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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3 (4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3 (4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 9. 9. 12:44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3 (4일) 
 


오늘은 피렌체로 가야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일어나야했다. 작전명이 5시 반, 6시 반, 7시 반이었던 것 같다. 5시 반에 일어나기 힘들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는 활동하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눈은 잘 떠졌다. 그러니까 의식은 있는데 몸은 죽어있는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엑셀시오르 호텔에서는 마지막 날이어서 짐을 챙겨야 했다. 짐 챙기는 것 때문에 엄마는 나와 동생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쳐야 했다. 엄마는 디카 배터리도 교환해야 되고 짐도 챙겨야 해서 잠을 설쳤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잘만 잤는데. 어제와 같은 아침 식사를 먹었다. 다만 컵라면 (신라면) 2통을 들고 내려갔다. 아! 신선놀음이 따로 없도다! 매콤한 라면 국물이 그리도 달콤할 줄이야! 라면 한 그릇을 후딱 먹어치우고 크로아상을 하나 베어 먹고 배부르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이 호텔 앞에는 기차역이 있었는데, 새벽부터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기차역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약간 돌아다녔다. 이탈리아인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쳐다봤다. 꼭 한국에서 우리가 벽안의 외국인들을 쳐다보듯이. 그리고 종호 형님께서 호텔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한 장 찍어주셨다. 그때만 해도 그 형님이 그렇게 재밌는 형님인지 몰랐다. 다른 사람들과는 말을 별로 안 하시니 약간 어색했다. 사실 난 우리 일행 전부와 어색했다.

사진 몇 장 찍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어제 버스에서 너무 추워서 신혼부부네 아저씨께서 기사 아저씨(이름은 루치아노라고 한다.)한테 ‘카 히터 온!’ 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신혼부부 아저씨는 웃기라고 한 소리가 아니었겠지만 엄마와 동생은 지금도 그 일을 회상하며 웃는다. 결국 내가 영어로 기사와 대화를 시도했다. ‘It's so cold here. Could you please turn on the heater?’ 이러니까 기사가 못 알아듣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영어를 못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유창했나? 하하. 결국 이탈리아어로 ‘Ho freddo!’ 이러니까 ‘Ah! Freddo! Cinque minuti! Five minutes!' 이런다. 버스가 열을 받을 때까지 5분만 기다리란 소리였다. 뭐, 대충 문제는 해결된 것 같은데 이렇게 영어를 못하나? 대단하기도 하고 우리나라가 부끄럽기도 했다. 한국에선 한국어를 써야지 웬 영어 교육인지. 영어는 쓸 놈들만 잘 쓰면 된다. 나 같은 놈만. 나머지는 영어 알아도 별 쓸 데가 없다. 국가 예산 낭비란 뜻이다. 그리고 이왕 가르치려면 잘 가르치던가. 이야기가 딴 데로 샜는데 어쨌든 영어 못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며 괜히 영어를 강요하는 한국에 환멸감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놈의 히터는 5분이 되어도 제대로 틀어지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추운 분위기 속에 피렌체로 이동했다. 피렌체까지는 약 3~4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어느 호텔 앞에 내렸다. 물론 우리가 묵을 호텔은 아니었다. 고급 호텔이었으니까. 하하. 쓴 웃음이 나온다.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다음 호텔들은 꽤 쓰라린 경험이 되었거든. 어쨌든 점심을 먹으러 이동해야했기에 걸어야했다. 이 유럽의 도시들은 대형 버스가 다니기 어려운가 보다. 뭐 도시에 버스가 진입하려면 120 유로 정도를 지불해야한다니. 이 나라는 관광객을 별로 반기지 않는 나라라서 그렇다고 한다. 하긴, 광고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관광객은 수두룩하게 쏟아지니, 그럴 만도 하겠다.

피렌체에 처음 내려서 받은 느낌은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거리가 한산했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차들은 많이 다녔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약간 복잡한 느낌을 받은 로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매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니 그 전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횡단보도가 빨간 불일 때도 사람들이 그냥 건너간다. 물론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는. 그리고 빨간 불에 사람들이 지나가면 차들도 알아서 멈춰준다. 도로가 보행자 중심이라 그런가보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데. 이래서 선진국이 선진국이란 것인가.

