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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요리 이야기 - 인터불고 호텔 내 동보성

중화요리 이야기 - 인터불고 호텔 내 동보성 요리 맛집 정보 2008. 9. 6. 12:49

중화요리 이야기 - 인터불고 호텔 내 동보성


나훈아, 방에 요리 배달온 사장 보고 착각"
남진, 니가 무슨 볼일 있어 여기 들어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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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잘 먹었다" 인사

2001년 11월22일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스위트룸.

이날 오전 경북 도청 강당에서 도정 현안을 청취한 뒤 일찍 호텔로 돌아와 쉬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은 몸이 피곤하다면서 돌연 오후 일정을 취소해버렸다. 그 행사는 연두순시와 달리 정치적 성격이 강해 대구시청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서실장, 오늘 무척 피곤하니 나머지 일정은 알아서 챙겨주세요. 만찬은 동보성 중식으로 준비해주시고…."

호텔 총지배인이 갈장동(葛長銅) 동보성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팔선 통 샥스핀, 라조기, 매운 짬뽕을 특별 주문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동보성은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갈 사장은 내심 거절하고 싶었지만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각하용' 음식을 빚었다. 갈 사장은 그때까지 청와대 검식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운가를 전혀 몰랐다. 청와대 검식과장은 깐깐했다. 갈 사장은 특히 짬뽕 면발 때문에 진땀을 뺐다. 면 빼는 기계를 객실로 갖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면을 빼내 쿠킹 랩에 씌워 부리나케 호텔로 갖고 갔지만 몇 분 사이 면이 퉁퉁 불어 무려 5번이나 퇴짜를 맞는다. 라조기도 두세 번 거부당했다. 갈 사장은 검식과장에게 볼멘소리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해프닝 속에 후닥닥 만들어진 음식을 맛있게 먹은 김 대통령은 갈 사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 한때 파크호텔보다 유명했던 동보성

만촌동 고모령 언덕에 자리 잡은 파크호텔 서편에 있는 중식당 동보성(東寶城). 1986년 우여곡절 끝에 등장한 파크호텔만큼이나 어렵게 뿌리내렸다. 금호강과 팔공산 연봉이 그림처럼 바라보이는 그곳엔 원래 호텔이 들어설 수 없었다. 수성구 두산동에서 정통 패밀리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박모 사장은 동보성 자리에 있던 숯불갈비 집 달맞이를 없애고 그곳에 한일호텔의 '화청궁', 금호호텔 '팔선'이 넘겨다 보지 못할 중식당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때만 해도 호텔 중식당은 중식전문점에 비해 경쟁력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한·일·양식 정도만 자리잡았다. 화교들은 임대료가 비싼 호텔로 들어가길 주저했다. 또한 당시 일반인들의 정서도 역시 중식은 좀 허름한 데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었다. 호텔 부설 중식당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박모 사장이 잡은 사람은 바로 갈 사장이었다.

갈 사장은 화교이지만 누구보다 한국문화를 꿰뚫고 있었다. 그는 만리장성, 아서원, 한일호텔 내 화청궁 등을 거쳤을 정도로 지역에선 알아주는 실력파였다. 그의 아버지는 안동에서 안흥 주물공장을 경영했다. 누나는 현재 수성구 두산오거리에서 중식당 용루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88년 수성구 황금동 아서원 개업을 도와준 뒤 '동보성 만들기'에 뛰어든다. 동보성 개점 날짜는 89년 10월10일. 그는 4개월 전 서울로 올라갔다. 거기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누룽지 요리 등을 소개한 한국 중식계의 대부격인 신라호텔 내 중식당 팔선(八仙) 주방장 후덕준한테 한 달간 불도장과 누룽지탕 조리법을 배워 내려온다. 후덕준은 화교로선 처음으로 삼성그룹 이사가 됐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때만 해도 서울과 대구의 중식 수준은 무려 20년 이상 차이가 났다고 한다. 그래도 갈 사장은 맛은 노력만 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업의 승부처는 '손님에 대한 서비스'라고 판단한다. 종업원 마인드 개조를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강구한다. 역시 식당은 개업 바람을 타야 된다. 그래서 아는 지역 화교 어른 몇 분을 모셔와 1주일간 사자춤, 중국 전통악기 등을 선보였다.

영업은 성공적이었다. 이때 손님들은 파크호텔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도 동보성 위치는 알 정도로 동보성의 브랜드가 파크보다 한수 위였다.

