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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레스토랑 "아비뇽"

대구 레스토랑 "아비뇽" 요리 맛집 정보 2008. 9. 6. 12:03

대구  레스토랑 "아비뇽"



VIP룸엔 아프리카 대통령도 방문


 
# 대구에도 제대로 된 정통 레스토랑

1981년, 그때서야 비로소 대구에 제대로 된 정통 레스토랑이 등장한다. 바로 중구 공평동 현 금곡삼계탕 자리에 자리잡은 '아비뇽'이다.

아비뇽을 만든 오만근 사장(59)은 그의 재종형이자 지역 귀금속 세공전문가 정근씨(2004년 작고)의 형수 김미영씨와 오랫동안 자신들의 가업 형성에 혼을 쏟았다. 아비뇽은 일조일석에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70년대에도 이런저런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그 작은 흐름들이 아비뇽을 통해서 명실상부한 레스토랑 시대로 발전한 것이다. 아비뇽의 자양분은 흥미롭게도 개정식당에서 왔다. 지역의 대표적 전주 비빔밥 전문점으로 알려진 개정식당의 뒤안길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 아비뇽을 키워낸 개정식당

개정식당의 전신은 73년 현재 한일극장 맞은편 한국투자 자리에 있었던 신세계 호텔 지하에 들어섰던 전주비빔밥 식당. 그때 정근씨는 그 지하 귀금속 매장을 꾸려나갔고 후에 그 매장 옆 슈퍼마켓 주변에 식당가가 조성된다는 말을 듣고, 지역의 한 사업가와 의기투합해 한식당을 만든 것이다. 그 식당에서 잔뼈가 굵은 게 오만근씨이다. 그는 그곳에서 5년 정도 일을 하다가 대구백화점 북문 근처, 서울삼계탕 바로 동편으로 독립해 개정식당 시대를 연다. 식당 내 카펫을 깔았고, 종업원도 개량 한복을 입도록 하는 등 알찬 서비스 라인을 구사했다.

# 개정은 산마루 레스토랑을 낳고

개정식당은 개점 2개월 만에 손님이 줄을 서는 큰 성공을 맛본다. 이때 오만근씨 특유의 승부 근성이 발동된다. 그는 한식당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구에선 최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해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대백 남문 맞은편 골목안의 60년된 한옥 한 채를 발견한다. 지금은 그 근처가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언저리지만 그때만 해도 슬럼가 같았다. 그 집은 숯불갈비 식당이었다. 그런데 장사가 별로여서 즉시 넘겨받았다. 하지만 ㄱ자 한옥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감이 와서 3일 밤낮, 그 앞을 오가는 행인수를 조사했더니 잘만 하면 승산이 있겠다싶어 일을 벌였다. 홀이 부족해 마당도 구조변경했다. 마당 넓이 만큼의 천장을 내달았다. 그런데 이 사실이 항공촬영에 걸려 담당 구청으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았다. 속을 끓이며 철거했다.

지붕은 한옥, 실내는 칵테일 바 같은 느낌이 들도록 치장했다. 기와지붕을 가진 대구 첫 레스토랑이 생겨난 것이다. 인테리어도 치밀하게 짰다. 홀 어디에 앉더라도 마당이 보이도록 했다. 그 마당엔 토끼와 각종 새도 키웠다. 내부구조가 수성못가 레스토랑 '안개시인'과 흡사했다.

상호는 '산마루'. 이에 걸맞도록 바텐 좌석 번호 앞엔 별, 나머지 테이블엔 해와 달을 아라비아 숫자 앞에 붙였다. 한 여름엔 지붕 위에 샤워기를 올려 비가 오는 것처럼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뿌려줬다. 86년 오 사장의 처조카가 그걸 인수한다. 산마루 시대가 끝나고 스탠드바로 바뀐다. 현재는 국제 유료주차장으로 변해 있다.

# 城이미지 연출 위해 쇄석을 벽에 붙여

산마루의 경험을 토대로 세운 게 아비뇽이다. 석 미용실 바로 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아비뇽 자리는 일본 적산 가옥이 있던 곳이다. 원래 상업지역은 아니고 주택가였다. 레스토랑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프랑스 아비뇽 성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산 쇄석을 벽에 붙였다. 입구에 정원을 조성하고 큰 돌로 가장자릴 둘렀다. 또한 3명의 여신이 원반을 들고 있는 듯한 흰색 석조상까지 특수주문제작해 세웠다. 홀 넓이는 주방을 제외하곤 86평. 바닥도 그냥 두지 않았다. 서울의 한 유명 호텔에서 교체 대상이었던 카펫을 갖고 내려왔다.

