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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1 (1,2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1 (1,2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2:47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 1 (1,2일)
 



2008년 2월 16일 오전 9시.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다. 울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시까지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어제가 졸업식이었는데 졸업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벌써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 안은 정말 널찍했다. 자리도 한 40석 정도 되어보였는데 8명 정도밖에 안 탄 것 같았다. 이래가지고 장사가 되겠나.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중간에 천안 근처에 있는 금강휴게소에 들렀는데, 김밥 몇 개가 3000원이었다. 망할 놈들, 충무김밥을 3000원에 팔다니, 충무공에 대한 모욕이다. 울산대 후문 분식집에선 한 줄에 500원인데. 그래서 김밥을 사 먹진 않고 2500원짜리 스태프 핫도그를 사먹었다. 배가 고팠지만 값이 값인지라 조금만 먹고 나왔다.

오후 3시 30분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이 세계적인 수준의 공항이란 건 말로만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보니 규모가 엄청났다. 그리고 외국인도 많았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러 식당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는데, 젠장, 이놈의 공항은 오지게도 크다. 무료 카트를 이용했지만 걷는 게 힘들었다. 일단 로밍폰을 2대 임대했다. 내가 쉽게 행방불명이 되는 편이라 비상용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2대를 빌렸는데, 하루 임대료가 2000원이고 1분 통화료가 약 2400원이다. 이런. 그런데 여기서 느낀 점은 서울 사람들의 말투는 경상도 사람들에게 꽤나 상냥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귀가 간지러웠다. 서울 사람들에게 경상도 말투는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던데. 어쨌건 힘들게 여행사 만남 장소인 L과 M 카운터 사이에 도착했다. (한 2시간 동안 공항에서 시간 때우다가 도착했다) 우리 가족(나, 동생, 엄마)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될 사람들이 공항에 앉아있었다. ‘아, 이제 여행이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곧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짐을 부치고 표를 받고 출국 수속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젠장할! 시계를 하나도 안 들고 온 것이었다! 무슨 옷 준비한다고 시간 다 써놓고 정작 중요한 시계를 안 들고 오다니. 그래서 면세점에서 스워치 시계를 50유로 정도 주고 샀다. (무한도전을 못 봤다)

