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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수상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수상도시’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4:11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마다 늘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이곳에 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나는 한 도시와 작별을 하곤 했다. 이별은 늘 슬픈 것이며, 사람하고만 하는 것도 아닌가 보다. 한 도시를 떠나면서도 이별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그만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떠난다는 것은 나에게는 매번 고통이요, 아픔이었다.

베네치아는 수백 개의 섬 위에 세워진 수상도시다. 배가 다니는 운하는 대로이고, 수로는 작은 골목길이다. 자동차 대신 배가 다니는 것만 다를 뿐 그곳에도 버스, 택시, 자가용이 있다. 오히려 육지에 없는 낭만적인 곤돌라라는 배도 있다.

베네치아에 가는 법은 자동차, 기차, 비행기 편이 있다. 차와 기차는 물론이려니와 공항에 내려도 한번만 배를 타면 곧바로 시내 중심가로 연결되는 배편이 있다. 관광객들이여, 지체하지 말고 가서 돈주머니를 풀라는 거다. 그들은 모두 베네치아 상인의 후손들이었다.

기차로 도착했을 경우에도 역사를 빠져나오면 바로 출렁거리는 바다와 만나게 된다. 역 광장에서 버스 티켓을 사서 배에 몸을 실으면 그때부터 대운하(Canale Grande)를 통과하는 베네치아 관광의 시작이다. 배는 정거장마다 멈추어서니 시가지 구경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굽이 굽이 배가 가는 곳마다 좌우로 눈을 돌려보라. 아름다운 건축물을 발견했다면 마음껏 탄성을 질러도 무방하다. 돌아다니는 사람의 90%는 관광객이니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맘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도시가 많다지만 베네치아는 특별하다. 육지에서도 석조 건물 하나를 세우려면 온갖 고생을 해야 하는데 하물며 물속에 기초 공사를 하고 필요한 석재는 육지에서 배로 실어 날라 건축물을 완성해야 했으니 그 어려움이 어련했을까?

베네치아의 건축물은 대략 13세기 고딕시대부터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쳐 17세기의 로코코 시대로 이어지는데, 건축의 역사가 바로 도시의 역사이기도 하다. 밖에서 보면 건축물의 층마다 작은 발코니 앞에 화분들이 놓여 있어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베네치아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동방과 비잔틴을 연결하는 유럽의 창과 같은 곳이었다. 중세에는 동방에서 물건을 수입하여 유럽에 파는 무역업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그 부를 토대로 그들은 문화, 예술, 문학, 낭만, 그리고 자유를 꽃피웠다.

베네치아는 철저하게 상업을 추구한 도시였으며,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라면 종교와도 거리를 두었다. 베네치아 정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내고자 한 것은 자국민의 상업 활동이었다. 경제가 모든 정책의 우선이었던 셈이다. 베네치아에서는 신조차도 그들의 상업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공경받지 못하는 듯했다.

장사로 벌어들인 돈을 그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데 썼다. 그러니 음식과 건축이 발달했으며, 위대한 예술가들이 줄줄이 탄생되었음을 물론, 낭만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와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카페 ‘플로리안’ 베네치아의 명물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 문장은 이광주 선생이 쓴 책 제목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카페 플로리안의 탄생부터 카페가 지나온 역사적 발자취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심장부는 산 마르코 광장이다. 그곳에는 늘 수많은 비둘기 떼가 모여 있고, 비둘기 떼만큼의 관광객들로 사시사철 북새통이다. 베네치아를 찾은 관광객들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거워한다. 인간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비둘기들은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끝도 없이 탐욕스럽게 먹어댄다. 비둘기들이 도망을 가지 않으니 손바닥이나 머리 위에 올려놓고 멋진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밥값을 제대로 하는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들은 이제 어엿한 베네치아의 관광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아름다운 기둥 숲으로 둘러싸인 넓고 긴 직사각형의 산마르코 광장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는데 바로 음악 카페다. 이들 카페 중에 카페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카페 플로리안은 단순한 카페를 뛰어넘어 베네치아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1683년 처음 생긴 이래 그곳은 외세의 침략 때에는 전략의 요충지였고, 지식인들의 담론의 장이었으며, 베네치아를 찾은 명사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었다.

이곳을 찾은 역사적인 인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괴테, 카사노바, 스탕달, 바그너, 러스킨, 릴케, 마네 모네, 하이네, 니체…. 플로리안은 때로 매춘의 소굴이기도 했다. 카사노바가 작업을 벌인 곳도 바로 이곳이었단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카페를 보통 바(Bar)라고 부르는데 바는 그들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잘 먹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사람들이지만 아침만큼은 간단하게 한다. 집에서 할 경우 카페라테라 불리는 커피 우유에 비스킷 몇 개면 끝이다. 그나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아침 식사를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서 한다. 보통 카푸치노 한잔에 패스트리 한 점을 먹는데 우리 돈으로 2000원 정도면 해결된다.

