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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미국 비자면제, 약인가 독인가?

[해외여행] 미국 비자면제, 약인가 독인가?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28 16:17

[해외여행] 미국 비자면제, 약인가 독인가?

 

 

발급 따른 각종 불편 해소 기대감…개인 범죄정보 제공 등 인권 침해 소지 커 


 
 서울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비자 신청을 하려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시각으로 4월19일 새벽, 미국 워싱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訪美) 중인 가운데 한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Visa Waiver Program·이하 VWP) 가입을 위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됨으로써 양국의 비자면제 관련 협상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미국 비자면제 조치는 일반 국민에겐 미국대사관 앞에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편리’를, 항공사나 관광업계엔 미국관광 특수라는 호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VWP 가입에 필요한 여러 ‘선결조건’으로 인해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VWP는 무(無)비자 제도가 아니다. 현재 유럽 일본 등 27개국이 가입돼 있는 VWP는 단기 방문비자(B-1)와 관광비자(B-2)에 한해서만 적용된다. 최대 체류기간은 90일로, B-1과 B-2가 허용하는 최대 체류기간(180일)보다 짧다. 이 두 비자를 제외한 비(非)이민비자, 즉 E(무역·투자), F(학생), H-1B(단기 취업), H-2B(단기 기간제 취업), J(문화교류), L(주재원), O(특기자), P(스포츠 및 공연) 등이 필요한 사람은 VWP 가입 이후에도 현재와 동일하게 원하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인터넷 통해 미 정부로부터 입국 가능 여부 통보받아


한편 비자면제에 이르기까지 한미 양국이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지난해 여름 발효된 VWP 개편 법안은 VWP 가입자격에서 비자 거부율 요건을 3%에서 10%로 완화하는 대신 새로운 조건을 여러 개 추가했다. VWP 가입을 위해서는 가입국이 전자여권을 발급해야 하고 미국과 긴밀한 사법협력을 맺어야 한다는 조건엔 변함이 없지만 △미국 내 전자여행허가제(Electronic Travel Authorization·이하 ETA) 및 출국통제 시스템 도입 △가입국과 여행자정보 공유 협정 체결 등이 새로 추가됐다. 즉 미국의 VWP 개편은 단순히 문호를 넓히는 게 아니라, VWP 가입국에 각종 보안요건을 부과함으로써 미국의 안보를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다.

VWP 가입을 통해 ‘미국대사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없애려면 우리 정부는 먼저 전자여권을 발급해야 한다. 2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권법 전부개정안이 가결되면서 전자여권 도입의 법적 근거는 마련된 상태다. 전자여권에는 개인의 이름, 생년월일, 여권번호 등 신상정보와 디지털사진이 담긴 전자칩이 내장된다. 그러나 지문정보는 2010년 1월1일부터 수록하도록 연기됐다. 외교통상부는 올해 상반기에 외교관 등 공무원들에게 전자여권을 시범 발급하고 하반기부터는 일반 국민에게도 전면 발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 내외는 4월15일 제1, 2호 전자여권을 가지고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한편 미국 정부는 ETA를 도입해야 한다. ETA란 미국 방문 희망자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에 관한 정보를 입력한 뒤 미국 정부로부터 입국 가능 여부를 사전에 통보받는 시스템이다. ETA에서 개인이 직접 제공해야 할 신상정보에 관한 내용은 현재 양국이 협의 중이다. 그러나 입국신고서(I-94)에 기재된 사항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게 외교부의 관측이다. 현재 입국신고서에는 여권번호, 이름, 생년월일, 국적, 비자 종류, 비자 만기일 등이 기재돼 있다. 미국 정부는 또한 새로운 체제의 VWP 시행을 위해 지문, 홍채 등 생체인식 방식의 출국통제(Exit-control)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출국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이 시스템은 개인의 불법체류 사실을 인지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비자면제 시 발급 비용 연간 1000억원 절감 효과


VWP 가입을 위해 한국은 미국과 여행자정보 공유 협정도 맺어야 한다. 이에 해당하는 여행자정보란 ‘테러 정보’와 ‘중요 범죄 정보’다. 양국은 이미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 같은 정보를 상호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요 범죄라 함은 미국의 안보와 복지에 위협이 되는 범죄를 뜻한다”면서 “살인, 방화, 과실치상 등이 이에 해당하며 교통범죄 같은 전과는 제외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선결조건들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전국 29개 인권단체가 참여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4월19일 서울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전자여권 반대 시위를 벌인 것에서 보듯, 인권단체들은 생체정보를 수록한 전자여권이 보안에 취약하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또한 ETA가 ‘새로운 형태의 비자 심사’라고 비판한다. 인권단체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 김승욱 활동가는 “대사관 심사가 온라인을 통한 심사로 바뀌었을 뿐이며, ETA에서 제공해야 할 정보가 입국신고서 수준이라는 것은 외교부의 예측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어떠한 민감한 정보가 포함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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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 요세미티 국립공원 산행…100만년된 자연서 하룻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 요세미티 국립공원 산행…100만년된 자연서 하룻밤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28 16:05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 요세미티 국립공원 산행…100만년된 자연서 하룻밤


트레일 총 800마일…걸어봐야 참 맛,
폭포·절벽 등 가까이 보면 더욱 장관

 

“아무리 지쳐 있더라도 산에서 하루를 보내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도중에 기운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수를 누릴 운명이건, 파란만장한 삶을 살 운명이건 그 사람은 영원한 부자다.”

자연주의자 존 뮤어가 31세 되던 1869년의 어느 여름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서 3개월간을 보내며 썼던 산중일기 ‘나의 첫 여름’ 중 한 구절이다.

그의 노고로 국립공원에 지정된 요세미티는 연간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 요세미티는 자연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한 곳에 갖고 있다.

100만년전의 빙하가 침식하면서 만들어진 이 계곡에서는 요세미티 폭포를 비롯해 9개의 폭포가 있으며 8000피트 급의 높은 절벽과 봉우리들이 웅대하고 위압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여행사에서 떠나는 관광 패키지를 이용해 먼 발치에서 요세미티 폭포 해프돔 등을 보고 왔다면 당신은 요세미티의 진면목을 본 것이 아니다. 단 하룻밤만이라도 공원 안에서 숙박하고 800마일이 넘는 트레일의 일부라도 걸으며 온 몸으로 그 아름다움을 느껴봐야 비로소 요세미티를 봤다고 말할 수 있다.

요세미티 공원은 머세드 강의 상류지역인 요세미티 밸리 남쪽의 와워나와 마리포사 그로브 그리고 동쪽 고산초원지대인 투올럼 메도우 등 크게 3지역으로 나뉜다. 오늘은 해프돔이 있는 요세미티 밸리를 중점으로 소개한다.

남쪽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36마일을 운전해 들어가면 요세미티 공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들이 모두 모여 있는 요세미티 밸리가 나온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들

▲엘 캐피탄(El Capitan): 요세미티 밸리 입구 왼편에 위치한다. 3000피트 높이 수직으로 쭉 뻗어 있는 세계 최대 화강암 절벽. 신생대 백악기에 생성됐다. 요세미티 폭포 옆의 등반로를 타고 8마일 정도 올라간다. 여름철이면 아슬아슬 암벽을 타는 산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스카이다이버들이 사랑하는 낙하 코스이기도 하다.

▲노스돔(North Dome): 요세미티 밸리 동쪽 해프 돔의 계곡 반대편에 위치한 해발 7542피트의 거대한 화강암. 해프돔이나 그레이저포인트 등 요세미티 밸리의 볼거리 대부분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요세미티 벨리에서 요세미티 폴 트레일(Yosemite Falls Trail)이나 소누우 크릭 트레일(Snow Creek Trail) 또는 포쿠핀 크릭 트레일(Porcupine Creek Trail)을 통해 올라간다.

▲해프돔(Half Dome): 4000피트에 달하는 반구형의 거대한 화강암 바위로 요세미티 밸리의 동쪽 끝에 우뚝 서 있다. 요세미티의 상징물과 같은 존재로 빙하의 무게에 눌려 바위의 모양이 돔의 형태가 되었고 빙하가 녹으면서 바위의 반이 떨어져 나갔다.

해발 8842피트의 해프돔 정상에 오르려면 버날과 네바다폭포를 지나서 리틀 요세미티 밸리로 연결된 케이블 루트를 이용한다. 거리도 짧지 않은 데다 11월~5월까지는 하이킹도로가 폐쇄되기 때문에 여름철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정상에 올라가볼 기회가 없다. 정상에 오르려면 물을 비롯한 등산을 위한 기초장비가 준비돼야 한다.

▲브라이들베일 폭포(Bridalveil Falls): 요세미티 밸리에 들어서 가장 먼저 정면우측으로 보이는 높이 620피트 폭포. 한줄기 폭포수가 가늘게 내려오다가 안개같이 부드럽게 흩어진다.

▲리본 폭포(Ribbon Fall): 하나의 폭포 라인으로는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고 전 세계에서 8위인 폭포로 길이가 무려 1612피트에 이른다. 엘카피탄 절벽 서쪽에 있어 바위가 앞을 가려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고 북미지역에서 가장 놓은 폭포로 요세미티를 대표한다. 요세미티 밸리 위로부터 요세미티 폭포(1430피트) 미들 케스케이즈 폭포(middle cascades Fall 675피트) 로어 요세미티 폭포(Lower Yosemite Falls 320피트) 등 3개의 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버날 폭포(Vernal Fall): 높이는 317피트밖에 안되지만 물이 많을 때는 폭이 100피트가 넘기도 한다. 버날 폭포에 다다르면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웅성거림은 깊은 산에 묻히고 폭포 소리에 묻힌다. 버날 폭포 다리를 지나면 폭포의 정상으로 오르는 700개의 돌계단에 이른다. 하나하나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폭포수가 바람에 비 오듯 흩날리며 쏟아져 내린다.

▲미러 호수(Mirror Lake): 요세미티 밸리의 동북쪽 끝 하프돔과 노스돔 사이에 있는 작은 호수. 요세미티 밸리에서 1마일 거리라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 산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는 모습이 아름답다.

▲글래시어 포인트(Glacier Point): 해발 7214피트의 전망대로 해프돔을 비롯해 시에라네바다산맥 머세드 강 요세미티 폭포와 네바다 폭포 등 요세미티 공원의 가장 웅장하고 그림 같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4.5마일 등산로는 4~5시간에 오를 수 있다.

◇ 요세미티 국립공원 가는 길

※ 요세미티 밸리의 중심에 작은 마을 빌리지가 있다. 방문자센터가 있어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고 숙박시설 식당들이 있다. 길버트 스탠리 언더우드의 설계로 1927년 7월 14일 요세미티 국립 공원 내에 문을 연 빅토리안 스타일의 호텔 아화니(Ahwahnee)를 비롯해 커리 빌리지 요세미티 롯지 앳 더 폴스 등이 다 가까이 있다.

빌리지는 오전 7시~오후 10시까지 숙소와 상점 주요 명소를 도는 무료 셔틀을 운영한다. 요세미티 공원은 LA에서 북동쪽으로 313마일 거리, 자동차로 6시간 가량 걸린다. 5번 프리웨이 타고 99번 타고 41번 타고 계속 북쪽을 향해가면 요세미티 국립공원 남쪽 입구에 이른다. 차 한대당 20달러 하는 입장권은 7일간 유효. 자세한 문의는 (209)372-0200, www.nps.gov/y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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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캘리포니아 와인

꿈꾸는 캘리포니아 와인 와인정보 2008.10.15 17:39

꿈꾸는 캘리포니아 와인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캘리포니아는 와인의 고장이 아니다. 대부분 사랑스러운  미키마우스, 금발의 서퍼, 랜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골든게이트 브리지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와인용 포도나 와인등의 농산물이 점점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미국의 황금주인 캘리포니아가 몇몇 농산물 생산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아보카도, 호두, 마늘, 브로콜리, 그리고 식용 포도와 와인용 포도로 유명하다.

