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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세계문화유산]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5:19

[세계문화유산]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경주 분황사

Gyeongju Historic Areas

 


  • 경주역사유적지구 (2000)

    경주역사유적지구(慶州歷史遺蹟地區)는 2000년 12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대한민국의 세계유산으로 경주시 일대의 신라 유적,유물들을 말한다. 같은 세계유산인 일본의 교토, 나라 유적지보다 유적의 밀집도나 다양성 면에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 5개 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월성지구(月城地區), 황룡사지구(黃龍寺地區), 산성지구(山城地區), 남산지구(南産地區), 대릉원지구(大陵院地區)의 5개 지구로 나뉜다.




    신라 고분지역


    월성지구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경주월성(사적 제16호)

    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사적 및 명승 제2호)



     

    황룡사 9층 탑 모형

    황룡사지구

    분황사 석탑황룡사지(사적 제6호)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

    산성지구

    명활산성(사적 제47호)

    남산지구

    보리사 마애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93호)

    경주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남간사지 석정(지방문화재자료 제13호)

    경주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경주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

    경주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경주 삼릉계곡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남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남산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경주남산 입곡 석불두(지방유형문화재 제94호)

    남산 침식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남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4호)

    남산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

    남산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

    경주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5호)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

    신라일성왕릉(사적 제173호)

    신라정강왕릉(사적 제186호)

    신라헌강왕릉(사적 제187호)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신라내물왕릉(사적 제188호)

    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주 남산성(사적 제22호)

    서출지(사적 제138호)

    경주나정(사적 제245호)

    경주남산동 석조감실(지방문화재자료 제6호)

    백운대 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 제206호)

    대릉원지구

    신라 미추왕릉(사적 제175호)

    경주황남리고분군(사적 제40호)

    경주노동리고분군(사적 제38호)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

    신라 오릉(사적 제172호)

    경주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재매정(사적 제246호)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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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황남빵

    경주 황남빵 요리 맛집 정보 2008.09.06 12:44

    경주 황남빵 


    사용자 삽입 이미지


     
    # 日생과자를 '한국형'으로

    그곳에 경주 최씨 가문의 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의 선대는 경주시 양남면에서 세거지를 이뤘지만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주 시내에 있던 기우라(木浦) 제과점의 사환이 된다.

    그는 밤처럼 생긴 일본의 생과자 나마카시(生菓子)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빵 굽는 방법을 몰래 익혀뒀다. 그 청년은 그곳에서 4년간 제과제빵 기술을 익혔고 독립을 했다. 그는 나마카시를 한국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할 궁리를 한다. 나마카시는 겉에 문양이 없으니 한국적 문양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떡만들 때 떡살 문양도 봤다. 반죽한 밀가루에 이런 저런 문양을 찍어봤다.

    어느 날 버려진 우산 살대를 정리하다가 살대를 한 뭉치로 묶어주는 부위를 잘라내 밀가루에 찍어보니 그럴듯했다. 그는 주물공장에 가서 그 문양을 주문해 만들어 사용했다. 나중엔 비용을 아끼기 위해 16개의 연꽃 잎 문양이 촘촘히 박힌 성형구를 직접 깎아 만든다. 흡사 '연화문 수막새 기와' 문양같아 한국인들에게 더욱 어필한다.

    일제 때 경주 빵 시장은 일본인들이 독점했다. 갑자기 이 청년이 나타나자 일본인들은 좀 긴장한다. 그런데 청년의 성실함을 눈여겨 본 일본인이 있었다. 경주역 구내 매점 주인 와카마스(若松)였다. 와카마스는 이 청년의 빵을 잘 팔아줬다. 청년은 조금씩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반도는 전쟁 기지로 변한다. 빵 재료가 제대로 조달되지 않았다. 빵 장사는 날로 시들해진다. 광복이 됐지만 설탕을 구하기 힘들었다. 53년에야 부산에서 제일제당이 한국산 설탕을 처음 생산했으니 빵집 사장들은 고급 빵을 만들기 어려웠다. 청년은 미군들이 먹다버린 깡통에 엉겨붙은 설탕까지 긁어내 활용했다.