이탈리아의 카페는 우리와 다른 점이 있는데 서서 커피를 마시면 천원 남짓이면 되지만 일단 자리에 앉으면 값이 두 배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 카페 플로리안 역시 마찬가지다. 카페 안에 들어가서 마시면 싼 값에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일단 노천의 테이블에 앉으면 커피 한잔 값이 1만5000원 정도 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 카페가 지나온 역사에 바치는 나그네의 헌정이라 생각하자.

카페 플로리안에 앉아 서비스를 받는 순간 우리는 역사적인 카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카페에 앉아서 적당히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재미있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다. 연주보다는 아름다운 여자 손님, 혹은 팁 좀 뿌릴 만한 일본 여인을 유혹하느라 눈길을 보내는데 여념 없는 연주자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음악, 자유, 낭만, 역사, 인생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4세기 가까이 영업을 계속 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카페 플로리안이다.
 

‘베네치아 수호성’ 성 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의 심장부가 성 마르코 광장이라면 이 광장의 심장부는 성 마르코 대성당이다. 베네치아 역에서 배를 타고 성 마르코 광장 정거장에서 내리면 레이스처럼 섬세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석조 건물인 베네치아 공작 궁과 만나면서 그 화려함에 한번 놀라고, 공작 궁에서 이어지는 넓디넓은 사각의 성 마르코 광장에 두번 놀라며, 광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웅장한 성 마르코 대성당 앞에서 세번째로 놀랄 것이다.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는 보통 날개 달린 사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 유래는 4대 복음 저자를 각기 마르코는 사자, 마태오는 천사, 요한은 독수리, 루카는 황소로 그린 데에서 유래했다. 이들 4대 복음 저자 중 그 누구도 성 마르코처럼 한 도시 전체의 상징이 되어서 지극한 영광을 누린 이는 없는 듯하다. 성 마르코 덕분에 날개 달린 사자상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징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베네치아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성 마르코 성당은 바실리카라 불린다. 바실리카란 원래 로마제국시대의 공회당이었는데 이후 그것을 본떠 초창기인 10세기 이전의 교회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따라서 유서 깊은 교회일수록 바실리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바실리카가 처음으로 지어진 것은 9세기 경이다. 그 무렵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한 교회에서 훔쳐 온 후 자신들을 지켜주리라 굳게 믿었던 성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교회를 지었다. 오늘날 성당의 모습은 1063년 이후 건축된 것이다.

1000~1200년을 서양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 시대라 하는데 이 시기에 지어진 성 마르코 성당은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건축물이자 특별히 비잔틴 양식으로 불린다. 교회의 일반적인 형태가 라틴 십자가로 불리는 길쭉한 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비잔틴식 성당은 그리스 십자가로 불리는 정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돔으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비잔틴 양식의 또 다른 특징은 모자이크 장식인데 성 마르코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모자이크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모자이크 예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성당의 정면부는 다섯개의 출입문 위에 반원형의 아치가 2층으로 장식되어 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이 반원형의 아치는 모두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는데 원래는 12세기에 만들어졌으나 오리지널은 왼쪽 문 위에 하나만 남아 있으며, 나머지는 후대에 다시 제작했다. 그 중 2층에 있는 아치의 모자이크는 역사가 가장 짧으며, 17세기에 제작되었다.

성당 안에 들어가면 거대한 공간에서 빚어지는 안정감과 조화에 놀라게 될 것이다. 공간이 넓으나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참으로 편안하다. 거대한 기둥들이 만들어내는 아치의 부드러운 선들, 하늘로 가는 길목처럼 느껴지는 황금빛 돔, 실내의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운 찬란한 모자이크화들. 이들 모자이크는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비잔틴 모자이크의 결정판이자 중세 회화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지상에서 맛볼 수 있는 천상의 세계가 한 곳 있다면 그곳은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이리라.
 

거장들 그림 가득한 공작궁
 
 
베네치아의 심장부가 성 마르코 대성당과 광장이라면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곳이 대성당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팔라초 두칼레, 즉 공작궁이다. 공작궁은 도제(Doge)라 불리는 베네치아 공화국 대통령의 아파트요 집무실이자 여러 관공서가 모여 있는 곳으로서,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의 청와대·종합청사·국회·검찰청·교도소를 합친 곳으로 볼 수 있다. 대성당이 종교의 중심지였다면 공작궁은 세속적인 정치·행정의 중심지였다.

