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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요리 만들기] 맛있는 별미 면요리 들( 냉면, 국수, 쫄면, 라면)

[면요리 만들기] 맛있는 별미 면요리 들( 냉면, 국수, 쫄면, 라면) 요리 맛집 정보 2008.11.02 17:07

[면요리 만들기] 맛있는 별미 면요리 들( 냉면, 국수, 쫄면, 라면)








오징어회냉면


필요한 재료
냉면 600g, 오징어 2마리, 청·홍고추 1개씩, 부추 반 움큼, 고춧가루 1½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설탕·식초 1큰술씩, 굵은소금 약간

이렇게 만드세요
1 냉면 국수는 손바닥으로 문질러 가닥을 분리해 끓는 물에 넣어 쫄깃하게 삶아 건진 후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2 오징어는 몸통을 반 갈라 손질한 후 껍질째 데쳐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3 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씨를 대충 털고 부추는 깨끗하게 손질해 2~3cm 길이로 썬다.
4 넓은 볼에 오징어, 고추, 부추를 넣은 후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설탕, 식초, 소금을 넣어 고루 무친다.
5 삶은 냉면 국수에 오징어무침을 듬뿍 얹어 낸다.

냉면 맛있게 삶는 비법!!
1 생면은 손바닥으로 비벼가며 가닥을 분리해야 삶았을 때 엉키지 않는다. 마른 냉면 국수는 그냥 삶아도 무방.
2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팔팔 끓으면 냉면 국수를 넓게 펴 넣는다.
3 젓가락으로 휘저어 면발이 서로 붙지 않도록 한다. 삶는 시간은 1분 이내가 적당.
4 찬물에 주물러 헹궈 전분기를 뺀 다음 1인분씩 사리 지어 채반에 담아 물기를 뺀다.


야채비빔쫄면


필요한 재료
쫄면 600g, 굵은소금 약간, 양배추 잎 3장, 청·홍피망 ⅓개씩, 노랑 파프리카 ¼개, 무순 한 움큼, 달걀 1개, 양념고추장(고추장 4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설탕·식초 2작은술씩)

이렇게 만드세요
1 쫄면은 손으로 비벼가며 가닥을 분리한 후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어 쫄깃하게 삶아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2 야채는 비슷한 크기로 곱게 채썰고 무순은 흐르는 물에 살짝 씻어 물기를 턴다.
3 달걀은 완숙으로 삶아 슬라이스한다.
4 준비한 양념고추장 재료를 한데 담아 고루 섞어 양념고추장을 만든다.
5 삶은 쫄면에 손질한 야채를 듬뿍 올리고 양념고추장을 듬뿍 끼얹는다. 고명으로 삶은 달걀을 올린다.


쫄면 맛있게 삶는 비법!!
1 쫄면은 손바닥으로 비벼가며 가닥을 서로 분리한다.
2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는다. 쫄면은 다른 면에 비해 두껍기 때문에 소금을 넣으면 빨리 익는다.
3 팔팔 끓는 물에 쫄면을 넣고 6~7분 정도 삶아 건진다.
4 삶은 쫄면을 찬물에 담가 전분기가 빠지도록 손바닥으로 비벼가며 헹궈 물기를 뺀다.


콩국수


필요한 재료
생칼국수 600g, 메주콩 2컵, 생수 6컵, 오이 1개, 소금·무순 약간씩, 땅콩 ¼컵, 통깨 2큰술, 방울토마토 4개

이렇게 만드세요
1 메주콩은 전날 밤에 물에 담가 불린 후 속까지 푹 무르도록 삶아 믹서에 생수 6컵과 땅콩, 통깨를 함께 넣어 30초 이상 곱게 간다.
2 끓는 물에 생칼국수 면을 넣어 쫄깃하게 삶은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3 오이는 껍질을 깨끗하게 씻어 곱게 채썰고 무순도 씻어 물기를 뺀다.
4 국수를 1인분씩 면기에 담고 ①의 콩물을 붓는다. 오이채와 무순을 얹은 후 저며 썬 방울토마토를 올려 색을 더하고 소금은 따로 준비해 먹기 전에 넣는다.

