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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탑제과와 파리바게뜨

밀탑제과와 파리바게뜨 요리 맛집 정보 2008. 9. 6. 12:28

밀탑제과와 파리바게뜨




"대구는 고급 브랜드를 좋아해"…
'밀탑'이 떠난 자리 파리바게뜨 대공세…
싹쓸이 마케팅 전략 비난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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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복빵, 아시나요

총화 유신의 해(1972년)에 즈음하여 저희 회사에서는 국민 식생활 개선에 선도적 역할과 기업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보다 좋은 제품을 생산 공급키 위해 오복빵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 5월 영남일보에 실린 (주)매일식품(대표 성병훈) 주력제품인 오복빵의 광고문구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 1015번지, 3공단에 자리잡은 오복빵은 오복건빵과 함께 70년대 대구의 구멍가게 빵시장을 주름잡았던 인기브랜드다. 오복빵 등 당시 군소 빵공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혼·분식 장려 운동 때문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 대구의 대량생산업체로는 수형당이 선두였고 오복빵이 그 뒤를 따랐다. 광복과 함께 서울 을지로에서 태어난 삼립도 70년쯤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북구 칠성동 1가에 대구센터를 설립한다. 대량생산업체와 제과점과의 치열한 공방전이 본격화된 것이다.

국내의 빵 공급 루트는 크게 제과점과 빵공장(양산업체) 두 곳으로 집약된다. 제과점은 자기 빵을 자기 점포에서 만들어 그 자리에서 막바로 판다. 반면 현재 500원 안팎의 슈퍼마켓·구멍가게·할인매장 빵코너 빵은 양산업체가 대리점 등을 통해 대량공급한 것이다. 지금 국내 양산업계 빵 시장은 (주)샤니가 앞선 가운데, 그 뒤를 크라운 베이커리, 뚜레쥬르(CJ 계열), 삼립, 기린, 서울식품 등이 추격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오복빵이 선두권이었지만 결국 부산에서 생겨난 (주)기린에 79년쯤 잡아먹힌다.

# 오복빵을 삼킨 기린

부산 반여동에 본사가 있는 기린의 원래 브랜드는 삼립이었다. 69년 삼립빵 영남권 총판 자격권을 갖고 등장한 뒤 81년 법인명을 기린으로 바꾸면서 대구·경북지역 공략에 나선다. 한양대 공대 출신인 김정운 회장, 그는 시장분석 결과 기린의 생존에 반드시 대구와 경북시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 회장은 일단 대구지역의 백화점 매장을 눈여겨봤다. 70년대말 부산의 태화쇼핑, 미화당 등은 대구의 대구·동아백화점에 비할 바 못됐다. 그래서 대구를 잡은 것이다.

대구로 진입하면서 기린은 제과점 사업을 특화한다. 82년 기린 산하에 밀탑사업부가 생긴다. 하지만 지역 제과업계는 밀탑이 자신의 숨통을 죌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다.

#밀탑의 대구 습격 사건

밀탑제과의 기술수준은 탁월했다. 그때만 해도 양산업체 프랜차이즈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파리바게뜨도 89년 대구에 상륙했다. 그래서 10여년간 밀탑은 대구시장을 공략하기 쉬웠다. 밀탑의 마케팅은 고품격이었다. 전국에선 처음으로 셀프 서비스란 걸 도입한다. 그 전만 해도 직원이 빵을 골라줬는데 밀탑은 손님이 직접 고르도록 했다. 또한 자동제빵시스템과 생크림 버전을 개발한다. 그때만 해도 국내엔 생크림 케이크가 없었다. 버터로 만든 딱딱한 케이크 뿐이었다. 밀탑은 일본 오사카와 도쿄의 제빵 기술자를 국내로 데려와 기술을 배웠다. 또한 각 매장마다 매 시간 갓 구운 빵(원래 갓 구운 빵 광고 컨셉트는 크라운베이커리의 작품)을 내놓고 빵가격은 다른 집보다 5~10% 비싸게 받았다.

대구침공이 쉬웠던 이유는 뭘까? 뉴욕·런던·황제당이 세무조사 등으로 동반 폐업하자 지역 제빵기술이 점차 동반하락하게 된 것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난 셈이다.

지금은 동구 우방강촌마을 상가에서 코른 베르미 제과점을 꾸려가고 있는 최원도씨(51). 그는 밀탑의 대구 침공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밀탑 동아백화점·동아쇼핑점·가야백화점 등 3곳의 직영점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밀탑이 먹혀들자 가맹점이 순식간에 30개로 급증한다.

