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신용대출, 담보대출, 성형수술, 성형, 지방흡입, 임플란트, 라색, 라식, 화환, 꽃배달, 기념일, 선물, 주식, 펀드, 금융, 여행, 신혼여행, 결혼


'생고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9.10 생고기란?
  2. 2008.09.10 생고기집 '너구리'

생고기란?

생고기란? 요리 맛집 정보 2008.09.10 13:41

생고기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고기는 소 뒷다리 안쪽 허벅지 부위의 처지개와 함박살을 주로 사용한다.
한 덩어리 무게는 약 4㎏. 그런데 좋은 게 잘 안나온다.
10마리 중에 고작 1∼2마리에서 고급 생고기를 얻을 수 있다.

허벅지 살도 처지게와 함박살 두 부위가 있다.
처지게는 힘줄이 많고 쫄깃하고 윤기가 나지만 선별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런데 이젠 힘줄이 적은 함박살이 선호된다.

생고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된다.
하루 정도 묵히고 나면 빛깔이 검자줏빛에서 선홍빛으로 변한다.
선홍빛이 되면 생고기로 잘 내놓지 않고 육회로 요리해 내놓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 갈비살과 등심 등은 마블링이 좋은 게 선호되는데 생고기는 그렇지 않다.
살코기 안에 힘줄이 덜 박혀 있는 게 좋다.
다시말해 마블링이 적은 것일수록 좋은 생고기란 말이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생고기집 '너구리'

생고기집 '너구리' 요리 맛집 정보 2008.09.10 13:35

생고기집 '너구리' 


 
 
국밥은 '혀', 생고기류는 '이빨'로 맛 본다고 했다. 생고기는 역시 '씹는 맛'이란 의미다. 생고기의 고향은 대구이다. 생고기와 사촌간인 육회는 전국적 음식으로 조선 때 사대부들이 즐겨 먹었다. 하지만 아무런 양념이 가미되지 않은 생고기는 대구시 중구 향촌동 무궁화백화점 동쪽 맞은편에서 1958∼59년쯤 문연 너구리가 본산이다. 들안길 녹양, 송학과 극동, 묵돌이 등을 생고기 원조로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일재 전 동아일보 경북본부장(78) 등 70대 이상 단골들의 증언에 따르면 생고기 집 원조는 너구리였다. 현재 잔뼈 굵은 생고기 전문업소는 수성구 들안길에 포진해 있다. 맨먼저 들어온 건 1990년 개업한 극동구이, 이어 녹양, 송학(본점은 중구 아카데미 극장 뒤편), 청솔 등이 들안길에 잇따라 타운을 형성했다.


#어떻게 등장했는가

생고기는 1950년대 향촌동 골목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피어났다. 향촌동은 있는 자와 없는 자, 판잣집, 콘크리트 건물, 막걸리, 소주, 맥주, 정종, 양주 등 이질적인 것들이 다정하게 동거할 수 있었다. 향촌동의'낭만' 덕이었다. 너구리는 93년쯤 수성구 들안길로 옮기기 전에는 향촌동에 자리잡고 있었다.

너구리를 만든 정재임 할머니(77)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국내로 들어와 김천을 거쳐 대구로 들어왔다. 신천동에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 향촌동 골목에서 음식점을 열었다. 8평 규모의 단층 슬레이트조 식당이었다. 점심 때는 정식도 내놓았고 단골이 고기를 주며 특정 요리를 해달라고 하면 즉석요리도 했다. '닥치는 대로' '실비 식당'이었다.

정씨 할머니는 1인3역을 했다. 자신이 식재료를 구입해 와 요릴 하고, 중간에 손님이 오면 서빙해주고, 손님이 나가면 청소·설거지까지 맡았다.

너구리는 처음부터 생고기 전문점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세무소 등에서 간판을 달라고 지시해서 즉흥적으로 정한 상호가 바로 너구리다. 술도 처음엔 막걸리가 많이 팔렸지만 갈수록 소주, 맥주가 많이 팔렸다. 너구리가 생고기를 맨 먼저 팔았지만 너구리보다 먼저 오픈한 구이집들이 2∼3개 향촌동에 자릴 잡고 있었다. 50년대 중반 구이집은 요즘과 달리 꽁치, 청어, 고등어 등 생선을 많이 구워 팔다가 나중에 생고기 버전으로 넘어갔다.

어떻게 생각하면 생고기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키워낸 것인지도 모른다. 60년대초 지식인들은 할 말을 제대로 하고 살 수 없었다. 모두들 말 못할 불만 한 가지를 갖고 살아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퇴근하면 향촌동으로 몰려왔다. 향촌동은 기댈 언덕이고 위안이었다. 63년 2월26일 민주공화당이 창당되고, 박정희는 그해 10월15일 민정이양 약속을 어기고 제5대 대통령이 된다. 연이어 64년 3월 한·일 외교 정상화 방침이 발표되면서 전국 대학가는 데모장화된다.

