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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 인도·중국 문화 공존 '사원·신상의 도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 인도·중국 문화 공존 '사원·신상의 도시'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6:18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  인도·중국 문화 공존 '사원·신상의 도시' 
 


 


[ 네팔 카트만두(Kathmandu) ]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가기 위해 포카라에서 경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30석의 아주 조그마한 장난감 같은 비행기다. 탑승하면서도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비행기에는 스튜어디스도 있고, 비행 중 캔디와 차도 대접하는 서비스도 있다. 비행기를 타고 소꿉장난을 하는 왕자가 된 기분이다. 재미있는 비행기는 볼거리도 더해준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 히말라야의 절경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40분 동안 히말라야 산맥의 설경을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생애 최고의 행운인 듯싶다. 내려다보이는 설경의 대산맥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웅장하고 장엄한 경치가 최고요, 아름다운 설경의 파노라마가 최고이며, 내려다보이는 관광의 묘미가 최고다. 히말라야 설원의 파노라마를 끝나지도 않은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어느새 비행기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공항에 착륙을 한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로서 인도와 중국의 문화가 혼합된 특유의 히말라야 산족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네팔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여 축제나 명절 결혼식 등은 노래로 시작하여 노래로 끝을 맺는 민속 문화를 가지고 있다. 네팔은 가난하면서도 축제가 많은 나라다. 일 년에 50여개의 축제를 치르며 170일 이상을 노래로 세월을 보낸다. 그들은 축제를 생활화하고 축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낭만적인 목동의 후예다. 네팔의 시가지로 들어서면서 가난한 동네라는 것은 느껴지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활력과 근면한 생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지름이 100m이고 높이가 36m의 크기로 남아시아의 최대 스투파(탑·塔)를 자랑하는 ‘보우다나뜨’를 찾았다. 옛날에 한 불교신자가 왕을 찾아와 불교 스투파를 짓고 싶은데 물소 한 마리에서 저민 고기의 면적만큼만 땅을 주시면 그곳에 스투파를 짓겠다고 간청을 하였다. 왕은 물소 한 마리의 고기가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하고 흔쾌히 허락을 하였는데, 노인의 고기 저미는 기술이 놀라와 지름이 100m나 되는 땅을 얻기에 충분한 솜씨를 보여 보우다나뜨, 스투파를 짓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외국인만 입장료를 내는 이곳은 완전히 티벳이다. 냄새와 문화와 사람들이 모두 티벳 일색이다. 탑을 돌며 기도하는 티벳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탑의 외곽으로는 매장들이 원형의 공간을 만들면서 관광 민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공간만 있으면 곳곳에 서서, 아니면 앉아서, 혹은 바닥에 전신을 던져 가면서 기도하는 이들의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들의 간절하고 애절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

카트만두의 밤은 어둠 속의 침묵이다. 전기를 절약하기 위하여 저녁 8시가 되어야 전기가 들어온다. 그때부터 난방기를 사용할 수가 있고 TV도 볼 수가 있다. 절약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네팔의 절전운동이 철저하다.

아침 해가 밝아지면서 네팔에서 순결의 상징으로 모신다는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데비’가 살고 있는 ‘덜발광장’을 찾았다. 덜발광장은 바로 카트만두의 심장이며 중심부이다. 이곳에는 왕족들의 궁전과 사원으로 빽빽하다. 16세기에 지어진 말라 왕조의 궁전들이 아직도 섬세한 목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에 반해 목조 건물로 지어진 사원들의 대단한 규모와 아름다움들은 방치되어 있는 상태로 파손되어 가고 있어서 안타깝게 느껴진다.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데비는 1년에 한 번씩 네팔의 왕이 찾아와 절을 하고 축복을 받는 곳이다. 피를 보이지 않은 여인, 눈물을 보이지 않은 여인이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대되어 모셔지게 된다. 오후 4시가 되면 관광객들을 향해 2층에서 모습을 보인다는 기대감에 사원의 좁은 정원을 서성인다. 살아있는 여신은 초경이 시작되면 악령이 깃든 여인으로 전락하여 이 사원에서 쫓겨 나게 된다. 천대를 받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악령이 깃든 여인으로 전락한 꾸마리데비의 말로는 슬프고 가련한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의 여생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게 ‘꾸마리데비’들의 여생은 매춘가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덜발광장과 함께 이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스와얌부나뜨’다.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있어 이곳을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부른다. ‘스와얌부나뜨’는 정문에서 300개의 계단을 오르면 동산의 정상 부분에 사원이 있다. 카트만두의 전경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동산의 정상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사원들 사이로 탑들과 스투파와 전통 민예품 가게들이 혼란스럽게 산재해 있다. 티벳 사람들이 직접 사용하던 물건들도 만날 수가 있는 곳이다. 골동품들 사이로 풍겨 나오는 향내가 코를 진동시킨다.

