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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날 폭포 곁에 앉아 - 요세미티 국립공원

버날 폭포 곁에 앉아 - 요세미티 국립공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 10. 14. 13:39

버날 폭포 곁에 앉아 - 요세미티 국립공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7월 16일 길을 떠난 지 여덟 번째 맞는 아침이었다. 3,197마일(mile)을 달려 왔다. 아직은 달려온 길 보다 달려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오전 11시 30분 우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을 향해 출발하였다. 지쳐가는 몸과는 달리 자동차의 시동 소리는 가벼웠다. 아름다운 타호 호수(Taho Lake)와 토파즈 호수(Topaz Lake)를 지난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행이란 새로운 길을 가며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워진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우리 삶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며 새로운 것들을 만난 후 새로워졌기 때문인지 새 날로 돌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삶은 여행이다. 요세미티로 가는 길도 이 길의 끝에서 품어 안게 될 요세미티도 모두 나의 삶이다.   


  이 길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곳에서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요세미티'는 이름부터 매력적이었다. '요세미티'는 'They are killing us.'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물론 'They'는 회색 곰이다. 등산객들이 나무에 걸어 놓은 음식물이나 자동차의 안에 놓아둔 음식물을 곰이 습격하였다는 등의 일은 요세미티에서는 흔한 일이다. '요세미티'라는 말 자체가 '회색 곰이 사람을 해치웠다' 는 의미의 인디언 말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하니 회색 곰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공원의 자랑은 당연히 그 빼어난 아름다움이다. 요세미티는 자연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숲에서 살아가고 있는 200종이 넘는 야생 조류와 75종에 이르는 많은 포유동물은 숲을 더욱 살아 있는 숲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그 뿐인가. 수 십 만 년에서 수 백 만 년 동안의 화재와 빙하에 의해 이루어진 하늘 높이 솟은 험준한 화강암 돔들 또한 이 산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요세미티 계곡 위로 완벽한 반달모양으로 우뚝 서있는 Half Dom, 4,000피트 높이의 El Captain 등과 같은 석상들이 그들이다.
 
  그 뿐인가. 해발 609미터에서 3,962미터에 이르는 다양한 표고의 차이로 산은 5개의 상이한 식물대를 품고 있어 침엽수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참나무 등의 경목과 관목 그리고 야생화를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다. 또한 요세미티는 아름다운 폭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612피트의 높이를 자랑하는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리본 폭포(Ribbon Fall), 높이는 317피트 밖에 되지 않지만 물이 많을 때는 폭이 100피트가 넘는 풍요한 모습을 자랑하는 버날 폭포(Vernal Fall), 그리고 이 국립공원의 상징이 된 1,430피트의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 등이 있다.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높이를 지니고 있는 폭포 중 5개가 이 산에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폭포를 많이 품고 키워온 산이니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말이다.


  달리는 일의 무료함에 지쳐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차창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할퀴듯 훑는다. 화씨 100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발 9,000피트였다. 지나는 이들은 지나는 이들대로 내버려둔 채 버펄로(Buffalo)들과 양 떼들이 한가롭다. 풀을 뜯는다. 하늘 가까운 이곳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이런 삶도 저런 삶도 모든 제 삶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을.
  왜 그렇게 제 삶을 몰아붙이기만 했을까.
 
  그렇게 차창 밖의 삶들로부터 위로를 받아가며 맞이한 저녁 우리는 요세미티에 도착하였다. 숙소를 예약해 놓지 못한 우리는 산허리를 끼고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Tioga Road를 따라 Yosemite Valley로 달렸다. 하늘 끝에 매달린 채 허공으로 난 길을 달리는 듯했다. 1시간 30분이나 달려갔지만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밤은 깊어갔다. 우리는 공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Arch Rock Entrance로 나가 Cedar Lodge로 향했다. 하지만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공사로 인해 길이 끊겼다는 안내판만 계속 나타났다. 깊은 밤 산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은근히 일어났다.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처럼 가도 가도 나올 것 같지 않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가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가 보다.
 
  그래서 삶에는 믿음이 필요한 모양이다. 신념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들 하는 모양이다. 우주와 자연을 만든 어떤 힘에 대한 믿음, 자연에 대한 믿음, 숲에 대한 믿음, 제 인생길과 삶에 대한 믿음 말이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신념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를 소멸시키는 믿음 말이다. 참으로 믿음만이 두려움을 소멸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믿음의 끝에 Cedar Lodge는 있었다. 겨우 숙소로 찾아 든 우리는 지친 몸을 뉘였다. 산은 깊고 물은 맑은데 사람만 분주한 하루였다. 숲은 잠들어 깊고 그윽하게 제 향기 전해오는데 사람만 깨어 시끄러운 밤이었다.
  시끄러운 이들은 그들대로 내버려둔 채 산을 따라 깊이 잠들었다.
 