급기야 64년 6월3일 오전 8시 제3공화국 첫 계엄령이 발표된다. 일부 대구 반골 기자들은 너구리에서 낮술을 들었다. 54년 9월13일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란 사설로 자유당 정권에 저항했던 최석채(1917~91)의 반골 정신이 화제로 테이블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던 그들은 씁쓸한 표정만 지을 따름이었다. 난도질 당한 자신의 기사, 무력해진 언론인들은 애써 화풀이거리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생고기였다.

막곱창, 육회도 있었지만 오래 씹기에는 생고기만 못했다. 어쩜 그들은 구겨진 자존심을 생고기를 씹으며 회복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한국 최초의 독문학자였던 전혜린(1934∼65)도 6·3 사태로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학이 휴교를 당하자 거의 매일 김지하 시인, 문학평론가 김현,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김승옥 등과 어울려 서울 명동의 실비집 은성에서 막걸리로 울분을 토로했다. 그 무렵 너구리도 은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

너구리는 낮과 밤엔 생고기 집, 아침엔 해장국 집으로 변했다. 정씨 할머니는 특히 영남일보, 매일신문, 동아일보 등 언론인들의 속풀이 해장국을 잘 끓여주었다. 이일재씨는 점심 때가 되면 5명의 후배 기자와 너구리에서 곱창 전골을 즐겨 먹었다. 경감 이하의 경찰, 계장 이하의 공무원들도 자주 애용했다.

어떤 주당 견습기자들은 생고기 맛에 중독돼 아침 일찍 여기로 출근해 소주 한 컵 마시고 생고기를 씹으면서 출입처로 나가기도 했다. 밤엔 여러 신문사 중견기자들이 모여 술판을 깔았고, 이 자리에서 주요 인사들의 인물평과 간부급 인사 하마평까지 무성해 경북도청 공보관과 정보 형사 등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이들은 가끔 외상장부를 들쳐보고 중견기자들의 외상을 대신 갚아주기도 했고, 일부 기자들은 이를 되돌려주려다 승강이하는 모습이 종종 발견됐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단골이 정씨 할머니에게 이색 제안을 한다. "육회를 생으로 먹으면 맛이 있겠냐" 면서 은근하게 생고기 요리를 제안했다. 정씨 할머니는 생고기 요리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기본 음식 솜씨로 응용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유명 정육점 주인들을 만나 상의를 했지만 거의 생고기를 육회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장고 끝에 장씨 할머니는 처지게 살(사태살의 일종으로 소 뒷다리 안쪽 허벅지 살)이 생고기에 가장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심줄 제거하는 게 여간 골치 아프고 고달픈 게 아니었다. 또순이 기질이 돋보이는 여주인이 직접 짐자전거를 타고 염매시장, 서문시장, 영선시장 등 10여군데의 정육점을 찾아 다녔다. 당시 부위별 고기는 대충 잘라 팔았기 때문에 지금과 달리 고기 다듬는 게 무척 힘들었다. 파는 것이나 버리는 양이나 거의 비슷했다.

생고기 크기는 어느 정도가 알맞을까? 너구리는 처음엔 지금과 달리 다이아몬드 형으로 0.5㎝ 정도 두껍게 썰어 내놓았다. 지금은 좀 얇고 커졌지만 그땐 두꺼웠다. 단골들은 '뭉텅 썰어낸 고기'라고 해서 '뭉티기'로 불렀다. 지금도 뭉티기가 생고기의 별칭으로 통용된다. 문제는 소스. 처음엔 김치를 고기에 싸서 먹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맛이 별로였다. 다시 궁리를 했다. 그렇게 해서 참기름, 마늘, 빻은 고춧가루에 조선간장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내놓았는데 그 맛이 성공한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너구리는 그때 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사람들이 폭증하자 오픈한 지 6∼7년만에 옆 2층 건물로 이전한다. 1층은 홀, 2층은 룸이었다. 이 어름에 녹양도 태동한다. 녹양은 인정이 남달리 많은 정씨 할머니가 조카 내외한테 준 일종의 선물이다. 그래서 녹양의 버전은 너구리에서 전파된 것이다. 녹양은 90년대초 너구리보다 앞서 들안길로 이전했고, 너구리보다 더 큰 규모를 유지하게 됐다. 너구리도 주차난, 향촌동 경기 침체 등으로 들안길로 옮겨왔다.

#생고기란

생고기는 소 뒷다리 안쪽 허벅지 부위의 처지개와 함박살을 주로 사용한다. 한 덩어리 무게는 약 4㎏. 그런데 좋은 게 잘 안나온다. 10마리 중에 고작 1∼2마리에서 고급 생고기를 얻을 수 있다. 허벅지 살도 처지게와 함박살 두 부위가 있다. 처지게는 힘줄이 많고 쫄깃하고 윤기가 나지만 선별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런데 이젠 힘줄이 적은 함박살이 선호된다. 생고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된다. 하루 정도 묵히고 나면 빛깔이 검자줏빛에서 선홍빛으로 변한다. 선홍빛이 되면 생고기로 잘 내놓지 않고 육회로 요리해 내놓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 갈비살과 등심 등은 마블링이 좋은 게 선호되는데 생고기는 그렇지 않다. 살코기 안에 힘줄이 덜 박혀 있는 게 좋다. 다시말해 마블링이 적은 것일수록 좋은 생고기란 말이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하단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