사원의 모퉁이에서 스케치북을 펴고 스투파를 그린다. 독특한 모양의 스투파들이 화면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카트만두에는 집의 숫자만큼 사원이 있고, 사람들의 수만큼 신상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원도 많고 신상도 많은 카트만두에 이제 봄소식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된 분위기가 함께하여 늘 아름다운 히말라야를 지키는 행복한 민족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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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포카라 - 산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설경에 취해

네팔의 포카라 - 산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설경에 취해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6:16

네팔의 포카라 - 산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설경에 취해  
 
 





▲히말라야의 설경

 
갠지스 강의 발원지이며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에베레스트 봉우리가 있는 히말라야 산맥으로 오르는 곳이 네팔의 ‘포카라’다. 그곳을 향해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경쾌한 기분으로 룸비니를 떠난 버스가 굽이굽이 산길로 들어선다. 수천 길 낭떠러지 절벽이 왼쪽으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고, 푸른 녹색의 숲으로 우거진 아름다운 능선들은 천 길 낭떠러지 좁은 계곡 아래로 치닫고, 계곡을 끼고 흐르는 하얀 물거품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선을 그린다.

수천 굽이를 돌면서 산을 달리는 버스의 질주는 계속된다. 아름다운 경치 사이로 중간 중간 나타나는 가옥들은 산 정상 부분에서 촌락을 이루고, 촌락에서 계곡 쪽으로 만들어진 논과 밭의 두둑들은 아름다운 곡선을 반복하며 장관을 이룬다.

룸비니를 출발한 지 여섯 시간이 흘렀다. 달리는 버스의 차창으로 히말라야의 설경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산이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듯 아름다운 설경이 눈앞에 전개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버스가 한 굽이를 돌면서 차창에 비친 히말라야의 설경은 지워진다. 짧은 순간 느껴본 히말라야의 감동이 벅차오르는 기대감으로 변하여 자꾸만 시선이 차창 밖에서 맴돈다.

포카라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해발 900m 높이에 형성된 도시이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알려진 포카라에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페와(Fewa) 호수가 있다. 보트를 타고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고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뒤뚱거리는 보트에 오르며 소리치는 아내의 비명이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다. 네팔 청년은 노를 젓기 시작하고, 아내는 카메라를 꺼내고, 나는 스케치를 시작한다. 보트는 어느새 호수 가운데에 있는 섬에 도착한다. 성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섬의 중앙에는 흰두교 사원이 있고, 사원 앞에는 족히 수백 년 세월 이곳을 지켜온 듯한 고목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있다. 기이한 모양으로 굽어 있는 고목에 기대어 서서 그림을 그린다. 곁으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다가와 그림을 지켜보고, 호수에 비친 히말라야의 그림자는 서서히 붉은색으로 변한다.

포카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일찍 히말라야의 일출을 보기 위해 해발 1,592m인 ‘사랑 곳(Sarangkot)’으로 향한다. 40분쯤 버스로 이동한 곳에서 등성이와 계단을 오르는 어둠 속의 산행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올라 숨이 거칠어지고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힘이 들어도 해가 뜨기 전에 전망대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부근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집도 있고, 밭도 있다. 카펫을 만드는 초라한 가게도 있고, 소형 목각품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아름다운 동산 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저 멀리 전망대가 보인다. 바로 눈앞에 있어 다 온 것 같은데 요리조리 돌면서 올라야하는 비탈진 계단의 경사로가 마지막 땀을 흠뻑 흘리게 한다. 드디어 전망대에 올랐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태양빛에 히말라야가 갈색의 강한 색채를 띠며 분명한 명암을 드러낸다. 에베레스트의 장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조용히 일출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동시에 함성을 지른다.

에베레스트는 네팔과 티베트 국경에 솟아있는 세계 최고봉으로 높이가 8844.4m이다. 1852년 이 봉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것이 인도의 측량국장 ‘앤드류워’에 의하여 확인되었으며, 그는 그의 전임자 ‘에버리스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이 봉우리를 ‘에베레스트’라고 명명할 것을 제안하였다.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서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그 높이를 자랑한다.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이름도 아름다운 안나프르나 봉(8091m)을 중심으로 k2(8611m)봉도 있고, k1(8598m)봉도 있다. 로체(8516m), 마칼루(8463m), 마나슬루(8163m) 등 아름다운 만년설의 봉우리를 확인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아름다운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산악인들의 무한한 도전 정신이 정말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시절 산을 좋아했던 산악인 친구 재원이가 생각난다. 해외여행이 몹시 어려웠던 1970년대에 해외산행에 참가했던 친구가 어느 날 외국에 체류하면서 귀국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산이 좋아 고국과 가정을 포기할 수가 있을까? 제정신이 아니고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있을까?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이제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친구가 부럽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그의 삶을 모두 바칠 수 있었던 그의 용기가 부럽다. 친구가 하얀 설화의 계곡에서 하얀 눈 속의 전설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안타까워하며 가슴아파했다.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슬픈 마음이 몇 십 년을 흘렀는데도 생생하게 다시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며 친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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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송김석기의 네팔 스케치 여행기

