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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국내외 여행정보 2008. 10. 14. 13:35

붉은 빛 드리운 숲 -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는 세콰이어(Sequoia)와 킹스캐년(Kings Canyon) 국립공원(National Park)에 들어섰다. 어제 오후 요세미티에 내리던 부슬비가 밤사이 그치더니 아침이 되자 다시 내렸다. 비는 안개처럼 퍼져나가며 깊은 세콰이어 숲을 더욱 깊고 신비하게 감쌌다. 주위를 둘러보자 손에 잡힐 듯 휘트니 산(Mt. Whitney)이 눈에 들어왔다. 14,495피트를 자랑하는 알래스카 남쪽의 미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세콰이어 국립공원으로 들어오는 길 내내 가까이 손에 잡힐 것만 같고 품에 안길 것만 같던 산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곁에 있는 듯 가까이 느껴지던 산이다. 그 산줄기가 품은 숲으로 들어왔다. 들어서는 길목 길목마다 거대한 세콰이어 나무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마중하고 있었다.
 
  지난 밤 설친 잠으로 인해 무거운 피로감이 끈끈하게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겨우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를 얻기 위해 다시 공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소나무 숲'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Pinehurst Lodge였다. 깊고 깊은 숲 속에 자리한 이 Lodge는 단 하나의 오두막(Cabin)만을 운영하고 있었음에도 시설이 좋지 않았다. 현관문의 시건 장치도 건드리기만 해도 빠질 것 같은 문고리 하나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우리는 주인도 제 집으로 돌아가 텅 빈 숲 속의 오두막에 들었다. 밤이 깊어가자 은근한 두려움이 찾아 들었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마음이 쓰이고 때 아니게 떨어지는 솔방울 소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뿐인가. 초저녁부터 Lodge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인부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괜히 걱정스러웠다. 낯선 객지에서의 걱정들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이런 저런 걱정과 근심으로 조심스럽게 잠든 밤의 흔적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낯선 경험이었다. 여행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그런 낯설고 새로운 경험은 아침에도 찾아 왔다. 공원의 주차장에서 나와 마주친 한 백인이 'Great! Great!'하며 외쳤다. 코밑과 턱에 정성들여 수염을 기른 백인이었다. 귀 밑까지 거의 얼굴 전체를 무성하게 덮고 있는 내 수염이 부러웠던 것일까. 그는 초면인 내 얼굴을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두 손을 내 얼굴 가까이에 댄 채 'Great!'를 연발하였다. 수염을 기르는 이들은 수염만 보이는 걸까. 'Thank You!' 하고 대답하며 실없는 웃음을 웃었다. 거울 앞에 서 있던 아침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텁수룩하게 자라난 내 수염을 바라보았다. 이틀만 깎지 않아도 곤두선 수염이 얼굴의 반을 덮는 내 얼굴은 이미 수염으로 가득 찼다. 모자를 쓰면 수염만 보였다. 수염이 말하고 웃으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만해도 거칠고 꼿꼿하여 오므린 제 입술을 찌르던 수염이 열이틀이 지나자 부드럽게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대견했다. 부드럽게 누운 수염은 대견했으나 수염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처럼 꼿꼿하던 수염도 열이틀이 안 되어 부드러워지는데 50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여전히 부드럽지 못하였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마음공부가 부족하여 작은 일에도 여전히 짜증을 잘 내었다. 마음이 불편하면 그것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드러내어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 뿐인가.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고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면 괜히 심술부리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 부드럽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수염도 아는 지혜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심 부끄러운 마음에 수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흰 수염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턱 밑에도 코 밑에도 귀 밑에도 흰 수염이 나와 있었다. 나는 의식하지 못한 세월을 수염은 홀로 앉아 세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리에만 서리가 내리는 줄 알았더니 얼굴 전체에 내려앉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들이다. 나의 지나온 삶을 말하고 있는 흔적들이다. 하기야 길가에 구르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돌멩이도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수염이 말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세콰이어 나무 가득한 숲으로 들어갔다. 마리포사의 나무들보다 더욱 장대하게 자란 세콰이어 나무들이 줄지어 앞을 막아선다. General Grant Tree Trail을 지나 Big Stump Trail에 있는 Giant Forest로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부피가 큰 나무로 알려져 있는 Gerneral Sherman Tree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곧추 세우고 바라보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끝이 천국처럼 아스라하기만 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정말 하늘에 닿을 것만 같았다. 길 곁으로 나있던 Congress Trail로 들어서자 공원 내에서도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앞에 단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General Lee Tree, President Tree, The Senate Tree, The House Group Tree 이다. 모두 수 천 년을 살아온 나무들이다. 어떻게 이렇듯 오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탄닌(Tannin) 성분과 두꺼운 껍질 때문이었다. 나무가 품고 있는 풍부한 탄닌 성분은 나무들을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게 지켜주었고 바깥 껍질의 두께만 2피트이고 속껍질의 두께가 1피트인 두꺼운 나무의 껍질은 불로부터 나무를 지켜 주었다.
    
  그렇겠지. 그래서 이렇게 장대한 나무로 자랄 수 있었겠지.
 
  나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숲을 둘러보았다. 하늘에 매달린 듯 높이 솟은 수많은 나무들 모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온 숲을 감싸고 있었다.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햇살도 붉었다. 붉은 빛이 서기처럼 온 숲을 감싼 채 피어오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하늘에 닿아 있는 나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 누워 있는 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장대하나 뿌리가 깊지 못한 세콰이어 나무들이 거센 바람에 쓰러진 것이다. 폭우로 인해 땅이 들뜨자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진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본다. 어루만진다. 탄닌 성분으로 인해 숲의 청소부인 박테리아나 버섯의 공격을 받지 않은 나무들의 모습은 쓰러져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그 지나친 당당함을 바라보며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졌다. 장대하나 드리워지는 맛이 없는 세콰이어 나무의 슬픈 운명을 보는 듯했다. 그들의 슬픔이 손에 만져지는 듯했다. 죽은 것들은 죽은 것들대로 숲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데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의 슬픔을 돌아가는 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죽은 나무들은 저마다 제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을 안은 채 숲 여기저기에 누워 있다.
    
  숲에 어리던 그 붉은 빛은 이 슬픔이 아니었을까.
  이 슬픔들이 그리도 붉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에 젖어 발걸음 떼고 있는 내 눈에 작고 여린 잎 하나가 들어온다. 어찌된 일인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완전히 분해되어져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그 붉은 세콰이어 나무의 잔해에서 기적같이 파란 여린 잎 한 쌍 마주보며 나란히 자라있었다. 붉게 빛나던 햇살이 금빛으로 바뀌며 여린 잎을 비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내 가슴은 터질듯 뛰고 맥박은 무자맥질하는 물고기처럼 펄떡였다.
    
  나는 내 가슴과 맥박을 부여잡고 여린 잎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붉기만 하던 숲이 푸르게 변하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여린 잎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숲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창남/작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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