  요세미티의 첫 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요세미티에서 보낼 수 있는 온전한 하루였다. 우리는 버날 폭포(Vernal Fall)와 Mirr Lake Trail과 Yosemite Lower Fall Trail을 걷기로 하였다.   


  버날 폭포로 향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웅성거림은 깊은 산에 묻히고 폭포 소리에 묻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온전히 홀로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Vernal Fall Bridge를 지나 700개의 돌계단을 오른다. 폭포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하나하나 돌계단을 오른다. 중간쯤 올랐을까. 물안개가 봄 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피어오르고 폭포수는 바람에 제 몸 흩날리며 비 오듯 쏟아져 내린다. 순식간에 모자도 옷도 모두 젖는다. 온 몸이 젖었다. 행여 여권이 젖을세라 뒷주머니에 단단하게 여며 넣고 배낭을 추스른다. 바위틈에서 기어 나온 듯 지렁이 한 마리가 보인다. 탈색된 흰 지렁이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아온 때문이리라.
 
  수량이 많아진 폭포가 쏟아내는 물줄기가 바위틈과 땅 속으로 스며들자 숨을 쉬기 위해 제 집 밖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지렁이를 바라본다. 지렁이조차도 자연에 순응하여 제 몸의 색을 버리고 몸을 변화시키는데 사람만이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 뜻과 욕심에 맞추려한다. 슬픈 오만이다. 자신의 삶 뿐 아니라 자연까지도 파괴하게 될 슬프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무지이다. 피조물 중 오직 인간만이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에게 희망이 있을까.
 
  이런 생각에 젖어 들며 폭포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그 때까지의 말과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아무런 말도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폭포 아래 절벽 기슭으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일어나는 물안개 위로 일곱 빛깔의 다리들이 가슴 시리도록 곱게 층층이 놓여 있었다. 다리들은 하나하나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아름다움이 있어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가.
 
  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가슴을 부여안고 돌계단을 내려 왔다. 우리는 폭포가 만들어 놓은 계곡의 아름다움 속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주먹밥, 김치, 당근, 양배추 등이었다.
 
  '과아~ 과아~'
 
  어치가 운다. 멀리 떠나온 땅에서 어치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하기야 참나무 가득한 숲이니 어찌 어치가 없겠는가. 어치가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숲의 낯선 이는 어치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 듯 내 앞으로 다가 온 어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등의 하늘 색 무늬가 아름답다. 낯선 이를 금방 반기는 마음이 된 듯 내 앞에서 발을 모아 깡충깡충 뛰어 다니더니 이내 제 갈 길로 갔다.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도 어치처럼 제 갈 길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길을 나섰다.  


  바람이 분다. 계곡이 깊으니 바람도 깊다.
  하늘이 맑은 여름날이었다.

  
  말없이 흐르는 Mercedes 강을 바라본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수면에서 부서진다. 햇살의 정령들이 수면 위에 머물며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춤을 춘다. 이른 아침 햇살은 뜨겁다. 몸은 땀으로 젖고 마음은 눈부시게 흐르는 강물의 아름다움에 젖는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강줄기 내 마음으로 흐르며 지나 온 삶의 고단함을 씻어준다. 강물은 빛으로 출렁이며 깊게 흐른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여 부르는 듯도 하고 함께 가자며 무심히 나를 바라보는 듯도 하다.
 
  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 볼까.
 
  나는 생애 처음 래프팅(Rafting)에 도전하였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의 뒷덜미를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난 두려움이 부여잡고 있었지만 나는 Mercedes강에 이끌려 배를 탔다. 거센 물살과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노를 저었다. 강물을 들여 보았다. 그 속에서 요세미티가 함께 흐르고 있었다. 어제 만났던 신비로운 Vernal Fall도 아름다운 Mirror Lake도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고 먼 허공에서부터 우르릉 거리며 쏟아져 내리던 장엄한 Yosemite Fall도 그대로 흘러들어 함께 흐르고 있었다. 강은 흘러드는 모든 것을 모두 품어 안은 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강물을 Half Dome은 멀리서 바라보고 그 곁의 화강암 돔들 위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바람을 맞으며 외로웠다.
    
  그렇게 함께 흐르고 흐르다 나는 문득 잃어버린 강이 그리워졌다. 요세미티가 Mercedes River와 함께 품고 있었던 Tuolumne River이다. 지금은 매몰되어 사라진 강이다. 요세미티를 자연 그대로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존 뮈러(John Muir)와 많은 활동가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강행된 Hetch Hetchy의 댐 공사로 Tuolumne River은 매몰되어 사라졌다.
 