점심을 먹으러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가 피렌체의 주택가에 들어서게 되었다. 젠장! 완전히 달력에 나올만한 그림 같은 거리였다! 여기서 내가 진짜 유럽에 왔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거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뭐, 여기 사는 사람들은 매일 봐서 지겹겠지만 내 눈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는 여기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오래된 흰색 집들이 줄을 지어있는데 바닥의 돌길하며, 거리에 주차된 낡은 자전거, 클래식 카를 비롯해서 오래됨과 낡음이 조화롭게 아름다움을 구성하고 있었다. 무조건 새로 지은 것, 빨리빨리, 날림 공사를 선호하는 대한민국이 안타까웠다. 옛 것을 가꾸어야 하는데. 사대주의적인 발상은 아니다. 분명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거리에 개똥이 많은 점은 주의해야 할 점이다. 질펀한 것 하나 밟을 뻔했다. (거리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서)

점심 식사를 하러 한 식당에 도착했다. 겉에서 보기엔 굉장히 작은 식당처럼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컸다. 왜 이렇게 큰 거야! 이 식당은 1층도 엄청나게 큰데다가 2층(화장실 있음)까지 있다. 역시나 한국인들이 앉아있다. 대체 한국인이 없는 식당으로 가면 안 되는 건가? 어쨌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번에는 4인 테이블에 우리 가족 3명과 홀로 남은 성진이가 앉았다. 역시나 이 녀석은 말이 없다. 엄마는 그래도 말을 걸어보려고 애쓰는데 나보다 더 말이 없다. 나는 그래도 말할 때는 잘 하는데. 식사는 먼저 스파게티가 나왔다. 배가 고팠던지라(시차 때문에 쉽게 배가 고파진다고 한다.) 스파게티 한 접시를 금방 해치웠다. 그리고는 나한테 카푸치노 한 잔 사준다고 했던 가이드한테 카푸치노를 사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니까 가이드가 ‘Un cappucino per lui, per favore.’라고 말했다. 젠장! 가이드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겠어! 이탈리아에서 14년 동안 가이드로 일했다는 분이 너무 쉬운 이탈리아어를 구사했다. 이탈리아인들이 하는 말은 잘 못 알아듣겠는데 이 가이드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 카푸치노를 마셔봤는데, 윽! 제기랄! 왜 이렇게 쓴 거지? 에스프레소도 아닌데? 결국 엄마가 마셨다. 스파게티를 더 달라고 말했다. ‘Di piu spaghetti, per favore.’ 그러니까 더 주는데, 이 나라에서는 조금 주는 게 아니고 엄청나게 들이붓는다. 더 먹는다고 하면 아직 ‘한참’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는지 스파게티를 들이붓는다. 결국 반절은 남겼다. 돼지새끼가 아니고서야 그 정도 양은 못 먹는다. 이 나라에선 먹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데 또 웬 쇠고기 스테이크가 나온다! 이런. 그래도 그냥 먹었다. 맛이 있는지라. 나는 괜찮았는데 엄마랑 동생은 매일 스파게티, 밀가루 음식만 먹어서 못 먹겠단다. 그래서 내가 먹었다. 나한테는 스파게티용 배랑 스테이크용 배가 따로 존재하나?

점심을 다 먹고 또 피렌체의 거리를 걸어 다녔다. 옆에 게임 상점이 있었다. PSP 게임을 팔았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시에스타라고, 점심시간처럼 이 시간에는 영업을 절대 안한다고 한다. 낮잠 자거나 집에서 커피마시는 시간이란다. 참으로 여유로운 나라이다. 근처에는 학교가 있었다. 학교가 무슨 집 건물 같았는데 유리문 안으로 애들이 노는 게 보였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로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써 있다. 방문을 하려면 문 옆에 앉아있는 경비한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데, 경비는 여자였다. 다른 여자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또 개똥을 밟을 뻔했다.

