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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맛집 소개] 손맛이 좋은 만두, "성북동 집"

[서울 성북동 맛집 소개] 손맛이 좋은 만두, "성북동 집" 요리 맛집 정보 2008.10.31 20:47

[서울 성북동 맛집 소개] 손맛이 좋은 만두, "성북동 집"

 


   


요즘은 매스콤의 다양한 맛집 소개 프로때문인지 웬만큼 소문난 집들은 주말만 되면 용량초과라서 기다리는 것은 좋지만 서비스는 포기하고 음식 마저 평소에 비해 형편없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평일 피크타임을 살짝 피해서 둘러봐야 제대로 맛을 볼 수 있답니다.

 
특히 소문난 집들이 많이 모여있는 성북동은 주말엔 소문난 집들마다 넘쳐나는 손님들로 번호표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 시간 선택을 잘 하는 요령이 필요한데 대개 놀토를 포함해서 주말엔 1시 무렵이 점심시간의 피크타임입니다. (아예 12시 전에 가던지 아니면 2시 넘어서 가는게~)


성북동 쌍굴다리 근처에 있는 소문난 집들은 최소한 들려 볼만한 집들입니다.
연탄불구이 돼지불백으로 유명한 성북동 돼지갈비집, 쌍다리 기사식당, 금왕돈까스, 선동보리밥 비빔밥집 유정식당, 성북 설렁탕 그리고 오늘 포스트의 주인공 만두와 손칼국수의 성북동집, 게다가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삼거리 언덕길(성곽길 옆)에도 우리밀국시, 서울왕돈까스와 한성대  쪽으로 내려가면서 손국시집까지 한 곳에서 한 두개의 메뉴로 오랜 내공을 갖고 있는 집들입니다.

주변엔 산책코스(성곽길, 길상사 등)도 있어 주말 가벼운 나들이와 맛있는 점심코스로 좋답니다. 

성북동집은 사실 이렇게 혼잡스러운 집이 아니었는데 워낙 근방에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어느새 이집도 기다렸다 먹어야 하는 집이 되어버렸더군요. 자리도 얼마 안되는 조그만 집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단골들은 만두를 포장해가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먹깨비의 先酒 패턴은 이집에선 먹혀들어갈 수가 없군요.
맛있어 보이는 김치를 내오지만 그냥 김치만 먹을 수 밖에 없네요.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좋을텐데...

배추나 열무 모두 아삭거리는 맛이 좋군요. 만두나 칼국수 나오기전 에 한 쪽씩 먹어보는 이 김치 맛에 기대 또는 실망을 갖게 되는 법이지요. 식욕이 더 강해지면서 기다려집니다.

주문한 접시만두와 칼국수 중 접시만두가 먼저 나오는데 만두피는 보기에도 꽤 쫄깃해 보입니다.

만두 속은 적당하게 담백하면서도 알찬 느낌입니다, 쫄깃한 만두피의 맛에 지지 않는.
만두를 좋아하는 먹깨비가 먹어본 여러 곳의 만두 중에서 손 꼽아줄만한 집이네요.
(그냥 먹어도 좋지만 칼국수에 넣는 고추다대기를 살짝 얹어먹으면 더 깜찍한 맛이 ^^)

두 사람이라 칼국수는 아예 조그만 그릇에 반씩 덜어서 내오는군요. 센스도 좋네요.
아마도 이렇게 주문하는 손님이 많았던 듯, 만두 먼저 먹고 칼국수는 나눠서 먹는.

쫄깃한 만두피 맛만큼이나 칼국수 면의 씹는 맛도 좋습니다. 육수보다 면 맛이 더 좋은 듯.
육수는 성북동, 혜화동에 많이 모여있는 칼국수 집들처럼 고기육수인데 가까운 곳의 손국시 보다는 두터운 느낌입니다. 아마도 면이 더 쫄깃해서 이에 맞춘 것 같네요. 

수육 외에는 고기, 김치만두와 칼국수, 칼만두만의 메뉴로 단골손님들을 확보하고 있는 손맛이 좋은 집입니다. 손님이 몰리면 서비스는 내팽겨쳐지는 주변 음식점들에 비해 착실한 편이라 정이 가는 곳인데 평일 조금 한가한 시간에 선주의 패턴으로 다시 한 번 들려 먹어보고 나서는 "맛집 즐기기"로 옮겨볼까 합니다.

가까운 곳에 1930~40년에 소설가로 활약하신 이태준 생가의 수연산방이라는 차분한 찻집도 있고, 좀 더 걸어가야 하지만 대규모 정원 같은 풍경의 길상사도 있으니 주말 일찍감치 편한 신발만 신고 나서보시기 바랍니다.

