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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 요세미티 국립공원 산행…100만년된 자연서 하룻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 요세미티 국립공원 산행…100만년된 자연서 하룻밤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28 16:05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 요세미티 국립공원 산행…100만년된 자연서 하룻밤


트레일 총 800마일…걸어봐야 참 맛,
폭포·절벽 등 가까이 보면 더욱 장관

 

“아무리 지쳐 있더라도 산에서 하루를 보내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도중에 기운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수를 누릴 운명이건, 파란만장한 삶을 살 운명이건 그 사람은 영원한 부자다.”

자연주의자 존 뮤어가 31세 되던 1869년의 어느 여름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서 3개월간을 보내며 썼던 산중일기 ‘나의 첫 여름’ 중 한 구절이다.

그의 노고로 국립공원에 지정된 요세미티는 연간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 요세미티는 자연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한 곳에 갖고 있다.

100만년전의 빙하가 침식하면서 만들어진 이 계곡에서는 요세미티 폭포를 비롯해 9개의 폭포가 있으며 8000피트 급의 높은 절벽과 봉우리들이 웅대하고 위압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여행사에서 떠나는 관광 패키지를 이용해 먼 발치에서 요세미티 폭포 해프돔 등을 보고 왔다면 당신은 요세미티의 진면목을 본 것이 아니다. 단 하룻밤만이라도 공원 안에서 숙박하고 800마일이 넘는 트레일의 일부라도 걸으며 온 몸으로 그 아름다움을 느껴봐야 비로소 요세미티를 봤다고 말할 수 있다.

요세미티 공원은 머세드 강의 상류지역인 요세미티 밸리 남쪽의 와워나와 마리포사 그로브 그리고 동쪽 고산초원지대인 투올럼 메도우 등 크게 3지역으로 나뉜다. 오늘은 해프돔이 있는 요세미티 밸리를 중점으로 소개한다.

남쪽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36마일을 운전해 들어가면 요세미티 공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들이 모두 모여 있는 요세미티 밸리가 나온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들

▲엘 캐피탄(El Capitan): 요세미티 밸리 입구 왼편에 위치한다. 3000피트 높이 수직으로 쭉 뻗어 있는 세계 최대 화강암 절벽. 신생대 백악기에 생성됐다. 요세미티 폭포 옆의 등반로를 타고 8마일 정도 올라간다. 여름철이면 아슬아슬 암벽을 타는 산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스카이다이버들이 사랑하는 낙하 코스이기도 하다.

▲노스돔(North Dome): 요세미티 밸리 동쪽 해프 돔의 계곡 반대편에 위치한 해발 7542피트의 거대한 화강암. 해프돔이나 그레이저포인트 등 요세미티 밸리의 볼거리 대부분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요세미티 벨리에서 요세미티 폴 트레일(Yosemite Falls Trail)이나 소누우 크릭 트레일(Snow Creek Trail) 또는 포쿠핀 크릭 트레일(Porcupine Creek Trail)을 통해 올라간다.

▲해프돔(Half Dome): 4000피트에 달하는 반구형의 거대한 화강암 바위로 요세미티 밸리의 동쪽 끝에 우뚝 서 있다. 요세미티의 상징물과 같은 존재로 빙하의 무게에 눌려 바위의 모양이 돔의 형태가 되었고 빙하가 녹으면서 바위의 반이 떨어져 나갔다.

해발 8842피트의 해프돔 정상에 오르려면 버날과 네바다폭포를 지나서 리틀 요세미티 밸리로 연결된 케이블 루트를 이용한다. 거리도 짧지 않은 데다 11월~5월까지는 하이킹도로가 폐쇄되기 때문에 여름철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정상에 올라가볼 기회가 없다. 정상에 오르려면 물을 비롯한 등산을 위한 기초장비가 준비돼야 한다.

▲브라이들베일 폭포(Bridalveil Falls): 요세미티 밸리에 들어서 가장 먼저 정면우측으로 보이는 높이 620피트 폭포. 한줄기 폭포수가 가늘게 내려오다가 안개같이 부드럽게 흩어진다.

▲리본 폭포(Ribbon Fall): 하나의 폭포 라인으로는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고 전 세계에서 8위인 폭포로 길이가 무려 1612피트에 이른다. 엘카피탄 절벽 서쪽에 있어 바위가 앞을 가려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고 북미지역에서 가장 놓은 폭포로 요세미티를 대표한다. 요세미티 밸리 위로부터 요세미티 폭포(1430피트) 미들 케스케이즈 폭포(middle cascades Fall 675피트) 로어 요세미티 폭포(Lower Yosemite Falls 320피트) 등 3개의 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버날 폭포(Vernal Fall): 높이는 317피트밖에 안되지만 물이 많을 때는 폭이 100피트가 넘기도 한다. 버날 폭포에 다다르면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웅성거림은 깊은 산에 묻히고 폭포 소리에 묻힌다. 버날 폭포 다리를 지나면 폭포의 정상으로 오르는 700개의 돌계단에 이른다. 하나하나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폭포수가 바람에 비 오듯 흩날리며 쏟아져 내린다.

▲미러 호수(Mirror Lake): 요세미티 밸리의 동북쪽 끝 하프돔과 노스돔 사이에 있는 작은 호수. 요세미티 밸리에서 1마일 거리라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 산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는 모습이 아름답다.

▲글래시어 포인트(Glacier Point): 해발 7214피트의 전망대로 해프돔을 비롯해 시에라네바다산맥 머세드 강 요세미티 폭포와 네바다 폭포 등 요세미티 공원의 가장 웅장하고 그림 같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4.5마일 등산로는 4~5시간에 오를 수 있다.

◇ 요세미티 국립공원 가는 길

※ 요세미티 밸리의 중심에 작은 마을 빌리지가 있다. 방문자센터가 있어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고 숙박시설 식당들이 있다. 길버트 스탠리 언더우드의 설계로 1927년 7월 14일 요세미티 국립 공원 내에 문을 연 빅토리안 스타일의 호텔 아화니(Ahwahnee)를 비롯해 커리 빌리지 요세미티 롯지 앳 더 폴스 등이 다 가까이 있다.

빌리지는 오전 7시~오후 10시까지 숙소와 상점 주요 명소를 도는 무료 셔틀을 운영한다. 요세미티 공원은 LA에서 북동쪽으로 313마일 거리, 자동차로 6시간 가량 걸린다. 5번 프리웨이 타고 99번 타고 41번 타고 계속 북쪽을 향해가면 요세미티 국립공원 남쪽 입구에 이른다. 차 한대당 20달러 하는 입장권은 7일간 유효. 자세한 문의는 (209)372-0200, www.nps.gov/y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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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카카두 국립공원~다윈

캐서린~카카두 국립공원~다윈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6:10

캐서린~카카두 국립공원~다윈

 
 

 
 
마타랑카에서 캐서린까지는 105km. 캐서린이란 이름은 19세기 중반 호주 대륙을 종단했던 존 맥도웰 스튜어트의 후원자 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멜 버른에서 다윈에 이르는 장장 4천km의 간선 도로 스튜어트 하이웨이는 이 탐험가의 이름에서 유래됐음은 물론이다.
캐서린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아름다운 열대풍의 나무와 꽃이 집과 지붕사이에 머리를 내민 마을 풍경, 온화한 기후, 아웃백이 끝났음 을 알리는 잔디밭들, 친절한 주민들, 화려한 계곡과 강, 온천, 바비큐 요 리가 가능한 파크들….

작년 여행도중 이곳에서 1만2천원가량하는 조명등을 샀었는데, 다윈을 지나 텐트생활을 하는 동안 목부분이 똑 부러져 버렸다. 하행길에 숍에 들러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리로 제품교환을 요구했더니 숍 메니저가 군말없이 즉 석에서 흔쾌히 바꿔줬다. 소비자 과실이지만 기간이 1주일 밖에 안됐으니 바꾸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믿고 소중하게 대해준다는 느낌은 얼 마나 큰 행복을 주는가.

올해 숙소도 작년과 같은 ‘새디레인 카라반파크’다. 중심가에서 2km가량 떨어진 농장형태의 숙소다. 올해는 캐빈을 예약했으나 작년에 텐트를 치면 서 겪은 일을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팩을 땅에 박기위해 돌을 찾았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 넓은 공원에 돌이 없어, 타운까지 되돌아 나가면서 거리 곳곳을 뒤졌으나 결국 실패했던 것이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결국 팩 을 박지 못한 채 텐트뼈대만 세운채 잠을 청했다. 그만큼 잔디와 가로 정 비가 잘 돼있는 곳이다. 캐서린의 볼거리는 연간 3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캐서린 계곡 ‘닛밀룩국 립공원’이다. 보트 선착장입구 숲에는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박쥐가 나무 에 거꾸로 매달려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 이들은 황혼이 막 지날 때면 수 만마리가 떼지어 100Km가량 떨어진 카카두국립공원 방면으로 하늘을 뒤덮고 비행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계곡의 맑고 깊은 강은 카누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다. 계곡 중간 모래밭에 카누를 정박시키고는 옷을 입은 채로 물에 풍덩 뛰 어들어 더위를 식혔다. 좌우 푸른 협곡사이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은 그대로 영원히 뱃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계곡에 내려 부시워킹을 하는 관광루트도 개발돼있어 하루를 보내기에 그 만이다.

