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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카카두 국립공원~다윈

캐서린~카카두 국립공원~다윈 국내외 여행정보 2008.10.14 16:10

캐서린~카카두 국립공원~다윈

 
 

 
 
마타랑카에서 캐서린까지는 105km. 캐서린이란 이름은 19세기 중반 호주 대륙을 종단했던 존 맥도웰 스튜어트의 후원자 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멜 버른에서 다윈에 이르는 장장 4천km의 간선 도로 스튜어트 하이웨이는 이 탐험가의 이름에서 유래됐음은 물론이다.
캐서린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아름다운 열대풍의 나무와 꽃이 집과 지붕사이에 머리를 내민 마을 풍경, 온화한 기후, 아웃백이 끝났음 을 알리는 잔디밭들, 친절한 주민들, 화려한 계곡과 강, 온천, 바비큐 요 리가 가능한 파크들….

작년 여행도중 이곳에서 1만2천원가량하는 조명등을 샀었는데, 다윈을 지나 텐트생활을 하는 동안 목부분이 똑 부러져 버렸다. 하행길에 숍에 들러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리로 제품교환을 요구했더니 숍 메니저가 군말없이 즉 석에서 흔쾌히 바꿔줬다. 소비자 과실이지만 기간이 1주일 밖에 안됐으니 바꾸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믿고 소중하게 대해준다는 느낌은 얼 마나 큰 행복을 주는가.

올해 숙소도 작년과 같은 ‘새디레인 카라반파크’다. 중심가에서 2km가량 떨어진 농장형태의 숙소다. 올해는 캐빈을 예약했으나 작년에 텐트를 치면 서 겪은 일을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팩을 땅에 박기위해 돌을 찾았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 넓은 공원에 돌이 없어, 타운까지 되돌아 나가면서 거리 곳곳을 뒤졌으나 결국 실패했던 것이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결국 팩 을 박지 못한 채 텐트뼈대만 세운채 잠을 청했다. 그만큼 잔디와 가로 정 비가 잘 돼있는 곳이다. 캐서린의 볼거리는 연간 3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캐서린 계곡 ‘닛밀룩국 립공원’이다. 보트 선착장입구 숲에는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박쥐가 나무 에 거꾸로 매달려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 이들은 황혼이 막 지날 때면 수 만마리가 떼지어 100Km가량 떨어진 카카두국립공원 방면으로 하늘을 뒤덮고 비행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계곡의 맑고 깊은 강은 카누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다. 계곡 중간 모래밭에 카누를 정박시키고는 옷을 입은 채로 물에 풍덩 뛰 어들어 더위를 식혔다. 좌우 푸른 협곡사이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은 그대로 영원히 뱃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계곡에 내려 부시워킹을 하는 관광루트도 개발돼있어 하루를 보내기에 그 만이다.

저녁시간에는 중심가 반대편 3km가량에 위치한 로우레블공원에서 바비큐요리 로 저녁을 해결하고, 마침 마을에서 벌어지는 원주민들의 춤과 노래공연행사 를 관람하면서 그들과의 합일을 시도해본다. 모닥불연기사이로 울려퍼지는 애 버리지널의 노랫소리와 반주, 춤이 단조롭기 그지없지만, 반복해 듣다보니 뭔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영혼의 감흥이 느껴진다. 그들의 아픈 역사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때론 말과 논리로 메시지를 한정시키는 것보다 소리와 춤으로 다의적 해석을 유도하는 것이 훨씬 많은 의미전달효과가 있음을 실 감한다.

캐서린에서 다윈까지의 거리는 스튜어트하이웨이를 따라 직선으로 가면 3 25km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이웨이 오른쪽 역삼각형 지형의 카카두국립공원을 둘러서 갈 경우 거리는 554km로 늘어난다. 그래도 에어즈 록, 닛밀룩국립 공원, 그레이트오션로드, 골드코스트와 더불어 호주 최대의 볼거리 중 하나 인 카카두국립공원 코스를 절대 양보할 수는 없다. 공원입구 붉은 벽돌 문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매표소를 거쳐 공원으로 난 찻길로 진입했다. 간혹 지나는 차량이 있을뿐 드넓은 산야에 인적은 찾 을 수 없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태초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송두리채 간직한 시원(始源)으로 표현하면 적합하다. 에어즈록일대와 마찬가지로 원주민 들의 권리를 인정받는 호주에서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원주민 소유주들 은 백인들과의 협상에서 카카두공원에 거주하면서, 종교의식을 거행할 권리, 사냥할 권리 등을 당당히 쟁취해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역삼각형의 오른쪽 꼭지점 ‘자비루’지점에서 동쪽으로 43k m 지점에 위치한 ‘우비르’는 2만∼6만년 전에 그려진 원주민들의 암각화가 큰 감흥을 준다. 1시간 정도의 트레킹코스 끝에 다다를 수 있는 산 정 상에서 내려다 보는 아득한원시림과 늪지대는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의 촬영장소 바로 그곳이다. 거대한 삼림과 계곡, 강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자연의 협주곡이라고 할까. 공원에 거대한 폭포와 깊고 맑은 계곡의 비경을 관람할 수 있는 헬리콥 터 관광산업이 잘 개발돼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일년내내 그칠 줄 모르 는 산불은 또다른 장관이다. 발화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대체로 인 위적인 원인에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오는 자연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 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거대한 삼림이 불타는 장면을 목격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홍수가 나면 도로 곳곳이 침수되는 지역인 만큼, 중간중간에 빌라봉으로 불리는 늪지대 숲도 진풍경을 더한다. 거대한 나무숲이 물 속에 잠긴 형태 여서 온갖 종류의 새와 수서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학습과 사진촬영에 좋은 곳이다.