그렇게 해서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전부터 ‘비행기에 몸을 싣다’는 표현을 해보고 싶었다) 비행기 편명이 CX419였다. Cathay Pacific은 처음 이용해본다. (사실 비행기는 중국동방항공을 타본 게 전부지만) 비행기를 타러 가는 동안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망할, 이놈의 좌석은 왜 이렇게 좁은거야?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뭘 움직일 수가 없다.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좌석 앞에 승객들 지루하지 말라고 붙여놓은 화면은 고장이란다. 아이고, 분통터져라. 이렇게 4시간을 이동해서 홍콩에 도착한 후 또 30분 정도를 기다려서 로마행 비행기 CX293편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난 왜 검색대에서 항상 걸리는걸까? 인천에서도 수상한 사람처럼 날 들여다보더니, 홍콩에서도 난리다. 비행기를 타서는 수면제를 먹고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한 10시간 정도 후에 깨어났다.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정도였는데, 그 동안 좌석 앞에 있는, 홍콩 갈 때는 고장 나서 나오지 않던 그 모니터를 보면서 놀았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많았는데, 재밌었던 것들은 Friends, Bee Movie, Rush Hour 3, The Simpsons, Fifa Futbol Mundial(영화 Hands of the God의 프리스타일러들이 나왔다!), The Truman Show 정도가 되겠다. Simpsons는 한 3번정도 봤다. 알고 보니 똑같은걸 반복해서 틀어주고 있었다. 대사를 대충 외우겠다. 그렇게 14시간을 공중에서 보낸 후 로마 퓨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이쯤에서 우리 가족과 동행한 18명의 일행들을 소개해야겠다. 먼저, 우리를 인솔한 이혜경 가이드 분. 처음에 화려한 패션을 보고 약간 놀랐다. 처음엔 서울 사람들의 말투를 잘 몰랐을 때는 조금 불친절한 줄 알았다. 그리고 어린 여자 애들 2명과 함께 오신 선생님 부부. 통칭 예원이네라고 불렀는데, 부부 중 한 분은 중학교 컴퓨터 선생님이시고 한 분은 고등학교 보건 선생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호 형님네 가족. 종호 형님께서는 작년 12월에 갓 군대를 졸업하신 형님이시다. 나와는 밀라노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말을 텄다. 젠장할, 근데 넘 웃기다! 이 형과 논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종호 형님께선 어머니와 함께 오셨다. 그리고 정아 누님네가 있다. 고려대 전자공학과에 재수를 해서 들어갔다고 한다. 정아 누님네도 모녀 2명이 오셨다. 정아 누님네 어머니께서는 아드님께서 축구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나한테 내가 여행중에 산 축구용품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난 축구에 대한 대화는 언제나 대 환영이다! 비나 누님네. ‘비나’가 이름이었다. 그 누님께선 서울교대에 들어가셨는데, 재수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누님은 외할머니 한 분을 데리고 오셨는데, 진주에서 오셨다고 한다. 이 가족만이 우리와 함께 유일한 경상도 가족이었다. 우리가 왕할머니라고 불렀다. 활기가 넘치시는 분이셨다. 나중에 집에 올 때 비행기에서 내 팔걸이에 발을 떡하니 올려놓고 계셨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에는 수재가 많았나보다. 수재 특집인가, 고려대 출신이 한 명 더 있는 것이다! 슬기 누님은 고려대 3학년생인데 디자인 전공이라고 한다. 이쁘고 똑똑하시니 남자들이 줄을 서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누님께선 이모와 어머니를 동반하셨는데, 내가 볼 때 제일 가족관계를 짐작하기 힘든 가족이었다. 처음엔 자매인줄 알았다. 조금 지나서는 엄마 1 딸 2이라고 생각했고 자기소개를 듣고 나서야 엄마 1 이모 1 딸 1 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 성씨가 제각각인 것 때문에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가족의 이모님께서 내가 볼 때는 장난 아닌 동안이다. 눈으로 보면 20대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잘 모르겠다. 