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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5 (6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5 (6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 9. 9. 12:19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5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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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is Hotel에서 지금까지의 여행일 중에서 가장 늦은 시각에 기상했다. 7시에 일어나 늘 그랬듯이 렌즈를 빼고 세수, 세안하고 머리 감고 옷을 입는다. 오늘 처음으로 바지를 갈아입었다! 늘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이 괜찮기는 하지만 점점 길어지면 곤욕이 된다. 그래서 여행 후에는 씻는 것을 즐기게 된 것 같다.

8시가 되어 아침식사를 먹으러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이탈리아에서와 똑같이 크로아상과 잼, 버터, 주스가 놓여 있었고 시리얼과 우유나 커피는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우린 컵라면을 들고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 끓여먹었다. 라면을 제대로 먹으려면 유럽으로 가야 하겠다. (??) 대강 식사를 배부르게 마치고, 로비에 놓여있던 여러 신문들 중 레퀴프 지(스포츠 전문)를 꺼내 읽었다. 여기 프랑스에서도 축구 소식을 가장 크게 전하는 것 같았다. 90 퍼센트가 축구 뉴스로 이루어져 있었고 10 퍼센트 가량이 럭비 월드컵 뉴스로 짜여 져 있었다. 일면에는 자국 리그인 르 샹피오나의 중상위권 팀 중 하나인 보르도의 대승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신문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며 파리지엥의 여유를 즐겼다. 하하.

8시 30분경이 되어 버스를 타러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문 앞에는 수십 가지의 파리 시 관광 안내 책자가 놓여있었다. 몇 개 가져왔는데, 물랭 루주 쇼와 리도 쇼에 관한 책자를 챙겨 온 것은 기억에 남는다. 피자집 광고지도 가져왔다! 피자 모양은 한국과 많이 달랐지만 광고지 짜임새는 한국과 비슷했다.

호텔 밖 주차장 근처에 피자집 광고지에 나왔던 바로 그 피자집이 있었다. 호텔 주변에는 버스 정류장과 맥도날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근처에 꽤나 많았다. 3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리 시민 몇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자, 나도 정류장에 가서 버스 노선도와 시간표를 유심히 관찰했다. 여기선 버스 노선이 하나인 것 같았다. 고로, 어떤 번호의 버스를 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단 말씀이다. 한 버스가 멈춰 섰는데 내가 안타니까 의아하게 서 있다가 지나갔다. 근처에 맥도날드 주변도 둘러보았는데, 한국이나 유럽이나 전 세계 어디나 맥도날드는 무척 많은 것 같다.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버스에 탈 때 기사 아저씨 (베르나르 베르베르 닮은 그 아저씨)에게 Bonjour! 하고 인사하니 Bonjour! 하고 답한다. 여기선 인사하고 답을 받는 것이 꽤나 큰 즐거움이다. 이 곳 사람들은 누굴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상황이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꼭 대화하기 전 그 시간대에 맞는 인사를 한다. 예를 들어 휴게소에서 뭘 주문하려면 (아침일 경우) 이탈리아에선 Buon giorno, 프랑스에선 Bonjour, 영국에선 (Good) Morning 이라고 인사한다. (영국에선 Good을 자주 생략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이동했다. 시내로 가는 동안 대략 5개 정도의 축구 전용 구장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축구에 관한 관심이 많다는 뜻일까? 유럽은 축구 선진 지역이라 그런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축구를 즐길 수 있게 곳곳에 잔디구장을 설치해 놓았다.

파리 시내로 진입하여 개선문 근처에 내렸다. 거기서 파리 관광을 도와줄 ‘성기자’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이 분을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가이드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에게 매우 특별한 가이드로 남게 되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무척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름도 ‘성기자’일 뿐만 아니라, 성격, 외모도 많이 비슷하다. 특히 성격이 정말 외할머니와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엄마가 인정했다.) 버스에서 안내 멘트를 하는데, 멘트에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함께 뿜어져 나왔다. 몇 개 일화를 소개하자면, 에펠탑 정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가 아닌데 우리 일행의 왕할머니께서 잘 모르시고 내리려고 하셨다. 그러니까 “안 돼요!” 하고 소리치며 왕할머니의 목덜미를 확 잡아채 끄는 것이 아닌가!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킥킥 웃으며 진짜 똑같다며 놀라워했다. 또 한 번은 에펠탑에서 데모를 하던 중에 내가 가서 그걸 보려고 뛰어가니까 “어딜 가는 거야, 지금! 그렇게 마음대로 하면 절대 못 찾아!” 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못 들었지만 엄마와 동생은 들었다. 하여간 장난 아닌 카리스마의 소유자이시다. 또 무척이나 당당하셨고, 불어 실력도 당당한만큼 훌륭했던 것 같다.

