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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 라벤나

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 라벤나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4:06
 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 라벤나 




 
 
라벤나는 가히 운명의 도시라 부를 만 하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도시가 로마 제국의 마지막 수도라는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을 먹고 산다고 했는데, 라벤나는 한때 지구의 절반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니, 비록 추락의 일로에 놓이기는 했으나 제국이 남긴 문명의 흔적은 찬란했다.

서양사에서는 보통 서로마 제국의 멸망(서기 476년)과 함께 고대가 막을 내리고 중세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라벤나는 로마제국이 남긴 고대문명의 마지막 흔적과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역사의 경계 도시라 할 수 있다.

라벤나라는 작은 마을이 시골티를 벗고 로마제국 수도로서의 위용을 뽐낼 수 있게 된 것은 갈라 플라치디아라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인은 오노리우스 황제의 누이였는데 423년 오노리우스가 사망하자 대를 이은 그녀의 어린 아들 발렌티니아누스를 대신하여 섭정을 했으며 통치 기간에 문학과 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이탈리아의 보물 목록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했다.

그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내부가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며 라벤나가 자랑하는 모자이크 건축물 제1호이다. 모자이크란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다양한 색상의 유리나 돌을 벽에 일일이 붙여서 장식하는 회화 기법을 가리키며, 기원전 3세기 정도 로마제국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최고의 예술 경지로 끌어올린 곳은 바로 이곳 라벤나에서였다. 현재 라벤나에는 아름답고, 보존상태가 완벽하며, 가장 역사적 가치가 높은 모자이크 작품들이 남아 있다.

그 중의 백미가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이다. 나는 이 무덤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은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십자가 모양으로서 외부는 붉은 벽돌로 아담하게 지어졌으나 내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별들 가득한 청색으로 빚어진 모자이크는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듯 무덤의 천장을 덮고 있는데, 제작 된 지 1500년이 넘도록 손상 없이 완벽하게 보존이 되어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로마제국은 그리스도 탄생 이후 300년 넘게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했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것은 380년 이었으며 이 때부터 서구의 정치, 사회, 문화를 비롯한 모든 영역은 그리스도교 없이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어진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은 로마제국의 통치자의 무덤이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모양으로 설계되었으며, 그 내부가 그리스도교를 표현한 그림들로 장식되었다는 점에서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수용상황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은 멸망의 기로에서도 예술적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로마인들의 모습을 증언해준다. 

 ‘중세미술의 뿌리’ 라벤나 교회들
세계 最古모자이크 등 ‘성서 그림으로 보는 듯’

 
이탈리아의 동쪽에 위치한 바다를 아드리아해라 부른다.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대표적인 도시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네치아가 있지만 그보다 앞서 형성된 도시가 있으니 라벤나가 그곳이다. 라벤나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가 되었고, 이어서 중세를 여는 운명에 놓였다.

로마제국은 이탈리아인들이 그토록 우습게 여기며 야만인이라 비하했던 이민족에 의해 멸망당했다.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이민족의 왕은 고트족의 테오도리코였는데 이들과 함께 고대(古代)는 막을 내리고 중세(中世)가 열렸다. 그들은 비록 이민족이긴 했으나 앞선 로마제국으로부터 위대한 건축법을 이어받았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를 계승했다. 과거 청산이 아니라 과거 계승인 셈이다.

서구의 고대 세계를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통치했다면 그에 버금가는 통치권을 이어받은 곳이 바로 중세의 교회였다. 로마제국의 계급에 의한 피라미드식 통치 방식은 고스란히 교회로 옮아갔다. 실제로 가톨릭 교회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황청 아래 각 나라별로 교구, 본당 등이 세포 조직처럼 뻗어 있어서 작은 지역에까지 교황청의 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바로 로마제국의 통치제도와 유사하다.