저녁시간에는 중심가 반대편 3km가량에 위치한 로우레블공원에서 바비큐요리 로 저녁을 해결하고, 마침 마을에서 벌어지는 원주민들의 춤과 노래공연행사 를 관람하면서 그들과의 합일을 시도해본다. 모닥불연기사이로 울려퍼지는 애 버리지널의 노랫소리와 반주, 춤이 단조롭기 그지없지만, 반복해 듣다보니 뭔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영혼의 감흥이 느껴진다. 그들의 아픈 역사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때론 말과 논리로 메시지를 한정시키는 것보다 소리와 춤으로 다의적 해석을 유도하는 것이 훨씬 많은 의미전달효과가 있음을 실 감한다.

캐서린에서 다윈까지의 거리는 스튜어트하이웨이를 따라 직선으로 가면 3 25km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이웨이 오른쪽 역삼각형 지형의 카카두국립공원을 둘러서 갈 경우 거리는 554km로 늘어난다. 그래도 에어즈 록, 닛밀룩국립 공원, 그레이트오션로드, 골드코스트와 더불어 호주 최대의 볼거리 중 하나 인 카카두국립공원 코스를 절대 양보할 수는 없다. 공원입구 붉은 벽돌 문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매표소를 거쳐 공원으로 난 찻길로 진입했다. 간혹 지나는 차량이 있을뿐 드넓은 산야에 인적은 찾 을 수 없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태초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송두리채 간직한 시원(始源)으로 표현하면 적합하다. 에어즈록일대와 마찬가지로 원주민 들의 권리를 인정받는 호주에서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원주민 소유주들 은 백인들과의 협상에서 카카두공원에 거주하면서, 종교의식을 거행할 권리, 사냥할 권리 등을 당당히 쟁취해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역삼각형의 오른쪽 꼭지점 ‘자비루’지점에서 동쪽으로 43k m 지점에 위치한 ‘우비르’는 2만∼6만년 전에 그려진 원주민들의 암각화가 큰 감흥을 준다. 1시간 정도의 트레킹코스 끝에 다다를 수 있는 산 정 상에서 내려다 보는 아득한원시림과 늪지대는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의 촬영장소 바로 그곳이다. 거대한 삼림과 계곡, 강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자연의 협주곡이라고 할까. 공원에 거대한 폭포와 깊고 맑은 계곡의 비경을 관람할 수 있는 헬리콥 터 관광산업이 잘 개발돼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일년내내 그칠 줄 모르 는 산불은 또다른 장관이다. 발화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대체로 인 위적인 원인에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오는 자연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 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거대한 삼림이 불타는 장면을 목격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홍수가 나면 도로 곳곳이 침수되는 지역인 만큼, 중간중간에 빌라봉으로 불리는 늪지대 숲도 진풍경을 더한다. 거대한 나무숲이 물 속에 잠긴 형태 여서 온갖 종류의 새와 수서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학습과 사진촬영에 좋은 곳이다.

공원 중간, 옐로 워터 입구에 마련된 ‘와라잔 애버리지널 문화센터’는 원주민들의 삶의 형태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잘 정리한 박물관 겸 화랑 겸 아트숍이다. 안에 적힌 한 작가의 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의 영혼은 땅으로부터 왔고, 죽음과 더불어 다시 그곳으로 돌 아간다. 당신의 아버지, 형제,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리고 당신이 죽었을 때 땅은 당신의 뼈가 되고 피가된다.”

테넌트 크릭에서 섭씨 25도 가량이던 기온은 캐서린에서 27도가량으로 올라간 뒤 다윈에 이르면 30도를 넘어선다. 우비르의 암각화를 탐사할 때 문득 살펴보니 우리 일행을 빼고는 오가며 만나는 사람 모두가 반팔, 반바 지 차림이다.

다윈에서 달라진 기후는 도심과 거리풍경에서 나타난다. 거리곳곳의 열대 식물과 특유의 화려한 꽃들, 대양, 요트, 반라의 젊은이들. 호주대륙의 북 단인 만큼 국제비행장으로 모여드는 관광객들의 다양한 국적은 다문화국가의 면모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준다. 다윈만 76개 이민족이 모여산다는 통계를 접한다. 도심에서 가장 인기있는 팝레스토랑은 ‘록키즈 드리프트’로 넓은 테라스 테이블에서 밤새 맥주잔을 기울이며 얘기꽃을 피우는 젊은이들의 열 기가 뜨겁다. 도심 한 가운데 키 큰 포섬나무에는 고양이처럼 생긴 포섬이 사는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포섬나무 뒤에 위 치한 자그마한 숍의 이름도 ‘포섬트리숍(Possum Tree Shop)’이다. 주인 그 레고리(36)는 “이 포섬나무는 1975년에 어디선가에서 옮겨온 것”이라며, “ 새끼를 합쳐 정확하게 32마리의 포섬이 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인구 8만명의 북부특별자치구 주도인 이곳 다윈은 아픈 상처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1942년 태평양전쟁의 와중에 일본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당해 시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1974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아침 불어닥친 사이클론 ‘트레이시’는 도시가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만 치 큰 상처를 입혔다. 유난히 도시곳곳에 전쟁기념관과 탑, 박물관 등이 산재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에 비약은 없는 법이고, 아프지 않고 성숙하는 사회가 또 어디 있 으랴.

 


종단취재여행을 끝내며


남태평양 서쪽 바다에 깔리는 황혼을 바라보며 종단취재를 접는다.


남태평양 바다 곳곳에 점점이 떠있는 요트가 바라다보이는 다윈 북서쪽 아트갤러리와 박물관 1층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이제 20일간에 걸 친 종단여행을 접었다. 목감기에 눈병까지 겹쳐 고생한 처는 다윈에 이르러 서야 안도하는 웃음을 보인다. 캐서린에서 발가락을 다친 딸아이도 몸을 추 스른다.

1년 새 두번에 걸쳐 종단여행을 끝냈지만 내가 과연 호주대륙을 ‘봤다 ’고 할 수 있을까?

여행기간 찍은 1천700장의 사진은 호주를 얼마나 담아 냈을까? 설사 대 륙의 길을 걸었다고는 해도 단연코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여행 말미에서야 엄습했다. 무엇보다 대륙의 원주인이라 할 애버리지널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한계에서 온 것이지만, 백인들과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을 접하면서 잔잔한 삶의 희망과 평화를 발견했다는 것이 그나마 성과라고나 할까. /변성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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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43

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는 넷째 날 아침을 블랙힐스에서 맞았다. 맑은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새로워졌다. 블랙힐스에서 만났던 많은 이야기들은 그것대로 제 살던 곳에 남겨 두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찾아오는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긴 하루의 시작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찾아들기 전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 도착하려면 거의 9시간을 달려야 했다.
 
  자동차의 시동 소리도 상쾌했다. 길을 떠나자 길 가에 서있던 소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반긴다. 잘 가라고 반가웠다고 인사를 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참으로 잘생긴 소나무들이다. 배드랜즈(Bandlands)의 소나무들과는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배드랜즈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작고 비틀려 있었다. 껍질은 터져있었다. 하지만 블랙 힐스의 소나무들은 모두 하늘에 닿을 듯 키가 크고 곧게 뻗었다. 껍질 또한 터지지 않아 단정한 모습이었다. 너무나 다른 삶이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그렇게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늘 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때로는 배드랜즈의 소나무들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며 싸우고 때론 블랙힐스의 소나무들처럼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면서 말이다.
 
  10시가 조금 지났다. 신성한 땅 블랙힐스를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무지가 펼쳐진다. 키 작은 나무들이 간혹 보일 뿐이다. 먼지 때문인가. 회색이다. 푸석거리는 메마른 땅에 불쑥불쑥 보이는 그 희끗한 모습이 어느새 듬성듬성 자리 잡은 터럭허연 수염 같았다.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텁수룩해지는 나는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 계획 이외의 다른 계획을 하나 세웠다. 그것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벌써 나흘이 지났다. 닷새 째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조금 생경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얼굴의 반을 덮은 턱수염 사이사이에서 흰 수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느 겨울 어스름한 저녁 내리는 눈발 같기도 하고 푸르른 소나무 숲 가운데 끼어 있는 자작나무나 흰 참나무 같기도 하였다.
 