생칼국수맛있게 삶는 비법!!
1 생면에 묻어 있는 가루를 손으로 가볍게 턴다. 그래야 면을 삶을 때 국물이 걸쭉해지지 않는다. 끓는 물에 면을 넣어 3~4분 정도 쫄깃하게 삶는다. 이때 젓가락으로 휘저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한다.
2 쫄깃하게 삶은 국수는 재빨리 건져 체에 밭쳐 얼음을 넣은 찬물에서 헹군다. 이렇게 하면 쫄깃한 맛이 더 좋아진다

 

메밀막국수

재료
메밀국수 400g, 오이 ½개, 무(5㎝ 길이) 1토막, 삶은 달걀 2개, 배 ¼개, 냉면 육수 4봉지
양념장 : 고춧가루 4큰술, 간장·깨소금 2큰술씩, 양파즙·다진 파 1큰술씩, 다진 마늘·
참기름 2작은술씩, 생강즙 약간
무 양념 : 고춧가루·설탕·식초 2큰술씩, 고운 소금 1큰술

만들기
1 시판 냉면 육수는 냉동실에 살짝 얼려둔다.
2 메밀국수는 끓는 물에 엉키지 않도록 삶아 찬물에 비벼가며 헹군 뒤 체에 건져 물기를 빼고 사리를 지어놓는다.
3 오이는 깨끗이 손질해 4×0.8㎝ 크기로 납작하게 썬다.
4 무는 오이와 같은 크기로 썬 뒤 분량의 양념 재료로 버무려 무생채를 만든다.
5 삶은 달걀은 껍질을 벗겨 반으로 자르고, 배는 납작하게 썬다.
6 볼에 분량의 재료를 넣고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7 그릇에 ②의 국수와 준비한 고명들을 담고 얼린 육수를 부은 뒤 양념장을 올려 낸다.
8 기호에 따라 식초나 겨자, 설탕,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다.


새콤달콤 야채라면

재료(1인분)
오징어 100g, 오이·당근 50g씩, 사과 ¼개, 라면 1봉
유자청 소스 : 유자청 2큰술, 식초·물1½큰술씩, 소금 ½작은술

만들기
1 오징어는 싱싱한 것으로 준비해 껍질, 내장 등을 손질하고 칼집을 넣은 뒤 뜨거운 물에 삶는다.
2 삶은 오징어는 5㎝ 길이로 먹기 좋게 채썬다. 오이, 당근, 사과도 깨끗이 손질한 뒤 5㎝ 길이로 채썬다.
3 유자청은 망에 걸러 건더기 없이 준비해 분량의 식초와 물을 섞은 뒤 소금으로 살짝 간한다.
4 라면은 삶아 차가운 물에 바로 씻어 체에 밭친다.
5 그릇에 삶은 라면을 넣고 준비한 오징어채, 당근채, 사과채를 올린 뒤 ③의 소스를 곁들여 낸다. 유자청 소스 대신 겨자 소스나 초고추장 소스를 활용해도 좋다.


영양부추 쟁반 국수

재료
생메밀국수 300g, 영양부추·적채 50g씩, 오이 1개, 당근 ½개, 무(4㎝ 길이) 1토막, 상추·양상추 10장씩, 깻잎 15장, 땅콩·건포도 20g씩, 육수 2컵, 연겨자 2큰술
비빔 양념 : 고춧가루·간장·설탕 4큰술씩, 식초 6큰술, 다진 마늘·깨소금·참기름 2큰술씩

만들기
1 부추는 다듬어 씻은 뒤 4㎝ 길이로 썰고, 깻잎, 상추, 양상추, 적채는 깨끗이 씻어 1㎝ 폭으로 썬다.
2 오이, 당근, 무는 깨끗이 씻어 4㎝ 길이로 가늘게 채썰고, 땅콩과 건포도는 잘게 다진다.
3 볼에 분량의 재료를 넣고 섞어 비빔 양념을 만든다. 미리 만들어 30분 정도 냉장고에 두었다가 사용하면 좋다.
4 생메밀국수는 끓는 물에 삶아 체에 밭치고 흐르는 물에 헹군 뒤 마지막에 얼음을 넣어 헹군다.
5 ③의 양념에 고기 육수나 시판 육수를 붓고 연겨자를 풀어 매콤새콤하게 맛을 낸다.
6 준비한 야채와 국수를 큰 접시에 돌려 담은 뒤 ⑤의 소스를 끼얹어 버무려 먹는다.

POINT
비빔 양념, 육수로 깊은 맛내기
쟁반국수의 비빔 양념은 묽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 이때 물 대신 쇠고기나 닭 육수를 넣으면 깊은 맛이 난다. 육수 내기가 번거롭다면 시판 육수를 사용해도 된다.