    6·25가 발발했다. 세상 인심이 사나워졌다. 맘씨 나쁜 사람들이 빵집을 잘 턴다는 소문을 들었다. 즉시 빵집을 접었다. 다른 장삿거리를 찾았다. 하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로를 속이고 속이는 것 같았다.

    청년이 39세 되던 해 아내와 산 속에서 비장한 기도를 올린다.

    "하나님, 내가 이 직업이 나쁘다고 버리지 않겠니더, 하루 50환만 벌면 만족하겠니더."

    10여년 방황하던 청년은 빵집이 천직임을 절감한다. 황남동 30번지, 천마총 근처에서 빵집을 재개업한다. 경주 남산의 산신도 그에겐 힘을 실어준 듯 했다. 그 청년이 개발한 빵은 졸지에 경주 명물로 성장한다.

    그 빵은 현재 경주시 지정 전통음식 제65400-792호, 경북지정 명품(제2호)이 되고, 2000년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식후원사, 2002년에는 철탑산업훈장까지 받으면서 '국민의 빵'으로 우뚝선다. 청년의 이름은 95년 78세로 작고한 최영화씨, 빵 이름은 황남빵이다.

    "예전 경주 학생들이 가방 맡겨 놓고 묵은 빵이 황남빵일시더."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이제 모두 노인이 돼 버렸다.

    60년대만 해도 황남빵은 지금보다 두 배나 컸다. 아이들은 먹기 내기를 잘 했다. 빵 먹기 시합도 곧잘 벌였다.

    # 지금도 여전히 가내수공업

    황남빵은 초대 사장이 일본 기술자한테 배운 걸 응용해서 개발한 빵이다. 황남빵이란 최씨가 살던 동네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제 때 일본 과자 중에서 가장 고급으로 취급받았던 나마카시, 일명 밤빵은 아직까지 국내 제과점에서 팔리고 있는데 그 레시피가 황남빵과 비슷하다. 속에 들어가는 팥 앙꼬도 그렇고 반질거리는 표면도 유사하다. 하지만 많이 먹어도 별로 질리지 않는 단맛은 나마카시와 큰 차이가 난다.

    최영화씨는 85년 월간지 '샘이 깊은 물'을 통해 황남빵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황남빵의 최대 매력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단맛. 먹기 전에 빵에 코를 대면 묘한 향기가 느껴진다. 흙 내음, 소독약 냄새같다. 그건 베이킹파우더, 이스트 대신 소다를 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빵은 몇 개 먹으면 금방 물려 신 김치라도 곁들여야 되는데 황남빵은 그렇지 않다. 그게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

    뻑뻑해진 팥소를 큰 그릇에 붓고 찬 곳에서 식힌다. 그럼 팥은 이내 진자주색 덩이로 응고된다. 팥소가 잘 변질되지 않는 건 설탕 때문이다. 설탕이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손님들은 팥소를 더 달게, 덜 달게 해달라고 별스러운 주문을 하지만 황남빵은 창업자의 정신을 고수한다. 지금보다 덜 달면 많이 먹힐 것 같아도 입에 싱겁고, 더 달면 입에 쩍쩍 달라붙어 맛이 없단다. 현재 당도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터득한 '한국형 당도'이다.

    한때 황남빵도 가내수공업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구의 한 기계제작소에 의뢰해 자동제빵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빨리 나오는 건 고사하고 기계빵은 손으로 만든 빵을 따라올 수 없었다.

    빵은 식어도 맛이 좋지만 그대로 온기가 있을 때 먹는 게 낫다. 그래서 예전엔 오븐에서 나오는 빵을 곧바로 받아 가길 선호해 늘 가게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 봄가을 수학여행철이면 황남빵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최씨는 아무리 주문이 폭주해도 일요일엔 놀았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배짱을 부린다는 비판도 받았다.