  이렇게 흰 수염이 자랄 때까지 잘도 살았구나.
  하기야 머리에 내린 서리가 어찌 턱이라고 피해가겠는가.
  그들도 나와 함께 살아가며 세월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런 상념에 마음 빼앗기고 있을 때 길가의 입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묘한 글귀였다. 'Gold loves you!'라고 적혀있었다. 아니 아무리 금으로 유명했던 땅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보았다. 나의 착각이었다. 입간판에는 'God loves you!'라고 적혀 있었다. 블랙힐스의 금에 얽힌 슬픈 역사에 젖어 있던 나는 God을 Gold로 잘못 본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하고 있는 동행에게 'God'과 'Gold'는 'L'자 하나의 차이 밖에 없다며 웃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묘한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여행길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반감시킬 수 있는 이런 상념들은 인디언들이 '대초원'이라고 불렀던 와이오밍 (Wyoming)주에 들어서며 곧 사라졌다. 미국 최초의 National Forest인 'Big Horn National Forest'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서부로 자동차 여행을 하는 이들은 꼭 들려 보기를 권한다.

  자동차를 몰아 허공에 길을 놓은 듯 굽이굽이 보이지 않는 산허리를 따라 오르자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정상이다. 산 정상이라면 뾰족한 봉우리로만 알고 있던 내 앞에 상상할 수도 없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광활해 보이는 초원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길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황량해 보이는 바위들과 곳곳의 작은 호수들과 그 호수들을 이으며 고요히 흐르고 있는 시내들을 품은 채 하늘과 초원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이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할까. 하늘에 오르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마음 깊이 젖어드는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사이 자동차는 서서히 산 아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느라 잠시 차를 세운 우리 곁으로 말 탄 카우보이의 무리들이 지난다. 나의 삶이 여기 있듯이 그들의 삶 또한 거기 있었다. 여행이란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길을 재촉했다. 빅혼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오후 4시 33분. 옐로스톤을 향해 달린 지 7시간 30분이 지났다. Shoshon National Forest에 들어선다. 하늘이 검어진다. 빗방울이 뿌린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온다. 폭우다. 협곡을 지나며 비바람은 다소 주춤하였지만 기온은 급강하 하였다. 화씨 95도까지 올라갔던 기온이 화씨 59도가 되었다. 바람에 깎인 검붉은 바위들 사이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깊은 계곡이다. 계곡으로 많은 물이 흐른다. 산이 깊으면 계곡도 깊고 물도 깊이 흐르는 법이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많고 계곡을 돌아 나오는 바람도 거센 법이다. 그래서 그런가. 바람이 드세다.

  우리는 드디어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세계 국립공원제도의 발상지인 옐로스톤에 도착하였다. 오후 5시 15분이었다. 공원의 동쪽 문으로 들어서자 1988년 대화재 때 타고 그을렸던 나무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화석화된 나무들처럼 서 있다. 불탄 숲과 나무들은 눈으로 보기에도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숲은 푸르러지고 깊어지고 있었다. 숲을 지나자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옐로스톤 강이다. 내린 비 때문이었을까. 강은 더욱 맑고 잔잔하게 흐르는 듯하다. 잠시 차를 세우고 강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저렇게 흘러왔을까.
  우리의 삶도 저렇게 맑게 흘러갈 수 있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사슴(Elk)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더 나아가자 나무 숲 사이로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옐로스톤호수(Yellow Lake)였다. 최대수심 320피트, 폭 14마일, 길이 114마일에 달라는 북미에서 가장 큰 호수인 옐로스톤호수이다.

  깊은 산 속에 어떻게 이렇게 큰 호수가 있을 수 있을까.
  이 많은 물이 어디서 흘러 왔을까.
 
  마치 바다와 같다. 지나는 배 때문이었을까. 깊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을까. 물이 출렁인다. 밀려든다. 파도가 치는 듯하다. 호수 건너에 낙조가 드리운다. 은빛으로 빛나며 출렁이던 호수 면은 조금씩 붉게 물들어간다. 바람을 따라가는 듯 이끌리는 듯 배 한 척 흐른다.
 
  옐로스톤 호수에서 많이 잡힌다는 송어 낚시를 나온 것일까.
  그저 이 길에서 마음 담으려고 제 몸 띄운 것일까.
 
  조금씩 해가 기운다. 낙조가 깊어진다. 호수 곁으로 난 길을 따라 자동차를 몰아갔다. 어둠이 깃들기 전 옐로스톤 강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과 폭포를 마음에 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비지터 센터의 안내인이 알려준 대로 노스 림(North Rim)의 인스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로 향했다.
 
  자동차를 따라 어둠이 깃드는 듯 했다. 자동차를 세우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떼었다.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멀리서 '우르릉 우르릉-' 천둥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포였다. 이정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 눈부시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엄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폭포가 있었다. 그 폭포를 가슴 가득 품어 안고 협곡을 따라 깊이 흐르고 있는 옐로스톤 강이 있었다.

  그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강이 아니라 협곡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협곡이 아니라 산 전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산과 협곡과 강을 따라 나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옐로스톤은 나를 맞고 품어 주었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 위로 낙조가 깊어지고 있었다. 강물도 협곡의 바위들도 나무들도 나도 모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옐로스톤에서의 첫 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옐로스톤의 아침이 밝았다. 석고보드와 목재를 조합해 만든 조금은 어설픈 오두막이었으나 아침은 눈부셨다. 눈부신 햇살이 들어 왔다. 눈을 뜨자 어제 저녁에 먹은 꽁치김치찌개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지난 밤의 아름다웠던 별빛과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침이었다. 행복한 밤 행복한 아침이었다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서둘러 오두막을 나섰다. 숲은 아름답고 발걸음은 여유로웠다. 우리는 다시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stone)으로 향했다. 옐로스톤 강이 품고 있는 Lower Falls를 곁에서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Lower Falls로 내려가는 길인 Lookout Point Trail은 한가로웠다. '우르릉- 우르릉-' 폭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은 가파르다. 이른 새벽 Lower Falls을 만나고 오는 이들의 눈인사가 지나간다. '우르릉- 우르릉-' 대던 소리가 '콰콰쾅-콰콰쾅-'하는 소리로 바뀌자 거짓말처럼 Lower Falls 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온통 물보라뿐이다.
 
  물보라를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젊은 날 상처 받은 마음을 씻어 내기 위해 떠났던 길 먼 바다 새벽에 만났던 해무처럼 피어오른다. 물안개들이 얼굴로 목덜미로 스며든다. 몸으로 젖어든다. 협곡의 절벽을 타고 오른다. 강이 오랜 세월 제 몸 부대끼며 만들어 놓은 협곡이다. 바위틈마다 물안개 꽃이 피어오른다. 물안개와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듯하다. 갈구하며 다가서는 듯하다. 나무는 파르라니 떨며 몸을 흔들고 물안개는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른다.
 
  내 삶도 저렇게 흐르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내 삶도 저처럼 제 갈 길로 흘러가기만 하였으면 되었을 것을...
  내 삶도 저렇게 갈구하며 사랑하면 되었을 것을...
 
  돌덩이 뿐인 이 산에 이끼도 자라고 이름 모를 꽃들도 피어나고 소나무도 자라듯이 그렇게 내 삶도 아름다워질 것을 말이다.
 
  왜 사랑을 택하지 못했을까. 왜 제 사랑을 택하지 못하고 사랑하기에 보낸다는 세상의 허튼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왜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왜 제 삶도 존중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삶을 존중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수작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눈물이 난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발걸음을 돌린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내려온 길이 아득하다. 숲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오른다. 쉬어가는 굽이에서 지친 다리 쉬고 있던 인상 좋은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사이 아득하기만 했던 길이 이내 가까워졌다.
 
  우리는 Mammoth Hot Spring Terrace를 지나 또 다른 간헐 온천들이 모여 있는 West Thumb를 향했다. 그날 밤 숙소였던 그랜트 빌리지(Grant Village) 부근이었다.

  약 60만 년 전 화산의 격렬한 폭발로 형성된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수많은 간헐 온천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지표면에서 30마일 정도의 깊이에서 흐르고 있는 마그마(Magma)가 옐로스톤에서는 불과 2, 3마일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그마들은 수많은 간헐 온천들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무숲을 만들어 놓았다. 약 200만 년 전 화산 폭발과 지각 변동으로 인해 화석이 된 나무숲이다. 그 화석의 숲을 바라본다. 그 화석 숲이 품고 있는 200만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 숲에는 늘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야 삶과 죽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숲에서는 다르다. 200만 년의 세월을 품고 화석이 된 채 서 있는 나무들 가득한 옐로스톤의 숲에서는 더욱 다르다. 삶과 죽음은 늘 하나이다. 삶은 죽음을 향하고 죽음은 삶을 품으며 늘 새로워진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것이 숲의 가르침이다. 모든 숲의 가르침이다.
 
