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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성로 돼지골목

대구 서성로 돼지골목 요리 맛집 정보 2008.09.10 13:24

대구 서성로 돼지골목




정권잡은 전두환, 고향서 쓸 수육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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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서성로 돼지골목 ]

 
 
6·25 직후부터 형성돼 밀양, 부산과 함께 전국 3대 돼지골목 중의 한 곳으로 자리 잡은 대구시 중구 서성로 돼지고기 골목 전경. 현재 밀양· 이모·8번식당이 서성로 돼지고기 골목의 명맥을 잇고 있다. 
 
한국전쟁때 기계공구골목과 함께 명성 쌓아
'북성로 불고기'의 모태…지금은 3곳만 영업
유명인들 문상객에 내놓을 고기 주문 많아

비오는 대구시 중구 서성로. 북성로와 함께 전국적 기계공구골목, 그래서 그런지 거리가 온통 잿빛톤이다. 6·25가 탄생시킨 이 골목 틈바구니 속에서 야생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은 게 바로 돼지고기 골목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쇠와 고기가 상생(相生)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어른들은 서성로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돼지고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상권은 점차 수성구 지산·범물, 칠곡 3지구, 달서구 상인동 등지로 옮겨갔고, 자연 지역민들도 서성로 돼지고기를 잊기 시작했다. 주차난과 삼겹살과 돼지갈비 구이 붐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억의 힘'이란 게 있다. 빗소리와 어울린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망치든 자들에게 큰 위안이 아니겠는가.

흥미롭게도 우동·연탄불·돼지구이로 무장된 북성로 돼지 불고기도 실은 서성로에서 태어났다. 서성로 돼지고기가 북성로 돼지 불고기를 키워낸 셈. 하지만 청출어람인듯 서성로 돼지고기는 50여년간 제자리 걸음인데 북성로 돼지 불고기는 연탄불 탓인지 달서구 상인동 등지로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다.

서성로 돼지고기집은 50∼60년대 1기 식당, 70년대초 생겨난 2기 식당으로 나눠진다. 1기의 대표주자는 서성식당(주인 정순연씨는 5년전 작고)이었다. 그 다음 순대·수성·김천·대구 식당이 '한 지붕 다섯 식당' 시대를 연다. 이들 식당이 서성로 돼지골목의 역사를 만든 주역들이다. 대구식당이 43년전 밀양식당이 돼 지금까지 골목 초입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문을 닫고 2기 식당한테 바통을 넘겨주었다.

모두 현재 서성로 골목 돼지고기 식당은 밀양식당(우태월), 8번식당(김희자), 이모식당(박영자) 등 3개. 밀양식당은 초대 주인 서영희씨한테 명맥을 이어받은 이창태(61)·우태월씨(58) 내외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수퇘지보다 암퇘지가 더 부드럽다. 누린내도 수퇘지가 암퇘지보다 더 많이 풍긴다. 그래서 역사 깊은 돼지국밥집은 수퇘지보다 몇만원 비싼 암퇘지를 선호한다. 적게 남아도 그게 성공의 비결인 듯 하다.

60년대초까지만 해도 대구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은 서성로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동산동 실가게, 서문시장 등에 볼 일이 있어 대구역에 내린 업자들이 어느 식당에 갈 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역전에 대기 중인 택시 기사들은 홍보맨을 자청해 이들을 서성로로 데려갔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80년대만 해도 하루 300대 이상의 영업용 차량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처음엔 그것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는데 나중엔 그게 주차난을 가중시킨 것이다.

60년대초만 해도 이 골목 안에선 공공연하게 밀도살이 이뤄졌다. 식당주들은 내당동 우시장에서 돼지를 구입해 성당동 도살장에서 잡은 뒤 서성로로 갖고와 해체작업을 했지만 단속이 소홀하면 현장에서 돼지를 잡았다. 별도 작업 공간이 없어 가마니 위에 돼지를 뉘어놓고 모두 6등분(그 바닥에선 6각을 친다고 했다) 냈다. 앞다리 2개, 뒷다리 2개, 갈비짝 2개였다. 돼지 오줌보는 특히 동네 개구쟁이들한테 인기였다. 그들은 바람을 불어 실로 묶은 뒤 축구공 대용으로 사용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돼지 멱따는 소릴 들으면서도 단골들은 태연스럽게 국밥을 먹었다. 이 무렵만 해도 돼지고기 요리는 오직 국밥과 수육밖에 없었다. 삼겹살 구이는 70년대 초반 대구백화점 동편 원산면옥 등에서 처음 선보였다.