판메밀과 두부튀김

 
재료
판메밀 : 메밀국수 4개, 무즙·송송 썬 실파·김가루 4큰술씩, 시판 소스·생수 적당량씩, 고추냉이 약간
두부튀김 : 두부 2모, 실파나 무순·가다랭이포 약간씩, 녹말가루·식용유·소금 적당량씩

만들기
1 무는 강판에 간 뒤 체에 담아 흐르는 물에 헹군다. 그런 다음 면보에 싸서 물기를 완전히 빼고 건더기만 준비한다.
2 메밀국수는 끓는 물에 삶아 체에 밭치고 흐르는 물에 헹군 뒤 마지막에 얼음을 넣어 헹군다.
3 두부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소금을 살짝 뿌린 뒤 키친타올에 올려 물기를 제거한다.
4 ③의 두부에 녹말가루를 고루 묻혀 180℃ 기름에 넣어 튀긴다.
5 튀긴 두부는 망에 올려 기름을 뺀 뒤 접시에 담고 가다랭이포와 실파를 올려 낸다.
6 ②의 국수를 사리지어 대나무발에 올린다. 시판 소스에 생수를 섞은 뒤 얼음을 띄우고 무즙, 송송 썬 실파, 고추냉이, 김가루를 곁들여 낸다.

POINT
녹말가루로 바삭하게 두부 튀기기
두부는 수분이 많으므로 녹말가루를 묻혀 고온에서 잠깐 튀기는 것이 좋다.
녹말이 두부 표면을 코팅해
겉은 바삭바삭하면서 속은 부드럽다.

메밀면은… 무와 함께 먹으면 좋다
메밀은 다른 곡류보다 단백질이 풍부해 영양이 우수하다. 단, 메밀 껍질에는 몸에 부담을 주는 성분이 들어 있으므로 이를 없애주는 무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따라서 막국수나 냉면에 무절임을 곁들이고 일본식 냉모밀에 무즙을 넣는 것은 좋은 음식 궁합이다.


웰빙 올리브유 라면 


재료(1인분)
방울토마토 10개, 라면 1봉, 올리브유 약간
올리브유 소스 : 올리브유 2큰술, 다진 마늘 ½작은술, 바질 4~5잎, 식초 1큰술, 소금·흰 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방울토마토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거둔 뒤 6등분한다. 바질은 잘게 다져놓는다.
2 올리브유, 다진 마늘, 다진 바질, 식초를 넣고 고루 섞은 뒤 소금과 흰 후춧가루로 간해 올리브유 소스를 만든다.
3 볼에 잘라놓은 방울토마토를 넣고 올리브유 소스를 뿌려 재워놓는다.
4 라면은 삶아서 찬물에 헹군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올리브유에 살짝 버무린다.
5 재워둔 올리브유 소스에 라면을 넣고 고루 버무려 낸다.

POINT
올리브유에 토마토를 푹 재운 향긋한 소스로
토마토를 먹기 적당한 크기로 썬 다음 향긋한 바질과 올리브유에 섞는다.
약 30분 정도 재우면 토마토가 부드러워지고 올리브유는 토마토와
바질 향이 나는 소스가 된다 
 
 
 



Posted by 비회원

냉면 변천사

냉면 변천사 요리 맛집 정보 2008.09.06 13:37

냉면 변천사


냉면 하면 겨울 냉면
본토 평양 한국전 때 남한에 붐
면발은? 부드러워 씹으면 잘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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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관의 평양냉면]
 
 
#평양냉면의 등장

여름에 냉면?

아니다. 원래 사철 냉면이고 겨울 냉면을 으뜸으로 친다. 예전 냉면은 이열치열이 아니라 '이냉치냉(以冷治冷)' 음식으로 자릴 잡았다.

냉면의 메카는 평양. 물론 평양식은 물냉면이다. 비빔식인 함흥냉면은 파생물이라 보면 된다. 남한 제일의 메밀산지인 강원도 같은 데선 춘천 막국수 형태가 태어났다.

일제 때 발간된 잡지 '별건곤' 24호(1929)에 평양냉면의 본질을 잘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작자 김소저가 '사시명물 평양냉면'이란 글을 통해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리는 날, 살얼음이 뜬 김칫국물에다 냉면 풀어 먹고 벌벌 떨며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이 어떻소"라며 겨울철 평양냉면을 찬미했다.

냉면은 메밀, 칼국수는 밀의 산물이다. 당연히 냉면은 북부지방의 산물이고, 남부 지방은 칼국수가 유행할 수밖에 없었다.

냉면이란 용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동국세시기. 여기엔 '겨울철 음식으로 메밀 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이 있다'는 대목이 나오고, 1873년 '진찬의궤'엔 '면 사리, 김치 5기, 돼지 다리 3분의1 토막, 배 3개, 잣, 고춧가루가 들어간다'면서 냉면 재료까지 정리돼 있다. 나박 김치, 양지머리, 삶은 계란 반쪽 등이 고명으로 올라갔는데 이는 요즘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무렵 소고기 육수를 싸늘하게 식혀 거기에 사리를 마는 '장국냉면'도 개발됐다.