바닷가 바로 앞에 세워진 베네치아의 공작궁은 태양을 받아 출렁이는 바다 물결을 건물에 옮겨 놓은 듯 화려한 기둥 장식들이 눈길을 끄는데 그 섬세함은 돌로 만든 레이스를 연상시킬 정도다.

그러나 이 정도의 화려함은 건물 안에 장식된 이 도시 최고 거장들의 작품에 비하면 그다지 자랑거리도 되지 못한다.

베네치아가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때의 베네치아 회화를 이끈 예술가들은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라는 세 거장으로서 이들은 강렬한 색채와 빛을 내세우는 베네치아 학파의 기원을 이루게 되었으며, 특별히 티치아노는 당대의 미켈란젤로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공작궁은 바로 이들 세 거장의 개인 미술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방마다 이들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대통령의 아파트, 접견실, 대기실 곳곳에서 티치아노의 그림을 볼 수 있는가 하면, 2000명의 시민들이 동시에 입장하여 법을 승인하고 정부의 행정관들을 임명했던 대회의실에는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틴토레토의 대형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이 방에는 특히 16세기까지의 역대 베네치아 대통령의 초상화가 벽면에 빼곡히 걸려 있는데 그 중 한 곳에는 그림 대신에 검은 색만 칠해져 있다. 그곳은 바로 마린 팔리에로라는 대통령의 초상화가 있어야 할 자리였으나 그가 권력을 탐해 모반을 꾀하는 바람에 참수형에 처해졌고, 이 불행한 정치인을 경고로 삼고자 그 자리를 영원히 검게 칠해놨다는 것이다.

베네치아 대통령은 사사로운 권력을 추구하다가는 이렇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평화로운 베네치아를 만드는 것이었다. 평화가 보장되어야만 베네치아 시민들이 바다를 오가며 맘 놓고 무역을 하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권력은 특정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철저히 분산되었고, 정치가들의 임기는 철저히 지켜졌으며,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경제 부흥이었다. 이것이 바로 베네치아 번영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공작궁에는 감옥도 있는데 이 감옥에 가려면 ‘한숨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한번 건너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한때 이 감옥에 카사노바도 갇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기의 바람둥이답게 그는 자신을 사모했던 여인들의 도움으로 이 철통같은 감옥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생생한 모험담을 책으로 출판하기까지 했다.
 

베니치아, 낭만과 자유의 도시
 
 
#풍경 하나

해가 저물어 석양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자 베네치아의 기차역 광장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침낭을 펴서 잘 준비를 했다. 그들은 베네치아를 방문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다. 해가 바다 속으로 완전히 잠수하자 여행객들은 광장이 침실인양 하나 둘씩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들은 그날 밤을 거기서 그렇게 보내는가 보다. 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10m도 안 떨어진 곳에서는 바닷물이 철썩거렸다. 가로수처럼 빼곡히 들어선 오래된 건물들이 쏟아내는 불빛은 베네치아의 밤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했다.

어느 해이던가, 한여름의 저녁 무렵, 나는 베네치아의 역 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수많은 여행객들을 목격했다. 비록 돈을 절약하기 위하여 호텔에 들어가지 못하고 노숙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었지만 나는 그들이 정녕 자유를 만끽하고 있음을 그들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때론 하늘 아래 맨땅이 일류 호텔보다 아늑할 수도, 또한 화려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베네치아에서 보았다.

#풍경 둘

베네치아를 여행하다 보면 곤돌라를 타고 즐거워하는 여행객들을 흔히 보게 된다. 배의 앞 뒤가 아름답게 장식된 검은 색의 곤돌라는 손님이 앉는 선체에 붉은 융단을 깔아서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타는 순간 귀족이 된 듯 착각하게 만든 배라는 생각이 든다. 곤돌라는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가장 전통적인 관광 상품이다.

나는 베네치아를 거의 매년 방문했지만 정작 곤돌라를 타본 것은 내가 인솔해서 갔던 2년 전의 단체 여행에서였다. 그동안 곤돌라를 타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우리 팀은 세 대의 곤돌라에 나누어 탔고 그 중 배 한대에는 가수를 초대했다. 곤돌라를 타면서 베네치아 가수가 뽑아 대는 노래를 감상하는 일이야말로 꿈에 그리던 장면이었다.

가수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아름다웠지만 그가 관광객을 상대로 평생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맘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무척 감탄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공의 노 젓는 솜씨였다. 곤돌라는 큰 물길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좁은 골목길도 다녀야 하고, 또 심하게 방향을 틀기도 해야 한다. 내가 탄 곤돌라의 사공은 그 좁은 길을 제집 드나들듯 빠르게 가르지를 뿐만 아니라 코너를 돌 때에는 발로 힘차게 건물을 차면서 방향을 트는 모습이 달인의 행위 그 자체요,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언제부터 곤돌라 사공을 했나요?”