성북동집은 성북동에서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화교 만두집

화교 만두집 요리 맛집 정보 2008.09.06 13:17

화교 만두집

한국 만두 中선 찐빵, 한국 찐빵 中선 만두
만두의 유래는 제갈양의 고사…우리나라엔 1890년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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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두의 예]

 
#만두와 찐빵

떡(餠), 만두(饅頭), 교자(餃子), 면조(麵條) 등을 합쳐 '면(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면을 국수에만 국한시켜 생각했다. 중국인에게 한국의 국밥 같은 게 교자와 전병(煎餠)이다. 전병은 '구운 떡'이란 의미를 가진 호떡이다. 호떡은 70년대 삼립식품을 만나면서 '호빵'으로 태어나고, 그것에 대응, 콘티넨탈 식품이 '콘티빵'을 내놓아 '인스턴트 찐빵' 시대를 연다. 급기야 강원도 스키어들 때문에 스타급에 오른 안흥찐빵에 이어 IMF 외환위기 직후 가창면사무소 근처에 전국에선 드물게 찐빵 거리까지 조성된다.

자장면, 찐빵, 만두의 명칭은 한국과 중국에서 서로 뒤바뀌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의 자장면은 중국에선 간자장, 한국 만두도 중국에선 찐빵, 한국 찐빵은 중국에선 만두로 통한다. 한국 만두와 중국 만두는 다르다. 중국 만두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맨빵이다.


#만두의 유래

만두의 어원은 '삼국지'에서 나온다. 제갈양이 남만(南蠻) 정벌 때, '노수'라는 강을 건너던 중 예상치 못한 폭풍우에 직면한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천제(天祭)를 지낸다. 이 강에서 예를 올리려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면 무려 49명의 사람과 검은 소와 흰 양의 목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 제갈양은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서 기막힌 묘책을 짜낸다. 밀가루 반죽으로 사람 머리 모양의 피를 빚고 죽인 소·양고기로 속을 채워넣도록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제사를 지냈더니 귀신같이 강이 잠잠해졌다. 원래 만두의 '만(饅)'자는 '기만하다(瞞)'란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큰 고추처럼 생긴 군만두는 원래 만두 모양에서 좀 먼 듯하고 요즘 왕만두가 원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만두가 한국에 등장한 건 1890년쯤이다. 물론 청나라 군인들을 통해 유입된 것이다. 서울 정동구락부(옛 이화여고 자리, 나중엔 손탁호텔로 변한다) 근처엔 호떡 등을 파는 면포(麵鋪)가 들어섰다. 나중에 면포에선 밀가루 등 가공하지 않은 면 재료가 팔린다.

특히 호떡과 공갈빵, 계란빵 등은 50∼60년대 제과점 시대가 본격화하기 전 한국인의 대표적 간식으로 사랑받는다. 일반인은 공갈빵과 꽃빵을 잘 구분 못한다. 공갈빵은 밀가루와 이스트를 반죽한 뒤 밀대로 밀어 흑설탕과 검은 깨 등을 넣고 그걸 재차 민 뒤 온도를 210℃ 정도로 맞춘 오븐에 넣고 20분 정도 구우면 속이 부풀어 오른다. 꼭 성난 복어의 턱을 연상케 하는데 공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공기빵'이라고도 불린다. 대구시 중구 종로 영생덕이 개업 초창기 공갈빵은 물론 호떡과 비슷한 계란빵을 많이 팔았다. 계란빵은 중국인이 명절 때 즐기는 월병과 비슷한데 흑설탕이 들어가 있는 게 월병과 다른 점이다.


#태산만두-70년대 오전 9시면 데이트족 몰려

현재 대구의 3인방 화교 만두집은 태산만두, 영생덕, 선미만두로 압축된다.

태산도 여느 화상들처럼 우여곡절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근처에 안착할 수 있었다. 현재 있는 점포는 채 20평도 안되는 그야말로 손바닥 만하다. 그런데도 추억의 단골들은 의무감을 갖고 느닷없이 들른다. 만두가 곧 '추억'이란 걸 왕덕선(王德仙·73)·유계홍(由桂紅·63) 주인 부부는 잘 알고 있다.

태산의 창업자는 1900년대초 대구로 온 유씨의 시어머니 왕장씨(王藏氏). 시어머니는 6·25를 거치면서 서울∼부산∼대구를 오가던 중 58년쯤 대구에 정착한다. 처음 동아백화점 맞은편, 미성당 분식점 서편 반도 이발관 옆에 자릴 잡는다. 만두집 상호는 '해랑(海浪)'. 해랑은 후에 편의방, 미성당, 삼화만두와 함께 만두 붐을 일으킨다. 당시만 해도 대구에선 만두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만두보다는 교동시장 내 수형당에서 만든 망개빵, 미성당의 가끼우동과 국화빵 등이 강세를 띤다. 왕덕선은 어머니를 뒤로 앉히고 전면에 나선다. 그림을 좋아하는 그는 화가를 불러 양 벽면에 대형 산수화를 그릴 정도로 내부 치장에 열성을 보인다. 중국 산둥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온 그는 서울의 명동 등지에서 만두 요리법을 습득한다. 해랑은 현재 태산보다 조금 넓은 규모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에 커다란 보일러가 시야를 가렸다. 그건 스팀제조기였는데 바닥 밑을 통과해 주방의 만두 조리대로 연결됐다. 주방에는 3개의 화구(火口)가 있었다. 2개는 찌는 것, 나머지 하나는 튀김용이었다.

