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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사라지는 아랄해

우즈베키스탄의 사라지는 아랄해 국내외 여행정보 2008. 10. 14. 15:44

우즈베키스탄의 사라지는 아랄해
鹽湖 아랄해, 말라붙은 소금땅으로 

 
 
 

한때 중앙아시아 일대를 호령한 ‘티무르의 제국’으로 서방에까지 위용을 떨쳤던 실크로드의 나라 우즈베키스탄. 수십년에 걸친 옛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 개발과 성장의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는 우즈베크를 찾았다. 동부지방 끝쪽에 있는 수도 타슈켄트의 공항에 내려 유서깊은 오아시스 도시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를 지나 서쪽 끝 아랄해(海)까지 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멀리 파미르고원의 빙하에서 발원한 강 아무다리야가 수천 ㎞를 흘러 드넓은 사막과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황무지의 생명줄이 되어주고 있었다. 아무다리야가 끝나는 지점은 한때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던 거대한 내륙의 염호(鹽湖) 아랄해. 그러나 지금은 강줄기가 거의 끊겨 말라붙은 소금땅이 되어버린 곳이다.

◆ 사막의 배들 = 지난달말 아랄해에 면한 항구도시였던 우즈베크 서북부 무이낙 마을을 찾았다. 한때는 어선 수십척이 마을 앞까지 차오른 물가에 정박해 있고 러시아계, 카자흐계 어부들과 생선 가공공장 노동자들 6만명이 북적거렸다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서 한때 바다라 불렸던 호수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늘고 낡은 수도관들이 힘겹게 집과 집을 이어주고 있는 한적한 읍내에서 몇백m만 나가면 덤불이 무성한 사막이다. 염호였던 아랄해가 말라붙은 뒤 남은 것은 소금이 허옇게 말라붙은 잡초 투성이 너른 땅뿐이었다.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짠내 나는 사막에는 버려진 어선들만 남아 있었다. 녹슨 어선들이 모래언덕에서 석양을 배경삼아 서있는 모습은 ‘흉물스럽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한때는 어민들이었던 주민들 집 마당에도 낡은 낚싯배들이 어김없이 구석자리를 차지한 채 남아 있었다.

이곳이 더이상 어촌이 아니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기에, 어촌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낚싯배와 어망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이곳 주민들에겐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사라진 어촌 = 아랄해 주변은 한국인들과 같은 얼굴을 한 소수민족 카리칼팍스탄 자치공화국 지역이다. 무이낙에서 대대로 살아왔다는 샤디누프 알리(56)씨는 마당에 설치해 놓은 여름용 천막집 ‘카르위’에서 기자를 맞았다. 열 자녀와 손자손녀 열한명 대가족이 함께 사는 집은 그다지 빈한해 보이지는 않았다. 집 한쪽엔 위성 수신용 접시안테나가 있고 카르위 안에는 최신식 오디오세트를 갖춰 놓고 있었다. 겉보기에 우즈베크의 다른 농촌마을 집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아랄해 어부의 자부심을 안고 살아온 알리 집의 수입원은 물론, 삶의 구조는 과거와는 달랐다. 아랄해가 마르기 전 이곳 어획고는 옛소련 내륙지대 주민들의 생선 공급원이 돼주었고, 1930년대 기근 때에는 숱한 이들의 생명줄이 되었다고 했다. 알리 집도 고기잡이로 먹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 알리의 수입원은 아들들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해 보내주는 돈과 소련 시절부터 제도화돼 있는 얼마 안되는 액수의 연금이다.

◆계절 노동자가 된 어부의 아들들 = 알리의 아들 다섯 중 넷은 외국에 나가 일하고 있다. 무이낙 사람들은 대부분 알리네 아들들처럼 계절 노동자, 월경(越境) 노동자가 되어 1년중 10개월 이상을 외국에서 보낸다. 학교 건물도, 마을회관도 제법 번듯하게 구색을 갖추고 있는 무이낙 읍내에서는 젊은 남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행인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 한적한 풍경은 폐촌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마을 중심에 있는 문화회관 한켠에는 아랄해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전시실 벽에는 무이낙에 살던 타타르인 화가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 무이낙의 집들 바로 옆에는 출렁이는 바다와 항구를 메운 어선들이 있었다. 고기잡이의 달인들로 소련 정부의 포상을 받았던 ‘어업 영웅’들의 초상화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막이 되어버린 무이낙의 모습, 버려진 어선들을 그린 잿빛 캔버스화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실 구석의 어망과 낚싯배는 시골 박물관의 유물로 전락한 아랄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 주민은 “전에는 이곳에서는 매주 목요일을 ‘물고기의 날’로 정해 아랄해 고기를 기념했는데 1991년부터는 그 날도 없어졌다”며 아쉬워했다.