카리스마 가이드를 만나고 나서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시간은 45분정도 주었던 것 같다. 이 성기자 가이드는 시간을 많이 줘서 좋았던 것 같다. 여행 중에 여유롭게 다녀야지 급하게 다니면 여행이 아니라신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지점에서 지하도를 타고 개선문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하도는 마치 내가 아시아에 온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게 뭐야! 한국인과 일본인뿐이잖아! 프랑스인은 드물었다.

지하도에서 올라와 개선문에 당도했다. 밖에서 보는 개선문과 개선문 바로 밑에서 보는 그림은 또 달랐다. 개선문 앞에는 세계 1차 대전 중에 전사한 어느 무명 병사가 묻혀있는데, 국경일이 되면 언제나 프랑스의 국가 원수가 여기에 헌화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를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 원수들도 방문하여 헌화하는 곳이란다. 또 개선문에는 여러 장군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수백 명은 족히 되어보였다. 전사한 장군의 이름 밑에는 하나의 밑줄이 그어지게 된다.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로마의 콜로세움 옆에 있는 그 개선문을 본떠 만든 것인데, 나폴레옹은 단지 개선문의 기반 공사만 끝냈고 나폴레옹이 죽은 후 한참 후에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개선문 앞에는 샹젤리제(Champs Elysee) 거리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이다. 여기는 명품 상점들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들도 자리 잡고 있었다. 카타르 대사관과 노르웨이 대사관이 보였던 것 같다. 샹젤리제 거리를 끝까지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반쯤 걸어보았다. 여기 거리를 걸으면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리도 쇼 간판도 볼 수 있었다. 가이드 선생님께서 그러시길, 요즘 샹젤리제 거리에 ‘디럭스 상점’들이 많이 생겨서 문제라고 한다. 엄청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샹젤리제에 마지막 남은 약국마저 다음 달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대신 명품 디럭스 상점들이 잔뜩 들어설 예정이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명품 상점이 들어선다고 해서 직원들 월급도 명품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이드 선생님의 말은 정말 명쾌하다.

샹젤리제 거리를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에펠탑으로 이동했다. 그 유명한 에펠탑. 말로만 듣던 그 에펠탑. 내가 에펠탑을 바라보고 서있다는 사실이 잘 수긍이 되질 않았다. 파리를 상징하는 그 에펠탑, 책이나 사진으로 수없이 인용되고 등장하는 바로 그 에펠탑이다! 다빈치 코드 초반부에서도 에펠탑을 가지고 DCPJ 경관과 로버트 랭던이 대화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 중에서 거대한 남근상 에펠탑만큼 프랑스를 잘 나타내는 것을 없을 것이라고. 에펠탑은 1900년에 만국박람회 기념으로 귀스타프 에펠이 지었다고 하는데 전부 조립식이라고 한다. 각각의 철골을 잇는 데에는 나사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다.)

에펠탑 앞에는 역시나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래도 예상보단 적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엄청난 인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한산했다.) 그래도 30분 정도는 기다려야했다. 성기자 가이드님이 입장권을 나눠주셨다.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데 웬 남자가 나보고 표를 달란다. 어, 이 자식 뭐야? 갑자기 왜 나한테 표를 달라는 거지? 사기꾼인가? 그래서 Why? 라고 되물으면서 표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막 답답하다는 듯이 자기 점퍼의 에펠탑 그림을 가리키며 여기 직원이라고 설명한다. 주변에 똑같은 옷 입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냥 줬다. 그러자 나한테 영어로 몇 번 게이트라고 설명해주며 떠났다. 대체 뭐지? 난 게이트 따윈 알 필요가 없는데? 그냥 일행 줄 따라가면 되니까.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지만 그 에펠탑 직원에게는 못 믿을 프랑스의 관광 행정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에선 왜 관광 사기꾼이나 소매치기를 방치해두는 걸까? 사실 단속할 방법이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또 자기들도 그냥 두는 게 속 편하겠지.)