    # '경주 황남빵'과 '황남빵'

    25g짜리 황남빵의 본적은 경주시 황남동 30번지. 73년에는 307-2번지로 이전했다. 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릴 즈음엔 황남동 347의 1에 본점이 생겨난다. 향토성을 유지하기 위해 판매망도 엄격하게 관리한다.

    현재 황남빵 본가에 점포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최씨의 장남 최창국-손자 최주환으로 이어지다 상표사용권을 허락받아 만든 '경주 황남빵'. 또하나는 상표권을 갖고 있는 최씨의 둘째 아들 최상은씨(54)가 만든 '황남빵'. 황남빵은 현재 경주교육문화회관, 현대호텔, 울산공항에 위탁점, 경주역, 대구·동대구역에는 직영점을 열어뒀다. 타지역에선 황남빵을 볼 수 없다.

    황남빵은 처음엔 지금보다 더 작았다가 나중엔 두 배 정도 더 커졌다가 현재 크기로 돌아왔다. 값은 광복 직후 2환, 5환, 10환, 20환 했다. 5·16 직후 화폐개혁 땐 2원 하다가 5원, 10원, 20원, 30원, 50원, 60원으로 올랐다. 요즘은 20개 1만원, 50개 2만5천원 등 모두 3종류가 있다.


    ★ 황남빵 이렇게 만든다 ★

    물에 소다를 넣고, 그 다음엔 설탕, 달걀, 밀가루(중력분) 순서로 섞는다. 반죽 비율도 철저하게 지킨다. 달걀 다섯 개를 풀 때, 밀가루를 1.15㎏, 설탕은 밀가루의 3분의 2쯤 넣는다. 최씨는 늘 자식들한테 이 비율을 고수하라고 당부했다. 손저울을 사용해 재료를 담는 게 이 집 불문율이다.

    완성된 밀가루 반죽에 다시 한 번 밀가루를 뿌린다. 뽀얗게 화장을 한 노르스름한 반죽을 깍두기 크기로 자른다. 이를 한 손으로 눌러 피를 만들고, 복판에 팥소를 푸짐하게 넣는다. 황남빵의 매력은 피가 터질듯하게 팥소를 듬뿍 집어넣는 것이다. 여느 빵과 다른 대목이 팥소의 양이다. 팥소와 밀가루 피의 비율은 거의 5대 1 정도다. 따라서 황남빵 맛은 밀가루 맛보다는 팥소 맛이라고 봐야 된다.

    달면서도 물리지 않는 팥소는 어떻게 만들까?

    팥을 물에 씻어 가마솥에서 푹 삶는다. 70년대엔 수입산 팥(대만, 북해도 산)도 사용했다고 최씨가 고백했는데 국산보다 못해서 그 다음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삶은 팥은 체로 걸러낸다. 팥껍질은 가축에게 주고 나머지는 걸러서 곤죽같은 팥앙금에 백설탕을 넣고 3시간 정도 달인다. 달이는 동안 팥물이 멍울지지 않도록 나무막대기로 쉴새없이 휘저어줘야 한다. 도자기 굽는 것처럼 모든 게 수작업으로 이뤄져야 제대로 된 빵이 나온다. 힘든 공정을 자동기계에 맡겨버리면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장인정신이 철저하게 요구된다.

    성형구로 문양을 꾹꾹 찍는다. 마지막 절차가 참 흥미로운데 생 달걀 물을 솔에 찍어 빵의 표면에 골고루 바른다. 달걀 물기가 굽히는 과정에 노릇한 빛깔을 발한다. 번철엔 모두 24개의 생 황남빵이 올라간다. 이것은 창업자가 지킨 숫자라서 지금도 그걸 고수한다. 물량이 몰리면 28개를 올려 가스불에 7분 정도 굽는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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