거리를 계속 걷다보니 눈앞에 어떤 거대한 성당이 보였다. 난 그게 피렌체의 두오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거기 앞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Aghilieri di Dante'라고 한다. 단테 기념관인가? 어쨌거나 컸고 앞에 광장까지 있었다. 우린 거기를 지나 다비드 상이 있는 곳까지 갔다. 내 생각에는 피렌체의 어느 박물관과 시청이 있었던 광장이었던 것 같다. 다비드 상은 복제된 제품이고 진짜는 건물 안에 있다고 한다. 다비드 상의 고추를 잡은듯한 앵글로 사진을 찍으면 행운이 온다는(?) 가이드의 말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찍었다. 우리 일행 중 그렇게 찍은 사람은 우리 가족뿐이다. 그래도 나 없었으면 그렇게 안 찍었을 거다. 주위에서 일행 몇 명이 대리만족을 느끼듯 웃는다. 그럼 그렇게 찍어보면 될 것이지. 그리고 그 광장 주변 가판대에서 엄마 친구 줄 선물을 몇 개 샀다. 냉장고에 붙일 자석을 4개정도 샀다. 그리고 목각 피노키오 연필을 2개 샀다. 중국제처럼 보였지만 뭐, 요즘은 중국제 아닌 게 없으니. 그런데 가격이 4개 10유로다. 가격이 왜 이래. 장난 아니다. 하나당 4000원? 여기선 1유로를 100원 보듯이 한다. 그런데 반대편 가판대에서도 4개 10유로란다. 전부 똑같은 가격이다. 담합이라도 했나? 정말 경쟁이라고는 모르는 사회이다.

늘 그랬듯이 발도장과 사진만 찍고 다비드 상이 있는 곳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진짜 피렌체 두오모(이탈리아어로 대략 성당이란 뜻)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다. 첫 번째는 바티칸의 성 피에트로, 두 번째는 영국의 세인트 폴즈, 세 번째는 밀라노의 두오모, 네 번째가 피렌체 두오모이다. 1,3,4위가 모두 이탈리아에 있다. 여기 피렌체의 두오모는 바로 냉정과 열정사이의 감동적인 무대가 되는 그 곳이다. 나도 영화에서처럼 두오모 꼭대기까지 올라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된다고 한다. 돈 버는 건 잘 하는 나라이다. 운동을 하는 몸이라 계단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 자신이 있다. 그래도 가이드가 그러길 나중에 대학생 되면 배낭여행 와서 한번 올라가보라고 한다. 이런. 그래서 안 올라가고 그냥 들어가 봤다. 그런데 밖에서 볼 때는 어마어마하게 큰데(두오모 첨탑의 높이가 약 300미터라고 한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 가보는 사람이 보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하도 큰 건물들을 많이 보니까 이젠 그러려니 한다. 하하. 그런데 이놈의 성당은 지하에 기념품점도 있다. 일본인이 대다수이다. 여기 피렌체 두오모에는 일본인, 한국인, 미국인 순으로 관광객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기념품점만 있는 게 아니라 안내 책자도 기부를 하고 가져가란다! Offerta 라고 기부함이 놓여있는데 그 위에 ‘이 책자를 가져가려면 꼭 기부를 하시오’ 라고 한다. 그냥 가져왔다. 미안하지만 동전이 없어서. (사실은 안내책자 가져가는데 기부하기가 너무 싫었다.)

두오모 관광을 약 30분 만에(30분도 많은 시간이었다. 보통은 10분 정도 준다.) 끝내고, 두오모 앞 어느 병원 앞에 모였다. 그런데 왜 어제 디카 배터리가 그렇게 빨리 닳았는지 알았다! 해상도를 엄청나게 높게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젠장! 왜 여기서 이런 망할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두오모 근처 주택가에 웬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가이드가 그러는데, 사람들이 여기에 실례를 많이 하다 보니 십자가를 걸어놓아 성스러운 곳처럼 보이게 해놓았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다.) 여기서 피렌체 현지가이드인 일리아노와 헤어지게 되었다. 일리아노는 피렌체 소재 축구 팀인 피오렌티나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피오렌티나, 굿 팀이라고 해 주니까 좋다고 그라찌에(Thanks.)란다.