들어가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했다. 먼저 갖고 있는 가방을 전부 열어 검색요원에게 보여줘야 했다. 우리네 평범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위험한 물질이 있을 리 없겠지. 그냥 통과되었다. 그리고 가방 검색이 끝나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서 공항에서처럼 약간의 수색을 받게 된다. 그러면 입장할 수 있는데, 유럽과 서방 각국에서는 테러에 대한 공포와 위협으로 인해 이렇게 수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여기서 생각나는 성기자 가이드님의 명언이 있다. “에펠탑 안에서도 소매치기를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오는 소매치기들도 있으니까. 입장료 값 하려고 더 기를 쓰고 덤벼들지 않겠습니까?”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 넘치는 카리스마적 기운과 카리스마 가운데의 웃음 포인트를 배합한 그 엄청난 명언에 크게 웃었다. (그래서 아까 에펠탑 직원을 의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에펠탑 안으로 진입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에펠탑의 꼭대기까지 가는 엘리베이터이다. 꼭대기까지 가는 중간에 한번 내리는데, 왕할머니께서 모르시고 내리려고 하시다가 성기자 가이드님께 목덜미를 붙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하여간 정말 대단하시다. 에펠탑 정상에 도착했다. 부산에 있는 무슨 타워나 서울의 무슨 타워 꼭대기와 많이 비슷한 느낌이 났던 것 같다. 동서남북으로 세계 각국의 국기와 도시가 표시되어 있었고 밑에 그 도시까지의 거리가 쓰여 있었다. 서울까지는 8991km, 부산까지는 9321km라고 한다. (얼마나 먼 거야?)

에펠탑 꼭대기에서 귀스타프 에펠의 작업실 모형을 볼 수 있었다. 밀랍 인형으로 에펠과 동료들이 실제 크기로 재현되어 있었다. 또 에펠탑 건축을 귀부인들에게 설명하는 장면(?) 또한 재현되어 있었다. 대충 감상하고 에펠탑 꼭대기에서 보는 파리 시내를 감상했다. 안개 때문에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과연 장관이었다. 근처에 돈 넣고 보는 망원경이 있었다. 1유로 동전을 넣고 관찰을 시작했다. 뭐, 잘 보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보기만 했다. 돈 넣은 것이 약간 후회되기도 했지만 에펠탑에서 망원경으로 한 번 봤으니 만족한다.

사진은 에펠탑 중턱에서 더 잘나온다고 해서 거기서 모두를 만나기로 하고 중턱으로 내려갔다. 중턱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나는 들여보내 주는데 엄마랑 동생은 들어오지 말란다. 알고 보니 화장실에도 정원이 있어서 사람이 가득 차면 화장실 청소부 아줌마가 들여 보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남자 화장실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금방 입실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우리 여행객 일행이 화장실에 줄을 지어 서있었다! 으허허. 공짜 화장실이라니까 이렇게 한국인들이 몰리다니. 일행이 화장실에 줄 서 있을 동안 주변의 기념품 상점들을 돌아보았다. 일본인들이 무척 많았다. 내가 일본에 온 것인지 프랑스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얼굴은 못났지만 헤어스타일과 화장술, 그리고 독특한 패션은 세계 제일을 구가하는 일본의 젊은 남녀들이 줄줄이 몰려 기념품을 고르고 있었다. 대충 주워들은 바로는, “이거 좋은데? 누구누구한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흠, 그럴 것 같은데? 근데 여긴 완전 일본이다.” “그러게.” 이랬던 것 같다. 그래, 거긴 정말 일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에펠탑 아래로 내려왔다. 사람들이 모여 벌 모양 복장을 하고는 데모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데모, 파업을 매일같이 벌이지만 한국처럼 강경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평화로웠고, 주변의 질문에 자세히, 열정적으로 대답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사는 울산에서는 모 대기업 자동차 노조를 비롯해 각종 노동조합이 훌륭한 근무조건에 일하면서도 배부른 소리를 하며 폭력적 파업을 일삼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요즘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울산 시민들의 눈에는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보여 진다.) 성진이네 아저씨가 여기에 한국의 기술을 전수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농담을 던지신다. 여기서 한국을 배워야 될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여기를 배워가야 한다.

데모하는 사람들 가까이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금지 표시가 되어있고 CRUISER 라고 되어있는데 벌과 크루저가 대체 무슨 상관이지? 불어로 CRUISER의 뜻을 모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려고 다가갔더니 일행들이 돌아오라고 소리친다. 하하. 이것도 그 성기자 가이드님 덕분이다. 하는 수 없지. (내 생각에는 양봉 금지를 위한 시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에펠탑 관광을 마치고 나서 파리 시내의 한 레스토랑으로 점심 식사를 먹으러 이동했다. 외관상으로 볼 때는 좋은 레스토랑처럼 보였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서 떼거지로 앉아있는 한국인들을 보며 또 실망했다. 지긋지긋한 한국인들! 그래도 아래층에는 현지인들이 많이 앉아있었다.