미국 와인 생산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와인 생산량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캘리포니아가 하나의 독립국이었다면 와인 생산 분야에 있어서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에이어 4번째 와인 생산국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병입된 와인의 가격이 2~200달러까지 다양한 품질의 와인이 생산된다.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 중 45개 카운티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에서
전 세계 와인용 포도 생산의 5%를 차지하고 있음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단적인 예만 봐도 와인이 캘리포니아 주의 주요 산업임을 감지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쉽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해변지역은 전체 포도 재배 면적의 15%를 차지하지만 품질적 측면에서는 슈퍼 또는 프리미엄 와인을 80% 생산하는 고급와인의 본고장이라 할수 있다.그에 반해 그레이트 센트럴 밸리의 산지는 재배면적의 85%를 차지하지만 고급 와인의 비율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해변 지역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잇으며 태평양 연안을 따라 중요한 지역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북부 해안지역은 멘도시노(Mendocino), 레이크(Lake), 소노마(Sonoma), 나파(Napa)등의 카운티가 있다. 샌프란시스코만 연안에서는 리버모어 밸리(Livermore Valley) 지역과 산타 클라라(Santa Clara), 산타 크루즈(Santa Cruz) 그리고 산베니토(San Bentio)등이 있다. 중앙 해안 지역으로 이동하면 몬트레이 카운티(Monterey Country)와 산 루이스오비스토(San Luis Obisto)의 북부 그리고 산타 바바라 카운티(Santa Barbara county)와 만나게 된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바다 옆이거나 혹은 바다와 인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배적인 기후는 미국 국토의 중앙지대보다 훨씬 서늘하며 전통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기후다. 실제로 이 해변 지역에서는 식용 포도는 별로 찾을 수 없으며 사실상 거의 모든 품종의 포도가 와인 생산을 목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각각의 지역마다 다양한 아펠레이션을 보유하고 있다. 보르도 지역에서 쎙떼스떼프(Saint Estephe), 뽀이악(Pauillac), 그라브(Graves)의 아펠레이션으로 구분하듯이 소노마 카운티도  러시안 리버 밸리(Russian River Valley), 소노마 마운틴(Sonoma Mountain) 그리고 알덱산더 밸리(Alexander Valley)등으로 구분된다.

그레이트 센트랄 밸리(Great Central Valley)는 매우 광범위하며 미국 내륙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북부의 시원한 지역에서는 품질이 좋은 와인을 만날 수 있고 사크라멘토 벨리(Sacramento Valley), 시에라 풋힐즈(Sierra Foothills) 그리고 엘도라도 카운티(EI Dorado Country)등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남쪽으로 이동하면 거대한 산 조아킨 밸리(San Joaquin)에 이어 남부 산 조아킨으로 이어진다. 이 두 지역에서 미국 포도 생산량의 약 40%가 생산된다. 모데스토에서는 나머지 30%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센트럴 밸리에서 생산되는 포도들의 대부분이 식용 포도이며 포도 주스용이거나 건포도용이라는 것을 언급해야 한다.  또한 다른 중요한 농산물 품목들도 생산하는 비중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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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와인 - 황금의 땅, 캘리포니아 와인

미국와인 - 황금의 땅, 캘리포니아 와인 와인정보 2008.10.15 16:24

미국와인 - 황금의 땅, 캘리포니아 와인




 


 
신세계 와인 가운데 국제적 유통 시장에 맨 먼저 데뷔한 것을 캘리포니아 와인이다.  1960년대초, 이들 와인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을 때, 프랑스를 위시한 구세계의 여러나라에서는 별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단지 프랑스적 향수에 젖은 와인 메이커들이 그들의 꿈을 실현하고자 애쓰는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와인은 아주 싼 값에 거래되었고 게다가 평범한 "저그 와인"(jug wine)이 범람하면서 이 곳의 와인은 한마디로 "싼 와인"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캘리포니아 와인을 폄하하거나 저가의 대명사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이 곳의 와인은 지난날의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어느 대륙 못지않게 훌룡한 와인을 내옿으면서 새로운 강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주(洲)다. 넓이는 410,871km에 달한다. 서쪽으로는 약 2,000km의
해안선이 멕시코 국경에서 오레곤 주까지 뻗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미국에서 가낭 높은 휘트니산(4,418m)이 있는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산맥에 이른다. 남쪽으로는 수많은 골프와 리조트 시설이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며 해안지역은 온화한 지중해성 날씨로 인해 일년 내내 야외활동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북부는 화산과 샤스타 캐스케이드 지역으로서 황야지대와 포도원,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삼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주를 유명하게 만든 덧은 바로 와인 생산이다. 미국 전체 생산량의 90%가 이에서 나고 미국 시민이 마시는 와인 4병중 3병은 이 곳에서 난다. 만약 이 주를 하나의 국가 단위로 간주한다면 분명 캘리포니아는 세계에서 4번째 큰 와인산국이 된다. 현재 와이너리는 1,200개소에 달하며 산지의 총면적은 476만 에이커에 달한다. 포도산지는 북부해안, 북부중앙해안, 남부중앙해안, 산 조아퀸 밸리(San Joaquin Vally)에 분포되어 있다. 이 가운데 북부해안 지역의 소노마(Sonoma Country)와 나파밸리(Napa Valley)가 잘 알려진 와인산지이다.
캘리포니아 와인을 빚는데 쓰이는 포도종에는 유럽의 거의 모든 종이 망라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까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진판델, 까베르네 블랑, 메를로, 삐노그리, 삐노 누아등 7개의 포도종이 으뜸이다. 그 중에서 까베르네 소비뇽이 캘리포니아 와인을 대표하고 진판델이 이 곳 특유의 포도종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 캘리포니아가 이처럼 세계적 와인산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혹했던 지난날의 역사와 미국인 특유의 창의적 노력이 한 데 어울려 있다.


캘리포니아 와인발전의 역사

'캘리포니아 와인의 역사는 2세기 훨씬 이전 스페인의 탐험가와 프란시스코의수도사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멕시코에서 이 곳으로 선교의 목적으로 건너 왔고 시골품의 선교사 마을을 이루면서 주변에 작은 포도 밭을 가꾸어 이에서 수확한 포도주를 빚어 미사에 썼다'(wine bible)

초기 황금기의 시작

 사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역사에는 프란시스코 수도사들이 그 중심에 있다. 1769년 이들은 당시 미개한 인디언들의 교화, 선교의 목적으로 멕시코에서 이곳 알타 캘리포니아(Alta California)로 건너 왔다. 이 무렵 1779년, 쥬니페로 세라(Pede Ju-nipero Serra)신부가 유럽 포도종을 갖고 들어와서 미사의 목적으로 심은 것이 캘리포니아 와인의 시작이다.
1836년 나파밸리에서 처음으로 5,000헥타르의 포도원이 개간되어 포도묘목을 심었다. 바로 나파밸리 포도원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1837년, 장루이 비뉴(Jean-Louis Vigner)가 그의 고향 보르도에서 까베르네 소비뇽 포도종의 묘목을 가져와 첫 술 맞아 이곳 와이너리들은 한 때 활기찬 발전을 기약했다. 그러나 그 기간을 길지 못했다. 1870년경 포도나무의 역질인 필록세라가 이 곳 포도원을 덮쳐 모두 황폐화시켰다. 설상가상으로 1920년 금주령(Prohibition)이 내려져 캘리포니아의 와인은 암울한 시기를 맞게 되었다. 140개소의 양조장이 연명했을 정도였다.

제2의 황금기

1933년, 13년간에 걸친 금주령 시대가 끝나고 캘리포니아에는 와인산업의부활이 시작된다. 이 대열에 앞장 선 와이너리가 갤로(Gallo)였다. 값싸고 마시기 쉬우며 믿을 수 있는 평범한  저그 와인(JUG WINE)을 대량으로 생산, 30년대의 성장을 주도했다.
특히 60년대부터 오늘날 캘리포니아 와인의 부활을 준비했다. 로버트 몬다비(1960년)가 오크빌에 새로이 자신의 와이너리를 소유하면서 캘리포니아 와인에 새로운 획을 긋고 70년대 들어서면서 캔우드(Ken-wood), 조셉 펠프(joseph Phelps), 스테이그스 립(Stag's Leep), 끌로뒤 부아(Clos du Bois), 샤또 생장(Ch. St. Jean), 도멘 샹동(Domaine Chan-don)등의 기라성 같은 와이너리들이 캘리포니아에 밀려들어 화려한 황금기의 터전을 마련했다. 1979년에 로버트 몬다비는 바론 필립 드 로칠드와 합작 실험을 가지면서 새로운 포도원 투자의 열기를 이끌기도 했다. 이제 캘리포니아는 더 이상 저급한 와인의 산지가 아니다. 천혜의 기후조건, 열정과 실험, 그리고 과감한 투자에 의해 그들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는 미국 속의 '와인 주(wine state)'로 불리면서 약속의 땅이 되었다.
 



캘리포니아 와인 산지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지는 이 넓은 주의 지형만큼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서늘한 해안가의 기후대에서부터 찌는 듯한 내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지에서 제각기 특징을 지닌 와인이 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캘리포니아 와인의 산지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북부 해안 지역
 -나파지역(Napa county)
 -소노마지역(Sonoma county)
 -멘도치노 지역(Mendocino county)
 -레이크 지역(Lake county)

북부 중앙해안 지역
 -몬트레이 지역(Monterey county)
 -산타 클라라 지역(Santa Clara country)
 -리브모어 지역(Livemore county)

남부 중앙해안 지역
 -산 루이스 오비스포 지역(San Louis Obispo county)
 -산타 바바라 지역(Santa Babara country)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

 

이 가운데 오늘날 캘리포니아 와인의 명소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몇몇 산지를 찾아보기로 한다.

 



나파벨리(Napa Valley)
북부 해안지역의 대표적 와인산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와인을 이야기하게 되면 소노마와 더불어 곧장 나파 밸리를 연상할 정도로 익히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마치 프랑스의 보르도나 이태리의 토스카나와 같은 경우로 비유된다. 그러나 이곳 와인은 캘리포니아 전역의 생산량에 4% 정도다. 샌프란시스코에서 55마일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장이 50마일, 폭이 1~5마일이다. 주변의 산맥으로 인해 포근한 분지로 되어 있으며 해안에서 깊숙히 화산지대로 이어지는 곳이다. 지형적 발달과 상이한 토양으로 와인의 풍미도 서로 다르다.
또한 상이한 기후의 특성으로 이 지역의 와인은 획일성을 거부하고 있다. 1983년, 이 지역 36,000에이커가
캘리포니아에서는 처음으로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로 지정 되었고 이에 더하여 23개의 Subappellation이 지정되었다. 이곳을 더욱 빛나게 하는 이유는 눈부신 이름을 가진 와이너리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몬다비, 찰스 크루그, 볼리유 빈야드, 루이스 M, 마티니, 베린져, 마야키마스, 스터링 빈야드, 죠셉 펠프, 샤또 몬텔레나 등 화려한 와이너리들이 바로 이들이다.

 



소노마(Sonoma)
샌프란시스코에서 45마일 북쪽에 캘리포니아 와인의 명산지인 소노마 카운티가 있다. 바로 이웃에 인접해 있는 나파 밸리와 더불어 캘리포니아의 최대 명산지로 손꼽힌다. 6개의 비옥한 계곡으로 된 이곳은 길이가 17마일, 넓이가 16,800헥타르로 이웃 나파 밸리의 2배나 된다. 나파 지역이 단조한 식재배의 문화, 즉 포도경작이 주된 농경문화라 한다면 소노마는 다양한 농촌문화를 포용하고 있어 흔히 프랑스 남불의 프로방스에 비유되고 있다. 또한 소노마는 매우 가족적이고 작은 규모의 전통을 배경으로 한 포도경작의 특성이 있는데 비해 나파는 백만장자의 풍취가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소노마의 AVA는 다음과 같다.

소노마 밸리(sub AVA : 소노마 마운틴)
알렉산더 밸리
러시안리버 밸리(sub AVA : 소노마 카운티, 그린 벨리, 쵸크힐)
드리크리크 밸리
카네로스(Carneros)

 



나파-소노마 중앙계곡(Central Valley)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지는 내륙으로 향하면서 나름대로 특색을 지닌 산지들이 발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로다이(Lodi)와 드닝간 힐(Dunnigan Hill)이 새롭게 떠오르는 와인 산지로 우리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설 전망이다.