  화석 숲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든 사이 자동차의 속력이 줄어들더니 이내 멈추어 섰다. 창을 여니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미국산 들소 바이슨(Bison)이다. 바이슨 두 마리가 느린 걸음으로 도로 한 가운데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못생겼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듯 가까이 바라보니 눈동자가 참으로 맑았다. 순하게 생겼다. 나는 손을 내어 뻗어 만져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야생동물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최대의 자랑이요 볼거리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가장 성공한 야생동물들의 성역지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야생동물들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미국산 들소(Bison), 북 유럽산 큰사슴(Elk), 로키양(Bighorn Sheep), 캐나다산 큰사슴(Moose), 사슴(Deer), 노새(Mule), 회색곰(Grizzly Bear), 미국산 가지뿔영양(Pronghorn), 코요테(Coyote), 산 사자, 비버(Beaver), 독수리, 물수리(Osprey), 흰 펠리컨(White Pelican) 등 수많은 야생동물이 그들이다. 실로 동물을 단순한 구경거리 정도나 재화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동물들의 천국이다. 이런 야생동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바이슨(Bison)들이 지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며 유쾌하고 통쾌했다. 7월의 뜨거운 열기로 지쳐가던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즐거워졌다. 행복했다.

  길이 열리자 우리는 다시 나아갔다. 바다와도 같은 옐로스톤 호수는 늘 곁에 있었다. 마침내 West Thumb에 도착하였다. 호수 곁으로 난 트레일이다. Mammoth Hot Spring Terrace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간헐온천(Geyser)들이었다. Black Pool은 말 그대로 깊이를 느낄 수 없는 어둠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했고 Abbyse Geyser 또한 '깊은 바다'라는 뜻처럼 넓고 깊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색조같이 여러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호수와 같은 Abbyse는 수 십 가지 색을 품고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을 졸이다 호수 곁을 걸었다. 호수 바닥에도 Geyser들이 있었다. 뜨거운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Geyser를 중심으로 호수 면에 동그란 파문이 연이어 일고 있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만난 많은 Geyser들 중 압권은 물론 가장 유명한 Old Faithful Geyser였다. Old Faithful Geyser는 다른 Geyser들과는 달리 분출 시간도 1시간 여 간격으로 일정할 뿐 아니라 분출량도 평균 8천 400갤런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우리가 찾은 그 날도 도착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온천수를 분출하였다. 높이가 수 십 미터는 넘어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천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사람들 모두 탄성을 뱉어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Geyser의 짧은 분출이 끝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많던 사람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글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 순간 나는 다소 서글퍼졌다. 그들이 제가 보려고 했던 것만을 보고 훌쩍 떠나서였을까. 언제나 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본 듯해서였을까. 그저 마음 한 구석이 쓸쓸했다.

  나는 Old Faithful의 오래된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1988년에 있었던 큰 불길도 침범하지 못했다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다는 고색창연한 건물도 바라보았다. Old Faithful로 오던 숲길처럼 깊은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아름다웠다.
 
  이곳을 다녀간 모든 이들의 삶도 이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했다.
  하루 종일 뜨겁던 해는 기울고 마음은 안온한 저녁이었다.  
    
  

 
  최창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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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35

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는 세콰이어(Sequoia)와 킹스캐년(Kings Canyon) 국립공원(National Park)에 들어섰다. 어제 오후 요세미티에 내리던 부슬비가 밤사이 그치더니 아침이 되자 다시 내렸다. 비는 안개처럼 퍼져나가며 깊은 세콰이어 숲을 더욱 깊고 신비하게 감쌌다. 주위를 둘러보자 손에 잡힐 듯 휘트니 산(Mt. Whitney)이 눈에 들어왔다. 14,495피트를 자랑하는 알래스카 남쪽의 미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세콰이어 국립공원으로 들어오는 길 내내 가까이 손에 잡힐 것만 같고 품에 안길 것만 같던 산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곁에 있는 듯 가까이 느껴지던 산이다. 그 산줄기가 품은 숲으로 들어왔다. 들어서는 길목 길목마다 거대한 세콰이어 나무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마중하고 있었다.
 
  지난 밤 설친 잠으로 인해 무거운 피로감이 끈끈하게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겨우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를 얻기 위해 다시 공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소나무 숲'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Pinehurst Lodge였다. 깊고 깊은 숲 속에 자리한 이 Lodge는 단 하나의 오두막(Cabin)만을 운영하고 있었음에도 시설이 좋지 않았다. 현관문의 시건 장치도 건드리기만 해도 빠질 것 같은 문고리 하나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우리는 주인도 제 집으로 돌아가 텅 빈 숲 속의 오두막에 들었다. 밤이 깊어가자 은근한 두려움이 찾아 들었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마음이 쓰이고 때 아니게 떨어지는 솔방울 소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뿐인가. 초저녁부터 Lodge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인부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괜히 걱정스러웠다. 낯선 객지에서의 걱정들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이런 저런 걱정과 근심으로 조심스럽게 잠든 밤의 흔적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낯선 경험이었다. 여행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그런 낯설고 새로운 경험은 아침에도 찾아 왔다. 공원의 주차장에서 나와 마주친 한 백인이 'Great! Great!'하며 외쳤다. 코밑과 턱에 정성들여 수염을 기른 백인이었다. 귀 밑까지 거의 얼굴 전체를 무성하게 덮고 있는 내 수염이 부러웠던 것일까. 그는 초면인 내 얼굴을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두 손을 내 얼굴 가까이에 댄 채 'Great!'를 연발하였다. 수염을 기르는 이들은 수염만 보이는 걸까. 'Thank You!' 하고 대답하며 실없는 웃음을 웃었다. 거울 앞에 서 있던 아침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텁수룩하게 자라난 내 수염을 바라보았다. 이틀만 깎지 않아도 곤두선 수염이 얼굴의 반을 덮는 내 얼굴은 이미 수염으로 가득 찼다. 모자를 쓰면 수염만 보였다. 수염이 말하고 웃으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만해도 거칠고 꼿꼿하여 오므린 제 입술을 찌르던 수염이 열이틀이 지나자 부드럽게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대견했다. 부드럽게 누운 수염은 대견했으나 수염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처럼 꼿꼿하던 수염도 열이틀이 안 되어 부드러워지는데 50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여전히 부드럽지 못하였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마음공부가 부족하여 작은 일에도 여전히 짜증을 잘 내었다. 마음이 불편하면 그것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드러내어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 뿐인가.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고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면 괜히 심술부리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 부드럽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수염도 아는 지혜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심 부끄러운 마음에 수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흰 수염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턱 밑에도 코 밑에도 귀 밑에도 흰 수염이 나와 있었다. 나는 의식하지 못한 세월을 수염은 홀로 앉아 세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리에만 서리가 내리는 줄 알았더니 얼굴 전체에 내려앉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들이다. 나의 지나온 삶을 말하고 있는 흔적들이다. 하기야 길가에 구르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돌멩이도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수염이 말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세콰이어 나무 가득한 숲으로 들어갔다. 마리포사의 나무들보다 더욱 장대하게 자란 세콰이어 나무들이 줄지어 앞을 막아선다. General Grant Tree Trail을 지나 Big Stump Trail에 있는 Giant Forest로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부피가 큰 나무로 알려져 있는 Gerneral Sherman Tree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곧추 세우고 바라보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끝이 천국처럼 아스라하기만 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정말 하늘에 닿을 것만 같았다. 길 곁으로 나있던 Congress Trail로 들어서자 공원 내에서도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앞에 단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General Lee Tree, President Tree, The Senate Tree, The House Group Tree 이다. 모두 수 천 년을 살아온 나무들이다. 어떻게 이렇듯 오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탄닌(Tannin) 성분과 두꺼운 껍질 때문이었다. 나무가 품고 있는 풍부한 탄닌 성분은 나무들을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게 지켜주었고 바깥 껍질의 두께만 2피트이고 속껍질의 두께가 1피트인 두꺼운 나무의 껍질은 불로부터 나무를 지켜 주었다.
    
  그렇겠지. 그래서 이렇게 장대한 나무로 자랄 수 있었겠지.
 
  나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숲을 둘러보았다. 하늘에 매달린 듯 높이 솟은 수많은 나무들 모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온 숲을 감싸고 있었다.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햇살도 붉었다. 붉은 빛이 서기처럼 온 숲을 감싼 채 피어오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하늘에 닿아 있는 나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 누워 있는 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장대하나 뿌리가 깊지 못한 세콰이어 나무들이 거센 바람에 쓰러진 것이다. 폭우로 인해 땅이 들뜨자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진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본다. 어루만진다. 탄닌 성분으로 인해 숲의 청소부인 박테리아나 버섯의 공격을 받지 않은 나무들의 모습은 쓰러져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그 지나친 당당함을 바라보며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졌다. 장대하나 드리워지는 맛이 없는 세콰이어 나무의 슬픈 운명을 보는 듯했다. 그들의 슬픔이 손에 만져지는 듯했다. 죽은 것들은 죽은 것들대로 숲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데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의 슬픔을 돌아가는 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죽은 나무들은 저마다 제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을 안은 채 숲 여기저기에 누워 있다.
    