이 레스토랑으로 오기 전 버스 안에서 베르사유 선택 관광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원래 파리 시내 관광 옵션은 야간 센느강 유람선 탑승이었다. 베르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르사유를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가족은 베르사유를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베르사유 옵션에 찬성했다. 그런데 신혼부부네와 예원이네 가족은 그냥 원래 일정대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예원이네는 로마에서 벤츠 투어도 선택하지 않고 로마 시내 전체를 걸어 다녔다!) 그런데 큰 문제는, 베르사유는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선택을 하지 않으면 전체가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혼부부 아저씨는 미안하셨는지 식당에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그리하여 파리 시내 한 식당에서 베르사유 선택 관광에 대한 토론이 각 테이블마다 열렸다. 우리 가족은 6인 테이블에 슬기 누님네 가족 3명과 함께 앉았다. 그 가족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베르사유를 안 보고 가면 안 되죠.” 슬기 누님이 말했다. 물론 나도 동감이다. 돈은 좀 비싸지만(1인당 80유로) 그래도 야간 센느강(원래 1인당 50유로) 일정이 포함된 것이니 괜찮았다. 또, 파리까지 와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베르사유를 안 보고 그냥 가면 정말 섭섭할 것 같았다. 뭘 보고 관광하는 데 돈을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선택 관광이란 것이 왜 존재하는가이다. 가이드 말로는 선택 관광에서 여행사와 가이드들이 이문을 남긴다고 한다. 여행경비가 워낙 싸다보니까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선택 관광을 전부 본다면 여행 경비가 1인당 200만원에 육박한다. 다른 여행사와 비슷한 가격이다. 그러나 다른 데서도 전부 선택 관광을 진행하고 있으니, 이건 여행사 전체의 문제이지 뭐 따로 불평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전채 요리로 그 유명한 에스까르고(프랑스 달팽이 요리)가 나왔다. 이 요리를 나르는 웨이터는 한국말을 꽤나 잘한다. 언니, 아줌마, 이거 드세요, 감사합니다 막 이런다. 그걸 듣는 한국 사람들은 또 좋다고 난리친다. 어쨌든 이번 여행과 선택 관광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던 우리는 잠시 그걸 접고 달팽이를 먹게 되었다. (여기서 프랑스의 그 유명한 브리짓드 바르도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개는 안 되고 달팽이는 되니?) 달팽이 고기(?)는 달팽이 껍데기 안에 들어있었는데, 그걸 집을 수 있도록 특수한 집게를 제공했다. 그 집게로 달팽이 껍데기를 집고 긴 포크로 고기를 빼 먹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그건 사실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기자 가이드님의 말씀에 따르면 손으로 집고 먹어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단다.

그래서 그걸 손으로 집고 긴 포크로 빼내어 먹었다. 초록색 국물이 뚝뚝 떨어져 나오는데 약간 해산물 냄새가 나면서 한국의 골뱅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맛은 부드러웠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고소함? 어쨌거나 형용할 수 없는, 그러나 어디서 한 번 맛 본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부드럽게 가공된 큰 골뱅이를 영덕 대게 몸통에서 나오는 녹색 내장에 비빈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80 퍼센트 정도는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한 접시에 6개가 나왔다. 엄마와 동생이 다 못 먹어서 난 대략 9개 정도 먹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성기자 가이드가 가지 않으려는 예원이네를 위해 1인당 옵션 가격을 80에서 60유로로 줄여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제일 어린 예원이에게는 옵션 가격을 받지 않겠단다. 응?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도대체 마진이 얼마기에 그만큼 가격을 깎을 수 있는 거지? 패키지여행의 세계는 정말 복잡하다. 신혼부부네는 베르사유 옵션을 선택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사실 웬만한 사람 아니고는 옵션의 강요를 피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그래도 안 간다던 예원이네 가족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테이블의 주제는 다시 옵션 이야기로 돌아왔다. 선주 누님이 비싼 여행사들은 옵션이 적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어디나 옵션은 다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뭐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테이블은 전부 옵션 선택한다는 쪽이었기에 마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슬기 누님네도 슬기 누님은 혈기왕성한 대학생이었고, 선주 누님은 혈기왕성한 나이는 아닌 것 같았지만(?) 내일 그 피로했던 런던 일정에서도 가이드가 농담으로 오후 투어 더 할까요? 했더니 주저없이 네!를 외쳤었다. (대단) 또 아주머니도 분명 선택 관광을 원하셨던 것 같았다. 물론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난 말할 것도 없고 엄마도 분명 확실한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동생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무심한 녀석.) 그래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와서 베르사유행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은 예원이네를 제외한 일행만 베르사유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선택 관광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강요하는 분위기여서 여행사에 항의를 하겠다고 하셨단다. (들은 이야기) 맞는 말이다. 솔직히 만약 내가 정말 가기 싫었던 사람이라도 분위기상 가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안 간 예원이네 가족도 정말 대단한 가족이다.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그 태도가 훌륭했던 건지 어땠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가게 돼서 다행이긴 했다. 그래도 예원이네 가족이 함께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씁쓸했다. 같이 했었다면 모두 함께 아름다운 파리를 조금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파리 일정의 중요한 알맹이들이 베르사유, 몽마르뜨, 야간 센느강 유람선 관광 옵션이었으니.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자유이지만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파리 일정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옵션, 선택 관광은 사실 파리에서가 마지막이었으니 끝을 맺도록 하자. 또 베르사유는 원래 일정에 없던 옵션이었다. 또 카프리 섬 옵션도 기상조건으로 인해 선택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뭐 꼭 강요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추천정도? 사실 베르사유 갔다와보니까 왜 가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에스까르고(달팽이)를 다 먹고 나니 쇠고기 스테이크를 가져다준다. 유럽의 스테이크는 조금 질기고 두꺼우며 짠 것 같았다. 내가 예상했던 스테이크가 아니었다. 뭐 웰던 미디엄 이런 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나니 웨이터가 디저트를 가져다준다. 디저트는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우리 테이블에서 2명이 커피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 웨이터가 내 것까지 커피를 3잔 가져다준다. 난 커피 선택 안했는데. 그래서 이 프랑스인 웨이터에게 아이스크림 달라고 “I don't have ice cream!" 이렇게 간단한 영어로 설명을 하니 대충 알아듣는데 수를 세어보며 아이스크림 3개, 커피 3잔, 됐나? 이런 눈치로 나에게 설명을 한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있나. 네가 잘못 알아들은 거잖아~ 그래서 그냥 커피 좀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그냥 나눠먹으려는데 다른 웨이터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가져온다. 미안했던 건가? 아니면 웨이터끼리 의사소통이 잘 안됐던 건가? 그래서 그 아주 계륵과 같은 아이스크림을 테이블 가운데 두고 6명이 나눠먹었다. 허허.