“400년 전부터입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안은 곤돌라를 젓는 사공의 집안이었답니다.”

바닷바람과 태양에 까맣게 그을린 그는 잘 생긴 이탈리아 젊은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도 여생의 대부분을 사공으로 살겠지. 베네치아의 예술도 전통도 이런 대물림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Posted by 비회원

우송 김석기의 이탈리아 스케치 여행기 - 베네치아

우송 김석기의 이탈리아 스케치 여행기 - 베네치아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5:57

우송 김석기의 이탈리아 스케치 여행기  - 베네치아 




 [ 베네치아 , 출처 :hanulh.egloos.com]



물이 빚어낸 르네상스 도시는 낭만·역사를 품었다  

천년의 역사를 뽐내며 독자적인 문화 속에 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던 베네치아가 18세기 말 나폴레옹의 침공에 의하여 멸망하기 전까지 이탈리아의 북동부 아드리아연안의 여왕시대를 풍미해 왔다. 베네치아는 유리세공으로 유명한 무라노 섬을 위시하여 118개의 작은 섬들과 177개의 운하를 연결하는 400여개의 아름다운 다리들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관광도시이다.

산타루치아 역을 떠난 유람선 양쪽으로 다양한 건축물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전개된다.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유럽풍의 아름다움이다. 14세기까지만 하여도 국력이 최강임을 자랑하였고, 상권을 장악하고 동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그 위상이 대단하였으며, 무역특권으로 얻은 부를 배경으로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르네상스시대 문화의 꽃을 피운 중심지였던 이곳이 15세기말 ‘오스만투르크’의 서방진출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17세기에는 영국 등 서유럽 여러 나라의 해외무역 진출로 인하여 몰락하게 된다. 1797년 나폴레옹 1세에게 점령당했다가 오스트리아에 이양되고, 1805년에는 나폴레옹 지배하에 있던 이탈리아왕국에 귀속되었으며, 1815년에는 다시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롬바르드베네토왕국에 귀속되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싸운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배하자 1866년 국민투표에 의해 베네치아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어 현재까지 베네토지방 중심지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우리들에게 베니스로 불리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를 헤치며 4㎞ 정도 달려온 유람선이 선착장에서 멈춰 선다.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복잡한 베니스의 풍경을 만든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운하가 어우러진 곳에 수많은 비둘기들이 날고 그 사이에서 검은 피부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가죽제품들을 늘어놓고 호객세일을 하고 있다.

대운하로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리얄토 다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군선(軍船)이 드나들기 쉽도록 아치형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다리다. 처음에는 목조로 만들었다가 중간에 돌로 바꾸었다는 이곳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리얄토 다리를 건너 좁은 골목을 내려오니 광활하게 펼쳐진 광장이 나타난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이라고 격찬했던 ‘산마르코 광장’이다. 광장의 앞쪽으로는 베니스의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100m 높이의 종루가 있고, 그 반대쪽에는 산마르코 성당이 있다. 성당 입구의 정문 상단에 있는 네 마리의 역동적인 청동 말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십자군이 828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사도 ‘성 마르코’의 유해가 모셔진 ‘산마르코 성당’은 9세기에 건조되었다가 976년에 화재로 인하여 다시 완공하여 1094년에 헌당하였으며, 길이가 76.5m, 나비가 62.6m의 규모로 만들어진 그리스 십자형 비잔틴건축양식의 대표적인 성당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황금 모자이크벽화와 호화로운 가구류 등을 보면서 이곳을 ‘황금의 성당’이라 부르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세 개의 돔에는 ‘임마누엘’, ‘그리스도 승천’, ‘성령 강림’을 나타내는 12세기 중엽의 모자이크작품이 있고, 현관부에 있는 6개의 작은 돔에는 13세기의 모자이크 작품으로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출애굽기’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파 화가들의 열정적이고 숙명적인 작품에 대한 집념을 보면서 긴장감을 느낀다. 그들은 예술가였을까? 아니면 총독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했던 노예들이었을까? 어쨌든 그들의 작품에 대한 집념의 결과로 나타난 걸작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간절한 믿음의 결실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두칼레 궁전을 빠져 나오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이곳의 명물인 ‘탄식의 다리’가 있다. 탄식의 다리는 바로 곁에 있는 ‘프리지오니 감옥’으로 끌려 들어가던 죄수들이 마지막 햇빛을 바라보며 다시는 세상 빛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한탄하던 곳이라 하여 그렇게 부른다.

탄식의 다리 건너편에 중세의 전형적인 베네치아를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전개된다. 바로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선착장에서 ‘바포레토’를 타야 하지만 구태여 선착장으로 가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역사의 도시 베니스를 바라보며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보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해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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