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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의 아슬아슬한 절단 이야기

[다이아몬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의 아슬아슬한 절단 이야기 보석정보/다이아몬드 2008.10.31 13:51

[다이아몬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의 아슬아슬한 절단 이야기





1905년 1월 2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프레미어 다이아몬드 광산.

프레더릭 웰스(Frederick Wells)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개로 판 갱의 벽에 목숨을 받칠만한 보석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주먹만한 크기의 500g이나 나가는 거대한 다이아몬드였다. 거기에 홀린 웰스는 잠시 후 주머니칼로 그것을 파냈다.

그것은 그때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으며, 왕에게나 어울릴만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 정부는 그것을 75만 달러에 사서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에 생일선물로 바쳤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광산에서 파낸 다이아몬드는 완전한 보석이 아니라 원석이었다. 다이아몬드 특유의 아름다운 빛을 내기 위해서는 원석을 여러 소각으로 쪼갠 다음, 각각의 조각을 잘 다듬어 광택 나게 해야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원석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최고의 다이아몬드 가공 인으로 알려진 아스처(J.Asscher)에게 보내졌다. 아스처는 그 원석을 어떻게 쪼갤까 몇달 동안 궁리하였다. 만약 제대로 쪼개기만 한다면, 다이아몬드 조각들은 무한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잘못 쪼갠다면, 다이아몬드는 산산조각이 나고, 왕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스처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아무도 아스처의 다이아몬드 가공기술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실패한 사람으로 유명해질 것이다.

아스처는 떨리는 손으로 원석을 쐐기에 고정시켰다. 그는 쪼개야 할 지점을 금을 그어 표시했다. 그는 표시된 금 위에 신중하게 강철 정을 망치로 내리칠 준비를 했다. 입이 바싹 탔고, 작은 땀방울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혔다. 망치를 들어올리는 순산,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이었다. 다이아몬드는 산산조각 날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모양으로 쪼개질 것인가? 그 다음 순간은 아스처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망치로 정을 내려쳤다.

 그러나 강철 정이 산산조각 났다.

 다이아몬드가 너무 단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스처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깔깔대고 웃었으며, 그의 정신은 산산조각 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스처는 그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다이아몬드를 쪼개는데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수 주일동안 치료를 받은 후 아스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날이 왔다. 이번에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옆에 의사도 대기했다. 아스처는 두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땀에 젖은 손으로 정을 잡았다.

그리고 망치를 내려쳤다. 다이아몬드는 정확하게 제 모양으로 쪼개졌다. 그러나,

아스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기절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쿨리난(Cullinan)다이아몬드 원석은 105개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쪼개져 가공되었다. 이 다이아몬드 한 개당 가격은 수십억 원이나 했다.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것에는 '아프리카의 별' 이라는 이름이 부었고, 영국 왕의 홀에 박혀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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