식당을 나서는데 아래층에는 (우린 2층에서 먹었다) 현지인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음, 한국인들로 꽉 찬 것보다는 훨씬 기분이 나았다. 한국인 패키지 여행객들이 많은 식당에 가서 먹게 되면 꼭 사육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식당을 내려왔는데 클래식 벤츠가 보였다. 한국에선 삼성 핸드폰이 많듯이 여긴 벤츠, BMW가 널려있다. 그래도 페라리는 드물다. 지금까지 3대정도 본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2대, 런던에서 1대.

점심을 먹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우리의 여행은 세계 3대 박물관을 모두 방문한다. 바티칸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대영 박물관. 그런데 아침에 루브르 박물관이 파업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에 우린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회의 끝에 정상 영업하기로 결정이 났단다. 대체 이 나라는 왜?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 특히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가지고 온 여행객들은 생각도 안 하는 걸까? 참 우스운 나라이다.

루브르 박물관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지난 번 새벽 1시에 전화를 걸다가 엄마가 끊어버린 일 때문인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어디냐고 물어봐서 루브르로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돈 걱정 하지 말고 여행 즐겁게 잘 다녀오란다. 엄마를 바꿔달라고 할 때는 “엄마 지금 전화 받을 수 있나?”면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하하하. 아빠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너무 웃겼다.

루브르 박물관은 15세기였나? 하여간 수백 년 전에 성채인가 요새인가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이름에 대한 유래가 두 가지 있다고 하던데, 켈트 어로 루브르가 요새란 뜻이었나? 대충 그랬던 것 같다. 왕정시대에는 궁궐로 쓰였다고 들은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다빈치 코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리 피라미드가 보였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라는데, 유리 조각이 총 666개 사용되었다고 하는 풍문이 있다. 그래서 악마의 건축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빈치 코드에선 솟아오른 삼각형이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몇 번의 동영상 촬영과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리슐리외, 쉴리, 드농관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은 ㄷ 자 형태로 되어있다. 또 유리 피라미드 근처에는 분수대가 있어 수많은 프랑스인들과 어린이들이 앉아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데도 약간의 검색이 있었다. 금속 탐지기를 통과한 후 박물관 안으로 입장했다. 박물관 내부에서 (쉴리 관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본 미술품은 밀로의 비너스였다. 말로만 듣던 그 밀로의 비너스. 밀로는 그 비너스 상이 발견된 장소의 이름이라고 했다. (앞으로 예술품에 관해 설명하는 모든 것들은 불확실함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런데 이 비너스 조각상은 그리스 시대의 작품인데, 왜 그리스 식으로 아프로디테라고 부르지 않고 로마식으로 비너스라고 이름을 붙였냐면 발견 직후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그 조각을 보고 ‘이건 분명히 비너스다!’라고 감탄했기 때문이란다.