두오모에서 버스를 타러 가는데, 단테의 생가에 잠깐 들렀다. 단테라 함은 바로 단테의 신곡으로 유명한 그 단테이다. 엄마는 단테 생가가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내 눈에는 그냥 집처럼 보였는데. 물론 단테 생가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입장료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테 생가는 일정 안에도 없었으니까. 그냥 지나가는 경로에 단테 생가가 있었을 뿐이다. 유적이 하도 많으니 걸어 다니는 곳마다 유적이다. 사람들이 사진 찍고 있을 때 살짝 들어가 봤는데, 1층에는 작은 서점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인기가 없는 관광지 같았다. 아무도 없었다. 직원도 내가 들어왔음에도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나간다. 서점에는 결국 아무도 없었다. 뭐 훔쳐가도 모르겠더라. 어쨌든 그냥 나왔다. 단테의 생가 앞에는 웬 거리의 악사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앞에는 천을 깔아놓아 동전을 수금했다. 우리 일행 중 몇 명이 그 사람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런데 사진 찍은 일행들이 돈을 안주고 그냥 갔다. 그 연주자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단테의 생가를 보고 난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밀라노로 이동했다. 이탈리아에서 우리를 안내해주던 이탈리아 소재 한국인 가이드와는 작별했다. 버스 안에서 놀라울 정도의 역사 지식으로 이동 내내 떠들던 훌륭한 가이드였다. 그러나 정식 라이센스는 없어서 항상 시간당 10유로를 주고 현지가이드를 대동해야했다. 이놈의 현지가이드들은 하는 일은 없지만 돈은 잘 받는다. 밀라노로 이동하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가이드가 제안한 건데,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 밥도 같이 먹어야 하고 하니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1조라 제일 먼저 소개를 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먼저 말을 했다. ‘전 미친놈으로 태어나 미친놈으로 죽고 싶습니다.’ 대충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에게는 인상적이었나 보다. 다들 나랑 말을 할 때면 그 일을 꺼낸다. ‘야, 너 말 잘하던데, 뭐라 그랬더라, 미친놈?’ 하하. 난 평범함을 거부한다. 평범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내가 내 소개를 하기 전까지는 전부 날 대학생으로 알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엄마를 내 누나로 생각했단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봐도 난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는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대학교 도서관 들어가도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소개시간에서 놀라게 되었다. 우리 일행 중에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명문대 학생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자매라고 생각했던 두 누님들이 사실은 이모와 조카 사이였다는 것. 이모가 오히려 더 젊어보였는데? 충격적이었다. 뭐, 어쨌든 자기소개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종호 형님과 성진이, 그리고 신혼 부부 아주머니께선 소개를 하지 않으셨다. 종호 형님은 그때 자는 척했다. 남들은 다 잤다고 알고 있지만 난 안 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한테 ‘너 미친놈이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 이랬으니까. 잤다면 그렇게 말하진 못 했을 거다. 여행이 끝나서 하는 말인데, 종호 형님은 가이드한테도 불만이 많아보였다. (형, 미안해요)

고속도로에서 잠깐 휴게소에 내렸는데, 휴게소에서 카페처럼 음식을 팔았다. (여기 휴게소는 다 그렇더군.) 아직 버스 문이 잠겨있는 걸 확인한 나는 시간이 남은 줄 알고 ‘피자 마르게리따’를 주문했다. 피자 마르게리따는 이탈리아의 대표 피자로서, 이탈리아에 대한 애국심이 깃들어있는 그런 피자이다. 현지인들도 가장 많이 사먹는 피자다. 그런데 오늘 일정이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이기 때문에 이걸 먹어볼 수 없을 것 같아 하나 주문하기로 했다. 할머니 점원에게 ‘Una pizza margheritta, per favore.'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나한테 계속 'Di che?’이러는 것이었다. 디 께? 영어로 하면 대충 Of who(=whom)? 정도가 되겠다. 누구에게 줄거냐는 뜻인가? 그래서 몰라서 가만히 서있는데 할머니가 젊은 남자 직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남자 직원이 하는 말이 ‘Ticket’이란다. 디 께? 이게 아니고 티켓이란 말이었다. 하. 그냥 ‘Biglietto'라고 말하면 알아들었을 것을. 어쨌든 3.40 유로(5000원 정도)를 지불하고 피자 마르게리따 한 조각을 주문했다. 화덕에 구워서 바로 받았다. 한 조각이 한국의 한 조각이 아니고 꽤 컸다. 한국의 두 조각 정도 되어보였다. 피자를 들고 뛰어가는데 벌써 사람들이 다 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날 찾아다니고 있었다. 제길! 나 때문에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건가?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피자는 맛있었다. 이젠 못 먹을 건데 피자라도 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먹어보니 도우가 무척 얇았다. 그리고 화덕에 구워서인지 도우 밑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온도는 따뜻했고, 토핑은 뭐,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밀가루 도우 위에 모짜렐라 치즈와 뽀모도로(토마토) 소스가 전부였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원래 차에서 먹으면 안 되는데 기사 양반 몰래 먹어서 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밀라노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나는 내가 늦어서 늦게 도착하는 줄 알고 죄책감이 자꾸 들었다. 그런데 가이드 말이 원래 밀라노에 밤에 도착하는 일정이라고, 이번은 좀 더 일찍 도착한 거래서 그나마 안심했다. 밀라노 가는 길이 멀어서 그 동안 냉정과 열정사이를 시청했다. 버스 안에 TV가 두 대가 있었는데, 하나는 맨 앞에, 하나는 중간 비상 출입구 앞에 있었다. 나는 비상 출입구 바로 뒤라 잘 보였다. 그 자리가 좋은 것 같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자고 싶었는데 좀 전에 작별했던 그 가이드가 시차 적응을 위해서 하도 자지 말라고 그래서 참는다고 힘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도 괜찮았던 것 같다. (빡빡하고 피곤한 일정이니까) 괜히 안자서 더 피곤했던 것 같다.

