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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국내외 여행정보 2008.11.03 18:28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영어 명칭 Hiroshima Peace Memorial (Genbaku Dome)
프랑스어 명칭 Mémorial de la paix d'Hiroshima (Dôme de Genbaku)
등록 구분 문화유산
등록 연도 1996년


원폭 돔(일본어: 原爆ドーム)은 본래 1915년 건설된 히로시마 시의 상업전시관으로, 1945년 8월 6일 제2차 세계 대전중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피해로 반파되고 남아있는 전쟁유적 중 하나이며, 1996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원폭 돔 위치

주소는 히로시마 현 히로시마 시 나카 구 오테 정 1정목 10이다. 서쪽에는 원자폭탄투하의 목표였다는 아이오이 다리가 놓여있다. 남쪽으로는 모토야스 강에 인접해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이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는 히로시마 시민구장이 인접해있다. 동쪽으로 약 200m 쯤 떨어진 곳에 폭심지인 시마 병원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시내 노선전철을 타고 원폭 돔앞 역에서 내리면 되고, 버스인 경우, 시민구장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원폭 돔 연혁

준공에서 전시까지

히로시마 현 상품진열소 (1921 ~ 33년경)현재 원폭 돔의 명칭으로 알려진 폐건물은 원래 지상 3층, 지하 1층의 벽돌로 지어졌으며, 건물 중앙에는 돔 지붕을 둔 지상 25m 높이의 건물이다. 1915년 4월 5일 준공하여 같은 해 8월 5일 히로시마 현 물산진열관으로 개관하였다. 건물은 체코인 건축가 얀 렛트르가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빈 분리파 풍으로 세부 장식을 했다. 1919년 개최된 독일 작품 전시회에서는 제과업자 캄 유하임[1] 이 일본에서 처음 바움쿠헨을 제조판매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후 1921년 히로시마 현 상품진열소로 되었고, 같은 해에는 제4회 전국 과자 대박람회의 회장으로 사용되었다. 1933년 히로시마 현 산업장려관으로 개칭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활발히 미술전을 개최하여 히로시마에 있어 미술 보급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1944년 이후, 산업장려관의 업무는 중지되었고, 내무성 주고쿠 시코쿠 토목사무소, 히로시마 현 지방 목재주식회사, 일본 목재 히로시마 지사등, 행정 기관 및 통제조합 사무소로 사용되었다.

피폭시 상황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이었고, 투하는 15분 이후 16분에 폭발했다고도 전해진다. 원폭 돔 남동쪽 상공 약 600m 지점에서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작렬했다.

원폭 작렬후, 건물은 0.2초 동안 열선에 둘려싸였고, 0.8초후 충격파에 따른 폭풍을 맞이하였다. 그로부터 1초도 안되어 순식간에 붕괴했다고 사료된다. 3층 건물의 본체부분은 대부분 전파되었지만, 중앙의 돔부분은 전파를 면했고, 외벽을 중심으로 건물일부가 잔존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충격파를 받은 방향이 대부분 건물과 일직선이었기 때문에 충격을 덜 받았다.[2]
건물에 창이 많았기 때문에 후폭풍의 위력이 반감되었다.
본체부분의 지붕은 충격에 의해 형태가 찌그러졌지만, 돔 부분의 지붕은 철보다도 녹는점이 낮은 동판이였고, 후폭풍이 도달하기 직전 열선에 녹았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덜 받았다.
건물내에 있던 직원등 약 30명은 열선과 폭풍으로 전원 즉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3] 또한 전날 밤 숙직을 했던 현지방 목제회사의 직원 4명중 한명은 피폭직전인 8시를 전후하여 자택으로 귀가하였기 때문에 숙직자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 후, 잠시 동안 창틀 등이 불타지 않고 남아있었지만, 곧 가연물에 불이 붙어 산업장려관은 전소하였고, 벽돌과 철골 등만 남게되었다.

원폭 돔의 보존

원폭 돔은 원자폭탄의 참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참한 전쟁을 떠오르게 한다며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존폐의 여부가 논의되어 왔었다. 히로시마 시는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원폭 돔의 보존에는 소극적이였다. 그러나, 1960년 평화운동가 가와모토 이치로를 중심으로 원폭 돔의 보존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주동자인 가와모토 이치로는 피폭 휴유증의 일종인 급성백혈병으로 죽은 여고생의 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1966년 히로시마 시의회가 영구보존을 결의하였고, 그 후 풍화을 막기위해 정기적으로 보수공사를 하게되었다. 199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더욱이 다음해인 1996년 12월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의 등록이 결정되었다. 최근에는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 낙서를 하는 등 문제가 되고 있다.

또, 2004년 이후, 원폭 돔의 보존방침을 검토하기 위해 《평화기념시설 유지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박물관으로 이설하거나, 지붕을 단다거나 하는 방법 등이 의논 되었지만, 2006년에 앞으로도 원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방침으로 정해졌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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