# 화교 조리사들 만만디 정신이 걸림돌

후덕준의 추천으로 화교 12명을 서울서 한꺼번에 데리고 온다. 하지만 갈 사장은 화교들을 맘대로 부릴 수 없었다. 화교들은 음식만 제대로 만들면 됐지 다른 건 필요없다고 믿었다. 원가관리 마인드도 전무했다. 재료도 물쓰듯 했다. 동보성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었다. 저마다 돈만 벌면 그만이란 이기심이 팽배해 있었다. 비록 같은 나라 사람들이지만 같은 배를 탈 수 없음을 알고 미련없이 자른다. 몇몇 화교들은 갈 사장에게 섭섭한 감정을 피력했고 심지어 "동족끼리 이럴 수 있냐"면서 협박도 했다.

그렇게 해서 앞산순환도로 변에 있던 중국성 주방장 조형제가 주방장, 만리장성에 있던 조주래가 부주방장으로 기용된다. 갈 사장은 그때 총관리부장이었다.

# 인테리어도 붉은색 위주 중국식 탈피

동보성은 2000년쯤 인테리어가 또 혁신된다. 그동안 3명의 사장이 지나갔지만 그들은 명실상부한 중식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늘 경영 시스템이 덜컹거렸다. 그때 갈 사장의 능력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인터불고 회장 권영호였다. 권 회장은 동보성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갈 사장에게 전권을 준다.

동보성 인테리어는 좀 파격적이었다. 기존 붉은색 위주의 중국식 인테리어 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났다. 간판만 한자로 달고 나머지는 일반 레스토랑 스타일로 갔다. 그해 10월부터 2개월간 리모렐링돼 테이블 300개 시대가 열린다.

# 나훈아 공연오면 동보성 음식만 고집

인터불고 호텔 때문에 동보성엔 스타급 단골들이 몰려든다.

그 중 한 사람이 가수 나훈아. 그는 대구에서 디너쇼를 할 때, 꼭 인터불고만 고집한다. 인기관리 차원에서 음식도 절대 밖에 나가서 먹지 않는다. 꼭 하루 숙박비 206만원짜리 스위트 룸에 머물며 동보성 음식을 시켜먹는다. 나훈아는 잡식성이다. 볶음밥, 짬뽕은 물론 돼지 비계가 많이 붙은 탕수육 등을 좋아한다.

갈 사장은 가수 남진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 때문에 나훈아에게 한 번 된통 당한다. 어느 날 주문한 요리를 직접 갖고 들어갔을 때 나훈아가 눈을 부라리며 "남진, 니가 무슨 볼일 있어 여기 들어왔노"라며 정색하며 소리를 버럭 지른 것. 당황한 갈 사장이 해명을 했고 오해를 푼 나훈아는 그때부터 갈 사장을 '갈 남진'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갈 사장을 "갈군아"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해준 작고한 원로정치인 허주 김윤환도 유별나게 동보성 자장면과 해삼탕을 즐겼다. 허주는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경상도 표를 몰 때 동보성에서 기자회견을 자주했다. 갈 사장의 꿈은 청와대 주방에 입성하는 것. 허주 덕분에 꿈이 이뤄질 뻔도 했지만 청와대 신원조회 단계에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갈 사장이 화교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 음식엔 점도 높은 감자 전분만 사용

동보성 요리는 다른 중식당과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고구마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감자 전분만 사용한다는 점이다. 고구마 전분은 감자 전분에 비해 점도가 무척 낮다. 몇 분 안돼 물로 변하지만 감자 전분은 식재료를 식사가 끝날 때까지 따뜻하게 감싸준다.

특히 2001년 개발된 부추 생굴면 짬뽕도 맛이 독특하다. 얼큰한 맛이 전혀 없어 꼭 일본 나가사키 짬뽕같다. 육수도 돼지고기로 만들지 않고 닭고기 국물로 빚는다. 부추를 비롯해 양파, 당근, 배추, 생굴, 새우, 호박, 굴소스, 소금, 후추, 참기름이 잘 어울려 있다.

전가복에 대항해 만든 '위기삼정(圍其三丁)'도 매력적이다. 해삼, 큰새우, 전복, 브로콜리, 송이, 죽순 등을 담고 칠리 소스에 볶은 소고기 안심을 얹어 중식과 한식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지난 7월 대구에 온 중국인 조리사 장욱파는 면 요리만 전문적으로 한다. 그가 만든 꽃빵, 딤섬(點心·만두 등 중국인들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게 만든 온갖 새참), 춘권(春捲·갖은 속을 찹쌀 피로 말아 기름에 튀긴 간식) 등이 본식을 더욱 탄탄하게 치장해준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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