많은 사람들(특히 일본인들)이 조각상을 사진 촬영하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어디서든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바티칸에서는 시스티나 성당을 제외한 장소에서만 허용되었다. (사실 허용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요원들이 서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었으니. 노골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쨌거나, 밀로의 비너스를 찍는데, 슬기 누님이 당당하게 비너스 상 앞으로 가 비너스 상과 사진을 찍는다. 그 전까진 아무도 비너스 상을 배경으로 인물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그런데 슬기 누님이 인물사진을 찍으니까 서양인들도 갑자기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허허. 한국인들에겐 인물사진 찍는 게 대수가 아니지만 서양인들은 좀 새로워하는 눈치였다. 하하, 대단한 한국인들이다. (물론 우리도 찍었다.)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회화 작품이 있는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천장이 무척 높았다. 천장에도 예술작품이 떡하니 그려져 있다. 그림보다 그게 더 대단했다. 그림들은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유리로 감싸져 있었고 높은 곳에 매달려있었다.(아닌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건 좀 값싼 거란 뜻이겠지.) 만약 NBA 농구선수 야오밍이 왔다면 어땠을까하고 상상해보았다. 야오밍 정도면 그림을 만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본 유명한 작품들은 어떤 누워있는 여자 그림(???), 나폴레옹의 대관식 모습, 난파선, 그리고 프랑스 혁명? 자유? 의 여신 그림이었다. 이 그림들은 책으로 많이 봤던 그림(난 예술사 관련 책은 잘 안 읽지만 역사 책은 자주 읽는다. 역사책에 항상 인용되는 그림들이라 그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이었다. 전체 작품들을 다 보지는 못하였다. 시간상 불가능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든 작품들 앞에 1분 동안 서서 관람할 경우 수학적으로 9달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러 저러하게 유명 작을 감상하다가, 드디어 초 유명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모나리자이다. 모나리자에 대한 경비는 다른 작품보다 훨씬 심했다. (생각보단 약했지만) 모나리자와 관람객 사이의 거리는 약 2m 이상이었고, 방탄 유리 처리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모나리자 그림 옆에는 모나리자만을 지키는 경비원이 2명 서있었다. 입구에서는 이 방에 모나리자가 있다고 표시가 있었는데, 모나리자 그림 밑에 La Joconde (Mona Lisa) 라고 되어있었다. 정식 이름은 조꽁드 백작 부인이란다. 모나리자의 이름에 대한 해석은 다빈치 코드에서도 나온다. 모나리자는 이집트의 정력의 신 아몬신의 이름에 대한 애너그램이란다. 하하. 흥미로운 분석이다. 모나리자를 보며 다빈치 코드에서 말한 여러 가지 측면들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그 방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감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Linkin Park 내한 공연의 스탠딩석, 미군들이 몰아붙이는 슬램의 천지를 견뎠던 내가 아닌가? 손쉽게 모나리자와 가장 가깝고 제일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Linkin Park 내한 공연의 경험이 앞으로 대영 박물관에서도 큰 활약을 해 주었다.

모나리자를 보고 나서 조각상이 많은 곳으로 이동했다. 성기자 가이드가 너무 빨리 이동하는 바람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갔다. 가니까 거기서 제일 유명한 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이름은 뭔지 모르겠지만, 관람객들이 많았다. 미켈란젤로였나?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라는데, 교황의 명령을 받아 만들던 걸 계획 중지로 인해 그만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남자의 상이지만 여자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어로 말하면 hermaphrodite 인 것이었다. 자웅동체인가? 다빈치 코드에서 좋아할 만한 소재였다. 이런 예술가들이 정말 시온 수도회의 회원이었을까? 실제 존재했던 단체라는데. 미켈란젤로가 이런 이교도적인 조각을 하다니.

우리와 함께 여행한 일행들은 몰랐겠지만 난 그 방을 면밀히 조사했었다. 조사 결과 이교도적이었던 사람의 작품이 꽤나 많았다. 그 사람은 바로 베르니니이다. 성 피에트로 광장을 설계했고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작품 천사와 악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이 그 방에 꽤나 많았다. 예술엔 무지하지만 베르니니라는 이름만을 보고도 일루미나티의 흔적을 따라온 것 같아 무척이나 흥분되었다.