 

로다이(Lodi)
캘리포니아 와인산지 구분에 있어서 이 지역은 별개의 AVA(other delimited AVA)와인산지로 분류디기도 한다.
나파에서 동쪽으로 내륙에 들어와 자리하고 있다. 새크라멘토(Sacramento)와 산 조와퀸(San Joaquin)에 속한다. 실은 로다이는 우리들에게 생소한 와인 산지임에 틀림없다. 이 곳 와인들이 아직은 우리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드닝간 힐(Dunnigan Hill)
이 지역은 신규로 지정된 AVA지역으로서 세크라멘토의 서북쪽에 입지 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욜로(Yolo)카운티에 속한다. 황량한 들판과 구릉에 발달한 이 지역은 곧바로 필립 와이너리(R.H. Phillips)의 본 무대이기도 하다. 더운 기후 탓에 캘리포니아의 주역인 까베르네소비뇽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샤르도네를 비롯해 론 스타일의 쉬라즈 등이 이 곳 와인의 명성을 더해주고 있다.

 

북중앙 해안(North-Central Coast)
지역적 구분은 샌프란시스코만에서 몬트레이(Monterey)에 이르는 바닷가에 와인 산지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 대표적 산지로는 리브모어가 있다.

 

와인의 특색

캘리포니아 와인을 특정한 틀에 맞추어 이야기 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지역의 다양한 기후, 즉 해안가의
서늘한 곳에서부터찌는 듯한 아프리카 열사의 기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밤낮의 높은 기온 차, 미세 기후대의 발전 등으로 인해 와인의 특질이 자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또한 와인산지는 북쪽의 해안 지역에서부터 남쪽의 바닷가, 그리고 뜨거운 내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떼루아로 인해 와인의 풍미가 다르다.



포도의 품종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나는 와인들을 빚는데 쓰이는 포도의 종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많은 편이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종이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겠다. 그 수가 대략 100여종에 이른다. 생산되는 와인에 쓰이는 주요 포도 품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샤르도네 (CHARDONNAY)                               바르베라 (Barbera)
슈냉블랑 (CHENIN BLANC)                              까베르네 프랑 (Cabernet franc)
프렌치 꼴롱바르 (FRENCH COLOMBARD)          까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
마르산느 (MARSANNE)                                   까리냔느 (Carignane)
게뷜츠트라미네 (GEWURZTRAMINER)               그르나슈 (Grenache)
리슬링 (Riesling)                                            말벡 (Malbec)
뮈스까 꼬넬리 (Muscat conelli)                         메를로 (Merlot)
삐노 그리  (Pinot gris)                                    무르베르도 (Mourvedre)
블랙 뮈스까 (Black Muscat)                            쁘띠뜨 시라 (Petite syrah)
뤼산느 (Roussanne)                                      쁘띠 베르노 (Petit verdot)
오랑주 뮈스까 (Orange muscat)                       쁘띠 누아 (Petit noir)
삐노 블랑 (Pinot blanc)                                  산지오베제 (Sangiovese)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                        시라 (Syrah)
세미용 (Semillon)                                          진판델 (Zinfandel)
비오니에르 (Viognier)


까베르네 소비뇽
흔히들 캘리포니아 와인을 가리켜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이라 부를 정도로 이 지역의 대표적 레드 와인 포도종이다. 특색은 매우 파워풀하고 향이 넘치며 복합성을 띄고 있다.(Powerful, Opulence and Complex) 깊이 있는 와인은 거의 오크통에서 긴 숙성시간을 거쳐 나오게 된다. 풍미가 한결 섬세해지고 빛깔은 보다 깊이 있는 현란한 색조를 띄게 되는 것이다.

 

메를로
캘리포니아의 주요 포도 종의 하나이며 이로 빚은 와인은 비교적 구조가 단단한편이다. 까베르네 소비뇽과 블랜딩되기도 한다.

 

진판델
캘리포니아 특유의 포도종이다. 이 종으로 빚는 레드 와인은 찬란하고도 밝은 색조의 감홍색을 띄며
과일향이 넘치고 마시기에 아주 수월하다. 이종은 달리 핑크 빛깔의 로제를 양조하는데도 쓰인다.

 

샤르도네
이 지역 최대의 화이트 종이다. 캘리포니아의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비교적 서늘한 지역에서 좋은 질의 샤르도네 화이트가 나고 있다.

 

소비뇽 블랑
역시 중요한 이 지역의 포도 종이며 이 종으로 빚은 와인은 비교적 토스티하고 풋풋한 풀향을 함께 보인다. 그리고 향이 강한편이다.





[ 글 | 최훈 보르도 와인아카데미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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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와인 사랑의 이야기 - 제퍼슨 대통령

대통령과 와인 사랑의 이야기 - 제퍼슨 대통령 와인정보 2008.10.15 08:37

대통령과 와인 사랑의 이야기 - 제퍼슨 대통령

 


 

몬티셀로(Monticello)의 포도원

숱한 명사들의 와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한 나라를 통치했던 대통령과
와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흔치 않다.
미국 제 3대 대통령이며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남달리
와인과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와인을 취미로 즐긴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와인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리고 깊은 식견을 보였다. 원래 버지니아 농촌 출신인 그는 1807년, 자신이 직접 포도 묘목을 심고 미국 와인 산업의 희망을 걸어 보기도 했다. 그는 몬티셀러(Monticello)에 포도원을 가꾸고 그의 정열을 기울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퍼슨이 남달리 와인과 깊은 인연을 맺은데는 나름데로 유리한 기회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 주재 미국 초대 대사로서 무려 5년간(784-9) 그곳에 머물면서 이 나라가 자랑하는 질 좋은 와인과 명품들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을 사랑하기에 스스로 전문가적 식견을 넓혀가면서 프랑스의 일류 와인 산지를 두루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태리와 독일까지 여행하면서 그들 지방의 와인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가꾸어 나갔다. 숱한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이 제퍼슨에게 와인에 대한 자문과 선택을 의뢰해온 일화는 널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더 그의 전문지식이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케 해준다.
한편, 기회 닿는데로 와인 테이스팅을 증기면서 주변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토대로 기록을 정리해 두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구입하거나 취득한 와인은 반드시 레이블에 흰 팽키로 표지를 하고 그의 와인 셀러가 있던 몬티셀로로 보내졌다고 한다. 특히 제퍼슨 대통령은 보르도 와인데 대해 남다른 사랑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보르도의 샤또 주인들은 그들의 와인을 알아주는 이국의 대사를 식탁에 초청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1787빈티지

1987년, 제퍼슨이 구입했던 1787년 빈티지의 샤또 라피트(Chateau Lafit) 한 병이 정확히 2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87,000 미불(한화 약 2억원)에 팔린 일이 있었다.
이는 미국의 거부이며 포버스 잡지의사주인 말콤 포버스(Malcom Forbes)에게 세기적 가격으로 낙찰되었던 것이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200년이 지나고서도 이 와인이 애초의 그 질을 그래도 유지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사람 좋은 말콤 포버스는 이 와인에 대해 한 번 보고 싶어 안달을 하는 친구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 그에게 잠시 빌려준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의 뉴욕 와인샵에다 자물쇠를 잠그고 제퍼슨의 와인을 전시해 두었다. 어느 날 가게 안으로
매우 중요한 단골 손님이 들어오기에 주인은 자랑삼아 이를 보여 주고픈 유혹에 끌렸다.
보관함에서 200년 묵은 와인을 끄집어내는 그 손님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려고 했다. 그에게 다가서던 순간
그만 주인은 지나친 흥분에 못이겨 마루바닥에 엎어지고 병은 산산조각이 났다.
마침, 곁에 있던 홀 지배인이 부랴부랴 티스푼을 들고 와 마루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 와인을 담아 보았다.
아뿔싸! 이미 와인은 식초로 변한지 오래였다. 산화가 수해 전부터 진행되었음이 분명했다.




[ 글 | La revue du vin de France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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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43

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는 넷째 날 아침을 블랙힐스에서 맞았다. 맑은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새로워졌다. 블랙힐스에서 만났던 많은 이야기들은 그것대로 제 살던 곳에 남겨 두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찾아오는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긴 하루의 시작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찾아들기 전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 도착하려면 거의 9시간을 달려야 했다.
 
  자동차의 시동 소리도 상쾌했다. 길을 떠나자 길 가에 서있던 소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반긴다. 잘 가라고 반가웠다고 인사를 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참으로 잘생긴 소나무들이다. 배드랜즈(Bandlands)의 소나무들과는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배드랜즈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작고 비틀려 있었다. 껍질은 터져있었다. 하지만 블랙 힐스의 소나무들은 모두 하늘에 닿을 듯 키가 크고 곧게 뻗었다. 껍질 또한 터지지 않아 단정한 모습이었다. 너무나 다른 삶이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그렇게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늘 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때로는 배드랜즈의 소나무들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며 싸우고 때론 블랙힐스의 소나무들처럼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면서 말이다.
 
  10시가 조금 지났다. 신성한 땅 블랙힐스를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무지가 펼쳐진다. 키 작은 나무들이 간혹 보일 뿐이다. 먼지 때문인가. 회색이다. 푸석거리는 메마른 땅에 불쑥불쑥 보이는 그 희끗한 모습이 어느새 듬성듬성 자리 잡은 터럭허연 수염 같았다.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텁수룩해지는 나는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 계획 이외의 다른 계획을 하나 세웠다. 그것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벌써 나흘이 지났다. 닷새 째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조금 생경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얼굴의 반을 덮은 턱수염 사이사이에서 흰 수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느 겨울 어스름한 저녁 내리는 눈발 같기도 하고 푸르른 소나무 숲 가운데 끼어 있는 자작나무나 흰 참나무 같기도 하였다.
 
  이렇게 흰 수염이 자랄 때까지 잘도 살았구나.
  하기야 머리에 내린 서리가 어찌 턱이라고 피해가겠는가.
  그들도 나와 함께 살아가며 세월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런 상념에 마음 빼앗기고 있을 때 길가의 입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묘한 글귀였다. 'Gold loves you!'라고 적혀있었다. 아니 아무리 금으로 유명했던 땅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보았다. 나의 착각이었다. 입간판에는 'God loves you!'라고 적혀 있었다. 블랙힐스의 금에 얽힌 슬픈 역사에 젖어 있던 나는 God을 Gold로 잘못 본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하고 있는 동행에게 'God'과 'Gold'는 'L'자 하나의 차이 밖에 없다며 웃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묘한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여행길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반감시킬 수 있는 이런 상념들은 인디언들이 '대초원'이라고 불렀던 와이오밍 (Wyoming)주에 들어서며 곧 사라졌다. 미국 최초의 National Forest인 'Big Horn National Forest'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서부로 자동차 여행을 하는 이들은 꼭 들려 보기를 권한다.

  자동차를 몰아 허공에 길을 놓은 듯 굽이굽이 보이지 않는 산허리를 따라 오르자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정상이다. 산 정상이라면 뾰족한 봉우리로만 알고 있던 내 앞에 상상할 수도 없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광활해 보이는 초원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길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황량해 보이는 바위들과 곳곳의 작은 호수들과 그 호수들을 이으며 고요히 흐르고 있는 시내들을 품은 채 하늘과 초원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이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할까. 하늘에 오르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마음 깊이 젖어드는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사이 자동차는 서서히 산 아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느라 잠시 차를 세운 우리 곁으로 말 탄 카우보이의 무리들이 지난다. 나의 삶이 여기 있듯이 그들의 삶 또한 거기 있었다. 여행이란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길을 재촉했다. 빅혼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오후 4시 33분. 옐로스톤을 향해 달린 지 7시간 30분이 지났다. Shoshon National Forest에 들어선다. 하늘이 검어진다. 빗방울이 뿌린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온다. 폭우다. 협곡을 지나며 비바람은 다소 주춤하였지만 기온은 급강하 하였다. 화씨 95도까지 올라갔던 기온이 화씨 59도가 되었다. 바람에 깎인 검붉은 바위들 사이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깊은 계곡이다. 계곡으로 많은 물이 흐른다. 산이 깊으면 계곡도 깊고 물도 깊이 흐르는 법이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많고 계곡을 돌아 나오는 바람도 거센 법이다. 그래서 그런가. 바람이 드세다.

  우리는 드디어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세계 국립공원제도의 발상지인 옐로스톤에 도착하였다. 오후 5시 15분이었다. 공원의 동쪽 문으로 들어서자 1988년 대화재 때 타고 그을렸던 나무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화석화된 나무들처럼 서 있다. 불탄 숲과 나무들은 눈으로 보기에도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숲은 푸르러지고 깊어지고 있었다. 숲을 지나자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옐로스톤 강이다. 내린 비 때문이었을까. 강은 더욱 맑고 잔잔하게 흐르는 듯하다. 잠시 차를 세우고 강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저렇게 흘러왔을까.
  우리의 삶도 저렇게 맑게 흘러갈 수 있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사슴(Elk)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더 나아가자 나무 숲 사이로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옐로스톤호수(Yellow Lake)였다. 최대수심 320피트, 폭 14마일, 길이 114마일에 달라는 북미에서 가장 큰 호수인 옐로스톤호수이다.