공원 중간, 옐로 워터 입구에 마련된 ‘와라잔 애버리지널 문화센터’는 원주민들의 삶의 형태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잘 정리한 박물관 겸 화랑 겸 아트숍이다. 안에 적힌 한 작가의 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의 영혼은 땅으로부터 왔고, 죽음과 더불어 다시 그곳으로 돌 아간다. 당신의 아버지, 형제,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리고 당신이 죽었을 때 땅은 당신의 뼈가 되고 피가된다.”

테넌트 크릭에서 섭씨 25도 가량이던 기온은 캐서린에서 27도가량으로 올라간 뒤 다윈에 이르면 30도를 넘어선다. 우비르의 암각화를 탐사할 때 문득 살펴보니 우리 일행을 빼고는 오가며 만나는 사람 모두가 반팔, 반바 지 차림이다.

다윈에서 달라진 기후는 도심과 거리풍경에서 나타난다. 거리곳곳의 열대 식물과 특유의 화려한 꽃들, 대양, 요트, 반라의 젊은이들. 호주대륙의 북 단인 만큼 국제비행장으로 모여드는 관광객들의 다양한 국적은 다문화국가의 면모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준다. 다윈만 76개 이민족이 모여산다는 통계를 접한다. 도심에서 가장 인기있는 팝레스토랑은 ‘록키즈 드리프트’로 넓은 테라스 테이블에서 밤새 맥주잔을 기울이며 얘기꽃을 피우는 젊은이들의 열 기가 뜨겁다. 도심 한 가운데 키 큰 포섬나무에는 고양이처럼 생긴 포섬이 사는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포섬나무 뒤에 위 치한 자그마한 숍의 이름도 ‘포섬트리숍(Possum Tree Shop)’이다. 주인 그 레고리(36)는 “이 포섬나무는 1975년에 어디선가에서 옮겨온 것”이라며, “ 새끼를 합쳐 정확하게 32마리의 포섬이 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인구 8만명의 북부특별자치구 주도인 이곳 다윈은 아픈 상처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1942년 태평양전쟁의 와중에 일본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당해 시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1974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아침 불어닥친 사이클론 ‘트레이시’는 도시가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만 치 큰 상처를 입혔다. 유난히 도시곳곳에 전쟁기념관과 탑, 박물관 등이 산재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에 비약은 없는 법이고, 아프지 않고 성숙하는 사회가 또 어디 있 으랴.

 


종단취재여행을 끝내며


남태평양 서쪽 바다에 깔리는 황혼을 바라보며 종단취재를 접는다.


남태평양 바다 곳곳에 점점이 떠있는 요트가 바라다보이는 다윈 북서쪽 아트갤러리와 박물관 1층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이제 20일간에 걸 친 종단여행을 접었다. 목감기에 눈병까지 겹쳐 고생한 처는 다윈에 이르러 서야 안도하는 웃음을 보인다. 캐서린에서 발가락을 다친 딸아이도 몸을 추 스른다.

1년 새 두번에 걸쳐 종단여행을 끝냈지만 내가 과연 호주대륙을 ‘봤다 ’고 할 수 있을까?

여행기간 찍은 1천700장의 사진은 호주를 얼마나 담아 냈을까? 설사 대 륙의 길을 걸었다고는 해도 단연코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여행 말미에서야 엄습했다. 무엇보다 대륙의 원주인이라 할 애버리지널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한계에서 온 것이지만, 백인들과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을 접하면서 잔잔한 삶의 희망과 평화를 발견했다는 것이 그나마 성과라고나 할까. /변성석기자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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