우송김석기의 네팔 스케치 여행기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6:14

우송김석기의 네팔 스케치 여행기 
 
 



싯가르타 탄생 ‘불교 4대 성지’ 순례자 줄이어 
 
 
인도의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네팔의 국경으로 향한다. 세계의 지붕이라 말하는 네팔 히말라야 산맥, ‘에베레스트’의 아름다운 설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두근거리는 설렘을 진정시키면서 네팔의 국경도시 소나울리로 들어선다. 네팔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도를 떠나는 출국신고와 네팔로 들어가는 입국절차가 국경지대에서 이루어진다. 소나울리에서 12㎞, 카트만두로부터는 250㎞ 떨어진 곳에 ‘룸비니’라고 하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있다.

룸비니는 인도의 ‘붓다가야’, ‘사르나트’, ‘구시나가라’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마야 데비 사원’(Maya Devi Temple)이 있다. 바로 ‘성스러운 정원’(The sacred Garden)이라 부르는 곳이며 이곳에서 싯다르타 고타마가 기원전 623년에 탄생하였다.

석가모니는 히말라야산 기슭 카필라성 샤카족 출신의 성자이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기 전 하얀 코키리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출산을 친정에서 맞이하고자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데바다하’로 향하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후 7일째 되던 날에 마야부인은 사망하였고, 석가모니는 이모 마하파자파티에 의하여 양육되었으며, 생후 명명식에서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을 가진 ‘싯다르타(Siddhartha)’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얻은 깨달음의 깊이를 추측으로나마 짐작하며 동이 트기 전 ‘성스러운 정원’으로 가기위해 릭샤를 타고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릭샤로 10분쯤 간 곳에 다시 조그마한 사원의 입구가 있다. 새벽의 어둠은 관리인도 잠에서 깨우지 못한다. 조금을 기다려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어둠 속에서 부스스 아침잠을 깬 정원 위의 아름다운 꽃들이 새벽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성 같은 느낌을 주는 ‘마야 데비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걸으면서 성역을 돌아볼 수 있는 철로 만든 난간이 있다. 폐허가 된 사원의 흔적들이 복원을 기다리며 어수선하게 방치되어 있는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러나 사원 깊은 곳에 기원전 3세기경 만들어졌다는 부처님 탄생장면을 묘사한 ‘마야데비’의 석조작품이 놓여 있고, 유리관 속에 보존된 부처님의 탄생지의 표지석이 새벽을 깨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어준다.

밖으로 나오니 사원 옆에 높이 7.2m의 ‘아쇼카 석주’가 있다. 기원전 250년경 인도의 ‘아쇼카’ 왕이 이곳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탄생한 위대한 분을 경배하기 위하여 이 석주를 세우며, 위대한 분이 탄생한 이곳 룸비니 마을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1/8만 징수하게 한다.'는 내용과 함께 ‘전쟁에 의한 승리보다 자비에 의한 정복이 훨씬 훌륭하다’ 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아쇼카 왕은 인도 역사에서 가장 넓은 땅을 통일하고 다스린 국왕이었다. 그는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통감하면서 국가가 구하는 평화가 무기나 군대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덕에 의한 정치의 노력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쇼카 왕 자신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올바른 가르침을 널리 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왕비와 왕자, 대신들에게까지 불법을 배우게 하였으며,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불법을 펼쳤다. 그는 1000명의 승려로 하여금 경전을 편찬케 하였고,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키프러스, 스리랑카와 같은 여러 나라에 불교사절단을 파견하였으며, 불사리(佛舍利)를 재발굴하여 8만4000의 탑에 분납하여 불교도들의 예배 대상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아쇼카 왕의 정신을 오롯이 지니고 있는 듯 ‘아쇼카 석주’가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붉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앞에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출산하기 전 목욕을 한 곳으로 전해지는 연못 ‘프스카르니(Puskarni)가 있다. 순례자들이 이곳의 성스러운 물을 마시며 특별한 불심의 축복을 기대하는 곳이라는데 지금은 많이 오염된 느낌이다. 연못 건너편에는 수백 년 묵은 보리수들이 수도 없이 서 있다. 수백년을 묵묵히 이곳을 지켜온 보리수 사이가 오색찬란한 깃발들의 띠로 연결되어 장관을 이룬다. 마치 행위미술가들에 의한, 불교 미술의 퍼포먼스가 연출되고 있는 것 같다. 거대하고 웅장하게 펄럭이는 깃발들이 현란하리만큼 아름답게 보인다.

‘마야데비 사원’을 떠나면서 석가모니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겼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슬퍼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 되느니라. 제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제행은 필히 멸하여 없어지는 무상법이니라. 그대들은 중단 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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