저녁 6시, 7시 쯤 되어서야 밀라노에 도착했다. 밖은 벌써 많이 어두웠다. 밀라노의 거리는 화려했다. 로마나 피렌체보다는 현대식 건물이 더 많았다. 북쪽 지방이 더 잘산다는 말이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북쪽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난한 남쪽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밀라노 시내 한복판에 내려서 밀라노의 두오모로 이동했다. 밀라노의 두오모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첨탑들이 삐죽삐죽 많이도 서있었다. 작은 조각상들이 3000개 정도 붙어있다고 한다. 첨탑도 1000개였나? 하여간 많았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어쨌든 피렌체 두오모보다는 색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 더 컸다. 밀라노 두오모 앞에는 큰 광장이 있었다. 작년 챔피언스리그를 AC 밀란이 우승할 때에는 이 광장에 밀라노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열기가 엄청났던 곳이다. 여기서 성진이네 아저씨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두오모 근처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가 있다. 여기에는 두바이에 있는 버즈 알 아랍(7성 호텔)보다 더 고급스런 호텔이 있다고 들었다. 버즈 알 아랍은 비공식 7성 호텔이지만 여기 아케이드에 있는 호텔은 최초의 공식 7성 호텔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딨는지는 안 보였다. 아케이드 내부는 명품 상점가로 가득 차 있었다. Gucci, Luis Vuitton 등 많은 명품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데 그 명품 상점들 사이에 반가운 축구 용품점이 보였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의 유니폼과 잡다한 축구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이 닫혀있어 구입하지는 못했다. 맥도날드도 보였는데, 명품 상점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고급스러워 보였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이 아케이드 앞에 있는 가판대에서 AC 밀란 레플리카를 샀다. 로마에서도 살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가격만 물어보고 나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어로 물어보면 영어로 대답해준다.) 여기서는 영어로 가격을 물어봤다. 그런데 영어를 못 알아먹는다. 이탈리아인들은 외국어에 약한 모양이다. 로마에선 10유로였는데 여기선 15유로를 달란다. 또 카카 마킹이 되어있는 레플리카는 많이 팔려서인지 사이즈가 S와 XL 밖에 없었다. 구입을 하고 나가려는데 친절해 보이는 가게 아저씨가 재패니즈? 하고 묻는다. 나는 No, sono coreano. 하고 답하고 나왔다. 영어도 유창하게 했는데 왜 일본인이라고 생각할까? 일본인은 영어를 진짜 못하는데. 다 국력 때문이겠지. 옷을 입고 아케이드 앞 광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를 지나면 라 스칼라 극장과 밀라노 시청, 그리고 거대한 은행 건물이 보인다. 라 스칼라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역시 여기도 3분 정도 기념 촬영하는 시간만 갖고 나왔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나에게도 별 감흥은 없었다. 그저 시청 건물이 정말 오래되어 보인다는 생각뿐.