◆물줄기를 잘라낸 소련 = 아랄해의 수난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 우즈베크와 접경한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은 천연가스가 풍부하고 목화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었다. 소련은 ‘하얀 금(金)’으로 불리던 수출용 목화를 생산하고 천연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아랄해를 향해 흐르던 아무다리야의 강줄기를 돌려 거대한 운하를 만들었다. 투르크멘으로 향하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이 운하는 길이가 1300㎞에 이른다. 목화와 농작물을 키우기 위한 관개수로는 우즈베크 쪽 건조지대로도 빽빽하게 가지를 펴나갔다. 그 대가로 아랄해는 말라갔다.

1960년 면적 6만8000㎢, 수량 1100㎦였던 아랄해는 물이 줄면서 1987년 남북 2개의 호수로 갈렸다. 하지만 소련 정부는 사막 가운데 덩그러니 자리잡은 짠 호수 아랄해를 ‘자연의 실수’로 여겨, 말라붙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냉전 시대 소련에 환경문제는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소련은 남아랄해 가운데 있는 보즈로즈데니야 섬에 생물학무기 연구시설을 만들어 탄저균이 담긴 드럼통들을 매각하기도 했다.

알리는 “한때는 아랄해에 큰 항구가 세 곳이나 됐다”면서 “물이 마르기 전에는 물고기도 많고 종류도 많아 생선 가공공장들이 24시간 돌아갔었다”고 회상했다. 그랬던 아랄해가 1971~1992년 갑자기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무이낙 주민들은 연유를 몰랐다고 한다. “물은 줄어드는데 소련이 물을 딴 데로 돌리는 줄로는 상상도 못했다. 운하를 파내 다른 데로 물을 다 돌린 뒤에야 우린 알았다.” 우즈베크가 독립한 뒤에도 아랄해는 돌아오지 않았다. 1970년 아랄해로 유입되던 강물의 양은 1초당 3000∼5000㎥였지만 지금은 15㎥에 불과하다. 현지 공무원은 “아랄해가 완전히 마르지 않을 정도로만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호수면적 40년전의 ¼ 크기로 
아랄해 수난의 역사 - 우즈베크, 유전개발에만 눈독  

 

지금 2개로 갈라진 아랄해 중 북쪽 호수는 카자흐스탄에, 남쪽은 우즈베키스탄에 속해 있다. 우즈베크 쪽 남아랄해는 2003년 다시 수면이 낮아져 동서로 나뉘었다. 3개가 된 호수의 총 면적은 1만7160㎢로 40년 전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카자흐 정부는 2005년 다이크코카랄이라는 대규모 댐을 지어 북쪽에서 아랄해로 흘러오는 또다른 강 시르다리야의 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카자흐 정부의 노력으로 북아랄해쪽은 최근 수면이 올라가 수상생물이 늘고 있다. 카자흐의 항구도시 아랄스크에 접했던 호안선은 100㎞나 후퇴했다가 지금은 25㎞ 지점까지 되돌아왔다.

문제는 남아랄해. 여전히 면화에 외화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우즈베크 정부는 사실상 아랄해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다리야는 계속 관개수로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아랄해는 해안선이 수백㎞씩 아래로 내려갔다.

1994년 1월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아랄해 주변 5개국은 연간 예산의 1% 씩을 갹출해 아랄해 복구를 위한 기금, 일명 ‘아랄 펀드(Aral Fund)’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즈베크 정부는 말라가는 아랄해를 그대로 두고 유전, 가스전 개발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8월 우즈베크 정부는 국영 에너지회사 우즈베크네프테가즈, 러시아 루크오일, 한국 석유공사,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협정을 체결해 아랄해 에너지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남아랄해는 과거의 어촌도시들에서 호안선이 북쪽으로 200㎞ 이상 후퇴한 데다, 그나마 우즈베크 정부가 얼마 안 남은 호수 주변지역의 출입까지 통제하고 있어 ‘숨겨진 호수’가 돼버렸다.

2006년 세계은행이 아랄해 보전 계획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지만 대부분의 지원은 카자흐가 적극 추진하는 북아랄해 복원에 치중해 있다.
 

모래바람 중국까지… 인근지역 癌 급증
4. 우즈베키스탄(하)-호수를 건너는 소떼들

 

우즈베키스탄 북서쪽에 위치한 무이낙. 한때는 활기찬 어촌이었으나 아랄해가 말라 줄어들면서 사막 가운데 남겨진 마을이 된 무이낙 근처에는 작은 댐과 호수들이 있다. 아랄해로 흐르던 아무다리야 강의 물줄기를 막아 만든 저수지들이다. 말라들어가는 아랄해를 사실상 포기해버린 우즈베크 정부가 무이낙 어촌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배려’가 바로 이 저수지들이다.