중국에도 한국의 냉면과 같은 '냉도(冷淘)'가 존재했다. 두보는 '괴엽냉도(槐葉冷淘)'란 시를 남겼고, 소동파의 시에도 '괴아면(槐芽麵)'이 있는데 냉도와 괴아면 모두 한국 냉면과 비슷했다. 음식문화사학자 이성호(작고)는 한국식품문화사(1985)를 통해 "냉도는 우리의 냉면과 마찬가지로 차갑게 해서 먹는 것은 동일하지만 냉도는 칼국수 스타일인데 반해 냉면은 압착면이고, 냉도는 여름철 절식이지만 우리 냉면은 사계절 음식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메밀은 그 원료만으로 면을 빼기 힘들다. 전분, 녹두가루로 풀을 쑤어 메밀가루와 섞어서 반죽해야 된다. 그게 매우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국수틀이 필요했다. 그런데 19세기만 해도 그런 장비가 집집마다 없었다. 할 수 없이 냉면 면발을 빼내기 위해 국수틀이 있는 주막 등에 주문을 해야만 됐다. 대구시 중구 교동시장 내 강산면옥 본점 한 켠에도 녹슨 철제 국수틀이 전시돼 있다.

#평양냉면의 본가 옥류관

평양 냉면의 전통을 가장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은 대동강변 옥류관. 지난 6월 금강산 관광객들을 겨냥, 금강산 분점을 열었다. 주메뉴는 물냉면과 쟁반냉면. 주문하면 먼저 메밀로 만든 메밀육수, 녹두 지짐이, 백김치가 따라 나온다. 90년 10월 제2차 남북고위급 회담을 취재하러 간 우리 측 기자들에게 옥류관 냉면 레시피가 공개됐다. 용기부터 우리와 달랐다. 우린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이 선호되지만 북측은 유기그릇이었다. 면발도 우리보다 훨씬 덜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우린 겨자를 즐기는 데 그들은 식초만 넣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게 특이했다. 냉면을 가위로 자르는 일도 없었다. 식초 사용법도 독특하다. 육수에 넣지 않고 젓가락으로 들어올린 면 속에 뿌려야 육수 맛이 살고, 면발도 더 쫄깃해진다는 것. 면발은 남한 냉면보다 더 검고 쫄깃한데 이는 메밀을 80% 정도 섞기 때문. 하지만 소다를 넣지 않아 남측처럼 고무줄같이 질기지 않다.

냉면 전문 식당가가 형성된 건 1920년대. 이때 평양 시내에 스무집 이상의 냉면집이 난립됐고 과정에 평양면옥상조합이 결성된다. 일제가 한국 음식을 공략하기 위해 맨처음 찾아낸 음식도 바로 평양냉면이었다. 일제는 이에 앞서 1908년 세계 음식사에 한 획을 긋는 화학조미료를 발명한다. 일본인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가 발명한 글루타민산(MSG) 나트륨이었다. 이것만 넣으면 음식에 감치는 맛이 감돌았다. 이를 토대로 일어선 일본 최고의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가 27년 평양 대동문 근처에 냉면집을 연다. 일본 냉면집 주인들은 육수를 별도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아지노모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주영하 교수는 평양 냉면이 서울로 진출한 건 20년대말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낙원동의 평양냉면집과 부벽부,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돈의동의 동양루 등이 메이저급 으로 자릴 잡았다고 한다. 현재는 장춘동의 평양면옥, 을지로의 을지면옥, 필동의 우래옥, 필동면옥 등이 서울의 메이저급 냉면집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 시절 냉면집 출입문 옆에는 장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에 기다란 종이를 면발처럼 늘어뜨린 광주리를 달아두었다. 요즘으로 보면 에어간판, 네온사인인 셈이다. 그때 냉면집은 요즘 중국집처럼 배달도 갔다.


#냉면의 남하

6·25가 남한에 냉면바람을 일으킨다. 피란지 대구와 부산엔 이북 피란민들이 오픈한 크고 작은 냉면집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런 가운데 냉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게 바로 부산 가야밀면이다. 냉면과 소면을 절충한 새로운 형식의 냉면형 소면 스타일로 그게 2002년 5월 대구 수성구로 진출한다. 1·4후퇴로 함경도 흥남 내호에서 냉면집을 하던 친정어머니와 함께 피란온 정한금씨가 부산 우암동 피란촌에서 '내호냉면'이란 냉면집을 열면서부터 부산 밀면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런데 메밀 냉면은 관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평양냉면은 손이 많이 갔고 면을 뽑아낸 뒤 얼마 되지 않아 모양이 흐트러졌다. 특히 부산 사람들은 질긴 냉면의 면발을 부담스러워 했다. 또한 면발의 주재료였던 메밀과 전분까지 크게 모자라 고안해 낸 것이 밀가루로 만든 냉면. 이 면발은 밀가루와 전분을 3대 1 비율로 섞어 빼는데 59년부터 손님들에게 정식으로 선보인다. 대중화시킨 주역은 40여년 역사를 가진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밀면.