관광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하러 또 현지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나 메뉴는 스파게티였다. 뭐, 조금 지겨웠지만 먹을 만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정말 못 먹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그런데 스파게티를 다 먹고 나니 샐러드와 포크 커틀릿(돈까스)이 나왔다. 젠장! 휴게소에서 피자를 먹고 왔더니 배가 불러! 그래서 샐러드와 고기는 맛만 봤다. 그런데 성진이네 아저씨가 모든 테이블에 피자와 와인을 돌렸다. 그래서 피자 한 조각,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내가 휴게소에서 먹은 피자와는 조금 달랐다. 이 피자는 치즈고 소스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밀가루 도우뿐이었다! 그래도 가볍게 먹을 만은 했다. 이탈리아 와인은 앞으로 먹어볼 기회가 없으므로 한 모금 마셔보았다. 좀 씁쓸했지만 포도 주스처럼 마실 만은 했다. 그래서 계속 한 모금씩 마시다 보니 한 잔을 비웠다. 하! 미성년자가 술 한잔을 비웠어! 난 술을 절대 입에 안 대겠다고 맹세한 몸인데 오늘 그 맹세를 깼다. 그런데 옆에 어르신들과 종호 형님은 얼굴이 벌게져서 알딸딸한 모양이었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식당에서 드디어 종호 형님과 말을 텄다. 종호 형님이 내 옆에 앉았는데 처음엔 이 형님이 조용하신 줄 알았는데 말도 꽤 많았다. 젠장! 이 형 뭔가 재밌는데? 군대를 갓 제대했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든다.

남들보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나는 식당 안의 TV 앞으로 갔다. 인터 밀란과 리버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점원 한 명과 식사하던 아저씨 두 명이 앉아서 관전하고 있었다. 나도 서서보고 있다가 점원에게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봤다. 된단다. 그래서 밀라노(인터 밀란의 정식 이름은 인테르나치오날 밀라노이다.)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그러니까 밀라노는 내일 한단다. 엥? 이게 밀라노 아냐? 알고 보니 밀라노는 AC 밀란을 뜻하는 거였고, 인터 밀란을 부를 때는 꼭 인테르라고 말한다. 그래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이브라히모비치를 좋아한단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 아까 내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내가 Ciao! 하며 인사를 하니 Ciao 라고 답례한다. 인사한 김에 어느 팀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인테르라고 답하면서 나를 가리키면서 노 밀라노! 이런다. 그 때 내가 AC 밀란의 레플리카를 입고 있었거든. 역시 살인적인 라이벌 의식이다. 어쨌든 대화를 하다가 이 사람들도 역시 이브라히모비치를 가장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축구 선수는 골 잘 넣는 게 최고구나. 정감 있는 그 아저씨들과 작별했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밀라노 시내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이번 호텔은 시내에 있었다. 지난번 로마에서의 호텔은 로마 시내가 아닌 근교의 라티나에 있어서 이동이 오래 걸렸는데 이번엔 시내에 있어서 좋았다. 시내에 있는 호텔은 꽤 비쌀 텐데? 일정표에는 밀라노에서 묵는 호텔은 표시가 안 되어 있었다. 9시가 조금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한 것 같았다. 호텔 프론트에 있던 남자 직원은 키가 훤칠하고 굉장히 잘 생겼다. 전형적인 라티노였다. 모델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은 꽤 늙어 보인다. 동양인들은 동안이 많은데 여기선 조금만 나이 먹어도 정말 나이 들어 보인다. 엘레베이터가 고장 났대서 걸어 올라갔다. 방안에 들어가니 바닥은 대리석이었다. 호텔은 전부 바닥이 대리석이었다. 엑셀시오르도 그랬다. 대리석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란다. 나무 바닥이 오히려 비싸단다. 침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일단 TV에 소리가 안 나왔고, 리모콘은 망가져있었고, 화장실 수도꼭지는 너무 사용하기 불편하게, 한국의 70년대 수도꼭지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있겠나. 엑셀시오르는 편했는데. 밀라노 시내에 있는 호텔이라 그런가. 여기는 별 3개짜리였고 엑셀시오르는 별 4개였는데, 별 3개에선 편하게 자기를 기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여관이나 모텔과 비슷한 수준이다. 별 4개는 되야 편하게 잘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많이 돌아다녔고 버스로 이동도 오래 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불편한 것도 모르고 그냥 잠들었다. 내일은 더 힘들텐데. 작전명도 567이란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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