중세 최초의 왕이라 할 수 있는 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가 세운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교회가 있다. 라벤나에는 성 아폴리나레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이고 다른 하나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교회다. 두 곳 모두 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세의 교회다. 이 두 교회는 구조와 분위기가 마치 쌍둥이 건물을 보는 듯 흡사하며, 6세기에 제작된 모자이크가 온전히 남아있어서 중세가 첫 발을 내딛던 시절의 예술 수준을 짐작케 한다. 두 곳 모두 소박하고 간결한 가운데 1500년 전 건축물이 주는 기품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모자이크 작품의 원조를 볼 수 있다.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 들어가면 기둥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데 기둥 위의 벽면이 온통 모자이크로 덮인 화려한 색채와 조우하게 된다. 한 쪽 벽에는 성인들의 모습이 일렬로 줄을 서 있고, 마주 보는 쪽에는 순결한 처녀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마치 복제 인간처럼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열을 지어 서 있어서 인물 개개인이 주는 아름다움 보다는 전체가 주는 조화와 율동미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끝에는 아기 예수에게 예물을 바치는 동방박사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들이 입은 의상은 당시의 패션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이들 모자이크 위쪽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을 담은 모자이크 그림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중세미술의 보석이자 후대의 그리스도교 미술의 뿌리이기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들 작품은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민중에게 그리스도교를 설교하는 훌륭한 시각매체이자 그림으로 읽는 성서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고단한 삶을 위안받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들도 저세상에서 구원받기를 열망했다. 서구의 중세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정치는 순간, 예술은 영원
‘통치용’이었던 황제 모자이크 ‘명작’으로 남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는 칠판 위 벽에 늘 태극기와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같이 걸려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렸을 때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박정희를 동의어로 생각했던 것 같다. 박정희가 아닌 다른 이름의 대통령이란 내겐 너무 생소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피 울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함께 슬퍼했으며, 그 와중에도 그분이 아닌 다른 분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느새 나는 세뇌되어 있었던 것이다.

통치자의 사진을 학교에 걸어놓는 것은 사실은 계산된 정치적 선전이다. 이미지를 통한 통치자의 선전은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며 대표적인 사례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재위기간 BC 30~AD 14년)는 이미지를 통한 정치적 선전 효과를 꿰뚫고 있었는지 자신의 모습을 청동조각으로 만들어서 로마 시내에만 80점 이상을 설치해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서 숭배토록 했다.

이미지를 통한 통치술은 이후 정석처럼 되었으며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527~565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운명의 땅 라벤나가 또 한번 새로운 운명을 맞은 것은 이 황제의 통치시절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잃었던 로마제국의 땅을 회복하는 정책을 썼는데 라벤나는 되찾아야 할 땅 제 1호였다.

그는 라벤나를 제국의 영토로 만든 후 그곳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짓도록 명했다. 바로 성 비탈레 성당이다. 현재 이스탄불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성 소피아 사원 역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에 건축된 것인데 그는 성 소피아 사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거의 같은 구조로 성 비탈레 성당을 짓게 했다. 두 성당 모두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나 소피아 사원은 16세기부터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형상을 거부했던 이슬람교의 정책에 의해 그림이 대부분 파손된 반면, 라벤나의 교회에는 모자이크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6세기 동로마제국의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교회의 제대 위쪽에 자신과 황후 테오도라가 각각 참모들을 동행하여 그리스도께 예물을 바치는 모습을 모자이크(사진)로 제작하게 했다. 자신은 빵이 담긴 바구니를 든 모습으로, 그리고 부인은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신이나 성인에게만 표시하는 후광까지 그려 넣게 했다.

이들 부부는 한번도 라벤나에 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가장 잘 보이는 부분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게 함으로써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했다. 백성들에게 통치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교실에서 대통령의 사진을 보면서 받았던 것과 비슷한 효과가 아니었을까. 다만 그는 비록 정치적 선전이긴 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예술품을 통해 목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의 모자이크는 진귀한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인 예술품으로서 전세계의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순간이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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