태산은 해랑시절 돈을 많이 번다. 그래서 옛 남도극장 삼거리 쪽으로 건너가 잠시 외도를 한다. 그곳으로 옮겨선 상호를 '동해반점'으로 바꾸고 만두 외 중화요리도 함께 팔았다. 장사가 잘 되자 지하 1층, 지상 2층 높이의 양옥으로 증축한다. 그 집은 후 '전가복 붐'을 일으킨 손보충이 93년 세 들어와 연경반점 시대를 연다. 연경은 후에 수성구 중동 쪽으로 이전했고 지금 그 자린 사진관으로 변했다.

동아백화점이 오픈하던 72년쯤 태산은 봉덕동 시절을 정리하고 대구백화점 맞은편 현재 자리로 온다. 태산은 옆 건물과 달리 유난히 푹 꺼지고 허름한 1층짜리 건물이었다. 한때는 화방, 와이셔츠 판매점, 통닭집이 거쳐 갔지만 태산 때부터 대운이 터진다. 처음엔 1층 반은 홀, 반은 주방으로 사용했는데 손님이 밀어닥쳐 주방을 2층으로 올린다.

태산이 문을 열 때 명생반점(현재 명덕반점)과 일신촌(日新村)이 바로 옆에 자릴 잡고 있었다. 왕씨는 두 집을 의식해 만두 하나만 팔기로 맘을 먹는다. 일신촌은 태산에 밀려 76년쯤 아카데미 옆 골목으로 이전했다가 문을 닫는다. 태산 만두는 당시 분식업계의 다크호스였다. 길 맞은편 만만치 않은 파워를 가진 태극당 제과점이 자릴 잡고 있었지만 태산의 매상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오전 9시만 돼도 데이트 족들이 몰려왔다. 그땐 대학생들의 데이트 1순위가 이런 분식점이었다. 사람이 많을 땐 합석을 유도했다. 군만두가 가장 잘 팔렸고 그 다음이 왕만두였다. 워낙 손님이 많다보니 현재 근처 리바이스 매장 자리에 신춘만두점까지 태어난다. 후에 신춘만두점은 한일아케이드 옆으로 이사갔다가 문을 닫는다.

80년대로 접어들자 태산도 만두만 고집할 수 없었다. 음식문화가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점점 동성로를 떠나고 있었다. 80년대부터 음악다방 시절이 시작되고 80년대 후반들어 피자, 파스타, 스파게티, 햄버거 등 각종 패스트 푸드점이 동성로 곳곳에 깔리자 태산의 매출은 점차 줄게 된다. 할 수 없이 당시 학생들이 좋아하던 가끼우동, 김밥, 쫄면으로 메뉴를 다양화한다. 90년대초부터는 라면까지 팔았다. 만두전문점을 고수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가를 가늠케 한다. 현재 아들 왕개순(王開順·43)·장주미(張柱美·41) 부부가 대를 잇고 있다.


#영생덕-종로에 호떡·공갈빵·계란빵 붐 일으켜

옛 종로호텔 바로 옆에 붙은 영생덕의 원래 자리는 대구화교소학교 바로 오른쪽에 있었다. 산둥에서 온 하전삼·여지정(61) 부부는 종로 거리에 만두는 물론 호떡과 공갈·계란빵 붐을 일으켰다. 이와 함께 한국 주당들이 좋아하는 오향장육도 히트시켰다.

오향장육은 이름 그대로 '다섯가지 향이 난다'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팔각, 정향, 향근, 생강, 후추를 넣고 돼지 사태나 안심 등을 간장과 함께 졸이면 잡냄새도 가시고 오향이 스며든다. 40여년 역사의 영생덕은 군만두·고기만두·물만두·찐교스 등 4종류 만두만 판다. 95년쯤 현재 자리로 이전했고 2000년쯤부터 자장면 등 중화요리 메뉴를 추가했다.

하전삼의 기술은 왕조성·하애연(49) 부부를 거쳐 외손자 왕덕호(26)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선미만두-돼지고기맛 짙은 대만식 만두 고수

대구시 중구 대안동 77 선미만두. 12평에 테이블 2개, 다른 메뉴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주인 위덕위(52)는 46년 전 중부경찰서 건너편에서 20년 정도 만두집을 경영했던 손화인(孫華仁)한테 경영권을 이어받은 뒤 80년대초부터 현재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시설 확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돼지고기 맛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대만식 만두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화교로선 드물게 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릴 잡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했다. 73년 서울에서 자격증을 딴 뒤 서울 미도파 백화점 옆 한 중화요릿집, 김천 김해원,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삼익비치타운 상가 비치봉, 대구로 들어온 뒤 달성공원 옆 장풍반점 등을 거쳤다.

현재 군만두, 찐만두, 고기만두, 물만두, 만두국, 탕수만두, 비빔만두, 야채만두(매콤한 것) 등을 팔고 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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