이모라고 하시니 30대 어느 선에서 왔다 갔다 하지 않나 싶다. 퇴사기념으로 오셨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에 나 다음으로 신기한 분이 아닐는지. 그리고 마지막 어머니 되시는 분. 젊으신 것 같다. 고교생 아들 둔 우리 엄마도 어리지만 그 분도 만만찮게 젊으신 것 같았다. 가게를 하신다는데, 나 같은 독특한 놈을 만나본 경험이 있으신 것 같았다. 그리고 성진이네가 있다. 성진이는 이제 중3인데, 나보다 1살 어리다. 그런데 이 놈은 당췌 말이 없다. 바티칸에서 말 걸기 시도하다가 어색해서 X 됐다. 성진이네 아버지께서는 정말 나의 이상형이라고 할만하다. 여성 이상형이 아닌 남성 이상형. 특히 후덕한 느낌을 주는 말투와 그 자태는 정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덕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상이셨다. 신문을 통해 관상공부를 하다 보니 얼굴만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대충 알 수 있는데, 실제로도 무척 훌륭하신 분이셨다. 마지막으로 신혼부부가 있다. 이 부부께선 사실 노부부신데 우리가 신혼부부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따로 놓은 호텔 침대를 붙여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별명이 지어졌나보다. 그런데 신혼부부 아저씨는 정말 재밌으신 분이다. 그 분께선 일부러 재밌으라고 하신 말이 아니겠지만 그냥 재밌어 보이시고 즐거워 보이시는 분이시다. 분당에서 오셨는데, 아내 되시는 분께서는 문경 쪽에서 오셨나보다. 경상도 사투리가 약간 묻어나왔다. 어쨌든 인상이 정말 좋은 가족이었다. 가이드까지 합쳐서 총 21명이다. 그리고 수재들이 많다. 명문대 입학생, 학생이 3명이다. 종호 형님께선 어떻게 되시는 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신혼부부님께서도 수재 자녀들을 데리고 있으신 것 같았다. 그리고 동안 이모 선주 누님께서도 수재가 아닐는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수재가 아니다. 나는 천재다. 지능지수 158에 영재로 2번이나 판별되고 4년간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7개 국어를 구사하는 나도 이 수재 여행단에 당당하게 들어갈 자격이 된다. 성진이는 공부를 좀 잘하게 생겼고, 내 동생도 좀 하는 편이다. 또 선생님들이 많다. 난 선생님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들도 공부를 잘 한다. 근데 다들 나를 대학생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를 내 누나로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솔직히 나를 대학생으로 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랑 똑같이 생긴 놈을 보면 대학생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매일 대학 도서관에 출근하다보니 내 자신이 중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때문에 엄마가 누나로 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객 소개는 이까지 하도록 하고, 본격적인 여행 이야기를 해 보자. 오전 6시쯤에 로마 퓨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렌즈를 안 껴서 그 날은 안경을 껴야했다. 짐을 찾는데 소매치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소매치기 찾는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사실 그렇게 걱정할 것 까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짐 찾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공항은 낡아서 꼭 지하철 역 같은 느낌이 든다. 전용버스에 탑승해서 이탈리아 지역을 함께 여행할 그곳의 가이드 분을 또 만났다. 이 유럽 지역의 가이드 시스템은 각 나라마다 있는 가이드들이 패키지 여행객을 안내하는 그런 형식이었다. 이 가이드 분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꽤 훌륭한 가이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폴리로 향했는데, 나폴리는 사실 그냥 거쳐 가는 코스에 불과했나보다. 그냥 도로를 달리면서 가이드가 ‘여기가 나폴리입니다’ 이러고 끝이다.

