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신용대출, 담보대출, 성형수술, 성형, 지방흡입, 임플란트, 라색, 라식, 화환, 꽃배달, 기념일, 선물, 주식, 펀드, 금융, 여행, 신혼여행, 결혼


대구 회골목

대구 회골목 요리 맛집 정보 2008.09.06 11:42

대구 회골목


"모여야 산다" 횟집 수십 개씩 타운 형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럭 
 
있는 자'들은 정통일식집, 그러나 '없는 자'들에겐 일반 횟집이 딱이다.

물론 1970년대까지만 해도 회는 서민에겐 무척 비싼 음식이었다. 하지만 80~90년대로 넘어오면 회산업의 인프라가 급격히 개선된다. 양식장이 활성화되고 수족관·활어차까지 폭증한다. 도로망의 발달 등으로 인해 '회는 바다 옆이 싱싱하다'는 통념도 붕괴된다. 싱싱한 횟감이 서울 등 대도시에 먼저 공수됐다.

대구는 북구 매천동에 종합수산물 도매시장이 생겨 횟감을 확보하기가 더욱 쉬워졌다. 이로 인해 도심 곳곳에 '서민형 횟집'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일군의 횟집들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10~20집씩 모여 타운을 형성했다. 골목마다 횟집이 흘러넘치게 된다. 이 틈바구니를 뚫고 90년대에는 경남 마산·창원을 거점으로 한 마창회수산이 대구 MBC 근처에 상륙해 지역 횟집에 적잖은 타격을 준다. 이어 공동어시장, 공동수산시장 등이 가세하면서 '할인매장형 회식당' 시대가 열리게 된다.

#동구 신천동 KBS방송국 옆 회골목

대구시 동구 신천동 옛 KBS대구방송총국 옆 회골목을 찾았다. 현재 방송국 자리엔 고층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예전의 그 흥청거림은 좀 숙지고 있었다. 한창 때는 20여집, 그러나 지금은 6개 업소(송림·해송·만경·청해·동해·대청)만 남아 있다.

가장 먼저 들어선 횟집은 80년대초 경북고 출신인 박춘석씨가 차린 호궁 회식당. 박 사장은 비록 그곳이 이면 도로가 있는 평범한 주택가였지만 근처에 방송국, 동대구역, 고속버스터미널, 대구상공회의소, 삼양사, 라이온스회관 등이 있어 나름대로 장사가 될 것이라고 영업분석을 했다. 포항에서 올라온 선어를 동부정류장에서 갖고 오기도 쉬웠을 것이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호궁이 문전성시를 이루자, 곧 송림·동해·수정·경동이 가세하면서 이 거리가 회골목으로 불리게 된다.

현재 가장 오래된 송림식당의 김재덕 사장(53). 그는 수성구 수복식당 문재신 사장과 함께 향촌동 주부센터에서 일식을 배우다가 이 골목에서 독립을 한다. 김 사장은 82년 이 골목에서 송림식당을 연 전수호 사장으로부터 업장을 86년 인수한다. 초창기 이 골목의 횟값은 정통 일식집보다는 쌌지만 그래도 서민이 쉽게 들어올 만한 곳은 못됐다. 동해 등 일부 식당은 활어차를 갖고 직접 산지로 가서 생선을 갖고 왔다. 한창 때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다. 송림의 경우 낮 12시 전에 방 4개와 테이블 5개가 만석이 됐다.

그때까지도 회를 잘 못 먹는 사람이 있었다. 단체로 올 경우 자기는 회를 못먹는다면서 굳이 오징어 회를 고집했다. 그들은 회보다 주변 공짜 반찬에 더욱 눈독을 들였다. 이 골목 횟집들도 대어와 대륙처럼 공짜 스키다시를 경쟁적으로 많이 냈다. 자연 일반 손님에게 이 식당들은 '먹을 게 푸짐한 횟집'으로 인식됐지만 모듬회 버전 대신 정통일식당처럼 1인분 시스템을 고수했다. 20여 개 업소가 밀집했던 80년대 후반엔 상가번영회도 있어 호객행위를 하지 않기로 자정결의도 했지만 갈수록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3년 전에 사라진다.


# 남구 대명동 복개천 번개어시장 회골목

대구문화예술회관 옆 성당못에서 서부정류장쪽으로 달리다 보면 왼편에 대형 회타운이 보인다. 여기가 속칭 남구 대명10동 '복개천 번개어시장 회골목'. 전성기엔 40개 업소가 모여있었다. 이들이 KBS 골목의 붐을 남구 쪽으로 잇게 된다.