# 하지만 밀탑도 붕괴

밀탑은 불과 10년 정도 대구 제과업계를 주름잡았지만 92년 복병을 만난다. 외부의 적이 아니고 내부의 적이었다. 89년 상장기업이 된 기린은 경영 합리화를 단행한다. 인기절정이었던 밀탑사업부가 2002년 대구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김 회장은 밀탑에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기린화학, 기린산업, 기린장식, 기린 패널 등 7개 계열사 사업에 더 치중한다. 어쩜 김 회장은 밀탑보다 막강한 파워를 가진 파리바게뜨가 이미 대구에 상륙했고, 섬유경기 하강으로 빵 사업의 미래가 그렇게 밝지 않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린은 방만한 사업으로 결국 무너진다. 사장이 세 번 바뀐 끝에 이용수 대표가 기린을 이끌고 있다. 물론 북구 검단동 기린 대구 공장도 문닫았고 현재 그 자리는 영남총대리점 사무소로 변했다. 하루 5천~8천 상자의 빵이 이곳으로 와서 대구·경북 전역으로 공급된다.

# 파리바게뜨의 대공습

지역 제과점 업주들은 파리바게뜨 얘기만 나오면 한숨을 내쉰다. 80년대 밀탑 베이커리에 혼이 난지 얼마 안돼 재차 파리바게뜨 대구대공습을 허용한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들은 파리바게뜨에 고전한다.

파리바게뜨는 삼립을 모태로 성장해 현재 4개 계열 18개 브랜드, 연매출액 1조원을 기록한 한국 최대 음식재벌 SPC그룹 회장 허영인씨의 작품이다. 그는 작고한 아버지 허창성이 세운 부도위기의 삼립까지 인수하고, 80년대초 삼립에서 독립해 세운 (주)샤니를 기반으로 베스킨라빈스, 던킨 도너츠 사업까지 성공시켰다.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로열티를 전혀 지급하지 않는 전국 1천350개의 가맹점을 가진 파리바게뜨였다.

86년 10월17일 샤니 계열사인 파리크라상이 설립되고 그 해 서울 반포에 크라상 1호점, 88년 바게뜨 1호점이 광화문에 등장한다. 이때 시장조사팀은 한강 이남에서 어느 지역부터 치고 들어갈 것인가를 놓고 고심했다. 시장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구가 가장 고급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앞세우고 '대구대공습 작전'을 감행한다. 일단 89년 10월 수성구, 90년 6월29일 중구 동성로에 직영점을 연다. 직영점은 시장 개척을 위한 시범점포로 시장성을 조사하고 또 가맹점 사업을 시작하려는 고객들에게는 '테스트 마켓' 역할을 한다. 파리바게뜨는 대구지역의 성공적인 정착에 힘입어 수도권 지역으로도 점포망을 넓혀나갈 수 있었다. 92년 7월 대구에 영남사업부가 개설된다. 현재 영남권 빵은 달성군 논공에서 만들지만 더 빨리 공급하기 위해 이달 중 성서산업단지 내 옛 삼립대구공장으로 이전한다. 현재 파리바게뜨 가맹점은 대구·경북에 모두 115개이다.

파리크라상은 법인명, 파리바게뜨는 브랜드명이다. 파리바게뜨는 쉽게 파리크라상의 가맹점 브랜드이다. 현재 국내 양산업체 대표 프랜차이즈로는 CJ 계열의 뚜레쥬르, 크라운베이커리, 서울식품 등이 대표격이다.

# 파리바게뜨의 성공전략

일단 시대가 파리바게뜨 편이었던 것 같다.

88년 서울 올림픽 직후 '외식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사람들은 좀 더 특별한 맛을 찾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힙합붐과 맞물려 돌아간 X세대의 유행감각은 이름난 메이커의 빵을 선호했다. 파리바게뜨 생일 케이크도 선호도 1위였다. 젊은층, 특히 10대들과 연인들은 생일날 선택의 여지없이 파리바게뜨 케이크를 갈구했다. 만약 일반 제과점 빵을 사갖고 오면 눈총을 받았다. 90년대 수성구 아파트촌 개발, 상가엔 어김없이 파리바게뜨가 점포를 선점했다. 지역 제과점 업자들은 "이미 브랜드에 중독된 소비자들은 다른 빵집을 찾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지역 제과점이 더욱 된서리를 맞게 됐다"면서 파리바게뜨의 싹쓸이 마케팅 전략을 비판했다.

상호도 영업에 일조했다. 파리바게뜨, 이건 기존의 '당(堂)' 자로 끝나는 상호보다 경쟁력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베이크오프시스템(bake off system)'도 성공에 부채질했다. 빵의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 반죽을 급속 냉동해 발효시킨 '생지'를 매장으로 하루 2번 배달했다. 하지만 파리바게뜨가 크라운베이커리·뚜레쥬르와 함께 올해 일격을 맞았다. SKT·KTF 멤버십카드 소지자에게 20~40% 가격 할인혜택도 줬는데 지난 1일부터 그 할인율이 10%로 조정됐다. 제과점 업계도 이를 호기로 받아들여 반격에 나섰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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