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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 도시는 온통 녹색으로 채색한듯…자연과 조화 이룬 한폭 풍경화

호주 브리즈번 - 도시는 온통 녹색으로 채색한듯…자연과 조화 이룬 한폭 풍경화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6:03

호주 브리즈번 - 도시는 온통 녹색으로 채색한듯…자연과 조화 이룬 한폭 풍경화 
 
 



 
호주는 인구 약 2030만 명으로 6개 주와 2개의 자치령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로, 정확한 국가 명칭은 Commonwealth of Australia이다. 호주는 해안을 접하여 도시가 발달했으며, 가장 큰 도시는 시드니(Sydney)로 인구가 약 390만이고, 멜버른(Melbourne), 브리즈번(Brisbane)이 그 뒤를 잇는다.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Canberra)이다.

지상의 낙원처럼 아름답다는 남반구의 이상향 호주를 향해 출발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커다란 기대를 하며 비좁은 기내에서의 하룻밤을 백포도주 몇 잔으로 달래본다. 열 시간의 칠흑 같은 밤이 지나가고 새 아침의 일출을 새로운 나라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맞는다. 호주의 날씨는 초겨울이라고는 하나 우리나라의 시원한 가을 날씨와 같다. 한국과 시차도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아 바로 자연스럽게 아침 시간으로 연결된다.

호주의 제3도시 브리즈번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느끼는 시가지의 첫인상은 깨끗한 녹색의 조용한 도시다. 안정감 있고 아름다운 도시 풍경과 함께 높고 푸른 하늘과 신선한 바람이 아주 상쾌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그저 코발트블루 그 자체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높이 들고 한참을 올려다본다. 태양의 직사광선이 한여름의 날씨같이 자극적이다. 이곳은 한여름에는 섭씨 45도까지 올라가고, 추운 겨울이라 하더라도 8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브리즈번은 ‘빅토리아 여왕의 토지’라는 의미를 가진 ‘퀸즈랜드’ 주의 중심 도시다. 녹색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가장 번화한 거리 ‘퀸 스트리트’에 필리핀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여 후퇴한 맥아더 장군이 사령부를 설치했던 곳이 있고, 대일 공방의 거점으로 삼았던 본부 T&G 빌딩이 있다. 이곳 1층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새겨진 비문도 있다.

호주는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환경보존에 관계되는 일에는 최선의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집을 짓는 일, 간판을 붙이는 일, 공항에서 음식물이 반입되는 일 등을 엄격히 통제하여 환경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마을마다 아름답고 넓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주택들은 작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한 장의 풍경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어디에서나 볼 수가 있다. 집 뒤뜰에는 풀장이 있어 건강을 지키는 풍요가 있고, 집 앞은 출렁이는 바다와 연결되어 물 위에는 아름다운 요트가 물결과 함께 넘실대고, 어느 하나 예술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하여 ‘쿠사’ 전망대로 올라간다. 전망대라고 해서 꽤 높은 건물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아주 작은, 한국의 원두막 같은 전망대가 자연의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시가지를 내려다보니 마치 대형 녹색의 정글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정글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시내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브리즈번 강이 숲 사이에서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찬란한 보석 알처럼 반짝인다.

전망대 한 쪽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중학교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브리즈번 시가지를 관찰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아주 자유롭고 즐거운 학습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학생은 10여 명쯤 되는데 그 중에 한국 학생이 한 명 있다. 교사는 유색인으로 검은 얼굴빛을 가진 여교사이고, 학생들도 검은색 피부가 많은데 그 중에 함께 끼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 노력하는 한국 학생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보다는 측은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선생님의 피부색 때문은 아닌 듯, 마음 한곳이 찹찹해짐을 느낀다. 이곳 유학생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많은 돈을 내고 사립학교에 유학을 온 부자의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삶 속에서 무료 수업을 위한 유학으로 어렵게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특수한 기술 습득을 위한 기능 기술학교 유학도 있다. 아무튼 유학제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시행되어 개인을 아름답게 만들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호주의 전통적인 문화를 찾아 볼 수 있다는 ‘파라다이스 컨추리’ 목장에서 스테이크를 구우며 생음악을 즐기는 점심시간을 가졌다. 호주 젊은이가 코믹한 원맨쇼와 즉흥적으로 댄스를 교습하는데 관광객들이 즐거워한다. 이곳에서는 양과 캥거루, 코알라 등의 동물을 통해서 호주의 특징과 전통문화를 관광객에게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코알라의 모습이 우습다. 가끔 고개를 들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고맙다. 익살스러운 소몰이 노인의 코믹한 제스처가 웃음을 선사한다. 뚱보 아저씨가 양털을 깎으며 익살을 부린다. 전통차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녹색의 잔디 위에서 부메랑을 던지고 받으러 달려가는 호주 아가씨가 예쁘다. ‘마카데미아 너트’를 자랑하는 한국 아가씨도 있다. 어떻게 이곳에서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양을 몰며 ‘마카데미아 너트’를 선전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인이 세계 곳곳에 숨어있듯 많기도 하다. ‘마카데미아 너트’가 하와이의 명물인 줄만 알았었다. 1875년 브리즈번의 북쪽 약 50㎞ 지점인 북 모튼 만 부근의 숲에서 저명한 식물학자인 ‘존 마카담’이 희귀한 녹색 열매를 발견하고, 이 열매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안에 들어 있는 하얀 열매를 먹어 보았더니 매우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열매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마카데미아 너트’라고 명명하였다.