그래서 우린 폼페이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이 터지면서 화산재에 묻힌 로마시대의 도시이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의 일이다. 여기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는데, 이놈의 현지가이드들은 하는 일이 대체 뭐지? 난 현지 이탈리아인을 만난다는 게 설레였는데 사실은 우리랑 같이 걸어 가주는 일로 시간당 10유로를 받는다. (그래도 Come grande! 하고 이탈리아어로 감탄사를 해주니까 웃는다.)폼페이의 포르타 마리나를 지나 폼페이 안으로 들어갔다. 엄청나게 넓었다. 로마시대 도시가 이렇게 넓었다니. 아직 다 발굴이 안 된 상태란다. 문마다 다 들어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참았다. 그리고 사진이나 글로만 보던 화산재에 뒤덮인 사람 캐스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로마시대 사람들이 살던 흔적들이 (마차길, 사람들의 손에 닳은 돌들) 여실히 남아있었다.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창녀의 집’이었다. 창녀의 집이라. 창녀는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했다. 폼페이는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는데 이 창녀의 집만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역시 일본인들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어딜 가나 많았다. 한 4개 정도의 방이 있었고 방마다 돌침대가 있고 벽에 야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흥미로운 곳이었다. 폼페이에서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갔다.

점심은 스파게티와 무슨 오징어 튀김이 들어있는 샐러드였다. 그런데 이 유럽의 식당들은 자리를 절대 안 남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 테이블에 4개의 의자가 있으면 4명이 앉아야 한다는 소리이다. 3명이 앉으면 안 된다. 그런데 여차저차해서 내가 튕겨버렸다. 엄마랑 동생은 성진이네 2명과 앉고 나는 튕겨서 슬기 누님네 3명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나는 슬프게도 가족에게서 계속 버림을 받았다. 메인요리는 조개가 들어간 스파게티였다. 처음엔 주위사람들과 어색해서 그냥 먹기만 먹었다. 난 말을 붙이는 재주는 없거든. 그래도 아주머니께서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등을 물어봐주셨다. 그때마다 난 경상도식으로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울산이요, 버스타고요, 이렇게. 서울 사람들이 보면 답답해 미칠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냥 스파게티만 후루룩 들이 삼키고 있다가 아주머니께서 스파게티를 더 달라고 웨이터를 부르셨다. 그런데 씹히셨다(푸훗). 그래서 내가 시도했다. 이탈리아어로 ‘Di piu spaghetti, per favore.’ 라고 부탁했다. 영어로 하면 Give more spaghetti, please 이고 한글로 하면 스파게티 더 주세요, 제발 이런 뜻이다. (이탈리아노 웨이터가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놀람)
그런데 per lei 라고 해야 아주머니한테 주라는 뜻인데 이 웨이터가 나한테 엄청난 양을 들이붓는 것이었다. 이런. 그냥 먹었다. 배 터지는 줄 알았다. 서양에선 남기는 게 미덕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어서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그러다가 남겼다. 도저히 못먹겠더라. 그래도 그것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는 약간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자 3명중에 2명이 화장실가고 1명만 내 앞에 앉아있으면 분위기는 정말 어색해진다. 그래서 슬쩍 화장실 가는 척 자리를 떴다. 엄마는 맛있게 식사를 한 모양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소렌토로 가는 버스를 탔다. 소렌토의 풍경은 기가 막히게 멋졌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한 번 내리고 사진 찍고 그게 끝이었다. 그래도 소렌토에서 돌아오라 소렌토를 이탈리아어로 불렀다. 학교에서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수행평가를 했기 때문에 그걸 부르는 건 대충 할 수 있었다. 산타 루치아도 불렀다.

그러다가 이제 무슨 가구점으로 갔다. 이탈리아제 원목으로 만든 가구점이었다. 여행 중에 그런 식으로 상점 같은데 많이 들렀다. 그게 별로 좋진 않았지만 한번 가 볼만은 했다. 가구 공장은 거의 다 쓰러져가는 형편이었다. 공장과 판매점이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에는 가제토 델로 스포르트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개 두 마리가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역시 스포츠와 개들을 좋아하는가보다. 거기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조잡했다. 중국산처럼 보이는 오르골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버스를 탔다.

저녁은 호텔 근처 라티나에 있는 Ristorante Cinese에서 먹었다. 중국 식당이라는 뜻이다. 난 현지식이 더 먹고 싶었는데 중식을 먹게 되어 약간 아쉬웠다. 그래도 중식도 먹을만했다. 좀 짜고 느끼한 건 있었지만 괜찮았다. 이번에는 신혼부부네와 함께 식사를 했다. 5인 식탁에 5명이 앉아서 먹었다. 신혼부부 아저씨네는 딸이 둘인데, 한 명은 캐나다에 유학중이고 세계 각국을 여행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부부도 부부끼리 자주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동남아를 많이 가시는 듯 했다. 나와 내 동생 인상이 좋아보인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분당에서 오셨다고 했고, 서울 강남에 있는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한다고 하셨다. 말씀하시는 게 무척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경북 문경에서 배가 고팠던지라 밥을 두 세 번 퍼다 먹었다. 그런데 쌀이 맛이 없었다. 그래도 식사한 것이 기억에 제일 남는 것 같다. 본 것은 기억 못 해도 먹은 것은 기억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로 향했다.

나는 호텔이 로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버스로 한참 이동해야 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라티나라는 곳인데, 우리가 묵은 호텔은 엑셀시오르 라티나라는 호텔이었다. 별 4개짜리 호텔이었다. 이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동생이 로밍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식당에 전화를 하고 로마로 돌아간 이탈리아 가이드한테 전화하고 난리를 펼쳤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외투 소매 안에 핸드폰이 끼어있었다. 젠장. 엘리베이터는 불편했다. 우리가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문이 닫히지 않는다. 하지만 호텔 상태는 괜찮았다. 바닥이 전부 대리석이었다. TV도 잘 나왔다. 욕조에는 월풀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 동생이 샤워를 했는데 한국식으로 욕조 밖에서 물을 끼얹다가 방 안으로 물이 새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막 수건으로 방바닥을 닦고 방을 걸레질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엄마가 화를 내서 동생이 우는 또 다른 진풍경도 벌어졌다. 유럽에는 욕조밖에 배수구가 없다는 걸 숙지하고 갔음에도 그런 참담한 일이 벌어지다니. 첫날 밤은 이렇게 약간의 스트레스와 불만 속에 저물어갔다. 우리는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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