  숲에 어리던 그 붉은 빛은 이 슬픔이 아니었을까.
  이 슬픔들이 그리도 붉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에 젖어 발걸음 떼고 있는 내 눈에 작고 여린 잎 하나가 들어온다. 어찌된 일인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완전히 분해되어져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그 붉은 세콰이어 나무의 잔해에서 기적같이 파란 여린 잎 한 쌍 마주보며 나란히 자라있었다. 붉게 빛나던 햇살이 금빛으로 바뀌며 여린 잎을 비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내 가슴은 터질듯 뛰고 맥박은 무자맥질하는 물고기처럼 펄떡였다.
    
  나는 내 가슴과 맥박을 부여잡고 여린 잎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붉기만 하던 숲이 푸르게 변하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여린 잎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숲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창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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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 국립공원 여행

자이언 국립공원 여행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3:24

자이언 국립공원 여행
 
 
 


 
  
  자이온(Zion)으로 가는 길 또한 가까운 듯 멀리 있었다. 끊임없이 달려도 결코 멈추어 서지 않는 사막의 황폐한 들녘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곁으로 산들이 들녘을 에워싸듯 첩첩이 서있었다. 어쩌면 들녘이 제 외로움 달래려고 산들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들녘의 일부이기나 한 것처럼 소리 없이 달렸다. 맑은 하늘이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맑기만 했던 하늘이 우리가 자이온의 입구에 해당하는 페이지(Page)에 이르렀을 때 흐려지더니 비가 내렸다. 검은 구름이 하늘 저 편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점점 빗방울도 굵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길을 떠난 우리가 Glen Canyon Dam과 Powell Lake를 지날 즈음에는 하늘은 온통 검어졌다. 주위는 어두워졌고 퍼붓듯 비가 쏟아졌다.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갑작스레 많은 비가 쏟아졌다.
 
  땅을 처음 발견한 모르몬교도들이 그 깊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과 장엄함에 놀라 '신의 정원'(Garden of God)이라 부르던 땅, '신의 보물'(Treasure of God)이라고 부르던 땅을 멀리 동방에서 찾아온 낯선 이방인에게 보이기 싫다는 듯 갑작스레 쏟아졌다. 그러나 검은 먹구름 사이로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번개 빛이 가야할 길을 열어주었다.
 
  화씨 105도에 달하던 기온이 75도로 떨어질 무렵 우리는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에 도착하였다. 퍼붓듯 내리던 비는 멈추었다. 비는 오후 다섯 시였다. 장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붉고 흰 바위들이 더 이상 나가서는 안 된다는 듯 앞을 가로막았다. 붉은 바위들은 아직 남아 있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분위기에 이끌렸던 것일까. 자연의 경이로움에 마음이 경건해진 탓일까. 차를 세웠다. 그 신성한 땅에 들어가기 전 땅을 딛고 몸으로 느껴야만 할 것 같았다. 아파트 수십 층 수백 층의 높이는 될 것 같은 붉은 암벽들과 갈색의 암벽들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것만 같았다. 지나 온 길에서 묻혀온 세상의 묵은 때들을 씻어내고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암벽들을 바라보았다. 암벽의 산 곁에 섰다. 신의 정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신의 손길이 닿아 있는 듯했다. 약 6,000만 년 전부터 퇴적해 있던 수성암반이 서서히 융기해 솟아나 만들어진 땅이었다. 약 1,300만 년 전 다시 융기한 후 오랜 세월 눈과 비와 바람이 쓸고 닦고 씻어내며 만들어 놓은 암벽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의 손길로 빗어진 암벽 산이었다.
   
  자이언은 그랜드 캐년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달랐다. 그랜드 캐년은 들여다 볼 수 없는 깊은 협곡의 중심을 협곡의 가장자리(rim)에서 내려다 볼 수밖에 없었지만 자이언은 바닥에서 올려 보아야 했다. 그랜드 캐년은 볼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지만 자이언은 그 깊이를 넘어선 높이에도 불구하고 그 끝을 볼 수 있었다.
 
  그랜드 캐년은 비밀을 많이 숨기고 있는 협곡을 지나는 두려움을 품게 하였다면 자이언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자연의 순결함과 담백함으로 말미암아 경건함을 품게 하였다. 그랜드 캐년은 화려하지만 자이언은 소박했다. 그랜드 캐년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에는 많은 할 말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이언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할 말은 절로 사라지고 말았다. 오직 들어야 할 말들만이 가득한 것 같았다.
 
  아직 노을이 깃들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붉은 바위들 탓인지 하늘이 붉은 듯하였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느리게 나갔다. 도로가 점점 좁아지더니 이내 터널이 나왔다. 차가 한 대 씩 밖에 지나지 못하는 터널이었다. 1,920미터에 달하는 이 긴 터널은 은 '자이언-마운틴 카멜 터널'(Zion-Mt, Carmel Tunnel)이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굿 뷰 롱 아웃 터널'(Good View Long Out Tunnel)이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것은 터널에 뚫려 있는 '천사의 창문'(Angel's window)이라고 불리는 다섯 개의 창문 때문이다. 이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빛만이 이 어두운 터널을 밝혀주는 유일한 빛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갈수록 더욱 커지는 창을 통해 보이는 자이언의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1847년 모르몬교도들이 Salt Lake City에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 공원은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천사의 창문이 있는 터널은 1930년 후버(Hoover)대통령 재직 시에 뚫렸다.
 
  우리는 천사의 빛을 받으며 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지나자 붉은 거대한 암벽들이 눈에 가득했다. 암벽들 사이로 작은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드문드문하였다.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차려 입은 어린 소년 하나가 옆으로 거대한 암벽 위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꼭 작은 전나무 같다. 무엇을 바라보는지 움직이지도 않는다.
   


  저 어린 소년도 자이언의 경이로움에 취한 것일까.
  자이언의 붉은 암벽 깊은 곳에서 울려 나는 소리들을 듣고 있는 것일까.
  자이언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일까.
 
  차를 세우고 아이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아이를 지나치며 마치 소중한 것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처럼 허전했다. 아쉬웠다. 그러나 우리는 아쉬움을 묻어둔 채 서둘러 공원 내의 유일한 숙소인 Zion Lodge로 향했다.
 
  '사슴이다...!'
 
  사슴 두 마리가 도로를 가로 질러 건너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슴 두 마리 지나온 길에 몇 마리가 아직 남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들인가 보다.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우리는 사슴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저녁 해가 아직은 붉은 암벽 산 너머로 몸을 숨기지 않았을 때 우리는 Zion Lodge에 도착할 수 있었다. Lodge 앞 광장 한가운데에 큰 참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산 전체를 가릴 만큼 큰 참나무였다. 산의 붉은 빛깔 때문이었을까. 참나무의 푸른 잎이 더욱 푸르렀다.
 
  어두워지기 전 서둘러서 짐을 내려놓고 길을 나서자 수 만 년 수십 만 년 고요히 흐르고 있는 Virgin River가 우리를 맞았다. 버진 강은 탁해 보일 정도로 짙은 옥빛을 띄고 있었다. 강을 가로 질러 놓여 있는 다리 가운데 서자 강은 더욱 아름다웠다. 강가와 한가운데 붉고 흰 크고 작은 사암들이 갖은 모양으로 놓여있었다. 강은 그 모래 바위들을 어루만지고 감싸고 휘감으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이 갈 곳 없는 그 모래 바위들을 품어 안은 것 같기도 하고 붉고 흰 모래 바위들이 오랜 세월 말없이 흐르고 있는 강물을 위로하는 듯도 했다. 강가에는 오랜 세월 벗이었던 버드나무와 참나무, 전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단풍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촘촘히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나무들과 암벽으로 이루어진 숲으로 들어갔다. 2,000피트, 3,000피트 높이로 솟아있는 암벽들이 길을 막아설 때마다 또 다른 암벽들 사이로 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길을 품고 있는 암벽들 위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폭포라고 하기에는 쑥스러운 작은 물줄기들이었다. 비가 오면 제법 많은 양의 물을 쏟아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개의 작은 폭포를 지나며 숲길을 오르자 보이지 않던 저 길의 끝에서 부끄러운 듯 에메랄드 풀(Emerald Pool)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살다가 쓰러진 나무 등걸들과 거센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에메랄드 풀의 바닥에 이러 저리 누워있었다. 물은 에메랄드 빛 그대로 투명하였다. 바닥 구석구석 작은 흙 알갱이 하나까지 다 보였다. 물빛 때문일까. 수면 위에 떠있는 나뭇잎들조차 투명하였다. 가쁘게 숨 몰아쉬고 있는 동행의 얼굴도 투명하였다. 창백하리만큼 투명했다.
 