풍요의 나라, 자원이 풍부한 나라, 환경이 아름다운 나라, 그런 호주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한국인에게는 우리끼리 살아가는 우리의 조국이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우리들의 둥지임이 분명하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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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아치스 국립공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아치스 국립공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05 15:53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아치스 국립공원  
 
 
 
 
  


 
  
나는 트레일(Trail)을 구분하기 위해 세워 놓은 난간에 기대어 델리케이트 아치(Delicate Arch)를 바라보았다. 점점 심해가는 왼 무릎의 통증으로 인해 나는 아치스 국립공원 뿐 아니라 유타(Utah)주의 상징이 된 델리케이트 아치를 곁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노을 드리워가는 고즈넉한 저녁 viewpoint에서 멀리 바라보고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은 마치 붉은 바위언덕 위에 세워진 신전의 문 같았다. 저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그 문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그 모습이 장엄하기도 하고 사뭇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외롭게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 장엄한 탓이리라.
  너무나 아름다운 탓이리라.
 
저토록 외롭게 보이는 것이 말이다. 붉은 언덕과 모래 바위들과 그것들이 닿아있는 길들을 달구던 해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사위는 조금씩 어두워간다. 하늘 저편이 붉다. 붉은 것 또한 아름답다.
 
  장엄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 없는 땅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온통 붉은 바위와 잡풀만 무성한 땅이 이처럼 눈물짓도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흙 한 알갱이 흙 한 줌 쥘 때마다 이처럼 시리도록 가슴 설레게 할 수 있을까.
 
가슴 저린 아름다움 속에 앉아 여러 날 동안 괴롭히던 통증들을 잊어 가고 있었다. 이미 몸은 그랜드 캐년에서부터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묵직한 통증만 느낄 수 있었던 왼 무릎은 심하게 쑤셔왔다. 어깨 근육도 찢어지는 듯 아팠다. 한 여름 날 몸살이 오려는지 온 몸이 맞은 듯 쑤시고 아팠다. 자이온(Zion)에서 아치스(Arches)로 오는 5시간 40분 동안 몸은 끝없이 가라앉고 마음은 쉬고 싶기만 하였다.
   
그러나 처음 만난 아치스는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나를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 앞마당을 유유히 거닐던 단아하기 그지없던 사슴 두 마리가 아니라 센터 곁에 웅크린 채 말없던 크고 작은 붉은 바위들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뭉크의 대표적 작품 '절규'에 나오는 여성처럼 저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절규하고 있었다. 그 절규조차도 그림을 닮아 있었다. 소리 없는 절규였다.
 
그러나 닮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바위들은 절규하고 있었지만 그림처럼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다. 절망적이게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나를 그들의 내부로 이끌었다. 나는 그 길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달리기도 하고 내려 걷기도 하였다. La Sal Mountain, Three Gossips, Courthouse Towers, Tower of Babel, Petrified Dunes, Rock Pinnacles를 혹은 곁에서 혹은 멀리서 느끼며 만났다.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채 오랜 세월 동안 서있는 Balanced Rock도 만났다.
 
조금씩 저물어가는 저녁에 비쳐진 모습이 앞 다리를 든 용가리를 닮았다며 우리는 웃었다. 아치스의 황량함이 주는 장엄한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웃음은 허허롭게 느껴졌다. 붉은 모래 바위뿐인 이 황량한 땅에 깃드는 저녁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젖어드는 어둠의 아름다움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의 웃음은 허허로웠다. 말이 필요 없는 저녁이었다. 그저 마음 깊이 스며드는 절절한 아름다움에 젖으며 느끼기만 하면 되는 저녁이었다.
   