◆ 호수를 건너는 소떼들 = 지난달말 무이낙을 방문, 덤불만 듬성듬성한 소금땅을 지나 댐으로 올라갔다. 원래 이곳은 아랄해 물이 넘실거렸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아랄해가 멀리 북쪽 카자흐스탄 국경 쪽으로 후퇴해간 탓에 바닥이 드러나버렸다. 그곳에 주민들이 사르바스 호수라고 부르는 저수지가 있었다. 오전 8시를 넘겨 해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어디선가 소떼가 나타났다. 소들은 줄지어 호수의 얕은 부분을 건너 멀리 펼쳐진 풀밭으로 향해갔다.

무이낙이 어촌으로서의 생명을 잃은 뒤 이곳 어민들의 일자리도 사라진 꼴이 됐다. 무이낙은 아랄해에 기대어 형성된 마을이었기 때문에, 아랄해의 고갈은 경제 기반이 사라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때 무이낙에 밀려들어왔던 외부 노동자들은 모두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가버렸고, 무이낙 사람들도 상당수 인근 대도시 누쿠스나 외국으로 향했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자식들이 외지로 나가 보내주는 돈과 소규모 농업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농사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물이 모자라는 데다 땅속 소금이 올라오는 염화(鹽化) 현상 때문에 농업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 유목민이 된 어부들 = 그래서 이곳 주민들 대부분은 농작물보다는 소를 키운다. 저수지에 펼쳐진 소들의 행렬은 주민들이 소떼를 끌고 건너편 목초지로 데려가는 장면이었다. 아침마다 한 집에서 여러 이웃들의 소들을 모아 저수지를 건너고, 저녁이 되면 몰고 돌아오는 것이 일과다.

그러나 왕년의 어부들은 아직도 바다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는 아무다리야의 유산인 저수지에서 낚시질을 하는 것이 큰 소일거리다. 호숫가에서 만난 주민 아나톨리(59)씨의 손에는 낚싯대와 작은 생선 몇 마리가 들려 있었다. 우즈베크 정부가 얼마 안 남은 아랄해 주변 출입을 봉쇄하기까지, 그리고 아랄해가 북쪽으로 200㎞ 이상 후퇴해버리기 전까지 그는 20년 가까이 아랄해에서 어선을 탔던 선원이었다. 지금은 연금수입으로만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새벽이 되면 사르바스 호수로 나와 낚시질을 한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집에서 먹거나 고양이 밥으로 주곤 한다. “나는 20년간 아랄해에서 배를 탔다. 나는 지금도 어부다.” 그의 터전이 눈앞에서 사라진 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아랄해에 묶여 있었다.

◆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변화 = 사막이 된 바다, 흐르지 못하는 강, 호수를 건너는 소떼들, 어부 아닌 어부들. 거대한 아랄해가 사라진 뒤 달라진 것은 이런 풍경들만이 아니다. 이곳의 지형과 함께 날씨도 달라졌다. 무이낙은 인간의 행위로 인한 자연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환경파괴가 어떤 식으로 기후 변화를 만들어내 사람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아랄해가 말라붙으면서 생겨난 거대한 소금땅에서는 황사 같은 먼지바람이 일어난다. 마른 땅은 국지적인 기후변화를 만들어내 겨울과 여름을 양극화시켰다. 그나마 남아있는 아랄해 물도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염분 농도가 짙어져 대류작용이 정체되면서 호수의 윗부분만 덥히고, 그 결과 과학자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증발량이 많아진 것. 이 속도라면 세 갈래로 갈라진 아랄해 중 남서쪽 부분은 15~20년 뒤에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사막화가 겹쳐 아랄해 생태계와 아무다리야 하류 식생도 파괴됐다.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들은 유독성분이 섞인 모래바람이 강해지면서 아랄해 인근 지역에 암과 호흡기 질병이 많아졌다는 조사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물에 염분이 많아지면서 위염과 담석증도 많이 생겼다. 아랄해 수량이 줄면서 염도가 높아지는 과정이 수십년간 지속됐던 데다가 주변 지역에서 비료를 비롯한 화학물질들이 아랄해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 모래바람이 중국까지 = 이뿐만 아니라 아랄해였던 지역 말라붙은 땅의 먼지와 소금은 강풍이 불면 15㎞ 높이까지 올라가며, 멀리 중국의 톈산(天山)과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까지 흙바람이 날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랄델타관리청의 자나베이 일랴소프 국장은 “정부는 사막화를 늦추기 위해 관목숲을 조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막지대를 흐르는 아무다리야 곳곳에 댐과 저수지를 만들고, 수자원의 리사이클링(재이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랄해 일대의 사막화와 염화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무이낙 가는 길에 지나쳐간 쿵그라트 마을에서는 곳곳에 소금이 지표면으로 올라와 하얗게 변색된 땅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 자랐다는 택시기사 막수트(40)씨는 “내가 어릴 적엔 강물이 흐르던 곳인데 다 말라붙었다”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주민들이 떠나거나 낙타를 키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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