  깊은 산 속에 어떻게 이렇게 큰 호수가 있을 수 있을까.
  이 많은 물이 어디서 흘러 왔을까.
 
  마치 바다와 같다. 지나는 배 때문이었을까. 깊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을까. 물이 출렁인다. 밀려든다. 파도가 치는 듯하다. 호수 건너에 낙조가 드리운다. 은빛으로 빛나며 출렁이던 호수 면은 조금씩 붉게 물들어간다. 바람을 따라가는 듯 이끌리는 듯 배 한 척 흐른다.
 
  옐로스톤 호수에서 많이 잡힌다는 송어 낚시를 나온 것일까.
  그저 이 길에서 마음 담으려고 제 몸 띄운 것일까.
 
  조금씩 해가 기운다. 낙조가 깊어진다. 호수 곁으로 난 길을 따라 자동차를 몰아갔다. 어둠이 깃들기 전 옐로스톤 강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과 폭포를 마음에 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비지터 센터의 안내인이 알려준 대로 노스 림(North Rim)의 인스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로 향했다.
 
  자동차를 따라 어둠이 깃드는 듯 했다. 자동차를 세우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떼었다.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멀리서 '우르릉 우르릉-' 천둥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포였다. 이정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 눈부시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엄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폭포가 있었다. 그 폭포를 가슴 가득 품어 안고 협곡을 따라 깊이 흐르고 있는 옐로스톤 강이 있었다.

  그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강이 아니라 협곡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협곡이 아니라 산 전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산과 협곡과 강을 따라 나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옐로스톤은 나를 맞고 품어 주었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 위로 낙조가 깊어지고 있었다. 강물도 협곡의 바위들도 나무들도 나도 모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옐로스톤에서의 첫 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옐로스톤의 아침이 밝았다. 석고보드와 목재를 조합해 만든 조금은 어설픈 오두막이었으나 아침은 눈부셨다. 눈부신 햇살이 들어 왔다. 눈을 뜨자 어제 저녁에 먹은 꽁치김치찌개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지난 밤의 아름다웠던 별빛과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침이었다. 행복한 밤 행복한 아침이었다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서둘러 오두막을 나섰다. 숲은 아름답고 발걸음은 여유로웠다. 우리는 다시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stone)으로 향했다. 옐로스톤 강이 품고 있는 Lower Falls를 곁에서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Lower Falls로 내려가는 길인 Lookout Point Trail은 한가로웠다. '우르릉- 우르릉-' 폭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은 가파르다. 이른 새벽 Lower Falls을 만나고 오는 이들의 눈인사가 지나간다. '우르릉- 우르릉-' 대던 소리가 '콰콰쾅-콰콰쾅-'하는 소리로 바뀌자 거짓말처럼 Lower Falls 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온통 물보라뿐이다.
 
  물보라를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젊은 날 상처 받은 마음을 씻어 내기 위해 떠났던 길 먼 바다 새벽에 만났던 해무처럼 피어오른다. 물안개들이 얼굴로 목덜미로 스며든다. 몸으로 젖어든다. 협곡의 절벽을 타고 오른다. 강이 오랜 세월 제 몸 부대끼며 만들어 놓은 협곡이다. 바위틈마다 물안개 꽃이 피어오른다. 물안개와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듯하다. 갈구하며 다가서는 듯하다. 나무는 파르라니 떨며 몸을 흔들고 물안개는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른다.
 
  내 삶도 저렇게 흐르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내 삶도 저처럼 제 갈 길로 흘러가기만 하였으면 되었을 것을...
  내 삶도 저렇게 갈구하며 사랑하면 되었을 것을...
 
  돌덩이 뿐인 이 산에 이끼도 자라고 이름 모를 꽃들도 피어나고 소나무도 자라듯이 그렇게 내 삶도 아름다워질 것을 말이다.
 
  왜 사랑을 택하지 못했을까. 왜 제 사랑을 택하지 못하고 사랑하기에 보낸다는 세상의 허튼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왜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왜 제 삶도 존중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삶을 존중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수작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눈물이 난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발걸음을 돌린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내려온 길이 아득하다. 숲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오른다. 쉬어가는 굽이에서 지친 다리 쉬고 있던 인상 좋은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사이 아득하기만 했던 길이 이내 가까워졌다.
 
  우리는 Mammoth Hot Spring Terrace를 지나 또 다른 간헐 온천들이 모여 있는 West Thumb를 향했다. 그날 밤 숙소였던 그랜트 빌리지(Grant Village) 부근이었다.

  약 60만 년 전 화산의 격렬한 폭발로 형성된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수많은 간헐 온천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지표면에서 30마일 정도의 깊이에서 흐르고 있는 마그마(Magma)가 옐로스톤에서는 불과 2, 3마일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그마들은 수많은 간헐 온천들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무숲을 만들어 놓았다. 약 200만 년 전 화산 폭발과 지각 변동으로 인해 화석이 된 나무숲이다. 그 화석의 숲을 바라본다. 그 화석 숲이 품고 있는 200만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 숲에는 늘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야 삶과 죽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숲에서는 다르다. 200만 년의 세월을 품고 화석이 된 채 서 있는 나무들 가득한 옐로스톤의 숲에서는 더욱 다르다. 삶과 죽음은 늘 하나이다. 삶은 죽음을 향하고 죽음은 삶을 품으며 늘 새로워진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것이 숲의 가르침이다. 모든 숲의 가르침이다.
 
  화석 숲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든 사이 자동차의 속력이 줄어들더니 이내 멈추어 섰다. 창을 여니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미국산 들소 바이슨(Bison)이다. 바이슨 두 마리가 느린 걸음으로 도로 한 가운데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못생겼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듯 가까이 바라보니 눈동자가 참으로 맑았다. 순하게 생겼다. 나는 손을 내어 뻗어 만져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야생동물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최대의 자랑이요 볼거리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가장 성공한 야생동물들의 성역지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야생동물들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미국산 들소(Bison), 북 유럽산 큰사슴(Elk), 로키양(Bighorn Sheep), 캐나다산 큰사슴(Moose), 사슴(Deer), 노새(Mule), 회색곰(Grizzly Bear), 미국산 가지뿔영양(Pronghorn), 코요테(Coyote), 산 사자, 비버(Beaver), 독수리, 물수리(Osprey), 흰 펠리컨(White Pelican) 등 수많은 야생동물이 그들이다. 실로 동물을 단순한 구경거리 정도나 재화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동물들의 천국이다. 이런 야생동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바이슨(Bison)들이 지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며 유쾌하고 통쾌했다. 7월의 뜨거운 열기로 지쳐가던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즐거워졌다. 행복했다.

  길이 열리자 우리는 다시 나아갔다. 바다와도 같은 옐로스톤 호수는 늘 곁에 있었다. 마침내 West Thumb에 도착하였다. 호수 곁으로 난 트레일이다. Mammoth Hot Spring Terrace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간헐온천(Geyser)들이었다. Black Pool은 말 그대로 깊이를 느낄 수 없는 어둠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했고 Abbyse Geyser 또한 '깊은 바다'라는 뜻처럼 넓고 깊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색조같이 여러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호수와 같은 Abbyse는 수 십 가지 색을 품고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을 졸이다 호수 곁을 걸었다. 호수 바닥에도 Geyser들이 있었다. 뜨거운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Geyser를 중심으로 호수 면에 동그란 파문이 연이어 일고 있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만난 많은 Geyser들 중 압권은 물론 가장 유명한 Old Faithful Geyser였다. Old Faithful Geyser는 다른 Geyser들과는 달리 분출 시간도 1시간 여 간격으로 일정할 뿐 아니라 분출량도 평균 8천 400갤런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우리가 찾은 그 날도 도착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온천수를 분출하였다. 높이가 수 십 미터는 넘어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천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사람들 모두 탄성을 뱉어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Geyser의 짧은 분출이 끝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많던 사람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글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 순간 나는 다소 서글퍼졌다. 그들이 제가 보려고 했던 것만을 보고 훌쩍 떠나서였을까. 언제나 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본 듯해서였을까. 그저 마음 한 구석이 쓸쓸했다.

  나는 Old Faithful의 오래된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1988년에 있었던 큰 불길도 침범하지 못했다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다는 고색창연한 건물도 바라보았다. Old Faithful로 오던 숲길처럼 깊은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아름다웠다.
 
  이곳을 다녀간 모든 이들의 삶도 이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했다.
  하루 종일 뜨겁던 해는 기울고 마음은 안온한 저녁이었다.  
    
  

 
  최창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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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날 폭포 곁에 앉아 - 요세미티 국립공원

버날 폭포 곁에 앉아 - 요세미티 국립공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39

버날 폭포 곁에 앉아 - 요세미티 국립공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7월 16일 길을 떠난 지 여덟 번째 맞는 아침이었다. 3,197마일(mile)을 달려 왔다. 아직은 달려온 길 보다 달려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오전 11시 30분 우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을 향해 출발하였다. 지쳐가는 몸과는 달리 자동차의 시동 소리는 가벼웠다. 아름다운 타호 호수(Taho Lake)와 토파즈 호수(Topaz Lake)를 지난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행이란 새로운 길을 가며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워진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우리 삶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며 새로운 것들을 만난 후 새로워졌기 때문인지 새 날로 돌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삶은 여행이다. 요세미티로 가는 길도 이 길의 끝에서 품어 안게 될 요세미티도 모두 나의 삶이다.   


  이 길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곳에서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요세미티'는 이름부터 매력적이었다. '요세미티'는 'They are killing us.'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물론 'They'는 회색 곰이다. 등산객들이 나무에 걸어 놓은 음식물이나 자동차의 안에 놓아둔 음식물을 곰이 습격하였다는 등의 일은 요세미티에서는 흔한 일이다. '요세미티'라는 말 자체가 '회색 곰이 사람을 해치웠다' 는 의미의 인디언 말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하니 회색 곰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공원의 자랑은 당연히 그 빼어난 아름다움이다. 요세미티는 자연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숲에서 살아가고 있는 200종이 넘는 야생 조류와 75종에 이르는 많은 포유동물은 숲을 더욱 살아 있는 숲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그 뿐인가. 수 십 만 년에서 수 백 만 년 동안의 화재와 빙하에 의해 이루어진 하늘 높이 솟은 험준한 화강암 돔들 또한 이 산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요세미티 계곡 위로 완벽한 반달모양으로 우뚝 서있는 Half Dom, 4,000피트 높이의 El Captain 등과 같은 석상들이 그들이다.
 
  그 뿐인가. 해발 609미터에서 3,962미터에 이르는 다양한 표고의 차이로 산은 5개의 상이한 식물대를 품고 있어 침엽수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참나무 등의 경목과 관목 그리고 야생화를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다. 또한 요세미티는 아름다운 폭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612피트의 높이를 자랑하는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리본 폭포(Ribbon Fall), 높이는 317피트 밖에 되지 않지만 물이 많을 때는 폭이 100피트가 넘는 풍요한 모습을 자랑하는 버날 폭포(Vernal Fall), 그리고 이 국립공원의 상징이 된 1,430피트의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 등이 있다.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높이를 지니고 있는 폭포 중 5개가 이 산에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폭포를 많이 품고 키워온 산이니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말이다.


  달리는 일의 무료함에 지쳐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차창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할퀴듯 훑는다. 화씨 100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발 9,000피트였다. 지나는 이들은 지나는 이들대로 내버려둔 채 버펄로(Buffalo)들과 양 떼들이 한가롭다. 풀을 뜯는다. 하늘 가까운 이곳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이런 삶도 저런 삶도 모든 제 삶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을.
  왜 그렇게 제 삶을 몰아붙이기만 했을까.
 
  그렇게 차창 밖의 삶들로부터 위로를 받아가며 맞이한 저녁 우리는 요세미티에 도착하였다. 숙소를 예약해 놓지 못한 우리는 산허리를 끼고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Tioga Road를 따라 Yosemite Valley로 달렸다. 하늘 끝에 매달린 채 허공으로 난 길을 달리는 듯했다. 1시간 30분이나 달려갔지만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밤은 깊어갔다. 우리는 공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Arch Rock Entrance로 나가 Cedar Lodge로 향했다. 하지만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공사로 인해 길이 끊겼다는 안내판만 계속 나타났다. 깊은 밤 산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은근히 일어났다.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처럼 가도 가도 나올 것 같지 않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가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가 보다.
 