  그 강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찾아 온 이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없애고 잃어버린 후에야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까.
 
  강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끊임없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을 잃어가고 있다. 산소를 생산하는 나무와 숲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숲을 없애고 있다. 강과 숲만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어찌 그런 것들뿐이랴.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이 어찌 그것들뿐이랴.
 
  사랑도 삶도 잃어가고 있다.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랑 없는 삶을 택하기도 하고 제 삶을 구원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세상이 정해 놓은 신념과 목표에 마음을 빼앗겨
 
  제 삶을 잃어버리곤 하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인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 삶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있을까.
  마음으로 젖어드는 생각들을 견딜 수 없어 나는 Mercedes River를 떠났다.
  흘린 눈물이 마음 깊은 곳으로 젖어들까 두려워 나는 강 곁을 떠났다.   


  마리포사(Mariposa) 지역으로 향했다. 748,542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공원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용되었다. 마리포사에 다가가자 오랜 동안 잊고 지냈던 세콰이어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었다.
 
  세콰이어(Sequoia) 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잃어버린 또 다른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칠팔십년을 사는 인간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빙하기라는 시대를 지나 온 나무들이 그 시대의 흔적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있었다는 나무들이 거기 그렇게 말없이 있어 그들의 삶을 증거하고 있었다. 다 자라면 키가 120m에 이르고 밑둥치가 8.5m에 이른다는 거대한 나무들이다. 수령이 2,000년에서 3,000년 된 나무들이었다. 나무 하나에서 나오는 목재만으로도 수 십 채의 목조 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나무들이다.
   


  그 거대한 나무들이 장대한 모습을 드러낸 채 하늘을 찌를 듯 서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쓰러져 있는 나무들의 곁에 선 후에야 그 나무들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부러져 있는 작은 나무줄기 하나만으로도 작은 오두막 한 채는 지을 듯하였다. 굵기만 해도 내 몸통의 서너 배는 돼 보였다. 그 장대함과 원시적인 모습으로 인해 마치 세월을 알 수 없고 시간을 느낄 수 없는 고대의 원시림에 들어온 듯하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 천 년 세월이 거기 머물러 있는 듯하였다. 감히 느낄 수 없는 수 만 년 세월의 무게가 온 몸으로 전해졌다. 그 나무들의 말이 들려 왔다.
 
  삶이란 한 순간이니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삶이란 찰나에 지나는 것이니 다른 누구의 삶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가세요. 그 삶으로부터 수많은 삶들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숲은 언제나 숲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아니 숲에 사는 생명들만이 아니라 이 땅에 몸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봄이면 피었다 지는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에서부터 수 백 년 수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의 참나무나 주목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몸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의 색이 노란 것도, 진달래나 철쭉의 색이 붉은 것도, 개망초꽃이나 조팝나무의 색이 하얀 것도 모두 제 삶의 흔적이고 이야기들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고 할지라도 껍질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 결 곱게 가지런히 옷을 입은 나무도 있지만 결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껍질이 갈라지고 터진 나무도 있다. 모두 제 삶의 흔적이고 이야기들이다. 나무와 꽃만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기울여 들으면 바람이 전하는 제 삶의 이야기도 숲이 전하는 제 삶의 이야기도 모두 들을 수 있다.
 
  모두들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제 삶의 말을 하고 있다.
 
  자연에서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다. 아니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의 흔적을 지니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다.
 
  그 슬픈 노력의 결과 때문일까. 사람들은 제 마음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제 삶의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생각의 말만 하게 되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이 가르쳐준 생각의 말들을 마치 제 삶의 말인 것처럼 하며 살아간다. 세상이 마음에 넣어준 생각의 말들을 마치 제 삶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며 살아간다. 슬픈 일이다.
 
  깊은 슬픔으로 인해 눈물이 마른다.

  세콰이어 나무들이 말없이 둘러서 나를 보고 그저 웃는 듯하다. 잃어버린 것은 수 만 년 흘러온 Mercedes강이나 Tuolumne강이 아니었다. 수 만 년 그 자리를 지켜온 세콰이어 나무들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의 삶이었다.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의 삶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삶이 세콰이어 나무들 사이에 서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포시 웃는 듯도 하였고 슬픈 듯 눈물 가득 서린 듯도 하였다. 나는 눈물 가득 서린 듯 한 그 눈을 바라보며 반가움에 눈물 흘렸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고 싶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라만 보았다.
 
  하늘 높이 솟은 세콰이어 나무들 사이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숲만큼이나 깊어진 오후였다. 
   
 
 
  최창남/작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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