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신용대출, 담보대출, 성형수술, 성형, 지방흡입, 임플란트, 라색, 라식, 화환, 꽃배달, 기념일, 선물, 주식, 펀드, 금융, 여행, 신혼여행, 결혼


만포장가든-안압정

만포장가든-안압정 요리 맛집 정보 2008.09.10 13:56

만포장가든-안압정


갈비계 '쌍두마차'…'女人天下' 거저 된 게 아니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 위기와 2000년대 들어 두 차례 광우병 파문으로 80년대 그 많던 가든형 갈비집이 하나둘 이 바닥을 떠났다. 하지만 대구시 수성구 '만포장가든'의 박영희씨(58), '안압정'의 김옥순씨(53)는 업종 변경하지 않고 여인갈비 천하를 구가하고 있다. 그건 결코 '운'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우아한 자태의 백조가 수면 밑에선 분주하게 발을 놀려야 하듯 이들의 일상도 거의 '전투상황'이다. 둘은 만나 보았다. 공통점이 많았다. 박씨는 의성 도리원, 김씨는 충북 영동 출신이다. 둘다 학원에서 배운 음식솜씨가 아니다. 박씨가 81년 대구시 서구에 삼성공원이란 갈비집을 한국가든으로 리모델링 재개업했을 무렵, 김씨는 시집 식구가 꾸려가던 구미시 원평동 해운대갈비집을 인수해 경영 일선에 나선다. 식당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모두 이 바닥에서 한 경지를 개척했다. 대구에 갈비살 문화를 맨처음 퍼트렸고, 사이드 메뉴도 한정식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다가 고배를 마셨고 갈비집으로 되돌아 온 것도 닮은 꼴이다. 미모의 여걸 스타일, 게다가 도전정신까지 엇비슷하다. 둘은 갈비계에선 경쟁대상이지만 서로를 진정한 프로라고 인정했다. 둘의 삶의 이면이 궁금했다.


#From 한국가든 To 만포장가든

동대구로에서 대봉교 쪽으로 차를 몰았다. 대구시 수성구 수성3가 만포장가든이 보였다. 만포장, 흔전만전, 즉 넉넉하게 부리고 사용하는 모습을 의미하는데 박 사장 인심도 '만포장'급이다.

상당수 손님들은 박 사장이 81년 숯불갈비집 삼성공원을 인수해 지역에서 맨처음 주물럭 등심 붐을 일으킨 한국가든 오너였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한국가든은 80년대초 대구호텔 근처의 오륙도(대표 박국광)와 함께 대구 서부권 숯불갈비업계의 리더 격이었다. 그녀는 의성군 도리원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던 아버지 덕분에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면서 꿈에 부푼 학창 시절을 보냈다. 무용을 배웠고 타고난 미모때문에 무용가의 길을 밟고 있던 중 기울어진 가세를 살리기 위해 겁도 없이 29세에 갈비집을 열었다.

일단 음식의 격을 위해 호남 출신 주방장을 기용했다. 전라도 여수 출신 김재수씨(52)였다. 그는 한국가든의 1등공신으로 박씨와 25년의 끈끈한 인연을 유지하며 현재 만포장 주방장으로 몸담고 있다.

그녀는 양념갈비시대가 끝나감을 감지했다. 눈여겨 본 건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였다. 그걸 꼭 레스토랑에서만 팔라는 법이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런 배경을 깔고 주물럭 등심이 태어난 것이다. 등심은 약 1㎝ 두께로 두껍게 썰고 부드러움을 위해 올리브유와 소금만 갖고 하루 이상 숙성시켰다. 특히 82년부터 야간통금이 해제되면서 심야의 한국가든은 영업용 택시 운전사들의 휴게실로 둔갑했다. 선지우거지국을 한 그릇 먹고 비디오가 마련된 별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한국가든은 오픈하던 해 치러진 11대 총선, 박 사장의 여동생 종희씨가 2대 사장으로 나섰을 직후인 93년 서갑 보궐선거 특수도 맛본다. 정호용과 문희갑 진영 선거운동원들은 서구지역의 다양한 여론이 이합집산되는 한국가든을 집중공략했다. 선거 운동원들은 박 사장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읍소 작전을 펼쳤다.

그녀는 89년쯤 반석 위에 올려 놓은 한국가든을 여동생 종희씨에게 물려주고 잠시 외도를 한다. 94년쯤 수성구 황금동 어린이회관 맞은편에 레스토랑 '만남의 광장'을 연 것이다. 대구에서 흔치 않던 바다가재 요리, 통기타·피아노 라이브 음악, 인공폭포에 모카커피와 에스페르소도 선보였다. 하지만 손님들은 격을 원하지 않고 '눅진눅진한' 서비스를 원했다. 그게 싫었다. 개업 2년6개월만에 문을 닫는다. 장고한 결과, 자기 갈 길이 갈비집이란 걸 알고 97년 만포장 시대를 연다. 약 320평 대지에 120평 규모였다. 당시로선 꽤 큰 규모였다.