  그래서 삶에는 믿음이 필요한 모양이다. 신념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들 하는 모양이다. 우주와 자연을 만든 어떤 힘에 대한 믿음, 자연에 대한 믿음, 숲에 대한 믿음, 제 인생길과 삶에 대한 믿음 말이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신념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를 소멸시키는 믿음 말이다. 참으로 믿음만이 두려움을 소멸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믿음의 끝에 Cedar Lodge는 있었다. 겨우 숙소로 찾아 든 우리는 지친 몸을 뉘였다. 산은 깊고 물은 맑은데 사람만 분주한 하루였다. 숲은 잠들어 깊고 그윽하게 제 향기 전해오는데 사람만 깨어 시끄러운 밤이었다.
  시끄러운 이들은 그들대로 내버려둔 채 산을 따라 깊이 잠들었다.
 
  요세미티의 첫 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요세미티에서 보낼 수 있는 온전한 하루였다. 우리는 버날 폭포(Vernal Fall)와 Mirr Lake Trail과 Yosemite Lower Fall Trail을 걷기로 하였다.   


  버날 폭포로 향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웅성거림은 깊은 산에 묻히고 폭포 소리에 묻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온전히 홀로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Vernal Fall Bridge를 지나 700개의 돌계단을 오른다. 폭포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하나하나 돌계단을 오른다. 중간쯤 올랐을까. 물안개가 봄 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피어오르고 폭포수는 바람에 제 몸 흩날리며 비 오듯 쏟아져 내린다. 순식간에 모자도 옷도 모두 젖는다. 온 몸이 젖었다. 행여 여권이 젖을세라 뒷주머니에 단단하게 여며 넣고 배낭을 추스른다. 바위틈에서 기어 나온 듯 지렁이 한 마리가 보인다. 탈색된 흰 지렁이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아온 때문이리라.
 
  수량이 많아진 폭포가 쏟아내는 물줄기가 바위틈과 땅 속으로 스며들자 숨을 쉬기 위해 제 집 밖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지렁이를 바라본다. 지렁이조차도 자연에 순응하여 제 몸의 색을 버리고 몸을 변화시키는데 사람만이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 뜻과 욕심에 맞추려한다. 슬픈 오만이다. 자신의 삶 뿐 아니라 자연까지도 파괴하게 될 슬프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무지이다. 피조물 중 오직 인간만이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에게 희망이 있을까.
 
  이런 생각에 젖어 들며 폭포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그 때까지의 말과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아무런 말도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폭포 아래 절벽 기슭으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일어나는 물안개 위로 일곱 빛깔의 다리들이 가슴 시리도록 곱게 층층이 놓여 있었다. 다리들은 하나하나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아름다움이 있어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가.
 
  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가슴을 부여안고 돌계단을 내려 왔다. 우리는 폭포가 만들어 놓은 계곡의 아름다움 속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주먹밥, 김치, 당근, 양배추 등이었다.
 
  '과아~ 과아~'
 
  어치가 운다. 멀리 떠나온 땅에서 어치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하기야 참나무 가득한 숲이니 어찌 어치가 없겠는가. 어치가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숲의 낯선 이는 어치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 듯 내 앞으로 다가 온 어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등의 하늘 색 무늬가 아름답다. 낯선 이를 금방 반기는 마음이 된 듯 내 앞에서 발을 모아 깡충깡충 뛰어 다니더니 이내 제 갈 길로 갔다.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도 어치처럼 제 갈 길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길을 나섰다.  


  바람이 분다. 계곡이 깊으니 바람도 깊다.
  하늘이 맑은 여름날이었다.

  
  말없이 흐르는 Mercedes 강을 바라본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수면에서 부서진다. 햇살의 정령들이 수면 위에 머물며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춤을 춘다. 이른 아침 햇살은 뜨겁다. 몸은 땀으로 젖고 마음은 눈부시게 흐르는 강물의 아름다움에 젖는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강줄기 내 마음으로 흐르며 지나 온 삶의 고단함을 씻어준다. 강물은 빛으로 출렁이며 깊게 흐른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여 부르는 듯도 하고 함께 가자며 무심히 나를 바라보는 듯도 하다.
 
  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 볼까.
 
  나는 생애 처음 래프팅(Rafting)에 도전하였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의 뒷덜미를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난 두려움이 부여잡고 있었지만 나는 Mercedes강에 이끌려 배를 탔다. 거센 물살과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노를 저었다. 강물을 들여 보았다. 그 속에서 요세미티가 함께 흐르고 있었다. 어제 만났던 신비로운 Vernal Fall도 아름다운 Mirror Lake도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고 먼 허공에서부터 우르릉 거리며 쏟아져 내리던 장엄한 Yosemite Fall도 그대로 흘러들어 함께 흐르고 있었다. 강은 흘러드는 모든 것을 모두 품어 안은 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강물을 Half Dome은 멀리서 바라보고 그 곁의 화강암 돔들 위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바람을 맞으며 외로웠다.
    
  그렇게 함께 흐르고 흐르다 나는 문득 잃어버린 강이 그리워졌다. 요세미티가 Mercedes River와 함께 품고 있었던 Tuolumne River이다. 지금은 매몰되어 사라진 강이다. 요세미티를 자연 그대로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존 뮈러(John Muir)와 많은 활동가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강행된 Hetch Hetchy의 댐 공사로 Tuolumne River은 매몰되어 사라졌다.
 
  그 강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찾아 온 이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없애고 잃어버린 후에야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까.
 
  강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끊임없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을 잃어가고 있다. 산소를 생산하는 나무와 숲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숲을 없애고 있다. 강과 숲만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어찌 그런 것들뿐이랴.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이 어찌 그것들뿐이랴.
 
  사랑도 삶도 잃어가고 있다.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랑 없는 삶을 택하기도 하고 제 삶을 구원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세상이 정해 놓은 신념과 목표에 마음을 빼앗겨
 
  제 삶을 잃어버리곤 하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인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 삶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있을까.
  마음으로 젖어드는 생각들을 견딜 수 없어 나는 Mercedes River를 떠났다.
  흘린 눈물이 마음 깊은 곳으로 젖어들까 두려워 나는 강 곁을 떠났다.   


  마리포사(Mariposa) 지역으로 향했다. 748,542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공원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용되었다. 마리포사에 다가가자 오랜 동안 잊고 지냈던 세콰이어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었다.
 
  세콰이어(Sequoia) 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잃어버린 또 다른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칠팔십년을 사는 인간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빙하기라는 시대를 지나 온 나무들이 그 시대의 흔적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있었다는 나무들이 거기 그렇게 말없이 있어 그들의 삶을 증거하고 있었다. 다 자라면 키가 120m에 이르고 밑둥치가 8.5m에 이른다는 거대한 나무들이다. 수령이 2,000년에서 3,000년 된 나무들이었다. 나무 하나에서 나오는 목재만으로도 수 십 채의 목조 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나무들이다.
   


  그 거대한 나무들이 장대한 모습을 드러낸 채 하늘을 찌를 듯 서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쓰러져 있는 나무들의 곁에 선 후에야 그 나무들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부러져 있는 작은 나무줄기 하나만으로도 작은 오두막 한 채는 지을 듯하였다. 굵기만 해도 내 몸통의 서너 배는 돼 보였다. 그 장대함과 원시적인 모습으로 인해 마치 세월을 알 수 없고 시간을 느낄 수 없는 고대의 원시림에 들어온 듯하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 천 년 세월이 거기 머물러 있는 듯하였다. 감히 느낄 수 없는 수 만 년 세월의 무게가 온 몸으로 전해졌다. 그 나무들의 말이 들려 왔다.
 
  삶이란 한 순간이니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삶이란 찰나에 지나는 것이니 다른 누구의 삶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가세요. 그 삶으로부터 수많은 삶들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숲은 언제나 숲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아니 숲에 사는 생명들만이 아니라 이 땅에 몸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봄이면 피었다 지는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에서부터 수 백 년 수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의 참나무나 주목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몸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의 색이 노란 것도, 진달래나 철쭉의 색이 붉은 것도, 개망초꽃이나 조팝나무의 색이 하얀 것도 모두 제 삶의 흔적이고 이야기들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고 할지라도 껍질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 결 곱게 가지런히 옷을 입은 나무도 있지만 결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껍질이 갈라지고 터진 나무도 있다. 모두 제 삶의 흔적이고 이야기들이다. 나무와 꽃만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기울여 들으면 바람이 전하는 제 삶의 이야기도 숲이 전하는 제 삶의 이야기도 모두 들을 수 있다.
 
  모두들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제 삶의 말을 하고 있다.
 
  자연에서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다. 아니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의 흔적을 지니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다.
 
  그 슬픈 노력의 결과 때문일까. 사람들은 제 마음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제 삶의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생각의 말만 하게 되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이 가르쳐준 생각의 말들을 마치 제 삶의 말인 것처럼 하며 살아간다. 세상이 마음에 넣어준 생각의 말들을 마치 제 삶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며 살아간다. 슬픈 일이다.
 
  깊은 슬픔으로 인해 눈물이 마른다.

  세콰이어 나무들이 말없이 둘러서 나를 보고 그저 웃는 듯하다. 잃어버린 것은 수 만 년 흘러온 Mercedes강이나 Tuolumne강이 아니었다. 수 만 년 그 자리를 지켜온 세콰이어 나무들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의 삶이었다.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의 삶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삶이 세콰이어 나무들 사이에 서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포시 웃는 듯도 하였고 슬픈 듯 눈물 가득 서린 듯도 하였다. 나는 눈물 가득 서린 듯 한 그 눈을 바라보며 반가움에 눈물 흘렸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고 싶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라만 보았다.
 
  하늘 높이 솟은 세콰이어 나무들 사이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숲만큼이나 깊어진 오후였다. 
   
 
 
  최창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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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35

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는 세콰이어(Sequoia)와 킹스캐년(Kings Canyon) 국립공원(National Park)에 들어섰다. 어제 오후 요세미티에 내리던 부슬비가 밤사이 그치더니 아침이 되자 다시 내렸다. 비는 안개처럼 퍼져나가며 깊은 세콰이어 숲을 더욱 깊고 신비하게 감쌌다. 주위를 둘러보자 손에 잡힐 듯 휘트니 산(Mt. Whitney)이 눈에 들어왔다. 14,495피트를 자랑하는 알래스카 남쪽의 미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세콰이어 국립공원으로 들어오는 길 내내 가까이 손에 잡힐 것만 같고 품에 안길 것만 같던 산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곁에 있는 듯 가까이 느껴지던 산이다. 그 산줄기가 품은 숲으로 들어왔다. 들어서는 길목 길목마다 거대한 세콰이어 나무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마중하고 있었다.
 