#변질된 요즘 냉면

지역민들은 냉면 면발은 원래 질긴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 부드러운 면발을 내놓으면 그건 냉면이 아니라고 속단해버린다. 과연 냉면 면발은 대구처럼 질긴가. 그렇지 않다. 소면보다 조금 탄력이 있지만 씹으면 잘 끊긴다. 그럼 왜 지금처럼 면발이 질겨진 걸까. 원가절감과 수작업의 불편함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그렇게 돼버렸다. 공장에서 나온 면발은 일명 '나일론 냉면'으로 불렸다. 나일론 실처럼 질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공장용 면발은 공정상 일정한 탄력을 주기 위해 소다를 넣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면발이 질겨진 것이다. 가격도 수작업한 것보다 몇 배 싸니 일반 업소에서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도 소스와 양념을 잘 활용할 줄 모른다. 냉면은 손님들의 각기 다른 취향 때문에 절대 완성품 형태로 내놓지 않는다. 85% 정도만 요리하고 나머지는 손님이 알아서 간을 맞춰 먹어야 된다. 그 15% 몫까지 조리사들이 책임지라고 해서 결국 지금같은 새콤달콤한 냉면 육수가 되고 만 것이다. 냉면 면발을 가위로 썬다는 건 전통 방식에 역행한다. 원류 냉면에 대해 지역민 모두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Posted by 비회원
TAG 냉면, 역사

영주와 냉면 - '냉면의 고장 풍기'를 아십니까 ?

영주와 냉면 - '냉면의 고장 풍기'를 아십니까 ? 요리 맛집 정보 2008.09.06 13:34

영주와 냉면 -  '냉면의 고장 풍기'를 아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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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표적인 곳은  :  '연한' 서부냉면-'질긴' 함흥면옥


영주시 풍기읍. 사람들 대다수는 '풍기'하면 인삼부터 떠올린다. 조선 중종조 주세붕이 1541년 풍기 군수로 부임해 풍기의 토양, 기후를 조사한 결과 인삼재배 적지임을 알아내고 산삼종자를 채취하여 인삼재배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풍기는 졸지에 '인삼의 메카'로 자릴 잡는다.

그러나 식도락가들은 풍기를 '냉면의 고장'으로 꼽으려고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도내 23개 시·군 중 6·25 때 가장 많은 피란민이 여기로 몰려든다. 휴전 직후 그곳 주민 80% 이상이 이북 사람들이었다. 자연 이북식 음식의 좌장격인 냉면이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 상당수 타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풍기가 '냉면촌'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게 '정감록' 때문이란 점이다. 정감록에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자손을 간직하라"란 대목이 나온다. 특히 정감록에 따르면 전국 열 곳의 길지(吉地) 중 첫 손으로 꼽힌 곳이 소백산 자락을 깔고 앉은 풍기, 특히 금계1·2리가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19세기 풍전등화의 한반도 정세를 우려한 안목 깊은 가문들이 앞다퉈 여기로 이주한다. 그 대열에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현장을 지켜봤던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82·풍기 출신으로 현재 서울에 거주)의 조부 김태립도 섞여 있었다. 그는 1885년 평북 정주 고향 사람들과 함께 금계1리로 들어와 쟁쟁한 가문을 일군다. 김태립의 아들 길준은 풍기고(영주과학기술고)를 설립했고, 그의 아들 계삼(작고)도 소백산관광 대표를 역임했다. 계원·계삼 형제는 타지 사람들이 오면 풍기 냉면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풍기 냉면은 점차 전국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휴전 직후 풍기에선 견직(인견)물 공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물론 그 공장주 대다수는 이북인들이었다. 풍기역(중앙선), 인삼시장, 견직물 공장 등으로 인해 상권이 비대해진다. 그 무렵 다른 시골 단위에서 식당 간판이 달린 곳은 눈을 닦고 봐도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풍기는 장사가 잘 돼 현대식 냉면집이 자릴 잡을 수 있었다. 풍기읍 사무소 맞은편에 풍일냉면(60년대 폐업), 풍기초등 정문 앞 우진팔씨의 냉면집, 풍기역 굴다리 맞은편에 최응상씨의 냉면집 등이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대를 잇지 못해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없다. 안타깝게도 70년대 견직물 산업의 몰락으로 냉면집도 일제히 문을 닫는다. 풍일냉면 주방장은 영주로 내려가 냉면문화를 퍼트린다. 풍기와 달리 영주시내엔 50년대만 해도 냉면집이 없었고 70년대초 하망동에 함흥면옥이 첫 냉면집격으로 나타난다.

