. 대교와 훼리를 이용하여 아시아와 유럽이 서로 만나며 교류하는 곳이다. 아름답고 여유 있는 이국적인 풍경을 출렁이는 유람선에 기대어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스케치를 시작하니 이것이 행복이고 이곳이 낙원이 아니겠는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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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 인도·중국 문화 공존 '사원·신상의 도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 인도·중국 문화 공존 '사원·신상의 도시'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6:18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  인도·중국 문화 공존 '사원·신상의 도시' 
 


 


[ 네팔 카트만두(Kathmandu) ]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가기 위해 포카라에서 경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30석의 아주 조그마한 장난감 같은 비행기다. 탑승하면서도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비행기에는 스튜어디스도 있고, 비행 중 캔디와 차도 대접하는 서비스도 있다. 비행기를 타고 소꿉장난을 하는 왕자가 된 기분이다. 재미있는 비행기는 볼거리도 더해준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 히말라야의 절경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40분 동안 히말라야 산맥의 설경을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생애 최고의 행운인 듯싶다. 내려다보이는 설경의 대산맥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웅장하고 장엄한 경치가 최고요, 아름다운 설경의 파노라마가 최고이며, 내려다보이는 관광의 묘미가 최고다. 히말라야 설원의 파노라마를 끝나지도 않은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어느새 비행기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공항에 착륙을 한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로서 인도와 중국의 문화가 혼합된 특유의 히말라야 산족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네팔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여 축제나 명절 결혼식 등은 노래로 시작하여 노래로 끝을 맺는 민속 문화를 가지고 있다. 네팔은 가난하면서도 축제가 많은 나라다. 일 년에 50여개의 축제를 치르며 170일 이상을 노래로 세월을 보낸다. 그들은 축제를 생활화하고 축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낭만적인 목동의 후예다. 네팔의 시가지로 들어서면서 가난한 동네라는 것은 느껴지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활력과 근면한 생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지름이 100m이고 높이가 36m의 크기로 남아시아의 최대 스투파(탑·塔)를 자랑하는 ‘보우다나뜨’를 찾았다. 옛날에 한 불교신자가 왕을 찾아와 불교 스투파를 짓고 싶은데 물소 한 마리에서 저민 고기의 면적만큼만 땅을 주시면 그곳에 스투파를 짓겠다고 간청을 하였다. 왕은 물소 한 마리의 고기가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하고 흔쾌히 허락을 하였는데, 노인의 고기 저미는 기술이 놀라와 지름이 100m나 되는 땅을 얻기에 충분한 솜씨를 보여 보우다나뜨, 스투파를 짓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외국인만 입장료를 내는 이곳은 완전히 티벳이다. 냄새와 문화와 사람들이 모두 티벳 일색이다. 탑을 돌며 기도하는 티벳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탑의 외곽으로는 매장들이 원형의 공간을 만들면서 관광 민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공간만 있으면 곳곳에 서서, 아니면 앉아서, 혹은 바닥에 전신을 던져 가면서 기도하는 이들의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들의 간절하고 애절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

카트만두의 밤은 어둠 속의 침묵이다. 전기를 절약하기 위하여 저녁 8시가 되어야 전기가 들어온다. 그때부터 난방기를 사용할 수가 있고 TV도 볼 수가 있다. 절약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네팔의 절전운동이 철저하다.

아침 해가 밝아지면서 네팔에서 순결의 상징으로 모신다는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데비’가 살고 있는 ‘덜발광장’을 찾았다. 덜발광장은 바로 카트만두의 심장이며 중심부이다. 이곳에는 왕족들의 궁전과 사원으로 빽빽하다. 16세기에 지어진 말라 왕조의 궁전들이 아직도 섬세한 목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에 반해 목조 건물로 지어진 사원들의 대단한 규모와 아름다움들은 방치되어 있는 상태로 파손되어 가고 있어서 안타깝게 느껴진다.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데비는 1년에 한 번씩 네팔의 왕이 찾아와 절을 하고 축복을 받는 곳이다. 피를 보이지 않은 여인, 눈물을 보이지 않은 여인이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대되어 모셔지게 된다. 오후 4시가 되면 관광객들을 향해 2층에서 모습을 보인다는 기대감에 사원의 좁은 정원을 서성인다. 살아있는 여신은 초경이 시작되면 악령이 깃든 여인으로 전락하여 이 사원에서 쫓겨 나게 된다. 천대를 받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악령이 깃든 여인으로 전락한 꾸마리데비의 말로는 슬프고 가련한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의 여생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게 ‘꾸마리데비’들의 여생은 매춘가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덜발광장과 함께 이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스와얌부나뜨’다.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있어 이곳을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부른다. ‘스와얌부나뜨’는 정문에서 300개의 계단을 오르면 동산의 정상 부분에 사원이 있다. 카트만두의 전경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동산의 정상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사원들 사이로 탑들과 스투파와 전통 민예품 가게들이 혼란스럽게 산재해 있다. 티벳 사람들이 직접 사용하던 물건들도 만날 수가 있는 곳이다. 골동품들 사이로 풍겨 나오는 향내가 코를 진동시킨다.

사원의 모퉁이에서 스케치북을 펴고 스투파를 그린다. 독특한 모양의 스투파들이 화면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카트만두에는 집의 숫자만큼 사원이 있고, 사람들의 수만큼 신상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원도 많고 신상도 많은 카트만두에 이제 봄소식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된 분위기가 함께하여 늘 아름다운 히말라야를 지키는 행복한 민족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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