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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레스토랑 이야기 "르네상스"

대구 레스토랑 이야기 "르네상스" 요리 맛집 정보 2008.09.06 12:02

대구 레스토랑 이야기 "르네상스"




앞산 레스토랑의 원조격

 
 
# 원래 닭백숙 거리였던 앞산 순환도로변

1970년대 앞산 순환도로변. 그곳은 지금과 달리 닭백숙촌으로 성업하고 있었다. 60년대 도심의 불고기 붐, 동촌과 강창의 매운탕 붐을 거쳐 또다른 먹거리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여건상 이 거리는 40~50대 중년 여성들의 각종 계모임 장소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서 대덕식당도 선지 해장국 명소로 자리 잡는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이곳이 점차 정통 레스토랑 거리로 변모한다. 그 산파역이 바로 현재 르네상스의 전신 격인 산마리노(95년 5월 숯불갈비 전문점 로즈가든으로 변한다). 산마리노와 함께 샬레 스위스, 몽마르뜨, 몽블랑, 화이트캐슬, 마이하우스, 중국성(중식당) 등 다양한 스타일의 레스토랑이 운집하게 된다. 산마리노 이전에 하늘목장이 앞산에 레스토랑 문화를 전파한 선두주자로 나름대로 파워를 발휘하고 있었다. 하늘목장은 정통 레스토랑 스타일은 아니었다. 카페형 세미 양식당이었다. 홀은 룸으로 칸막이 처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달콤한 음조의 음악, 자연스럽게 밀애문화가 활성화된다. 그것이 하늘목장의 영업 컨셉트였다. 하지만 하늘목장은 산마리노 때문인지 크게 어필되지 못하고 중도하차한다.

# 색다른'7080분위기'산마리노의 등장

86년 11월17일 문을 연 산마리노의 영업전략은 색달랐다.

대지 700평, 건평 45평 크기의 산마리노 자리엔 원래 보신탕 집이 있었다. 레스토랑 자리론 별로였다. 그런데도 그곳을 멋지게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김영수 사장(55)이다.

그는 향토 레스토랑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빵집에서부터 호텔 양식당 책임자까지, 바닥에서 뒹굴며 15년간 양식의 노하우를 체득했다. 그걸 토대로 자기만의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만들었는데 그게 산마리노였다.

개업하기 전 산마리노 언저리는 황량했다. 왕복 2차로가 있었지만 행인들의 동선은 대덕식당 조금 지나 우회전하는 길 모퉁이에서 끝났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올 수 있게 만들었다.

지역에선 처음으로 '7080분위기'포맷을 개발한다. 추억과 테마가 있는 볼거리를 개발했다. 손님들에게 온갖 간식거리를 무료로 제공했다. 카시밀론 인조 솜을 갖고 함박눈 내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벽난로에서 갓 구워낸 고구마와 감자는 물론 뻥튀기, 귤 등도 맘껏 집어가도록 배려했다. 밤엔 지역의 통기타 가수 2명을 아르바이트로 고용, 모닥불 캠프도 열어줬다. 대형 네온사인 간판도 달았다. 으슥한 곳까지 차를 몰고 온 아베크족들도 그곳의 낭만적 분위기에 취해 산마리노의 단골이 된다. 자연스럽게 '밝은 레스토랑'으로 발전한다. 매년 5~6월엔 마당에 보리밭도 조성했다. 이런 흐름은 당시 한강 이남에선 선례가 없었다. 이 사업 아이템은 10년 뒤 팔공산 송림사 옆 라이브 카페 '시인과 농부'(현재 팔공산 송림사 옆으로 이전)에서 절정을 이룬다. 잘 되는 날은 한 테이블의 손님이 10번쯤 바뀌었다.

# 88년 대구 최대규모 '르네상스' 오픈

산마리노의 신화는 바로 옆으로 옮겨가 88년 4월17일 르네상스로 꽃을 피운다.

당시 산마리노 옆에선 서울 출신의 한 사업가가 대형 레스토랑 건물을 짓고 있었다. 김 사장은 그걸 예사로 봐 넘기지 않았다. 그는 산마리노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때 가든 호텔 회장이었던 김문웅씨(작고)가 궁전 아파트 자택으로 김 사장을 부른다. 거금 2억원을 조건없이 내밀었다. 그의 성실함, 신용, 그리고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자기 옆에 새로운 레스토랑이 생기면 산마리노의 영업에 큰 지장이 초래될 걸 우려해 신축 중인 레스토랑을 자기가 차지해 버린 것이다. 르네상스 부지는 750평, 건평은 1층 250평, 2층 100평 크기. 당시 대구에선 가장 컸다.

