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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출현

빵의 출현 요리 맛집 정보 2008. 9. 6. 12:46

빵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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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는 밤빵. 
 
# 국화빵을 찾아서

이젠 폐가(廢家)로 전락해버린 대구시 중구 향촌동 옛 상업은행 대구지점 모퉁이. 겨울 해는 벌써 동아빌딩 뒤로 넘어가버렸다. 오후 2시, 그러나 여긴 벌써 응달이다. 저탄장 주택가처럼 중구 향촌동과 화전동 상가들은 하나같이 우중충하다. 침체된 경기 때문일까. 상당수 금은방·양복점도 이 바닥을 떴고, 일부 가게는 보세 전문점으로 바뀌었다. 행인들도 거의 노인이고 젊은이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냉랭하고 활기 없는 이 거리건만 국화빵 파는 노점상엔 그래도 온기가 감돌고 있다. 일제 때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유별나게 생명력이 긴 이 국화빵은 한국 제과제빵사의 산 증인이다.

바람막이 비닐천막이 팔락거린다. 우측엔 호떡, 좌측엔 어묵(오뎅)이 자리잡고 중앙에 국화빵 틀이 앉아있다. 향촌동 초입에서 30여년째 국화빵을 굽고 있는 은귀애씨(64). 이 바닥에선 '향촌동 국화빵 아줌마'로 통하는 그녀의 손길은 추위를 잊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은씨는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대구가 빵의 도시'임을 무척 강조한다.

"수형당, 삼미당, 고려당, 덕일당, 일성당, 뉴욕·런던제과, 만미당, 삼송빵집, 뉴델, 황제당, 스텔라 ….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빵의 도시였어요. 뉴욕·런던, 뉴델, 만미당 시절엔 빵집 매출액이 백화점보다 더 많았다고 합디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그 많던 유명 빵집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그래도 아직 국화빵만은 꿋꿋하게 살아있지만 …."

# 한국 빵문화는 일제가 퍼트려

한말, 한국엔 빵과 과자, 사탕이 없었다. 오직 떡밖에 없었다. 한국 빵과 과자는 일제에서 왔다. 그 시절 아이들 간식이라고 해봐야 막걸리로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술빵과 보리개떡이 전부였다. 그 술빵이 굵은 콩이 박힌 세모난 옥수수빵으로 되돌아와 거리를 누비고 있다.

1910년 일본의 파티시에(Pattissier·제빵사)가 한국에 들어온다. 20년 한국 최초 양과자점인 '메이지야(明治屋)'가 서울 충무로에 등장한다. 물론 중국도 호떡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본의 '찹쌀모찌'는 당해낼 수 없었다. 일본말로 떡(餠)은 '모찌'. 팥소(앙꼬)가 들어간 우리의 둥근 송편과 흡사하다. 일제 때 한국인들은 찹쌀로 빚은 그 떡을 '찹쌀모찌'로 불렀던 것이다. 이때 일본 군인들의 비상식이 구멍 두 개 뚫린 건빵인데 후에 단팥빵과 함께 한국 군인들이 가장 즐긴 간식이 된다.

과자는 국가별로 달리 불리는데 우리의 전통과자는 '한과(漢菓)', 일본 전통과자는 '화과자(和菓子)', 중국 과자는 '중화과자(中華菓子)', 그밖의 서양과자는 '양과자(洋菓子)'로 불린다. 물론 과자와 빵은 레시피가 다르다. 이스트가 들어가면 빵이고, 그렇지 않으면 과자로 이해하면 쉽다.

찹쌀모찌 붐은 광복 후에 더 거세진다. 수형당, 덕인당, 일성당 등 대구의 대표적 제과점 주인들은 '한국형 찹쌀떡'을 개발했다. 찹쌀떡은 일제 때보다 더 커졌다. 한때 예식당 답례품으로도 사랑받은 '컬러 찹쌀떡'은 왕만두만 했으며 흰색, 파란색, 분홍색 3개가 한 세트로 팔렸다.