영주권 냉면문화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뭘까. 그건 풍기 냉면의 대표주자 서부냉면은 메밀이 많이 들어가 면발이 별로 질기지 않은 반면, 영주시내 함흥면옥은 고구마 전분만 사용해 가위를 사용해야 될 정도로 질기다는 사실이다.


#풍기 서부냉면

그 맛의 원천은 김숙인 할머니(81)가 쥐고 있다. 평북 운산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1·4 후퇴 때 남편 김경섭 할아버지(81)와 풍기로 내려왔다. 아직 메밀을 멧돌에 직접 갈고, 철제 냉면틀에서 면을 직접 뽑아내는 것만은 예전 그대로다. 

물론 이 집의 명물은 식당 한 켠에 자릴 잡은 메밀 가는 기계식 멧돌. 간 메밀을 체질하는 김 할머니의 자태가 바로 이 집 역사다.

김 할머니가 처음부터 냉면집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 처음엔 메밀묵 장사부터 시작했다. 겨울에 힘을 더 발휘하는 메밀묵. 그러나 여름철에는 맛이 없어 잘 팔리질 않았다. 하절기, 남아도는 메밀을 활용해야만 했고, 견직물 공장 기술자였던 남편의 월급만으로 살기 힘들어 73년 큰 맘먹고 서부냉면을 연다. 그런데 이북과 달리 경상도 사람들은 꿩, 돼지고기 육수에 거부감을 보였다. 남한 실정에 맞게 소고기 육수를 내기 위해 눈·귀동냥을 많이 했다.

서부 냉면의 맛은 무심하고 담담하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 대동강과 비슷한 맛이다. 얼큰함과 짠맛에 길들여진 경상도 본토 어른들은 맹물같은 육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음미해보면 '무심 속 진미'를 느끼게 된다. 곁반찬도 단출해 고춧가루를 묻히지 않은 무 김치와 열무김치가 전부다. 장남 제호씨(48)도 서울로 올라가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직장을 나와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 후문에 서울 분점을 냈다. 현재 본점은 김씨 할머니, 차남 제세씨(41), 며느리 명연옥씨(44)가 지키고 있다.


#서문가든

94년말 평북 구성군 당현면에서 이곳 서부동으로 피란 온 허덕영의 손자 정씨(50)가 문을 열었다. 선대는 이곳에서 견직물 공장을 경영했고, 허정씨도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여의치 않아 냉면집을 열었다. 육수는 사골과 사태살을 사용하고 동치미 국물을 조금 섞는다. 메밀과 전분은 5 대 1 비율로 섞는다.


#영주 함흥면옥

우수락(작고)·홍금순(82) 부부는 1·4 후퇴 때 함남 함흥군 신포에서 속초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약 15년쯤 함흥식 냉면을 퍼트린다. 70년대초 영주시 하망동 중앙교회 옆으로 왔다가 82년쯤 태극당 옆 골목 안으로 이전한다. 한때 홍 할머니의 딸 명옥씨가 가업을 잇다가 손을 떼고 현재는 아들 경식씨(38)가 본점과 메밀명가(영주동)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 몸이 불편한 홍 할머니는 "함흥 냉면은 회냉면이라고 하죠. 싱싱한 명태와 가자미, 홍어 등을 넣는데 우리집은 가오리를 넣고 있어요. 함흥식 전통을 살리기 위해 메밀은 전혀 넣지 않고 고구마 전분만으로 면발을 뺍니다"면서 함흥냉면의 본질을 설명했다. 참고로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집 금호동 함흥냉면옥(대표 이석봉)은 회냉면에 명태회를 올려준다.

우 사장은 "평양식은 메밀이 많이 들어가 덜 질기고, 함흥식은 전분이 많아 질긴 게 제 맛이란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면서 냉면장사 고충을 토로한다.


#서부 불고기 식당

풍기읍 서부리 129의 1 서부 불고기 식당. 현재 사장 김순자씨(59)의 시아버지 배찬덕씨는 평남 덕천군 출신이다. 그도 처음부터 냉면집을 생각한 건 아니다. 월남한 사람들이 가장 만만하게 시작했던 견직물 공장을 꾸려가는 한편, 풍기읍의 첫 보신탕집도 오픈했다. 70년대 들면서 견직물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공장들이 도산을 한다. 배씨의 부인 권오희씨(작고)는 남편 사업이 괜찮았을 땐 냉면집을 상상도 못했다. 76년 권씨는 보신탕집 운영도 안되고 직물 공장까지 어려워지자 며느리와 함께 냉면집을 오픈한다. 육수는 사골을 섞지 않고 양지머리만으로 내고, 면은 직접 가루를 낸 메밀과 전분을 함께 섞어 빼낸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영주 부석사 관광 특수가 일자 질긴 면발 수요가 늘어, 면발도 전보다 더 질기게 빚고 있다.
 