  이 호수는 이렇게 수 천 년 수 만 년 고요한 아름다움을 지닌 채 살아오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무엇을 하겠다고 그렇게 아우성치며 살아왔을까.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정말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저 호수처럼 자신을 아름답게 할 때에만 산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저를 찾는 이들의 마음 또한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저 작은 호수가 내 마음을 위로하고 아름답게 하듯이 말이다. 마음 깊은 곳까지 끼어 있는 묵은 때들을 깨끗이 씻어주고 있듯이 말이다.
   

  에메랄드 풀 위로 하늘이 붉어지고 있다. 해가 붉은 산 너머로 지고 있다. 노을이 진다. 붉은 노을이 더욱 붉다. 나뭇잎도 붉고 얼굴도 붉었다.
 
  돌아서자 에메랄드 풀로 우리를 이끌어준 길이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말없이 놓여 있었다. 길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온통 붉어지고 있는 깊은 숲에서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자이언의 아침은 투명하도록 맑고 안온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 지친 영혼조차도 편안히 쉴 수 있었던 깊고 편안한 밤이었다. 자이언의 산하는 나를 품어 주었다. 위로했다. 세상과 달리 그곳에서는 나를 거부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거대한 암벽들도 우리가 잠든 방을 빙 둘러선 채 밤새 지켜주었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따뜻했다. 편안했다. 바위와 산들만이 아니라 지난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사슴과 노루들도 나를 위로했다. 산책길을 채 나서기도 전이었다. 수십 마리의 노루와 사슴들이 숙소 바로 앞 넓은 잔디밭에서 조금의 경계심이나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참으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나는 넋을 놓고 오랜 동안 바라보았다.
 
  노루나 사슴들도 저렇게 안온한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아우성치고 괴로워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던 것일까...?
 
  산책을 나왔다는 것을 잊은 채 그들 곁에 머물렀다. 그들은 먹는 일에 열중하고 있거나 편안히 앉아 쉬고 있었다. 잠든 녀석들도 있어 보였다. 조금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소리 질러 그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모두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산도 나무도 사슴도 노루도 사람들도 모두 서로를 받아들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자이언에서 나를 위로한 것이 어찌 그들뿐이었을까. 지난 밤 내내 영롱한 빛을 발하던 수많은 별들 또한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였다. 별은 밤하늘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암벽의 산마루에서도 빛났고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나뭇가지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마루턱에 걸린 별들은 그곳에도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고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별들은 그곳에도 위로 받아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뿐인가. 별은 고요히 흐르는 버진 강에도 내려 앉아 있었다. 별빛 내려 앉은 버진 강은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 낸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며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흐르는 강은 너무나 깊은 듯 멀리 있는 듯 아스라하기만 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발걸음을 멈추고 강을 바라보다 눈물지었던 그 밤이 내 가슴 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겠지.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며 아스라하게 흐르고 있겠지.
  2,000피트, 3,000피트 솟은 암벽들과 참나무들과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로, 버드나무와 단풍나무들 사이로 흐르고 있겠지.
  강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흐르고 있겠지.
    
  그 모든 것들이 자이언의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안온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안온함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조금 들떴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길을 나섰다. 오후에는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가능하면 많은 Trail을 걸을 계획이었다.
 
  Temple of Sinawava로 향했다. 버진 강을 따라 약 2마일 정도 오르다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자이언 국립공원의 비경 중의 비경이다. 길손들에게 섣불리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려진 땅이다. 가히 신의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땅이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길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차가 한 대도 없으니 좋지요? 이 공원에서는 Zion Lodge 투숙객들만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어요. 다른 관광객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해요.'
 
  창밖으로 흐르는 버진 강가의 나무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내게 동행은 말을 건넸다.
  '정말 차가 한 대도 없네...! 예약하느라 고생은 하였지만 그래도 Zion Lodge에 투숙한 보람이 있네.'
 
  우리가 흐뭇해하며 달리는 사이에 어느 덧 차는 Temple of Sinawava로 갈 수 있는 Trail Head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가벼운 배낭을 챙긴 후 Trail로 향했다. 그 때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이언 국립공원의 교통수단인 버스를 운전하는 마음씨 좋게 생긴 기사였다. 살집 통통하고 귀염성 있게 생긴 그녀는 이 공원에서는 버스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차를 몰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해요. 공원을 지키기 위한 것이에요."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지만 돌아가 차를 숙소에 두고 버스를 타고 나오면서도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이 아름다운 땅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하들도 이렇게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Temple of Sinawava로 향하는 이들이 많았다. 남녀노소 한데 어울린 가족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길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반가운 눈인사를 하며 지나는 곁으로 젖은 암벽마다 자란 이름 모를 풀들과 잎들이 다소곳이 나를 반긴다. 쓰다듬고 사진을 찍으며 가는 사이에 어느 새 길은 끊어져 있었다. 그곳에서부터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강물은 짙은 옥빛이었다. 흙탕물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바지를 걷고 강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들처럼 청바지를 입고 가벼운 배낭까지 메고 온 이들도 있었지만 수영복차림이나 반바지에 가벼운 셔츠 하나만 걸치고 온 이들도 많았다. 우리는 왜 사람들이 수영복이나 반바지 차림으로 왔는지 알지 못한 채 강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사진으로만 보았던 신의 손길이 빚었다는 자연의 원형극장인 Temple of Sinawava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짙은 물빛으로 인해 강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강바닥은 온통 자갈과 돌멩이들이었다.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물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강물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깊이 흐르는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강이 매우 깊어지고 있으니 조심하세요.'
 
  말하는 사이 허방다리를 짚은 듯 몸이 강바닥으로 꺼지듯 빠져들었다. 강물은 금방 허리까지 차올랐다. 이미 옷은 상의까지 거의 젖어 있었다. 강물은 점점 깊어져 앞선 사람들의 가슴과 어깨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강물이 차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굽이만 돌면 Temple of Sinawava가 보일 것 같은데...
    
  자연의 손길로 암벽들을 빚은 후 빗자루로 곱게 쓸어낸 듯 층층이 결이 나있는 사층리 암벽인 체커보드 메사와 함께 자이언 국립공원을 유명하게 만든 Temple of Sinawava가 저 굽이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은데...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너무나 준비가 부족했다.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 만나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강물을 거슬러 강물 속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길은 인생길을 닮아 있었다. 먼 길을 왔다고 반드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걸어왔다고 원하던 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인생길을 닮았다. 언제나 예기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는 것 또한 닮아 있다.
 
  가고자 했던 곳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버진 강을 걸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만 년 수십만 년 흐르던 강물에 몸을 적시며 그 영겁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뻤다. 강을 벗어나 운동화를 벗자 그 속에서 강물이 흘러 내렸다. 오랜 여행길에 이미 더러워진 운동화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며 우리는 웃었다.
 
  벌써 시간은 11시를 넘어 정오를 향하고 있었다. 유타와 네바다와 애리조나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자이언의 여름 햇살은 뜨거웠다. 강물에 젖었던 몸은 이내 땀으로 뒤덮였고 젖었던 옷은 새로운 Trail을 만나기 전에 벌써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우는 바위'(Weeping Rock)라는 이름을 지닌 바위를 보기 위해서였다. 바위가 도대체 어떻게 운다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보고 싶었다. '우는 바위'를 향해 걸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졌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왼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묵직한 통증이 깊게 찔러오기 시작했다. 가벼워졌던 마음과 달리 몸의 피로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점점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삼십 분이면 갈 수 있다는 '우는 바위'는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Trail을 따라 내려오는 이들에게 길을 묻고 서야 우리는 어디서부터 길이 어긋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우는 바위'로 빠지는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계속 직진하여 전혀 다른 곳으로 와 있었다. East Rim Trail과 Observation Point Trail과 Cable Mountain Trail이 만나는 산의 마루에 가까운 지점까지 올라와 있었다. 지쳐가는 몸을 바위에 기대고 앉았다.
 
  눈 아래로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건너편에는 갈색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다. 수 십 수 백 만년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여러 결을 지니고 있는 퇴적암이다. 그 오랜 옛날 물이 어디서 어디로 흘렀는지 물의 속도는 얼마나 세었는지 수심은 얼마나 깊었는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간의 바위이다. 당시 퇴적물의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 땅이 어떻게 솟고 꺼졌는지 도 알려주는 자연사 박물관과 같은 바위이다. 사람들은 그 바위에 새겨진 결들을 통해 이 모든 이야기들을 듣는다.
 
  저 바위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처럼 사람들은 내 마음과 우리 삶의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을까.
 
  오랜 세월 탓일까. 곱게 머리를 빗은 것 같은 퇴적암들이 전나무와 소나무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리고 위로 눈처럼 희디 흰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하나의 바위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하얀 색의 바위가 온 산을 덮듯이 놓여 있었다. 장엄한 모습이었다. 이끼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보이는 단단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바위 위에 작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제법 떨어져 있으나 나란히 서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렇게 매끈하고 거대한 암벽의 꼭대기에서도 살아가고 있다니...
  두 그루 나란히 서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구나.
 