# 국화빵은 어디서 유래했나

국화빵은 '풀빵' '거지빵'으로도 불렸다. 그때도 있는 집 아이들은 제과점의 화과자를 먹었다. 하지만 서민들은 '거리의 빵'에 만족해야만 했다.
 일본엔 붕어빵이 없고 도미빵이 있다. 붕어는 일본어로 '후나(ふな)'. 그런데 일본인들은 후나야끼는 없고 '타이야끼'만 있다. '타이(たい)'는 도미의 일본말. 왜 일본인들은 붕어빵이라고 하지 않고, 도미빵이라고 했을까. '썩어도 준치'란 우리 속담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것과 같은 일본말이 있다. 일본에선 '썩어도 도미(腐っても たい)'라고 한다. 도미의 훌륭한 맛 때문인지 도미빵이 유행한 것. 이에 반해 한국에선 '붕어'가 인기다. 한국인 노점상들이 광복 직후 도미빵에서 착안, 한국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붕어빵을 개발한 것이다. 물론 국화빵이 붕어빵보다는 먼저 등장한다.

전체적인 느낌은 붕어빵은 굳어 있는 모습인데 반해, 도미빵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크기도 도미빵이 조금 더 크다. 한국의 붕어빵엔 단팥만 소로 사용되지만, 일본에는 단팥 이외에도 초콜릿, 크림, 흰팥앙금, 강낭콩, 심지어는 카레, 소시지, 베이컨, 양배추 등도 사용된다. 도미빵을 가장 처음 만든 사람은 양화가(浪花家)란 가게를 연 칸베(神戶 淸次郞)로 알려져 있다. 현재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손자가 60대라고 하니 도미빵의 역사는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화빵은 한때 '왜놈빵'으로 멸시받기도 했다. 일본의 국화(國花)가 국화였기 때문이다. 일부 민속학자들은 한국 민족정기 말살 수단으로 국화 문양이 새겨진 빵틀을 갖고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붕어빵은 후에 호두·계란·바나나·땅콩빵 등을 파생시킨다. 90년대에는 치즈나 야채를 넣은 신종 붕어빵까지 나타난다.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역시 대구산 '황금잉어빵'. 대구 출신의 김승수씨가 발명, 특허출원한 후 이 제품은 '노점상 체인점 시대'의 주역이 된다. 붕어빵과 달리 팥소가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골고루 들어있어 여성에게 특히 잘 팔린다.

# 추억의 빵, 크림빵과 산도

국내 최초의 샌드 비스킷인 '크라운 산도'의 판매량은 지난해 7월 100억개를 넘겼다. 산도는 74년 4월 등장한 동양제과의 초코파이와 함께 청소년에게 가장 사랑받은 스낵류로 성장해왔다.

61년 8월 탄생한 산도는 누계 매출을 현재 화폐단위로 환산할 경우 약 1조원. 판매된 걸 이어놓으면 지구 둘레를 12바퀴반 돌릴 수 있는 양이다. 산도는 99년 크라운제과를 모델로 한 기업드라마 '국희'의 방영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64년 첫 출시된 뒤 공전의 히트제품으로 등극해 삼립식품의 효자빵이 된 '삼립 크림빵'도 추억의 빵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80년대 초 생산이 중단됐던 이 크림빵이 다시 등장한 건 고 허창성 명예회장이 병상에서 남긴 지시 때문. 허 명예회장은 둘째아들 허영인 회장(58)에게 "옛날 그대로의 크림빵을 다시 만들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72년 형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아버지의 결정에 반발해 퇴사, 빵 전문업체인 '샤니'를 설립했다. 이 샤니가 한국 제빵시장을 평정할 줄 아무도 몰랐다. 샤니는 프랜차이즈 '파리바게트' '베스킨 라빈스' 등으로 정상에 올랐고 97년 법정관리 중이던 삼립식품을 인수한다. 재출시된 크림빵은 현재 하루 7만2천개가 판매되며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 북한 선수단에도 제공돼 화제가 됐다.

다음회에는 대구 제과점 태동기, 수형당의 망개떡 등의 얘기가 이어진다.

◇도움말=(사)대한제과협회 대구경북지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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