  지난 밤 설친 잠으로 인해 무거운 피로감이 끈끈하게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겨우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를 얻기 위해 다시 공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소나무 숲'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Pinehurst Lodge였다. 깊고 깊은 숲 속에 자리한 이 Lodge는 단 하나의 오두막(Cabin)만을 운영하고 있었음에도 시설이 좋지 않았다. 현관문의 시건 장치도 건드리기만 해도 빠질 것 같은 문고리 하나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우리는 주인도 제 집으로 돌아가 텅 빈 숲 속의 오두막에 들었다. 밤이 깊어가자 은근한 두려움이 찾아 들었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마음이 쓰이고 때 아니게 떨어지는 솔방울 소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뿐인가. 초저녁부터 Lodge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인부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괜히 걱정스러웠다. 낯선 객지에서의 걱정들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이런 저런 걱정과 근심으로 조심스럽게 잠든 밤의 흔적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낯선 경험이었다. 여행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그런 낯설고 새로운 경험은 아침에도 찾아 왔다. 공원의 주차장에서 나와 마주친 한 백인이 'Great! Great!'하며 외쳤다. 코밑과 턱에 정성들여 수염을 기른 백인이었다. 귀 밑까지 거의 얼굴 전체를 무성하게 덮고 있는 내 수염이 부러웠던 것일까. 그는 초면인 내 얼굴을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두 손을 내 얼굴 가까이에 댄 채 'Great!'를 연발하였다. 수염을 기르는 이들은 수염만 보이는 걸까. 'Thank You!' 하고 대답하며 실없는 웃음을 웃었다. 거울 앞에 서 있던 아침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텁수룩하게 자라난 내 수염을 바라보았다. 이틀만 깎지 않아도 곤두선 수염이 얼굴의 반을 덮는 내 얼굴은 이미 수염으로 가득 찼다. 모자를 쓰면 수염만 보였다. 수염이 말하고 웃으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만해도 거칠고 꼿꼿하여 오므린 제 입술을 찌르던 수염이 열이틀이 지나자 부드럽게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대견했다. 부드럽게 누운 수염은 대견했으나 수염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처럼 꼿꼿하던 수염도 열이틀이 안 되어 부드러워지는데 50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여전히 부드럽지 못하였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마음공부가 부족하여 작은 일에도 여전히 짜증을 잘 내었다. 마음이 불편하면 그것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드러내어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 뿐인가.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고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면 괜히 심술부리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 부드럽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수염도 아는 지혜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심 부끄러운 마음에 수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흰 수염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턱 밑에도 코 밑에도 귀 밑에도 흰 수염이 나와 있었다. 나는 의식하지 못한 세월을 수염은 홀로 앉아 세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리에만 서리가 내리는 줄 알았더니 얼굴 전체에 내려앉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들이다. 나의 지나온 삶을 말하고 있는 흔적들이다. 하기야 길가에 구르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돌멩이도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수염이 말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세콰이어 나무 가득한 숲으로 들어갔다. 마리포사의 나무들보다 더욱 장대하게 자란 세콰이어 나무들이 줄지어 앞을 막아선다. General Grant Tree Trail을 지나 Big Stump Trail에 있는 Giant Forest로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부피가 큰 나무로 알려져 있는 Gerneral Sherman Tree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곧추 세우고 바라보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끝이 천국처럼 아스라하기만 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정말 하늘에 닿을 것만 같았다. 길 곁으로 나있던 Congress Trail로 들어서자 공원 내에서도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앞에 단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General Lee Tree, President Tree, The Senate Tree, The House Group Tree 이다. 모두 수 천 년을 살아온 나무들이다. 어떻게 이렇듯 오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탄닌(Tannin) 성분과 두꺼운 껍질 때문이었다. 나무가 품고 있는 풍부한 탄닌 성분은 나무들을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게 지켜주었고 바깥 껍질의 두께만 2피트이고 속껍질의 두께가 1피트인 두꺼운 나무의 껍질은 불로부터 나무를 지켜 주었다.
    
  그렇겠지. 그래서 이렇게 장대한 나무로 자랄 수 있었겠지.
 
  나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숲을 둘러보았다. 하늘에 매달린 듯 높이 솟은 수많은 나무들 모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온 숲을 감싸고 있었다.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햇살도 붉었다. 붉은 빛이 서기처럼 온 숲을 감싼 채 피어오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하늘에 닿아 있는 나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 누워 있는 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장대하나 뿌리가 깊지 못한 세콰이어 나무들이 거센 바람에 쓰러진 것이다. 폭우로 인해 땅이 들뜨자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진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본다. 어루만진다. 탄닌 성분으로 인해 숲의 청소부인 박테리아나 버섯의 공격을 받지 않은 나무들의 모습은 쓰러져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그 지나친 당당함을 바라보며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졌다. 장대하나 드리워지는 맛이 없는 세콰이어 나무의 슬픈 운명을 보는 듯했다. 그들의 슬픔이 손에 만져지는 듯했다. 죽은 것들은 죽은 것들대로 숲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데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의 슬픔을 돌아가는 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죽은 나무들은 저마다 제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을 안은 채 숲 여기저기에 누워 있다.
    
  숲에 어리던 그 붉은 빛은 이 슬픔이 아니었을까.
  이 슬픔들이 그리도 붉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에 젖어 발걸음 떼고 있는 내 눈에 작고 여린 잎 하나가 들어온다. 어찌된 일인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완전히 분해되어져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그 붉은 세콰이어 나무의 잔해에서 기적같이 파란 여린 잎 한 쌍 마주보며 나란히 자라있었다. 붉게 빛나던 햇살이 금빛으로 바뀌며 여린 잎을 비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내 가슴은 터질듯 뛰고 맥박은 무자맥질하는 물고기처럼 펄떡였다.
    
  나는 내 가슴과 맥박을 부여잡고 여린 잎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붉기만 하던 숲이 푸르게 변하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여린 잎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숲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창남/작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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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시간과의 조우 -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에서

위대한 시간과의 조우 -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에서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33

 위대한 시간과의 조우 -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에서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위대한 시간과의 조우

 
 


   
  
  한낮인데도 하늘이 검어졌다. 비가 오려나보다. 라스베가스(Las Vegas)를 떠나 자동차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실 끝에 매달린 요요처럼 길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길의 어딘가에 Grand Canyon National Park이 있었다. 낮아진 하늘 탓인지 바람이 거칠어졌다.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온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화씨 117도에 이르던 기온이 화씨 97도까지 떨어졌다.
 
  어두워진 하늘에 섬광이 인다. 번개가 하늘을 수직으로 가르며 연이어 떨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들이 차창을 무섭게 때렸다. 빗방울과 트럭이 일으킨 물보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화씨 73도까지 떨어졌다.
 
  차창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사막의 모습은 어둠 탓인지 아스라했다. 사막의 한 가운데를 지나면서도 사막은 멀리 있는 듯했다. 잠시 그쳤던 비 사이로 차창을 열자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가슴으로 젖어 들었다. 다시 비가 내렸다. 차창의 빗방울들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여 부르기도 하고 함께 가자며 소리 내어 부르기도 하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지나온 길이 가야할 길을 불러 세우고 가야할 길이 지나온 길을 재촉하는 듯하였다.
    

  아무래도 비가 제법 오려나보다.
  거짓말처럼 사막의 한 가운데로 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길도 끝이 있겠지.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잠시 올랐던 온도는 다시 화씨 64도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한기가 느껴졌다. 옷깃을 여몄다. 옷깃을 여미는 사이 우리는 애리조나 주(Arizona State)로 들어서고 있었다. 애리조나 주로 들어오며 다시 시간 선을 넘었다. 서부로 내려오며 벌어들였던 시간을 돌려주어야만 했다. 손목시계를 물끄러미 들여 보았다. 얼굴이 비쳤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 얼굴 곁에 삶도 따라와 있었다. 시간을 돌려주며 내 삶을 바라보았다.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어찌 시간뿐이랴. 삶 또한 그러하다. 아무리 오랜 세월 길 떠나 있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떠나온 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젊은 날 어리석음으로 잃어버렸던 제 삶의 날들 역시 삶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 시간을 돌려주었다. 이제 두 시간만 더 돌려주면 나도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늘은 밝아지고 있었다. Kaibab National Forest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조금씩 밝아지던 하늘이 아주 맑고 밝아졌을 때 우리는 Grand Canyon National Park으로 들어섰다. 오후 6시 14분이었다. 조금 더 달리자 그랜드 캐년의 웅장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협곡을 따라 난 트레일(Trail)을 잠시 걸었다. 아직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도 않은 그랜드 캐년의 모습에 나는 이미 압도되어 있었다.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그랜드 캐년은 단애와 단애들이 저마다 제 품에 맞는 바위를 차곡차곡 품어 안은 채 거기 그렇게 있었다. 이름 그대로 위대한 협곡이었다.
   


  그랜드 캐년은 45억년 지구의 나이 중 20억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20억년이라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일어났던 대륙의 진화과정을 바위의 각 층마다 새겨 넣은 채 장구한 세월의 강을 건너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대륙판이 언제 어떻게 이동하였으며 파괴 되었는지 큰 바다가 어떻게 전진하고 후퇴하였는지 기록되어 있다. 전체 산맥의 융기와 침식 과정도 기록되어 있고 광활한 모래언덕의 형성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가깝고 먼 곳의 화산들이 제각기 언제 어떻게 폭발하였는지 빠짐없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자연이 품고 있던 이 위대한 시간의 비밀들은 콜로라도 강(Colorado River)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애리조나(Arizona), 캘리포니아(California), 뉴멕시코(New Mexico), 네바다(Nevada), 유타(Utah), 콜로라도(Colorado), 와이오밍(Wyoming) 등 일곱 개의 주를 지나고 있는 2,333Km의 긴 콜로라도 강은 5백 5십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침식 작용을 통해 이 위대한 협곡을 이곳에 만들어 놓았다. 눈앞에 드러난 그랜드 캐년의 모습은 인간의 손길이라고는 조금도 미치지 않은 자연의 경이 그 자체였다. 자연의 위대함이 시간의 강을 건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위대한 협곡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20억년이라는 위대한 시간을 품고 있었다. 그랜드 캐년과의 만남은 바로 이 위대한 시간과의 만남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시간을 품고 있는 위대한 이 협곡도 한 때 사라질 위험에 처했었다. 1960년 연방 정부가 캐년의 절반 이상이 잠기게 될 2개의 댐을 건설하려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그랜드 캐년은 6,000피트의 깊이와 평균 10마일(Mile)에 이르는 넓은 폭과 277마일(Mile)이라는 길이를 그대로 지닐 수 있었다.
 
  멀리 콜로라도 강이 보였다. 이 위대한 강은 협곡 사이를 유장하게 흐르며 South Rim과 North Rim를 가르고 있었다. 그 강 곁에 서고 싶었다. 뗏목을 타고 강으로 흘러들고 싶었다. 탐험가 존 웨슬리 포웰이 '위대한 미지의 것(Great Unknown)'이라고 이야기한 그 곳으로 강줄기를 따라 흘러들고 싶었다. 그리움 때문인가. 갈증이 일었다.
  협곡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이 저녁 어스름이 찾아 들었다. 어스름 내린 협곡은 깊은 잠에 젖은 아기처럼 고요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이 위대한 협곡을 감싸고 있는 어둠 곁으로 우리는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나아갔다.
 
  우리는 Canyon Village의 Yavapai Lodge에 여장을 풀었다. 하루 종일 달려오며 사막에서 묻혀온 노곤함이 몸에 남아 있었지만 기분은 매우 가볍고 상쾌했다. 위대한 시간과의 만남이 불러일으킨 흥분 때문이었다. 나는 다소 흥분되어 있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흥겨웠다. 햇반과 통조림 꽁치를 넣은 김치찌개와 김치였다. 오랜만에 소주도 곁들였다.
    
  창밖은 고요했다. 나무들은 이 깊은 밤을 지키는 파수꾼들처럼 말없이 서 있었고 별은 빛났다. 그 별 아래 20억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품어 안은 그랜드 캐년과 내가 있었다. 나는 깊어가는 밤과 함께 시간의 흐름들을 느끼고 있었다. 예기치 못하였던 이 위대한 시간과의 조우는 나를 내 삶의 시간들로 이끌었다. 나는 지나온 내 삶의 날들로 돌아갔다.
 
  그 곳에는 아직도 내 삶의 흔적들이 남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싱싱했다. 펄떡였다. 슬픔은 슬픔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죄 없이 끌려간 김 씨와 남겨진 그의 어린 아들 생각에 기차 끊어진 철길 곁에 앉아 별 지도록 울던 날이 거기 남아 있었다. 마음 깊이 품고 있던 잃을 수 없는 사랑을 잃고 소리 없이 목 놓아 울던 밤들이 거기 아직도 남아 있었다. 제 믿음과 신념에 삶 전부를 걸고 살아가던 동료들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빼앗긴 후 피눈물 흘리며 지샌 밤들이 거기 아직도 그대로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참담했던 순간들이 그대로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어느 날이던가. 깊은 상처의 아픔으로 잠 못 이루던 영혼을 바라보며 하릴 없이 눈물짓던 순간들도 거기 그대로 남아 있어 깊은 눈망울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 밤 그 날들이 흐르고 흘러 삶의 또 다른 날들로 나를 데려왔건만 나는 아직도 그 날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어리는 듯 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깊은 협곡을 지나온 바람이 열린 창으로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새의 날개 짓처럼 퍼덕였다. 밤은 고요하고 하늘에는 오래 전 지나 온 그 날들처럼 별이 빛나고 있었다. 잠든 영혼을 깨우는 밤이었다.  
    