Delicate Arch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조금씩 어둠이 깃들고 있는 길을 따라 제법 걸어 들어가자 길의 끝이 있었다. Delicate Arch Viewpoint는 그곳에 있었다. 아치가 보였다. 아치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지친 몸을 난간에 기대었다.
 
약 3억 5천 만 년 전 바닷물이 들어와 쌓아 놓은 수백 미터 두께의 사암들로부터 만들어진 붉은 사암의 조형물들이 있는 땅이다. 그 자연의 조형물들은 붉어가는 하늘 아래서 때로 눈부시게 때로 단아하게 서있다. 그 모습 하나하나에 수 억 년 바람과 비와 눈과 햇살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흙 알갱이 하나 돌의 한 숨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자연의 손길만 닿았으니 흙 알갱이 하나 붉은 바위 하나가 저토록 가슴 저리게 황홀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었으리라.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면 보잘 것 없는 제 뜻 하나 드러내기 위해 이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으리라. 시대의 정신을 운운하고 이데올로기를 떠들어대며 이 아름다움들을 파괴했으리라. 발전을 외치며 이 땅을 파헤쳤으리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으리라.
   
붉은 사암들과 흙뿐인 산, 약간의 잡풀과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침엽수들만이 살아가고 있는 척박한 땅이지만 이 땅은 나무 울창하고 숲 우거진 어느 국립공원보다 아름다웠다.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은 자연의 모든 기운을 그대로 담은 채 무위(無爲)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람과 햇살과 비와 눈과 이슬과 공기와 습도와 시간 등 모든 우주의 숨결들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풀도 나무도 꽃도 깊은 계곡도 흐르는 물도 장엄한 협곡과 폭포도 지니고 있지 않은 땅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름다움, 자연 그대로의 땅 - 이것이 바로 아치스의 아름다움이다. 무위의 아름다움이다. 이 땅에 들어오는 이들은 누구나 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이 아름다움에 가슴 절이며 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애쓰게 되는 것이다. 에드워드 애비(1927~1989)처럼 말이다. 에드워드는 1956년부터 1957년까지 2년 동안 이곳에 홀로 머물며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라는 책을 썼다. 그는 사람들로 인해 파괴되어가고 있는 아치스를 아파했다. 자연 그대로 야생의 상태로 보존해야함을 역설했다. 그는 실제로 공원 레인저로 15년 동안 일하며 이를 위해 노력했다. 애드워드는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치스의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사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깃드는 어두움으로 인해 붉은 바위들은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띠며 변하고 있었다.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에 구름은 한가하고 지는 노을은 붉다. 붉은 바위들이 더욱 붉어졌다. 지는 노을을 따라 모든 것이 변해갔다. 빛깔도 변하고 모습도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졌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아치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땅은 지금도 형성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땅 속 깊이 바위 속 깊이 단단히 품고 있었던 수많은 아름다움들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고작해야 칠팔십 년을 사는 인간들의 눈에만 그것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다리를 절룩이며 기대서 있던 난간을 떠났다.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자 내가 가보지 못한 땅이 길을 품은 채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위는 고요하여 나무들의 숨소리도 들릴 것 같았다.
 
아쉬움 그대로 남겨 둔 채 어둠 깊어지고 있는 길을 따라 내려오자 내내 먼지를 뒤집어 쓴 차가 보였다. 차 뒤로 구름 사이로 들어간 더 붉어진 노을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번개가 내려치는 듯하였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마을인 모압(Moab)으로 향했다. 저녁 8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차창 밖으로 아치스의 붉은 모래 바위들이 보였다.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바위들의 모습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너무나 신비로웠다. 도열해 있던 병사들처럼 보이던 녀석들은 모두 신상의 위엄을 입은 채 근엄하였고 바위 사이로 나 있던 길은 마치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또 다른 길처럼 보였다.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던 녀석들도 모두 내 아픔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붉은 바위들 위로 구름이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신비롭고 장엄한 광경이었다.
 
모압은 가까웠다. 모압에는 숙박시설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방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Comfort Suit이었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처음 들어간 곳이었는데 이름 그대로 편안한 곳이었다. 방도 매우 넓었다. 소파가 있는 거실도 있었다. 냉장고도 전자레인지도 물론 있었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방을 얻는 것은 장기간 여행을 다니는 여행객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음식을 보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간단한 음식은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가격도 적당하면서 냉장과 전자레인지를 구비한 숙소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행운과 노력이 함께 따라야 하는 일이다.
   