수육은 두 종류가 있었다. 남성들이 좋아하는 일반 몸통 살 수육, 돼지 머리로 만든 편육이 있었다. 편육은 만드는 과정이 특별났다. 일단 돼지 머리를 솥에 넣고 살이 허물허물해질 때까지 삶는다. 뼈와 살코기를 분리한 뒤 살코기는 삼베 보자기에 싼 뒤 압축기에 넣고 압력을 가한다. 그렇게 하루 정도 묵히면 젤리처럼 어린다. 그걸 일일이 자르면 편육이 되는데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좋아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에서 유명했던 순대가 대구에 등장한 건 6·25때. 하지만 경상도 순대는 속에 찹쌀 등을 넣지 않고 소·돼지피를 넣었다. 원래 돼지국밥은 남부지방, 중부 이북 쪽은 순대국밥을 즐겼다. 피순대는 삶은 돼지 막창 속에 삶은 소피를 빼곡 채워넣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곳에 찹쌀이 들어가기 시작한 건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물론 대구시청 옆 아바이 순대도 6·25의 산물이다.

대구에선 암퇘지 아기집(암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암뽕은 70년대 선풍을 일으킨 국세청(현 대구 밀리오레) 옆 칼국수 업소의 전식으로도 각광을 받았다.

76년 문을 연 8번식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 때문에 서성로의 후발 대표주자로 급부상된다. 전 대통령은 12·12로 정권을 잡은 뒤 고향인 합천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돼지 수육을 어디에 맡길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성묘와 마을 어른 대접 때 필요한 돼지 수육을 아무데서나 구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속내를 간파한 참모들이 전면에 나섰다. 어느 날 근처 미림찻집에 군 관계자 3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전국에서 수육을 가장 잘 하는 곳 중에 한 곳이 서성로란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 조사차 대구로 내려온다. 식당 주인의 관상을 본 결과 8번식당 여주인이 둥글둥글하게 생겨 미더웠던지 약 300인분의 고기를 주문했다. 김희자씨는 이 사실을 보안에 부치고 돼지 3마리를 잡았다. 밤새워 고길 장만해두자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새벽에 감쪽같이 실어가버렸다. 훗날 현장답사 나온 장교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각하가 고기 맛이 좋다고 칭찬했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고마워했다.

이 소문이 영업용 택시 운전기사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8번식당은 전 대통령이 미는 식당으로 자릴 잡는다. 그뿐만 아니라 김복동 전 국회의원의 모친이 타계했을 때도 8번식당은 경북대 영안실로 고기를 보냈다. 전 국회의원 강신성일씨도 8번식당 단골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같은 날 장인과 모친이 함께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8번식당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요즘은 거의 돼지국밥만 팔고 있지만 70년대만 해도 상가·잔칫집, 회사 회식 및 야유회용 수육 주문이 쇄도했다. 그 시절 수육은 요즘 김밥과 맞먹었다. 설과 추석 전후, 노동절 전후에도 주문이 밀렸다. 웃돈을 주지 않으면 좋은 고길 확보하지도 못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주인들은 얼음을 넣은 아이스박스에 고기를 보관했기 때문에 그날 잡은 걸 가능하면 그날 처분해야만 했다.

내장은 거의 사용안해…부산돼지국밥과 차이

사람들은 부산이 돼지국밥 고향인 줄 착각하고 있다. 돼지국밥의 고향은 밀양이다. 서성로 밀양식당도 그걸 암시하고 있다. 지금도 밀양에 가면 돼지국밥 식당이 즐비하다. 그게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현재 3대 100여년 역사를 가진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동부식육식당(최수곤)을 비롯해 내일동사무소 앞 밀양식당과 단골집 등이 원조격으로 사랑받고 있다. 돼지국밥에는 새우와 진간장에 담근 양파가 감초처럼 따라붙는다. 또한 육수를 사골과 등뼈 등으로 내는 것도 비슷하다. 내용물과 곁반찬은 양 지역이 조금 다르다. 경남권 돼지국밥엔 간, 막·곱창 등 각종 내장이 많이 섞인다. 그런데 서성로 돼지국밥엔 그런게 거의 들어가지 않고 돼지 고기만 주로 넣는다. 또한 서성로 돼지국밥엔 경남권에서 즐기는 정구지(부추)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게 특색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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