  바람이 불어오는 듯 나무가 흔들린다. 그 모습이 마치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듯하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를 하는 듯하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그들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그래 잘못 들어선 길이라고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니구나. 마음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어긋난 길이라고는 없구나. 어긋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어긋난 길이라고 하더라도 산길이 아니라 마음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것을...
  인생길이란 그런 것을...
  삶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 길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두 그루 소나무 위로 구름이 지난다.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시야에 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호랑나비다. 더위에 지친 몸을 쉬려는 것인지 새로운 길로 나를 인도하려는 것인지 내 앞에 내려와 앉는다. 날개를 펄럭이며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이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 착각이었을까. 나비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한 동안 나비를 바라보았다. 오랜 동안 내 앞 길 한가운데 앉아 있던 나비가 날아올랐다. 길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나비가 간 길을 따라 걸었다.  
    
  
 


  최창남/작가

Posted by 비회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아치스 국립공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아치스 국립공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5:53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아치스 국립공원  
 
 
 
 
  


 
  
나는 트레일(Trail)을 구분하기 위해 세워 놓은 난간에 기대어 델리케이트 아치(Delicate Arch)를 바라보았다. 점점 심해가는 왼 무릎의 통증으로 인해 나는 아치스 국립공원 뿐 아니라 유타(Utah)주의 상징이 된 델리케이트 아치를 곁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노을 드리워가는 고즈넉한 저녁 viewpoint에서 멀리 바라보고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은 마치 붉은 바위언덕 위에 세워진 신전의 문 같았다. 저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그 문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그 모습이 장엄하기도 하고 사뭇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외롭게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 장엄한 탓이리라.
  너무나 아름다운 탓이리라.
 
저토록 외롭게 보이는 것이 말이다. 붉은 언덕과 모래 바위들과 그것들이 닿아있는 길들을 달구던 해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사위는 조금씩 어두워간다. 하늘 저편이 붉다. 붉은 것 또한 아름답다.
 
  장엄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 없는 땅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온통 붉은 바위와 잡풀만 무성한 땅이 이처럼 눈물짓도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흙 한 알갱이 흙 한 줌 쥘 때마다 이처럼 시리도록 가슴 설레게 할 수 있을까.
 
가슴 저린 아름다움 속에 앉아 여러 날 동안 괴롭히던 통증들을 잊어 가고 있었다. 이미 몸은 그랜드 캐년에서부터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묵직한 통증만 느낄 수 있었던 왼 무릎은 심하게 쑤셔왔다. 어깨 근육도 찢어지는 듯 아팠다. 한 여름 날 몸살이 오려는지 온 몸이 맞은 듯 쑤시고 아팠다. 자이온(Zion)에서 아치스(Arches)로 오는 5시간 40분 동안 몸은 끝없이 가라앉고 마음은 쉬고 싶기만 하였다.
   
그러나 처음 만난 아치스는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나를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 앞마당을 유유히 거닐던 단아하기 그지없던 사슴 두 마리가 아니라 센터 곁에 웅크린 채 말없던 크고 작은 붉은 바위들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뭉크의 대표적 작품 '절규'에 나오는 여성처럼 저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절규하고 있었다. 그 절규조차도 그림을 닮아 있었다. 소리 없는 절규였다.
 
그러나 닮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바위들은 절규하고 있었지만 그림처럼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다. 절망적이게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나를 그들의 내부로 이끌었다. 나는 그 길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달리기도 하고 내려 걷기도 하였다. La Sal Mountain, Three Gossips, Courthouse Towers, Tower of Babel, Petrified Dunes, Rock Pinnacles를 혹은 곁에서 혹은 멀리서 느끼며 만났다.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채 오랜 세월 동안 서있는 Balanced Rock도 만났다.
 
조금씩 저물어가는 저녁에 비쳐진 모습이 앞 다리를 든 용가리를 닮았다며 우리는 웃었다. 아치스의 황량함이 주는 장엄한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웃음은 허허롭게 느껴졌다. 붉은 모래 바위뿐인 이 황량한 땅에 깃드는 저녁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젖어드는 어둠의 아름다움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의 웃음은 허허로웠다. 말이 필요 없는 저녁이었다. 그저 마음 깊이 스며드는 절절한 아름다움에 젖으며 느끼기만 하면 되는 저녁이었다.
   
Delicate Arch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조금씩 어둠이 깃들고 있는 길을 따라 제법 걸어 들어가자 길의 끝이 있었다. Delicate Arch Viewpoint는 그곳에 있었다. 아치가 보였다. 아치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지친 몸을 난간에 기대었다.
 
약 3억 5천 만 년 전 바닷물이 들어와 쌓아 놓은 수백 미터 두께의 사암들로부터 만들어진 붉은 사암의 조형물들이 있는 땅이다. 그 자연의 조형물들은 붉어가는 하늘 아래서 때로 눈부시게 때로 단아하게 서있다. 그 모습 하나하나에 수 억 년 바람과 비와 눈과 햇살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흙 알갱이 하나 돌의 한 숨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자연의 손길만 닿았으니 흙 알갱이 하나 붉은 바위 하나가 저토록 가슴 저리게 황홀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었으리라.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면 보잘 것 없는 제 뜻 하나 드러내기 위해 이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으리라. 시대의 정신을 운운하고 이데올로기를 떠들어대며 이 아름다움들을 파괴했으리라. 발전을 외치며 이 땅을 파헤쳤으리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으리라.
   
붉은 사암들과 흙뿐인 산, 약간의 잡풀과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침엽수들만이 살아가고 있는 척박한 땅이지만 이 땅은 나무 울창하고 숲 우거진 어느 국립공원보다 아름다웠다.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은 자연의 모든 기운을 그대로 담은 채 무위(無爲)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람과 햇살과 비와 눈과 이슬과 공기와 습도와 시간 등 모든 우주의 숨결들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풀도 나무도 꽃도 깊은 계곡도 흐르는 물도 장엄한 협곡과 폭포도 지니고 있지 않은 땅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름다움, 자연 그대로의 땅 - 이것이 바로 아치스의 아름다움이다. 무위의 아름다움이다. 이 땅에 들어오는 이들은 누구나 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이 아름다움에 가슴 절이며 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애쓰게 되는 것이다. 에드워드 애비(1927~1989)처럼 말이다. 에드워드는 1956년부터 1957년까지 2년 동안 이곳에 홀로 머물며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라는 책을 썼다. 그는 사람들로 인해 파괴되어가고 있는 아치스를 아파했다. 자연 그대로 야생의 상태로 보존해야함을 역설했다. 그는 실제로 공원 레인저로 15년 동안 일하며 이를 위해 노력했다. 애드워드는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치스의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사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깃드는 어두움으로 인해 붉은 바위들은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띠며 변하고 있었다.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에 구름은 한가하고 지는 노을은 붉다. 붉은 바위들이 더욱 붉어졌다. 지는 노을을 따라 모든 것이 변해갔다. 빛깔도 변하고 모습도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졌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아치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땅은 지금도 형성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땅 속 깊이 바위 속 깊이 단단히 품고 있었던 수많은 아름다움들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고작해야 칠팔십 년을 사는 인간들의 눈에만 그것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다리를 절룩이며 기대서 있던 난간을 떠났다.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자 내가 가보지 못한 땅이 길을 품은 채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위는 고요하여 나무들의 숨소리도 들릴 것 같았다.
 
아쉬움 그대로 남겨 둔 채 어둠 깊어지고 있는 길을 따라 내려오자 내내 먼지를 뒤집어 쓴 차가 보였다. 차 뒤로 구름 사이로 들어간 더 붉어진 노을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번개가 내려치는 듯하였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마을인 모압(Moab)으로 향했다. 저녁 8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차창 밖으로 아치스의 붉은 모래 바위들이 보였다.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바위들의 모습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너무나 신비로웠다. 도열해 있던 병사들처럼 보이던 녀석들은 모두 신상의 위엄을 입은 채 근엄하였고 바위 사이로 나 있던 길은 마치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또 다른 길처럼 보였다.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던 녀석들도 모두 내 아픔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붉은 바위들 위로 구름이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신비롭고 장엄한 광경이었다.
 
모압은 가까웠다. 모압에는 숙박시설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방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Comfort Suit이었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처음 들어간 곳이었는데 이름 그대로 편안한 곳이었다. 방도 매우 넓었다. 소파가 있는 거실도 있었다. 냉장고도 전자레인지도 물론 있었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방을 얻는 것은 장기간 여행을 다니는 여행객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음식을 보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간단한 음식은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가격도 적당하면서 냉장과 전자레인지를 구비한 숙소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행운과 노력이 함께 따라야 하는 일이다.
   