우리들은 여행 중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늘 점심으로 주먹밥을 만들곤 하였다. 햇반과 주먹밥 양념과  김만 있으면 아주 훌륭한 주먹밥을 만들 수 있었다. 주먹밥 안에 물기를 짜낸 김치를 조금 넣어 더욱 환상적인 점심을 즐기곤 하였다.
 
  우리는 오랜만에 밥을 지었고 꽁치김치찌개도 끓였다. 그리고 배낭 깊숙한 곳에 아끼고 아껴 두었던 소주도 꺼내 놓았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밤이었다.
 
  모압의 하늘 아래서 내 얼굴은 붉어지고 있었다. 마음도 붉어지고 있었다.
  아치스의 붉은 바위들을 닮으려는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렇게 모압의 밤은 깊었다.  
   

하늘은 맑았다. 얼마나 맑았던지 하늘조차도 눈부셨다. 빛났다. 아침부터 햇살은 뜨거웠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온도계를 보니 벌써 화씨 9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에 만나는 아치스는 어제 저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뭉크의 그림을 닮았던 바위들도 여느 바위들처럼 울퉁불퉁해 보였고 신상의 모습으로 내게 몸 기울이며 맞이하고 보내던 거대한 석상들도 빛을 잃고 여느 석상들처럼 그저 담담히 서있을 뿐이었다.
  
들어서는 길에서부터 마치 다른 세계 다른 행성에라도 다다른 듯 보이던 Park Avenue의 모습도 뜨거운 햇살 탓인지 그저 황량하기만 했다. 황량했지만 장엄하기도 했고 친근했다. 거대한 절벽 곁에 늘어선 돌기둥과 첨탑들의 모습이 웅장했고 수억 년 빚어온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친근했다. 마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속살을 보는 것 같아 때로 민망해 눈을 돌리기도 했다. 바람 한 점 없다. 달리는 길 저편에서 아지랑이처럼 대기가 타오른다. 지열이다.
 
지난 저녁 어둠 깊어지기 전에 만났던 아치들이 창밖으로 지나간다. 수억 년 전 바닷물이 들어오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땅에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2,000여개의 아치(Arch)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치 사이의 구멍이 약 1m 밖에 안 되는 작은 것으로부터 높이가 100m에 달하고 아치의 두께가 5m나 되는 랜드스케이프 아치(Landscape Arch) 같은 것도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수많은 첨탑 모양의 석상들과 돌기둥들이 웅장한 바위 절벽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조형물들이다. 그야말로 자연의 손길로 만들어 놓은 자연의 조각 공원 같다. 신의 손길로 빗은 신의 정원 같다. 아무리 신의 손길로 빗었다 하더라도 저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저 붉은 바위들 안에서 나왔다는 것이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아치들과 첨탑들, 돌기둥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일까.
 
정말 저렇게 많은 붉은 모래 바위들 속에서 나온 것일까. 미켈란젤로의 말대로 저 조형물들은 살아 있는 바위 안에 갇혀 있던 것일까. 그의 말대로 그는 바위 안에 있던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꺼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생명체들은 왜 바위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인간이 이 아름다운 생명들을 파괴할 것이 두려워 신이 숨겨 놓은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바위 안에 숨겨져 있는 이 아름다운 생명들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을 뜨기를 원했던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건축가 루카스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닐까. 그의 말처럼 하찮아 보이는 돌조차도 모두 무엇인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붉은 모래 바위였던 바위가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그 염원 그 바람 그 간절한 마음이 비를 불러 오고 바람을 불러와 그들의 모습을 빚은 것은 아닐까. 저 살아 있는 조형물들은 원래 바위 안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 바위들이 수억 년의 시간을 통하여 만들어 놓은 제 삶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길을 가는 내내 따라 왔다. 우리는 어제 저녁에 만났던 Delicate Arch Viewpoint를 지나쳐 첫 번째 목적지인 Fiery Furnace로 향했다. Fiery Furnace(뜻:불타는 용광로)는 노을 불타는 저녁이면 촘촘히 들어선 돌탑에 새겨진 아치에 노을이 그대로 옮겨 붙어 마치 불기둥이 타오르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Sand Dune Arch와 Skyline Arch를 지나 최종 목적지인 Devils Garden으로 향했다. 길은 Devils Garden을 향해 있었다. 길의 끝에 Devils Garden이 있었다. 차량들은 Trailhead에서 멈추어 서거나 돌아나갔다. 거기서부터는 오직 걸어야만 했다. 차에서 내리자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간이 화장실은 뜨거운 열기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고 나무들은 모두 껍질이 벗겨진 채 비틀리고 비틀려 있었다.
 