# 언론선 사치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매도

그땐 외국 유명 브랜드 상품을 자유롭게 수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끈을 달아야만 했다. 가령 유명 관광호텔을 끼고 있거나 미8군 요인을 알아야 가능했다. 체코산 크리스털 장식 등을 관광호텔을 통해 구입했다. 이런 사실을 안 지역의 한 언론사 기자가 아비뇽을 사치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매도하는 기사를 오픈 전에 터트렸다. 아비뇽 측은 이에 기죽지 않고 자신들이 할 일을 계속 추진해 나갔다. 후추·소금·나이프·포크도 은제로 구입했다. 잔도 와인잔 스타일로 갔다. 정통 레스토랑이라고 자랑하려면 그 수준에 맞는 분위기를 갖추는 게 주인된 자의 도리라고 믿었다.

개업 날, 지역에선 내로라 하는 고위 인사가 아비뇽을 찾았다. 하지만 손님들의 수준은 그렇게 미덥지 못했다. 심지어 야채 수프를 소고기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고기를 먹으니 속이 더부룩하니 신김치를 가져오라" "왜 이렇게 식기가 많으냐" "젓가락은 왜 가져오지 않느냐"는 손님도 있었다. 아비뇽은 일정한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장을 하지 않은 손님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런 영업방침이 플러스 효과를 발휘했다. 그게 소문나 아비뇽의 품위가 더 격상됐다.

# 이구동성으로 같은 메뉴"알아서 줘요"

4명이 들어왔을 경우, 한 명이 크림 수프를 시키면 나머지는 이구동성으로 같은 걸로 갔다. 그 다음엔 "빵을 먹을 것이냐, 밥을 먹을 것이냐"고 물으면 "알아서 하라"는 대답히 주종이었다. "고기를 어떻게 익혀드릴까요"라고 물으면 "바짝 익혀 주시오" 아니면 "알아서 해주세요"란 맥빠지는 대답이 이어졌다. 심지어 "후식을 뭐로 드릴까요"라고 묻는 대목에서는 "왜 이렇게 묻는 게 많소? 알아서 갖다 줘요"라면서 웨이트를 무안하게 했다.

# 수프·본식·디저트 가격을 따로 받아

지금 안심은 크림빵처럼 한없이 부드럽다. 양식용 육우가 지천으로 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부드러운 국내산 안심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홍어처럼 부패시켜 억지로 부드럽게 만들었다. 레스토랑 분위기만 즐기는 손님들은 육즙(고기 육즙을 조리사들은 주스라고 표현)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 아비뇽은 고길 바싹 구워달라는 손님이 가장 무섭다. 미디엄 정도가 알맞아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귀한 육즙을 죄다 증발시키라니…. 보다 못한 오 사장이 나섰다. 주사기로 구운 안심 속에 육즙을 주입해보았다. 그러나 세포가 죽어 효과가 없었다.

한 개 있는 VIP룸은 늘 요인들로 들끓었다. 한 번은 중부경찰서 외사계 형사 2명이 아침에 나와 예약 룸을 점검하고 갔다. 아프리카의 한 대통령이 그 방을 예약해 경호 차원에서 체크한 것이다. 캠프헨리 사령관도 심심찮게 그곳에 왔다. 그래서 여느 레스토랑에 비해 비쌌다. 지역 일반 레스토랑으로선 맨처음으로 수프, 본식, 디저트 가격을 따로 받은 것이다. 그건 요즘 호텔식 계산 방식이었다.

# 아비뇽은 지금 금곡 삼계탕으로 바뀌어

의식있는 단골들은 아비뇽 같은 레스토랑은 대구에 꼭 한 개 있어야 되니 잘 지켜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비뇽은 백기를 들고 만다. 도심 교통난 때문이다. 단골들을 위한 주차 공간이 전무해 예약 취소사태가 빈발했다. 결국 89년 오사장의 형수가 금곡 삼계탕으로 바꿨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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