우리들은 여행 중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늘 점심으로 주먹밥을 만들곤 하였다. 햇반과 주먹밥 양념과  김만 있으면 아주 훌륭한 주먹밥을 만들 수 있었다. 주먹밥 안에 물기를 짜낸 김치를 조금 넣어 더욱 환상적인 점심을 즐기곤 하였다.
 
  우리는 오랜만에 밥을 지었고 꽁치김치찌개도 끓였다. 그리고 배낭 깊숙한 곳에 아끼고 아껴 두었던 소주도 꺼내 놓았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밤이었다.
 
  모압의 하늘 아래서 내 얼굴은 붉어지고 있었다. 마음도 붉어지고 있었다.
  아치스의 붉은 바위들을 닮으려는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렇게 모압의 밤은 깊었다.  
   

하늘은 맑았다. 얼마나 맑았던지 하늘조차도 눈부셨다. 빛났다. 아침부터 햇살은 뜨거웠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온도계를 보니 벌써 화씨 9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에 만나는 아치스는 어제 저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뭉크의 그림을 닮았던 바위들도 여느 바위들처럼 울퉁불퉁해 보였고 신상의 모습으로 내게 몸 기울이며 맞이하고 보내던 거대한 석상들도 빛을 잃고 여느 석상들처럼 그저 담담히 서있을 뿐이었다.
  
들어서는 길에서부터 마치 다른 세계 다른 행성에라도 다다른 듯 보이던 Park Avenue의 모습도 뜨거운 햇살 탓인지 그저 황량하기만 했다. 황량했지만 장엄하기도 했고 친근했다. 거대한 절벽 곁에 늘어선 돌기둥과 첨탑들의 모습이 웅장했고 수억 년 빚어온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친근했다. 마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속살을 보는 것 같아 때로 민망해 눈을 돌리기도 했다. 바람 한 점 없다. 달리는 길 저편에서 아지랑이처럼 대기가 타오른다. 지열이다.
 
지난 저녁 어둠 깊어지기 전에 만났던 아치들이 창밖으로 지나간다. 수억 년 전 바닷물이 들어오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땅에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2,000여개의 아치(Arch)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치 사이의 구멍이 약 1m 밖에 안 되는 작은 것으로부터 높이가 100m에 달하고 아치의 두께가 5m나 되는 랜드스케이프 아치(Landscape Arch) 같은 것도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수많은 첨탑 모양의 석상들과 돌기둥들이 웅장한 바위 절벽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조형물들이다. 그야말로 자연의 손길로 만들어 놓은 자연의 조각 공원 같다. 신의 손길로 빗은 신의 정원 같다. 아무리 신의 손길로 빗었다 하더라도 저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저 붉은 바위들 안에서 나왔다는 것이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아치들과 첨탑들, 돌기둥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일까.
 
정말 저렇게 많은 붉은 모래 바위들 속에서 나온 것일까. 미켈란젤로의 말대로 저 조형물들은 살아 있는 바위 안에 갇혀 있던 것일까. 그의 말대로 그는 바위 안에 있던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꺼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생명체들은 왜 바위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인간이 이 아름다운 생명들을 파괴할 것이 두려워 신이 숨겨 놓은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바위 안에 숨겨져 있는 이 아름다운 생명들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을 뜨기를 원했던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건축가 루카스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닐까. 그의 말처럼 하찮아 보이는 돌조차도 모두 무엇인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붉은 모래 바위였던 바위가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그 염원 그 바람 그 간절한 마음이 비를 불러 오고 바람을 불러와 그들의 모습을 빚은 것은 아닐까. 저 살아 있는 조형물들은 원래 바위 안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 바위들이 수억 년의 시간을 통하여 만들어 놓은 제 삶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길을 가는 내내 따라 왔다. 우리는 어제 저녁에 만났던 Delicate Arch Viewpoint를 지나쳐 첫 번째 목적지인 Fiery Furnace로 향했다. Fiery Furnace(뜻:불타는 용광로)는 노을 불타는 저녁이면 촘촘히 들어선 돌탑에 새겨진 아치에 노을이 그대로 옮겨 붙어 마치 불기둥이 타오르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Sand Dune Arch와 Skyline Arch를 지나 최종 목적지인 Devils Garden으로 향했다. 길은 Devils Garden을 향해 있었다. 길의 끝에 Devils Garden이 있었다. 차량들은 Trailhead에서 멈추어 서거나 돌아나갔다. 거기서부터는 오직 걸어야만 했다. 차에서 내리자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간이 화장실은 뜨거운 열기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고 나무들은 모두 껍질이 벗겨진 채 비틀리고 비틀려 있었다.
 
언제나 여름이면 자외선 알레르기로 인해 고생하는 나는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발랐다. 물도 충분히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Devils Garden으로 들어가는 길은 수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듯 은밀해 보였다. 붉은 색의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길 너머로 마치 다른 세계가 있는 듯하였다. 하늘은 눈부시도록 푸르렀다. 마치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에서 만난 호수처럼 푸르고 맑았다. 푸른 하늘에 구름만이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잡풀들과 거의 땅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키 작은 관목들처럼 땅에 붙은 듯 말없이 걷기만 하였다. 입을 열면 너무나 뜨거운 열기로 인해 이내 지쳐 버릴 것만 같았다.
 
Tunnel Arch를 지나 Pine Tree Arch로 지나는 길 옆 바위에 갈까마귀인이 내려앉았다. 윤기 나는 검은 깃털이 햇볕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는 어둠만큼이나 검게 빛났다. 윤기 나는 검은 털과 빛나는 눈동자가 붉디붉은 땅과 잘 어울렸다. 이 황량한 땅과 참 잘 어울리는 새였다. 이 땅에는 사슴이나 여우, 북미산 대형 토끼, 검독수리나 매 등도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볼 수 있는 행운은 얻지 못했다.
   
아쉬움을 달랠까 하여 고개를 들어 보니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를 품고 있는 아치가 보였다. 그 모습이 그대로 이름이 된 Pine Tree Arch가 눈앞에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소나무들도 힘들었던지 서로 기대 살아가고 있었다. 바로 서있는 소나무 곁에 넘어질 듯 기대 서있는 소나무도 있고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소나무도 있었다. 마치 거짓말같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림 같았다.
 
  이처럼 황량한 땅에서 어떻게 저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자라날 수 있었을까.
 
아치가 품고 있는 것은 나무들만이 아니었다. 흰 구름도 푸른 하늘도 그곳에 있었다. 아치를 통해 보이는 하늘은 마치 내가 머물러 있지 않은 다른 땅의 하늘인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늘도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구나.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나는 아치 안으로 거의 들어갈 듯 몸을 가까이 대고 사진을 찍었다. 아치 안에 담겨 있던 나무들과 하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기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처럼.
 
Pine Tree Arch를 떠났다. 길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얼마나 한참 걸었을까. 온 몸은 이미 땀에 절어 있었고 물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왼 무릎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길의 저편에 자그마한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쉬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Landscape Arch는 그 숲에 있었다. 부끄럽기나 한 듯 그 큰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참으로 거대한 아치였다. 높이가 100m에 달하니 다른 아치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아치는
 
  산 너머로 둘러있었다. 산 너머 하늘까지 둘러 있었다.
  저 큰 모습을 어떻게 바위 안에 숨기고 있었을까.
 
저토록 크고 장대한 모습을 빚어내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와야 했을까. Landscape Arch를 바라보며 무심히 흐르는 시간을 다시 느낀다.
  내 삶에는 얼마나 시간이 주어져 있을까.
 
나도 저처럼 빚어낼 만한 것을 마음 안에 삶 속에 지니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 종류의 침엽수들이 보였다. 소나무도 있고 전나무도 있다. 가문비나무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키 작은 관목들 또한 드문드문 눈에 띈다.
   
이곳에는 그래도 제법 많은 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구나.
 
돌아서는데 길 양 편에 마주 서 있는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마치 마주나기를 나뭇잎처럼 좁은 길을 마주보고 서있다. 한 그루는 푸른 잎 무성하고 다른 한 그루는 껍질이 모두 벗겨진 채 죽어 있었다. 뜨거운 햇살과 지열로 인해 껍질이 모두 타버린 것일까. 가지들은 비틀리고 비틀려 꼬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이의 손짓 같기도 하고 내 손을 잡으라고 내미는 구원의 손길 같기도 하였다.
  어떻게 한 땅에서 자라면서도 이처럼 다른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지나온 삶은 어떤 나무의 모습을 닮아 있을까.
  내 살아갈 삶은 어떤 나무의 모습을 닮아 갈까.
 
그 나무들을 만지며 눈물이 났다. 내 삶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나온 삶의 모습이 거기 그런 모습으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정오를 훌쩍 넘긴 아치스의 태양은 더욱 뜨거웠다. 떠나기에 앞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Landscape Arch를 바라보았다. 아치가 품은 하늘이 눈부시도록 푸르렀다. 햇살에 눈물이 나도록 눈부셨다. 나는 눈물 흘렸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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