언제나 여름이면 자외선 알레르기로 인해 고생하는 나는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발랐다. 물도 충분히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Devils Garden으로 들어가는 길은 수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듯 은밀해 보였다. 붉은 색의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길 너머로 마치 다른 세계가 있는 듯하였다. 하늘은 눈부시도록 푸르렀다. 마치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에서 만난 호수처럼 푸르고 맑았다. 푸른 하늘에 구름만이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잡풀들과 거의 땅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키 작은 관목들처럼 땅에 붙은 듯 말없이 걷기만 하였다. 입을 열면 너무나 뜨거운 열기로 인해 이내 지쳐 버릴 것만 같았다.
 
Tunnel Arch를 지나 Pine Tree Arch로 지나는 길 옆 바위에 갈까마귀인이 내려앉았다. 윤기 나는 검은 깃털이 햇볕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는 어둠만큼이나 검게 빛났다. 윤기 나는 검은 털과 빛나는 눈동자가 붉디붉은 땅과 잘 어울렸다. 이 황량한 땅과 참 잘 어울리는 새였다. 이 땅에는 사슴이나 여우, 북미산 대형 토끼, 검독수리나 매 등도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볼 수 있는 행운은 얻지 못했다.
   
아쉬움을 달랠까 하여 고개를 들어 보니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를 품고 있는 아치가 보였다. 그 모습이 그대로 이름이 된 Pine Tree Arch가 눈앞에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소나무들도 힘들었던지 서로 기대 살아가고 있었다. 바로 서있는 소나무 곁에 넘어질 듯 기대 서있는 소나무도 있고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소나무도 있었다. 마치 거짓말같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림 같았다.
 
  이처럼 황량한 땅에서 어떻게 저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자라날 수 있었을까.
 
아치가 품고 있는 것은 나무들만이 아니었다. 흰 구름도 푸른 하늘도 그곳에 있었다. 아치를 통해 보이는 하늘은 마치 내가 머물러 있지 않은 다른 땅의 하늘인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늘도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구나.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나는 아치 안으로 거의 들어갈 듯 몸을 가까이 대고 사진을 찍었다. 아치 안에 담겨 있던 나무들과 하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기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처럼.
 
Pine Tree Arch를 떠났다. 길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얼마나 한참 걸었을까. 온 몸은 이미 땀에 절어 있었고 물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왼 무릎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길의 저편에 자그마한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쉬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Landscape Arch는 그 숲에 있었다. 부끄럽기나 한 듯 그 큰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참으로 거대한 아치였다. 높이가 100m에 달하니 다른 아치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아치는
 
  산 너머로 둘러있었다. 산 너머 하늘까지 둘러 있었다.
  저 큰 모습을 어떻게 바위 안에 숨기고 있었을까.
 
저토록 크고 장대한 모습을 빚어내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와야 했을까. Landscape Arch를 바라보며 무심히 흐르는 시간을 다시 느낀다.
  내 삶에는 얼마나 시간이 주어져 있을까.
 
나도 저처럼 빚어낼 만한 것을 마음 안에 삶 속에 지니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 종류의 침엽수들이 보였다. 소나무도 있고 전나무도 있다. 가문비나무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키 작은 관목들 또한 드문드문 눈에 띈다.
   
이곳에는 그래도 제법 많은 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구나.
 
돌아서는데 길 양 편에 마주 서 있는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마치 마주나기를 나뭇잎처럼 좁은 길을 마주보고 서있다. 한 그루는 푸른 잎 무성하고 다른 한 그루는 껍질이 모두 벗겨진 채 죽어 있었다. 뜨거운 햇살과 지열로 인해 껍질이 모두 타버린 것일까. 가지들은 비틀리고 비틀려 꼬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이의 손짓 같기도 하고 내 손을 잡으라고 내미는 구원의 손길 같기도 하였다.
  어떻게 한 땅에서 자라면서도 이처럼 다른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지나온 삶은 어떤 나무의 모습을 닮아 있을까.
  내 살아갈 삶은 어떤 나무의 모습을 닮아 갈까.
 
그 나무들을 만지며 눈물이 났다. 내 삶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나온 삶의 모습이 거기 그런 모습으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정오를 훌쩍 넘긴 아치스의 태양은 더욱 뜨거웠다. 떠나기에 앞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Landscape Arch를 바라보았다. 아치가 품은 하늘이 눈부시도록 푸르렀다. 햇살에 눈물이 나도록 눈부셨다. 나는 눈물 흘렸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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