   아침이었다. 커튼을 걷자 따가운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늦잠을 잤다. 오랜 여정으로 쌓인 피로와 지난 밤 깊도록 잠들지 않은 탓이었다. 과일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주먹밥을 만들어 숙소를 나섰다. 우리는 셔틀 버스를 타고 Desert View Drive로 내려갔다. South Kaibab Trail이 거기 있었다. 정오에 가까워지며 햇살은 점점 뜨거웠다. South Kaibab Trail은 협곡의 가장 밑바닥까지 닿아 있었고 거기서 다시 North Rim으로 연결되었다. 약 6,000피트(2,000미터)를 내려가야 했다. 태백산 보다 깊은 협곡의 바닥까지 길은 산허리를 따라 굽이치며 이어져 있다.
 
  이 위대한 협곡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두 개의 비밀을 품고 있었다. 영겁에 가까운 20억년이라는 위대한 시간과 협곡의 깊이이다. 시간과 콜로라도 강이 만들어 놓은 2,000미터 깊이의 공간은 이 협곡이 품고 있는 또 다른 비밀이다. 이 공간에는 건조한 아열대 기후와 한대 기후가 공존하고 있다. 생태계 또한 다양하다. 협곡의 남쪽에는 소나무 향나무 등의 삼림 지대가 있는데 협곡 바닥은 모자브 사막의 생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협곡의 북쪽에는 전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다.
 
  우리를 내려놓은 버스는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는 트레일이 시작되는 지점(Trail Head)으로 이동했다. 뜨거운 기온 탓으로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안내판이 있었다. 훈련된 하이커(Hiker)라도 이틀을 잡아야 트레일을 다녀 올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 트레일을 걷다가 사망한 한 여대생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시간과 장비와 식료품 등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무모하게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말없이 바라보았다. 협곡의 높고 낮은 단애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굽이굽이 물결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띠를 두르고 있는 단층들이 바람을 따라 춤을 추듯 물러났다 다가서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스라했다. 그 아스라함 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의 대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콜로라도 강의 한 자락이 가물가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열려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은 수직으로 놓여 있는 듯 가팔랐다. 끊어진 듯 보이던 길은 협곡과 허공 사이사이로 이어져 있었다. 길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대한 협곡에 심취했다. 가장 나이 어린 돌의 나이가 500만 살인 협곡은 20억 살이나 된 돌 또한 품고 있었다. 영겁과도 같은 세월이 쌓아올린 길을 지나며 나는 고작해야 칠팔십년을 사는 사람의 삶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 짧은 삶조차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이 안쓰러웠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이 그 안쓰러움을 숨겨 주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리자 내려온 길의 끝이 멀리 있었다. 하늘에 닿아 있었다. 전나무 한 그루 하늘가에 홀로 서 있었다. 외로워 보였다.
    
  우리는 '우! 아! 포인트'(Ooo Aah Point)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지점을 지나는 이들마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에 '우!' '아!'하고 감탄을 연발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앞에 South Rim의 절경들이 펼쳐 있었다. 협곡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그뿐인가. 멀리 있던 8,000피트 높이의 North Rim이 곁에 있는 듯 정겨웠다. 자연의 위대함을 바라보며 나는 말이 없었다.
 
  그런 내가 조금 안쓰러웠던가. 바위 곁으로 노란 들국화 한 무리 피어 있어 나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메마른 땅에 피어난 노란 들국화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햇살 아래서 들국화는 더욱 아름다웠다. 들국화 아름답게 핀 길 아래로 이어져있는 길을 바라보았다.
 
  어느 결엔가 다람쥐가 나타나 먹이를 찾고 있었다. 그랜드 캐년의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낸 회백색 알버트 다람쥐였다. 내려온 길로 따라 올라갔다. 숨이 차올라 바위틈에 기대어 쉴 수밖에 없을 때 즈음 우리는 떠났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Aiki Point로 이동한 우리는 Picnic Area부터 찾았다. 허기를 달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았다. 제법 큰 나무 한 그루 앞에 있었다. 비틀리고 비틀려 나무의 껍질들이 실 가닥처럼 풀려있는 나무였다. 아니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실타래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처럼 보였다. 손을 대면 한 올 한 올 풀려 나올 것만 같았다. 손을 대자 나무껍질들이 한 올 씩 벗겨지며 비늘처럼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나뭇잎은 무성했다. 무성하게 달린 나뭇잎들이 간간이 불어오는 잔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직 나는 살아 있어요. 살아있는 나무에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모습이 되었을까.
 
  주먹밥을 맛나게 베어 물었다. 꿀맛이었다. 마침 불어온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Grand View Point를 지나 Tusayan Museum으로 갔다. 그곳에는 그랜드 캐년의 원 주인들이었던 하바수파이 부족과 후알라피 인디언 부족의 주거 환경과 삶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다. 약 4,000년 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왔던 인디언들은 이 땅에 들어온지 고작해야 467년 밖에 안 된 백인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백인들이 이 땅에 처음 들어온 것은 1540년이었지만 이 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869년 5월 John Wesley Powell 소령 일행이 콜로라도 강을 따라 본격적인 탐사를 하였을 때부터였다.
   

  그러니 백인들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은 실제로는 백 몇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백 몇 십 년의 세월이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삶을 보호구역과 박물관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지금도 그랜드 캐년의 하바수파이 인디언 보호구역에는 약 300여 명의 하바수파이 인디언들이 소규모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푸른 물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하바수파이 인디언들은 이제는 푸른 물 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구역 안에서 제한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하바수파이 인디언들의 삶을 바라보며 낮에 보았던 비틀린 나무가 떠올랐다. 인디언들의 삶도 그 나무처럼 빼앗긴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갗 터지며 찢어진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틀리고 비틀려 터져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이미 오래 전 빼앗긴 그 날 그들의 삶은 이미 찢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나무는 정말 인디언들의 삶을 닮아 있었다. 갈라진 껍질도 갈라진 그들의 손등과 깊게 주름 잡힌 얼굴을 닮아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그 나무를 생각할 때 마다 인디언들의 잠들지 않은 영혼이 그 나무에게 옮겨 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지친 몸을 쉰 우리는 다시 서둘렀다. 어둠이 깃들기 전 Bright Angel Trail을 걸을 예정이었다. Bright Angel Trail은 장사진을 보는 듯 협곡의 굽이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길게 이어져 있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자 깊은 협곡에 깃들던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벌써 나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길은 어둠 속으로 보이지 않는 끝을 숨기고 있었다. 멀리 콜로라도 강이 보였다. 강 곁으로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Indian Garden 을 지나 있는 Plateau Point였다.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Plateau Point는 숨 막힐 듯 아름다웠다.
   

  가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길을 돌렸다. 체력도 어둠도 시간도 모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 위대한 협곡을 비취며 붉게 타오르던 낙조는 어느 덧 협곡 너머로 사라졌다. 어둠이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재게 발걸음을 놀렸다. 어둠을 따라온 것인지 새들이 나뭇가지로 날아들었다. 깊은 협곡에 드리운 어둠보다 더 검은 몸집 커다란 갈까마귀(Raven)였다. 갈까마귀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어둠 깃드는 협곡을 내려 보고 있었다. 
   
 
 
  최창남/작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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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 국립공원 여행

자이언 국립공원 여행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24

자이언 국립공원 여행
 
 
 


 
  
  자이온(Zion)으로 가는 길 또한 가까운 듯 멀리 있었다. 끊임없이 달려도 결코 멈추어 서지 않는 사막의 황폐한 들녘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곁으로 산들이 들녘을 에워싸듯 첩첩이 서있었다. 어쩌면 들녘이 제 외로움 달래려고 산들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들녘의 일부이기나 한 것처럼 소리 없이 달렸다. 맑은 하늘이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맑기만 했던 하늘이 우리가 자이온의 입구에 해당하는 페이지(Page)에 이르렀을 때 흐려지더니 비가 내렸다. 검은 구름이 하늘 저 편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점점 빗방울도 굵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길을 떠난 우리가 Glen Canyon Dam과 Powell Lake를 지날 즈음에는 하늘은 온통 검어졌다. 주위는 어두워졌고 퍼붓듯 비가 쏟아졌다.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갑작스레 많은 비가 쏟아졌다.
 
  땅을 처음 발견한 모르몬교도들이 그 깊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과 장엄함에 놀라 '신의 정원'(Garden of God)이라 부르던 땅, '신의 보물'(Treasure of God)이라고 부르던 땅을 멀리 동방에서 찾아온 낯선 이방인에게 보이기 싫다는 듯 갑작스레 쏟아졌다. 그러나 검은 먹구름 사이로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번개 빛이 가야할 길을 열어주었다.
 
  화씨 105도에 달하던 기온이 75도로 떨어질 무렵 우리는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에 도착하였다. 퍼붓듯 내리던 비는 멈추었다. 비는 오후 다섯 시였다. 장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붉고 흰 바위들이 더 이상 나가서는 안 된다는 듯 앞을 가로막았다. 붉은 바위들은 아직 남아 있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분위기에 이끌렸던 것일까. 자연의 경이로움에 마음이 경건해진 탓일까. 차를 세웠다. 그 신성한 땅에 들어가기 전 땅을 딛고 몸으로 느껴야만 할 것 같았다. 아파트 수십 층 수백 층의 높이는 될 것 같은 붉은 암벽들과 갈색의 암벽들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것만 같았다. 지나 온 길에서 묻혀온 세상의 묵은 때들을 씻어내고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암벽들을 바라보았다. 암벽의 산 곁에 섰다. 신의 정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신의 손길이 닿아 있는 듯했다. 약 6,000만 년 전부터 퇴적해 있던 수성암반이 서서히 융기해 솟아나 만들어진 땅이었다. 약 1,300만 년 전 다시 융기한 후 오랜 세월 눈과 비와 바람이 쓸고 닦고 씻어내며 만들어 놓은 암벽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의 손길로 빗어진 암벽 산이었다.
   
  자이언은 그랜드 캐년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달랐다. 그랜드 캐년은 들여다 볼 수 없는 깊은 협곡의 중심을 협곡의 가장자리(rim)에서 내려다 볼 수밖에 없었지만 자이언은 바닥에서 올려 보아야 했다. 그랜드 캐년은 볼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지만 자이언은 그 깊이를 넘어선 높이에도 불구하고 그 끝을 볼 수 있었다.
 
  그랜드 캐년은 비밀을 많이 숨기고 있는 협곡을 지나는 두려움을 품게 하였다면 자이언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자연의 순결함과 담백함으로 말미암아 경건함을 품게 하였다. 그랜드 캐년은 화려하지만 자이언은 소박했다. 그랜드 캐년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에는 많은 할 말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이언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할 말은 절로 사라지고 말았다. 오직 들어야 할 말들만이 가득한 것 같았다.
 
  아직 노을이 깃들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붉은 바위들 탓인지 하늘이 붉은 듯하였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느리게 나갔다. 도로가 점점 좁아지더니 이내 터널이 나왔다. 차가 한 대 씩 밖에 지나지 못하는 터널이었다. 1,920미터에 달하는 이 긴 터널은 은 '자이언-마운틴 카멜 터널'(Zion-Mt, Carmel Tunnel)이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굿 뷰 롱 아웃 터널'(Good View Long Out Tunnel)이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것은 터널에 뚫려 있는 '천사의 창문'(Angel's window)이라고 불리는 다섯 개의 창문 때문이다. 이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빛만이 이 어두운 터널을 밝혀주는 유일한 빛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갈수록 더욱 커지는 창을 통해 보이는 자이언의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1847년 모르몬교도들이 Salt Lake City에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 공원은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천사의 창문이 있는 터널은 1930년 후버(Hoover)대통령 재직 시에 뚫렸다.
 
  우리는 천사의 빛을 받으며 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지나자 붉은 거대한 암벽들이 눈에 가득했다. 암벽들 사이로 작은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드문드문하였다.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차려 입은 어린 소년 하나가 옆으로 거대한 암벽 위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꼭 작은 전나무 같다. 무엇을 바라보는지 움직이지도 않는다.
   


  저 어린 소년도 자이언의 경이로움에 취한 것일까.
  자이언의 붉은 암벽 깊은 곳에서 울려 나는 소리들을 듣고 있는 것일까.
  자이언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일까.
 
  차를 세우고 아이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아이를 지나치며 마치 소중한 것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처럼 허전했다. 아쉬웠다. 그러나 우리는 아쉬움을 묻어둔 채 서둘러 공원 내의 유일한 숙소인 Zion Lodge로 향했다.
 