Posted by 비회원

대구의 유명 냉면집

대구의 유명 냉면집 요리 맛집 정보 2008.09.06 13:30

대구의 유명 냉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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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냉면]



 
# 대동면옥(중구 계산동), 대동강(남구 봉덕동), 부산 안면옥(중구 공평동).

강산면옥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냉면 전문점들이다. 특히 대동면옥과 부산 안면옥의 마스코트격인 온육수는 외지인들로부터 특별대접을 받는다. 북한에서 즐겼던 온육수는 왜 생겨났을까. 그 이유는 냉면이 겨울 음식이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찬 냉면과 뜨끈한 육수를 통해 음양의 조화를 노렸다. 그래서 냉면이 사철 음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골수 냉면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 있다. 바로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술을 먼저 먹고 나중에 냉면으로 속을 푼다'는 의미다. 이때 냉면은 해장국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바닷가 어부들이 식전에 먹던 속풀이 물회와 같은 구실을 한다.

냉면요리엔 잔 일손이 많이 간다. 밀가루로 칼국수를 뽑는 건 냉면 면발 빼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메밀 반죽은 뜨거운 물에 재빨리 반죽하지 않으면 메밀 입자끼리 잘 엉겨붙지 않아 면발이 잘 빼지질 않는다. 가능한 한 오래 반죽해야 쫄깃해지는데 요즘처럼 자동반죽기가 없던 그 시절 반죽일은 중노동이었다. 그래서 힘들면 달려갈 수 있는 집이 있는 제바닥 일꾼들은 몇달 못 견디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여건상 타지 출신이 더 오래 견뎠다. 그래서 그런지 대구지역 유명 냉면집 주방장들은 거의 호남 출신이다.

메밀은 가는 방법에 따라 질감이 달라진다. 재래식 맷돌을 사용할 경우 메밀 외피만 갈리고 속은 살려주기 때문에 반죽해도 면이 쫄깃해진다. 하지만 요즘처럼 고속 분쇄기를 사용할 경우 열도 많이 발생하고 속까지 으깨놓기 때문에 반죽해도 탄력이 별로 없다. 온육수는 주방장 취향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예전 이북 사람들은 냉면 삶은 물에 국간장을 조금 가미해 온육수를 만들어 마셨다.


# 대동면옥·부산안면옥, 온육수 유명

중구 계산동1가 뒷골목, 퇴락했다지만 대동면옥이 반세기 이상 자릴 지켜 체면은 유지하고 있다. 70년대말까지만 해도 이 골목 남쪽 끝에 유명한 요정 일심관, 불고기 요리 1번지로 군림했던 계산동 땅집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어 불야성을 이뤘다.

대동면옥과 부산 안면옥 사장은 한 집안 사람이다.

대동면옥 초대 사장 안차천(현재 구미에 거주)의 형 안목천은 6·25 때 부산시 중구 창선동으로 피란, 자기 성을 따 부산 안면옥을 오픈한다. 안씨 집안은 이미 구한말부터 평양에서 안면옥을 꾸려온 냉면 명가. 평양 안면옥은 제분소까지 소유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부산으로 내려온 안면옥이 요즘 맛 보기 힘든 '이북식 쟁반요리'를 내놓아 대박을 터트린다. 이 요리는 일종의 '북한식 소고기 전골'로 당시 남한엔 없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밥을 볶아 먹지 않고 냉면 사리를 넣어 먹는 게 이색적이다. 그런데 부산 안면옥이 어떤 연유로 대구로 오게 됐을까.

부산 안면옥 동절기 휴업…이듬해 4월쯤 재개

부산의 안씨는 식당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식당보다는 세상사에 더 관심 많은 '한량'으로 변모한다. 보다 못한 부인이 현재 대구 부산 안면옥 사장인 조카 방수영(75)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그때 방수영은 거창여고를 거쳐 진주고에서 영어교사로 있었다. 가업을 이어준다는 일념을 갖고 교직을 박차고 나와 부산 안면옥을 떠맡게 된다. 그가 대구로 올라와 부산 안면옥 대구지점을 대구국세청(현재 밀리오레) 동편 골목 안에 오픈한다. 날이 갈수록 부산보다 대구지점이 더 히트를 친다. 결국 부산 안면옥 본점이 대구지점에 통폐합되고 만다. 부산 안면옥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추어탕집인 상주식당처럼 동절기엔 영업을 하지 않고 이듬해 4월1일쯤 다시 문을 연다.