대강 그곳을 관람하고 나오니 드농관 쪽으로 나왔던 것 같다. 나오니 내가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유리 피라미드 안에 있었다. 거기서 랭던처럼 무릎을 꿇었다. 성배가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가까이 있었으니 그냥 무릎을 꿇었다. (난 기독교인도 아닌데, 하하) 여기 파리에는 다빈치 코드의 내용을 따라가는 관광 일정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해보고 싶었다.) 나오는데 웬 프랑스 초등학생들이 출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뻔뻔해 보이는 어떤 녀석이 계속 날 보면서 웃기에 손 인사를 해주니 그 녀석도 인사한다. 하하.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대한항공에서 스폰서해서 루브르 한국어 안내 한다던데, 왜 우린 못 해봤지?)

루브르 박물관을 나와 꽁꼬르드 광장으로 이동했다. 꽁꼬르드(Concorde)는 불어로 화합을 뜻한다. 우리가 잘 아는 초음속 비행기 프랑스의 콩코드 비행기 이름과 같다. 예전에는 이름이 달랐다는데 비교적 최근(100년 전?)에 꽁꼬르드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서있는데, 이건 절대 약탈한 것이 아니란다. 이집트에서 증가하는 서구 열강의 위협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 잘 보이려고 선물한 것이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이제이라는 것.) 무척이나 이교도적이었다. (책들을 읽고 오니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게 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무척 도움이 된 것 같다.)

꽁꼬르드 광장에는 내리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바로 베르사유로 향했다. 예원이네 가족은 타지 않았다. 가는 도중에 프랑스 대통령(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거주하는 엘리제 궁이 보였다. 파리에서 약 40분을 이동한 끝에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다. 처음 받은 인상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하도 큰 건축물을 많이 봐서 그런지 프랑스 절대 왕정 시대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도 평범해보였다. 베르사유 궁전은 현재 공사 중이다. 혁명 후 그냥 방치되던 베르사유 궁전을 미국의 록펠러 재단에서 관심을 보임으로서 프랑스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베르사유 궁전은 혁명 전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공사 중인데, 2020년에야 완공이 된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베르사유 관광의 메인 메뉴라고 할 수 있는 거울의 방은 2005년? 쯤에 보수가 완료되었다고 했다.

베르사유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줄이 굉장히 길었다. 바티칸에서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그만큼 육박하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동안 베르사유 궁전의 외관을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옆으로 지나가는 프랑스인 가족들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 어린이들은 너무 귀엽다! (한국에 오니 애들이 못나진 것 같다.)

베르사유 궁전은 현재 유럽 각국의 왕실(스웨덴 등)에서 빌려온 은 식기와 왕실 생활 용품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우리가 가니까 그 전시회를 했다. 하지만 전시품들에 대해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단다. 전시중이지 않은 모든 물건에 대해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궁전은 정말 화려했다. 천장은 역시나 무척 높았고, 벽면이며 천장이며 전부 예술적인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옛 왕실에서 쓰던 그릇에는 칼질한 자국이 있었으며, 의자, 쟁반, 촛대 등 전부 보석과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실용성은 없어보였다. 만약 내가 여기서 살 권리가 주어진다면, 며칠 살다가 집을 팔게 될 것 같았다. 집은 너무 넓은데 정작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별로 없었다. 뭐, 그런 거야 가져오면 된다지만 이렇게 넓은 집을 돌아다니며 사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 것 같았다. 베르사유 궁전도 좋지만 난 우리 집이 더 좋다.

그런데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는데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한국인들은 못 봤지만 일본인들(일본인들은 없는 데가 없다.)과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등 세계인들이 한데 몰려있었다. 한 프랑스 꼬마 애는 계속 동양인인 내가 신기한지 쳐다보았다. 그래서 내가 Bonjour! 하고 인사하니까 수줍어서 웃기만 웃는다. 루브르 박물관의 그 뻔뻔한 녀석은 대체 뭐야? 애들은 원래 다 순수한가보다. 그런데 이 복잡한 사람들 틈에서 어떤 프랑스인 소녀(내 나이 또래처럼 보였음)가 갑자기 내 근처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 뭐야? 갑자기 날 한번 슬쩍 보더니 옆에 있던 할아버지를 슬쩍 본다. 할아버지와 그 소녀는 함께 웃는다. 뭐지? 왠지 껄떡거리는 것 같아서 전시회장을 나와 주머니를 확인해봤다. 내 점퍼 지퍼가 열려있는 것이었다. 어, 분명히 닫고 왔는데? 이 망할 소녀가 내 주머니를 연 것 같았다. 아까 그 인자해 보이던 할아버지, 한 패 아냐? 그래도 나한텐 훔쳐갈 물건이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동전 몇 푼이 전부였다. 도둑맞은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 소녀도 소매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탈리아에서도 못 느낀 소매치기의 공포를 여기서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오히려 이탈리아가 안전한 것 같다.) 앞으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게 되었다.