  '사슴이다...!'
 
  사슴 두 마리가 도로를 가로 질러 건너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슴 두 마리 지나온 길에 몇 마리가 아직 남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들인가 보다.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우리는 사슴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저녁 해가 아직은 붉은 암벽 산 너머로 몸을 숨기지 않았을 때 우리는 Zion Lodge에 도착할 수 있었다. Lodge 앞 광장 한가운데에 큰 참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산 전체를 가릴 만큼 큰 참나무였다. 산의 붉은 빛깔 때문이었을까. 참나무의 푸른 잎이 더욱 푸르렀다.
 
  어두워지기 전 서둘러서 짐을 내려놓고 길을 나서자 수 만 년 수십 만 년 고요히 흐르고 있는 Virgin River가 우리를 맞았다. 버진 강은 탁해 보일 정도로 짙은 옥빛을 띄고 있었다. 강을 가로 질러 놓여 있는 다리 가운데 서자 강은 더욱 아름다웠다. 강가와 한가운데 붉고 흰 크고 작은 사암들이 갖은 모양으로 놓여있었다. 강은 그 모래 바위들을 어루만지고 감싸고 휘감으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이 갈 곳 없는 그 모래 바위들을 품어 안은 것 같기도 하고 붉고 흰 모래 바위들이 오랜 세월 말없이 흐르고 있는 강물을 위로하는 듯도 했다. 강가에는 오랜 세월 벗이었던 버드나무와 참나무, 전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단풍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촘촘히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나무들과 암벽으로 이루어진 숲으로 들어갔다. 2,000피트, 3,000피트 높이로 솟아있는 암벽들이 길을 막아설 때마다 또 다른 암벽들 사이로 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길을 품고 있는 암벽들 위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폭포라고 하기에는 쑥스러운 작은 물줄기들이었다. 비가 오면 제법 많은 양의 물을 쏟아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개의 작은 폭포를 지나며 숲길을 오르자 보이지 않던 저 길의 끝에서 부끄러운 듯 에메랄드 풀(Emerald Pool)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살다가 쓰러진 나무 등걸들과 거센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에메랄드 풀의 바닥에 이러 저리 누워있었다. 물은 에메랄드 빛 그대로 투명하였다. 바닥 구석구석 작은 흙 알갱이 하나까지 다 보였다. 물빛 때문일까. 수면 위에 떠있는 나뭇잎들조차 투명하였다. 가쁘게 숨 몰아쉬고 있는 동행의 얼굴도 투명하였다. 창백하리만큼 투명했다.
 
  이 호수는 이렇게 수 천 년 수 만 년 고요한 아름다움을 지닌 채 살아오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무엇을 하겠다고 그렇게 아우성치며 살아왔을까.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정말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저 호수처럼 자신을 아름답게 할 때에만 산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저를 찾는 이들의 마음 또한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저 작은 호수가 내 마음을 위로하고 아름답게 하듯이 말이다. 마음 깊은 곳까지 끼어 있는 묵은 때들을 깨끗이 씻어주고 있듯이 말이다.
   

  에메랄드 풀 위로 하늘이 붉어지고 있다. 해가 붉은 산 너머로 지고 있다. 노을이 진다. 붉은 노을이 더욱 붉다. 나뭇잎도 붉고 얼굴도 붉었다.
 
  돌아서자 에메랄드 풀로 우리를 이끌어준 길이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말없이 놓여 있었다. 길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온통 붉어지고 있는 깊은 숲에서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자이언의 아침은 투명하도록 맑고 안온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 지친 영혼조차도 편안히 쉴 수 있었던 깊고 편안한 밤이었다. 자이언의 산하는 나를 품어 주었다. 위로했다. 세상과 달리 그곳에서는 나를 거부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거대한 암벽들도 우리가 잠든 방을 빙 둘러선 채 밤새 지켜주었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따뜻했다. 편안했다. 바위와 산들만이 아니라 지난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사슴과 노루들도 나를 위로했다. 산책길을 채 나서기도 전이었다. 수십 마리의 노루와 사슴들이 숙소 바로 앞 넓은 잔디밭에서 조금의 경계심이나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참으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나는 넋을 놓고 오랜 동안 바라보았다.
 
  노루나 사슴들도 저렇게 안온한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아우성치고 괴로워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던 것일까...?
 
  산책을 나왔다는 것을 잊은 채 그들 곁에 머물렀다. 그들은 먹는 일에 열중하고 있거나 편안히 앉아 쉬고 있었다. 잠든 녀석들도 있어 보였다. 조금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소리 질러 그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모두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산도 나무도 사슴도 노루도 사람들도 모두 서로를 받아들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자이언에서 나를 위로한 것이 어찌 그들뿐이었을까. 지난 밤 내내 영롱한 빛을 발하던 수많은 별들 또한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였다. 별은 밤하늘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암벽의 산마루에서도 빛났고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나뭇가지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마루턱에 걸린 별들은 그곳에도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고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별들은 그곳에도 위로 받아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뿐인가. 별은 고요히 흐르는 버진 강에도 내려 앉아 있었다. 별빛 내려 앉은 버진 강은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 낸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며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흐르는 강은 너무나 깊은 듯 멀리 있는 듯 아스라하기만 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발걸음을 멈추고 강을 바라보다 눈물지었던 그 밤이 내 가슴 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겠지.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며 아스라하게 흐르고 있겠지.
  2,000피트, 3,000피트 솟은 암벽들과 참나무들과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로, 버드나무와 단풍나무들 사이로 흐르고 있겠지.
  강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흐르고 있겠지.
    
  그 모든 것들이 자이언의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안온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안온함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조금 들떴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길을 나섰다. 오후에는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가능하면 많은 Trail을 걸을 계획이었다.
 
  Temple of Sinawava로 향했다. 버진 강을 따라 약 2마일 정도 오르다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자이언 국립공원의 비경 중의 비경이다. 길손들에게 섣불리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려진 땅이다. 가히 신의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땅이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길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차가 한 대도 없으니 좋지요? 이 공원에서는 Zion Lodge 투숙객들만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어요. 다른 관광객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해요.'
 
  창밖으로 흐르는 버진 강가의 나무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내게 동행은 말을 건넸다.
  '정말 차가 한 대도 없네...! 예약하느라 고생은 하였지만 그래도 Zion Lodge에 투숙한 보람이 있네.'
 
  우리가 흐뭇해하며 달리는 사이에 어느 덧 차는 Temple of Sinawava로 갈 수 있는 Trail Head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가벼운 배낭을 챙긴 후 Trail로 향했다. 그 때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이언 국립공원의 교통수단인 버스를 운전하는 마음씨 좋게 생긴 기사였다. 살집 통통하고 귀염성 있게 생긴 그녀는 이 공원에서는 버스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차를 몰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해요. 공원을 지키기 위한 것이에요."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지만 돌아가 차를 숙소에 두고 버스를 타고 나오면서도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이 아름다운 땅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하들도 이렇게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Temple of Sinawava로 향하는 이들이 많았다. 남녀노소 한데 어울린 가족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길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반가운 눈인사를 하며 지나는 곁으로 젖은 암벽마다 자란 이름 모를 풀들과 잎들이 다소곳이 나를 반긴다. 쓰다듬고 사진을 찍으며 가는 사이에 어느 새 길은 끊어져 있었다. 그곳에서부터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강물은 짙은 옥빛이었다. 흙탕물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바지를 걷고 강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들처럼 청바지를 입고 가벼운 배낭까지 메고 온 이들도 있었지만 수영복차림이나 반바지에 가벼운 셔츠 하나만 걸치고 온 이들도 많았다. 우리는 왜 사람들이 수영복이나 반바지 차림으로 왔는지 알지 못한 채 강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사진으로만 보았던 신의 손길이 빚었다는 자연의 원형극장인 Temple of Sinawava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짙은 물빛으로 인해 강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강바닥은 온통 자갈과 돌멩이들이었다.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물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강물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깊이 흐르는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강이 매우 깊어지고 있으니 조심하세요.'
 
  말하는 사이 허방다리를 짚은 듯 몸이 강바닥으로 꺼지듯 빠져들었다. 강물은 금방 허리까지 차올랐다. 이미 옷은 상의까지 거의 젖어 있었다. 강물은 점점 깊어져 앞선 사람들의 가슴과 어깨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강물이 차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굽이만 돌면 Temple of Sinawava가 보일 것 같은데...
    
  자연의 손길로 암벽들을 빚은 후 빗자루로 곱게 쓸어낸 듯 층층이 결이 나있는 사층리 암벽인 체커보드 메사와 함께 자이언 국립공원을 유명하게 만든 Temple of Sinawava가 저 굽이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은데...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너무나 준비가 부족했다.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 만나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강물을 거슬러 강물 속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길은 인생길을 닮아 있었다. 먼 길을 왔다고 반드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걸어왔다고 원하던 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인생길을 닮았다. 언제나 예기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는 것 또한 닮아 있다.
 
  가고자 했던 곳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버진 강을 걸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만 년 수십만 년 흐르던 강물에 몸을 적시며 그 영겁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뻤다. 강을 벗어나 운동화를 벗자 그 속에서 강물이 흘러 내렸다. 오랜 여행길에 이미 더러워진 운동화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며 우리는 웃었다.
 
  벌써 시간은 11시를 넘어 정오를 향하고 있었다. 유타와 네바다와 애리조나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자이언의 여름 햇살은 뜨거웠다. 강물에 젖었던 몸은 이내 땀으로 뒤덮였고 젖었던 옷은 새로운 Trail을 만나기 전에 벌써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우는 바위'(Weeping Rock)라는 이름을 지닌 바위를 보기 위해서였다. 바위가 도대체 어떻게 운다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보고 싶었다. '우는 바위'를 향해 걸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졌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왼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묵직한 통증이 깊게 찔러오기 시작했다. 가벼워졌던 마음과 달리 몸의 피로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점점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삼십 분이면 갈 수 있다는 '우는 바위'는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Trail을 따라 내려오는 이들에게 길을 묻고 서야 우리는 어디서부터 길이 어긋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우는 바위'로 빠지는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계속 직진하여 전혀 다른 곳으로 와 있었다. East Rim Trail과 Observation Point Trail과 Cable Mountain Trail이 만나는 산의 마루에 가까운 지점까지 올라와 있었다. 지쳐가는 몸을 바위에 기대고 앉았다.
 
  눈 아래로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건너편에는 갈색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다. 수 십 수 백 만년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여러 결을 지니고 있는 퇴적암이다. 그 오랜 옛날 물이 어디서 어디로 흘렀는지 물의 속도는 얼마나 세었는지 수심은 얼마나 깊었는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간의 바위이다. 당시 퇴적물의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 땅이 어떻게 솟고 꺼졌는지 도 알려주는 자연사 박물관과 같은 바위이다. 사람들은 그 바위에 새겨진 결들을 통해 이 모든 이야기들을 듣는다.
 
  저 바위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처럼 사람들은 내 마음과 우리 삶의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을까.
 
  오랜 세월 탓일까. 곱게 머리를 빗은 것 같은 퇴적암들이 전나무와 소나무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리고 위로 눈처럼 희디 흰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하나의 바위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하얀 색의 바위가 온 산을 덮듯이 놓여 있었다. 장엄한 모습이었다. 이끼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보이는 단단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바위 위에 작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제법 떨어져 있으나 나란히 서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렇게 매끈하고 거대한 암벽의 꼭대기에서도 살아가고 있다니...
  두 그루 나란히 서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구나.
 
  바람이 불어오는 듯 나무가 흔들린다. 그 모습이 마치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듯하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를 하는 듯하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그들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그래 잘못 들어선 길이라고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니구나. 마음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어긋난 길이라고는 없구나. 어긋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어긋난 길이라고 하더라도 산길이 아니라 마음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것을...
  인생길이란 그런 것을...
  삶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 길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두 그루 소나무 위로 구름이 지난다.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시야에 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호랑나비다. 더위에 지친 몸을 쉬려는 것인지 새로운 길로 나를 인도하려는 것인지 내 앞에 내려와 앉는다. 날개를 펄럭이며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이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 착각이었을까. 나비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한 동안 나비를 바라보았다. 오랜 동안 내 앞 길 한가운데 앉아 있던 나비가 날아올랐다. 길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나비가 간 길을 따라 걸었다.  
    
  
 


  최창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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