대동면옥과 부산 안면옥 냉면 온육수 맛은 조금 다르다. 

대동면옥은 냉면 삶은 물과 고기 삶은 물을 섞는 반면, 부산 안면옥은 사골, 잡뼈 등을 약 24시간 삶은 물에 간장, 무, 생강, 파뿌리, 마늘 등 갖은 양념류를 넣어 빚는다. 대동면옥 온육수의 맛은 '분청사기', 부산 안면옥은 '조선백자' 같다.

대동면옥, 술꾼들 심야 해장파티집으로 애용

대동면옥은 50년대까지는 중구 동산파출소 앞 큰 길가에 있다가 60년대초 현재 자리로 이전한다. 그때 대동면옥 냉면은 특히 요정의 단골들에게 '해장면' 구실을 했다. 60년대초 구 오성고 근처에 자리잡았던 5관구 H 사령관은 지역의 유력 인사와 술독에 빠지길 좋아했다. 특히 금호호텔 북쪽 인교동 골목안에 자리잡았던 단골 요정 수향원(나중에 죽림헌으로 바뀜. 고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이 자주 이용)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심야의 해장냉면 파티'를 자주 만들었다. 동석자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대동면옥으로 직행, 느닷없이 유리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유리창이 깨지는 촌극도 연출했다.

"옛 모습이 좋아" 리모델링 못하게 막기도

대동면옥은 강산면옥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골목으로 이전한 뒤부터 엄청나게 성장한다. 현재 56평 ㅁ자 일본 적산 가옥은 여러번 개조해도 퇴락미가 돋보인다. 몇십년 단골 노인들은 추억의 음식인 냉면집은 너무 화려하고 거창하면 안된다면서 89년 4대 주인이 된 이옥자(50)에게 리모델링 못하게 압력을 가한다. 흥미로운 건 상당수 단골들은 주인 이옥자를 명맥을 잇는 손부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옥자는 결코 이북에서 내려오지 않은, 대구토박이다.

대동면옥이 늘 좋았던 건 아니다. 2대 백모 사장 시절에 위상이 추락했고 그걸 현재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는 이두영이 평북 운산에서 냉면집 주방장으로 있던 이창섭 할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전수해 3대 사장이 되며 현재 4대 사장 이옥자가 잃어버린 예전 대동의 명성을 되찾는다.

# 봉덕동 대동강, 실향민들의 '제맛'

남구 봉덕2동 대동강. 초대 주인 윤일순(77)은 평남 중화군 해안면 죽산리 출신이다. 그녀의 선친은 식당업에 간여하지 않았다. 22세 때 혈족 8명과 함께 1·4 후퇴, 서울을 거쳐 서구 내당동으로 피란온다. 그녀 집안은 내당동 서부교회에서 우유를 얻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 가난이 그녀를 냉면집 주인으로 만든 것이다. 65년 당시 제과점에서 중국집으로 변해 있던 허름한 13평 한옥을 구입한 직후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북 음식을 팔았다. 비지, 빈대떡, 만두국을 끓여 팔다가 68년부터 평양식 냉면을 집중 판매한다.

윤일순은 고향에서 먹은 광천수 맛 같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던 김치말이 냉면맛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도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조금 섞는다. 이북에선 꿩 육수와 동치미를 반반씩 섞었다고 한다.

이수성·이재용·윤덕홍·이동원씨등 자주 찾아

가업을 이은 외동딸 석정희(53)는 대동강 냉면 맛을 평가받기 위해 2002년 중국 베이징에 가서 시식회를 갖기도 했다. 윤일순은 북한 동치미에 대한 정보를 더 알려줬다. 북한에선 음력 9월에 김치를 담가 이듬해 음력 2~3월까지 먹기 때문에 큰 독을 땅에 6개월쯤 묻어둔다. 동절기에 꽝꽝 언 김치를 걷어내고 말갛게 고인 국물을 퍼낼 때 아녀자들의 맘이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대동강 냉면 색은 메밀묵처럼 연한 데다가 육수까지 말갛기 그지 않다. 양념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신세대들에겐 맹물맛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이든 실향민들에겐 그게 '제 맛'이라고 한다.

'향수'를 부른 평양 출신 가수 이동원, 작곡가 김희갑·작사가 양인자 부부, 이수성 전 총리, 윤덕홍 전 대구대총장, 이재용 환경부장관 등이 자주 찾았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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