이 골목 형성에 원인제공을 한 건 서부정류장. 오전 8시쯤 횟감용 선어를 팔기 위해 마산, 창원 등 경남 바닷가 출신의 '할머니 부대'가 서부정류장 옆에 무턱대고 진을 쳤다. 이들은 거의 오후 2시쯤 고기를 다 팔고 시외버스로 귀가했다. 팔린 어종은 주로 자연산 도다리(그때는 양식 광어보다 자연산 도다리가 더 쌌다), 오징어, 문어, 가오리, 아나고 등이었다. 예전부터 서부정류장은 고령은 물론 합천, 창녕 등 낙동강 경남권  
 
 
 
오징어 
 
 
 
 
86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즉결재판소 맞은편에서 문을 연 남지원조는 현재 숯불갈비집으로 변해 있다.  
 
강촌에서 잡힌 민물고기를 파는 좌판상 할머니들이 마치 양키시장 앞 달러 환전상 아줌마처럼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의 텃세는 무척 세, 정류장 측과 공생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경남 해안권 어류도 이 상권에 '무임승차'한 셈. 급기야 정류장 측이 난색을 표명하게 되고, 결국 경남권 할머니부대들은 판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가장 좋은 곳은 정류장 북측에 있는 대명천 언저리. 88서울올림픽 직후만 해도 대명천은 복개가 되지 않은 일반 주택가였다. 그런데 93년쯤 복개천이 완공되자 수산물 도매상인들까지 대거 이곳으로 몰려든다. 하루아침에 '번개 어류 도매시장'으로 둔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역 횟집 주인들은 거의 포항 죽도시장에서 생선을 구해왔는데 서부권에 이런 대규모 활어시장이 생기자 횟집 주인들이 멀리갈 필요없이 여기서 생선을 구입해 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처음 문을 연 횟집은 남도(현재 남경수산), 그 다음 황제, 뒤를 이어 사천만, 충무 극동, 황장군, 만복, 대명, 두류, 포항, 부산, 마산, 뱃머리, 금강산, 화진, 삼천포 등이 줄을 이었다. 여기선 특히 다른 횟집과 달리 오징어와 아나고가 잘 팔렸다. 그러다가 96년쯤 양식 광어가 나오면서부터 차츰 광어와 우럭이 인기 어종이 된다.

요즘 매일 오전에 11t 대형 활어차가 4대 정도 들어온다. 대당 2천500마리의 오징어가 들어간다. 아나고는 5t 활어차에서 1t 차로 나눠진 뒤 시내 횟집으로 분산된다. 남경과 해인 수산은 충무 등지의 가두리 양식장과 단독 계약을 맺고 이곳은 물론 시내 곳곳의 횟집 주인들에게도 생선을 팔았다. 초창기 오징어와 아나고 1인분은 5천원.

#대명동 즉결재판소 앞 향어회골목

85~86년쯤 남구 대명동 즉결재판소 맞은편 거리에 형성된 향어회 타운도 그걸 암시한다. 대구에 대규모 민물고기 회 시장이 형성된 이유는 뭘까. 그 단초 구실을 한 건 79년 경남 창녕에 들어선 화제의 매머드 레저타운형 온천인 부곡하와이. 구마고속도로를 통해 상당수 지역민이 그곳으로 놀러갔다. 그때만 해도 부곡하와이 갔다 온 게 자랑거리였다. 당시엔 이렇다 할 만한 레포츠 시설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부곡에 놀러온 지역민들은 멀리 온김에 낙동강과 남강이 합수되는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남지 민물회 타운에 떼로 몰려갔다. 그들은 거기서 먹은 향어(이스라엘 잉어)회 맛을 잊지 못한다. 대구사람이 향어회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즉결재판소 맞은편에 86년쯤 향어회 전문 남지원조(사장 권혁춘)가 생겨난다. 예상과는 달리 1년간은 고전했지만 2년째 드는 해 향어회 선풍이 일어난다.

정부는 73년 국민의 먹거리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에 영양보충을 위해 이스라엘 농무성을 통해 치어 1천여 마리를 들여 온다. 그 후 실험양식에 성공해 78년부터 안동댐·소양강댐 등 전국 대형 호수에서 대대적인 양식이 시작된다. 80년대 초반~90년대 후반 내수면 양식업의 대상으로 향어가 각광을 받는다. 이 과정에 낙동강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고령 등지에선 송어횟집이 들어선다. 민물 매운탕집도 향어특수에 자극받아 너도나도 향어·송어회 메뉴를 추가한다. 바다회가 품귀현상을 일으켜 상대적으로 향어가 어필된 측면도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88서울올림픽 직후엔 무려 40여개 업소의 향어집이 이 거리에 형성된다. 하지만 이 거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90년초 형성된 복개천 번개어시장 때문에 점차 하향곡선을 그린다. 남지원조도 2002년 숯불갈비집으로 바뀌었고, 88년에 문을 연 창녕식당은 2004년에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홍매식당도 결국 버티다 못해 지난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창녕 남지에는 아직도 향어회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할매, 등나무, 창녕 등 10군데가 넘는 향어회 전문점이 영업 중이다.
 

 

Posted by 비회원
하단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