한국가든 때와 달리 이젠 자신이 모든 걸 챙기기로 맘먹는다.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고기는 일단 제일 좋은 것, 음식은 내 손으로, 손님 마중과 배웅도 사장이 챙길 것. 그녀의 요리 솜씨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수준이다. 요리학원장 뺨칠 정도다.

우엉전, 쑥버무리, 더덕 튀김, 꽈리고추 튀김, 오이 소박이, 열무김치, 우거지국, 호박전, 갓김치, 새우겨자채 무침, 수수떡, 버섯…. 끝이 없다. 한정식 집을 연상시켜 만포장은 한때 한낮 중년 여성들의 계모임 장소 1순위로 각광받기도 했다. 대구에선 처음으로 웰빙 한우를 가져왔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의 한 농장에서 2001년부터 길러낸 쑥 먹인 '하이쑥 한우'였다. 전두환 대통령도 종로초등 동창생 200명과 된장국, 된장에 삭힌 고추를 곁들여 갈비살을 먹었다.


#웰빙 숯불갈비 신기원 연 안압정

안압정은 지금 전국 갈비업자들이 제일 부러워하면서도 겁내는 '태풍의 눈'이다. '오감(五感) 감동'전략 탓이다. '마음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시각(視覺)'을 중시한다. '보기 좋아야 먹기 좋다'는 논리다. 홀은 없다. 모든 손님은 방으로 들어간다. 회식형 갈비집이다. 방 한 쪽 구석엔 작은 정원이 병풍처럼 깔려있다. 꼭 대숲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살평상, 오죽(烏竹)과 수련 심어진 항아리, 싸리나무 등 백초의 조화가 남다르다. 안압정에선 아줌마· 아저씨란 호칭이 들리지 않는다. 선생님, 주임님 등으로 바뀌었다.

안압정은 영업보다는 '경영'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김 사장은 늘 남보다 '반 보' 앞서간다. '안목'탓이다. 구미 해운대갈비, 금오산맥, 수성구 비원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김씨는 78년 시집 온 구미시 원평동 해운대갈비집에서 일을 낸다. 그녀의 나이 26세 때였다. 그 식당은 원래 시댁 식구가 꾸려가던 것인데 오픈한지 한 달만에 그녀가 떠맡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식당이 아니었다.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만 했다.

맨먼저 '조명 혁신'에 돌입했다. 형광등 불빛이 식당 분위기를 창백하게 만든다고 보고 즉각 햇빛에 가까운 백열등으로 교체했다. 다음은 경직된 식당 조직 타파. 주방장 1인 천하 식당 시스템에 제동을 걸며 식당 정보 공유화를 개선한다. 매주 토요일 밤엔 어김없이 팀장이 모여 분임조 회의를 하고 월 2회 총회를 연다. 한국표준협회 관계자들의 노하우도 빌렸다. 그 노하우가 안압정 식단 표준화를 완성시킨다. 삼성반도체, LG 등 국내 굴지 기업 혁신 프로그램의 하나인 품질관리(QC)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조직도 육부, 영업, 경리, 관리, 교육, 식사, 세척, 조경 등으로 팀제로 나눴다. 종업원이 곧 사장임을 주지시켰다. 식당도 오픈형으로 개조하고 식기도 도자기로 교체했다. 여종업원의 모습은 스위스 알프스 소녀, 친절과 센스는 스튜어디스급으로 격상시켰다. 환한 복장, 환한 미소 전략이 먹혀들었다.

87년엔 계절별 사이드 메뉴 개발에 나선다. 계절별 해조류 현황 분석을 끝냈다. 1주일 두 번 밤 새워가며 삼천포 해안을 뒤졌다. 꽃게 사러 군산 가고, 좋은 김치는 순천 등지서 공수해왔다. 요즘은 가창면 정대 골짜기에서 무공해 야채, 대구 인근 재래시장에서 전통 먹거릴 구해 온다. 식단이 확 달라졌다. 일식집에서도 제대로 갖추기 힘든 돌미역, 고시래기, 돌가사리, 젓갈, 훈제 연어, 홍어, 해삼 내장, 멍게, 해파리 등이 기본 찬으로 얹히는 '안압정 해조종합세트'가 탄생한 것이다.

그 반향은 86·87년 한국표준협회 주최 전국 서비스 부문 대상, 88년엔 세계품질관리 대회 금상 수상으로 드러났다. 이후 주차난 때문에 88년 11월15일 구미시청 근처에 종업원 80명, 540여평 규모의 초대형 구미 금오산맥 시대를 열지만 남편과의 불화로 구미시대를 접는다. 대구로 들어와 90년 수성못 옆에 레스토랑 '상류사회'를 열지만 자기 일이 아니었다. 재차 92년 3월 수성구 만촌동에서 비원 시대를 열었다. 룸은 사랑방형으로 개조하고 해조류에 이어 무공해 야채 버전을 소개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돼 95년 12월 조카 김명희씨(47)한테 물려주고 잠시 침잠기를 거쳤다가 99년 9월 안압정을 오픈한다. 그녀는 이젠 오직 갈비집뿐이라고 다짐했다.
 


Posted by 비회원
하단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