그는 라이브 음악을 더욱 특화시킨다. '콩심는 아이들'이란 듀엣으로 유명한 주진과 김지훈씨, 현재 대학 강사가 된 여자 피아니스트 김모씨, 정원영씨 등을 불렀다. 낮 12시~밤 11시30분 라이브를 무려 12타임이나 돌렸다. 김 사장은 배고픈 음악인들을 챙겼다. 한 달 출연료도 50만원선. 파격적이었다.

점차 르네상스에 가면 정통 스테이크 맛을 볼 수 있고 분위기도 좋다는 소문이 났다. 주말이면 외제차가 몰려왔고 좋은 자릴 잡기 위한 예약전쟁도 벌어진다. 무턱대고 찾아온 사람들은 자리가 빌 때까지 대기했다.

메뉴도 다양했다. 대구에선 처음으로 훈제 요리를 레스토랑에서 선보였다. 연어, 돼지, 오리, 닭, 심지어 베이컨까지 내놓았다. 안심 스테이크도 '교과서적'으로 요리했다. 다른 곳보다 더 두껍게 썰어 냈고, 육즙을 살리기 위해 고급 전기 오븐기도 구입했다. 그래서 멋진 '브라우닝(Browning·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잘 굽는 것)'이 가능했다.

91년 앞산에 불이 났을 때 문닫고 봉고차에 컵라면과 가스버너, 물을 갖고 소방요원들을 격려하러 갔다. 감동경영도 몸소 실천했다.

# 사업 성패 좌우 여성고객 잡기 '신경영'

르네상스 초기, 국내엔 증권과 아파트 바람이 불었다. 여성들의 위상도 정비례해서 격상됐다. 여성 고객을 잡느냐 못잡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될 상황이었다. 영업에 지장을 초래할 지경이 되어도 품격 높은 뮤지션들만 엄선했다. 또한 손님들이 직접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바로 가족이 함께 하는 '주부고객 가요제'였다. 물론 당시 MBC 주부가요열창을 카피한 것이다. 매장에 안내문을 붙였는데 무려 400여명이 예선에 참여했다. 상품도 여성들이 혹할 만한 것으로 골랐다. 부부동반 제주도 여행권, 커피잔 세트, 전기밥통, 전자레인지, 카메라…. 수익의 일부분을 손님에게 돌려주겠다는 신경영전략이었다.

# 한강이남의 대표적 외식 경영자 김영수 사장

경남 밀양 출신의 김영수 사장(사진)은 올해 양식 요리 경력 40년을 자랑하는 한강 이남의 대표적 양식 조리사 겸 외식경영자로 손꼽힌다. 그는 이미 일본잡지에 대구를 대표하는 레스토랑 사장으로 선정됐고, 94년 월간 식당이 발간한 '정상을 꿈꾸는 사람들(유세미 저)'에 한국을 대표하는 성공한 외식업계 사장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워나갔다. 65년, 그가 17세였을 때 수성관광호텔에 들어간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많다. 박 전 대통령이 수성관광 호텔에 왔을 때 안심스테이크를 청와대 검식관 김갑수씨로부터 검식받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던 당일 뉴설악호텔 조리 책임자로 설악산 계곡에서 잡은 칠성장어 요리도 만들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그 음식을 못먹고 타계한다.

이후 그는 울산관광호텔 양식부, 북성로 세명관광호텔 양식부 주방장으로 일한다. 대구 파크호텔 양식당 개업 작업을 진두지휘한 뒤 동인·한일호텔 양식부를 거친다. 그는 86아시안게임 직후 한국에 이는 외식바람을 예의주시한다. 대구에서도 레스토랑 붐이 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산마리노를 차린 것이다.

그를 거쳐간 쟁쟁한 조리사들이 의외로 많다. 영남이공대 최영준 교수, 대구국제공항 내 에어포터 호텔 주방장 이종화씨, 대구과학대 김현묵 교수, 월드컵 경기장 가는 길에 있는 알렉산더 레스토랑 권율식 사장, 마산으로 내려가 뷔페 사장이 된 김재곤씨, 미국으로 이민가 호텔 조리사가 된 김삼조씨 등 30여명의 유명 조리사가 그의 문하생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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