전시회장을 나와 거울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울의 방은 그야말로 거울이 많은 방이다. 화려하긴 화려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던 거울의 방은 아니었다. 책에서 읽은 거울의 방은 온 사방이 거울로 뒤덮여있어 광채가 찬란하다고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실제 거울의 방은 벽의 한 면만 일부 거울로 되어있고 반대 벽은 창문으로 되어있는 형태였다. 방이 아니고 사실 복도나 마찬가지였다. 거울의 방 끝에는 종이 모형으로 복원해놓은 왕좌가 있다. 멀리서 보면 정말 그럴듯하게 보인다. 여기는 사람들이 몰려 사진 찍기 바빴다. 거울의 방에서 왕의 침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 문으로 들어가 왕의 침실을 구경했다. 왕의 침실뿐만 아니라 여왕의 침실, 전부인(마리 앙뜨와네뜨)의 침실, 신하들을 접견하는 곳, 소개의 방(?), 국정을 토론하는 방 등 여러 방을 보았다. 그 중 왕의 침실이 단연 압권이었다. 왕의 침대가 정말 눈길을 끌었다. 그 방에는 루이16세 자신의 흉상도 놓여있는데, 침대가 영화 속에서 공주들이 누워 자는 그런 형식의 침대였다. 그런데 꼭대기에 큰 깃털도 두 개 달려있다. 우스꽝스럽기도 했고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그런 침대보다는 그냥 평범한 침대에서 자는 게 편하다. (루이의 침대는 별로 푹신해 보이지는 않았다.)

거울의 방을 나와 궁전 외부로 나왔다. 엄마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그랬다. 그래서 화장실 표시가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가보니 엥? 이게 뭐야? 금속 탐지기가 있다. 화장실로 가려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되었다! 하! 엄마와 동생은 금속 탐지기가 보여서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역시나 배짱 좋은 내가 먼저 실험삼아 들어갔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가 들어가는 걸 보고 안심한 엄마와 동생은 편히 볼일을 봤다. 베르사유의 화장실은 어떨까 상상을 해 보았는데, 실제 화장실에선 그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개인 변기가 아니고 정말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90년대의 매우 후진 고속도로 휴게소나 가야 볼 수 있는 변기였다. 개인 변기가 따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긴 철통에 소변을 봐야 했다. 상시 물이 흘러나와 오물이 하수구로 흘러내려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Le Cafe 앞에서 엄마와 동생을 기다렸다. 엄마와 동생을 만나 그 Le Cafe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어느 프랑스 노신사가 Toilet? 하면서 묻는다. 우리가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 헤매는 줄 알았나 보다. (근데 바로 앞이 화장실인데 왜 우리가 헤맨다고 생각한 거지?) 어쨌든 No.라고 말하니까, Oh. 하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프랑스 사람들 중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군.

Le Cafe로 결국 들어가 보았다. 가격은 역시나 관광지답게 안 그래도 비싼 유럽의 물가를 1.5배 이상 뛰어넘었다. 이탈리아에선 0.90 유로이던 초콜릿 빵이 여기선 1.40유로이다. 그 초콜릿 빵, (불어로는 Pain au chocolat 이더라.) 그걸 2개 주문하고 찬 우유 한 잔을 주문했다. 대략 동전으로 4.5유로를 썼다. 그런데 영어로 물어보니까 여기 점원 아주머니가 상당히 불친절한 느낌을 줬다. 불어로 하는 사람한테는 친절한 것 같던데. 자기 나라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건지, 언어가 딸려서 불친절해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빵은 맛있었다.

베르사유 궁전 내부를 다 둘러보고 외부의 정원을 보러 나갔다. 예정 만남 시간이 3시 30분이었는데 그 때가 약 3시 10분경이었다. 20분밖에 없는데 정원은 엄청나게 넓었다. 우리는 정원을 다 봤다고 생각하고 돌아가려는데 또 엄청난 크기의 정원이 밖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까지 다 내려가 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고 급하게, 우리랑 마찬가지로 시간에 쫓겼던 정아 누님네와 만나 베르사유 궁전 앞으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시간은 딱 맞게 3시 30분이었다. 성기자 가이드님이 “뛰지 마세요. 여행 와서 뛸 것 뭐 있습니까? 늦은 것 아니예요. 딱 제 시간에 오셨네요.” 라고 말씀하신다.

베르사유를 다 둘러보고 버스를 타서 다시 파리 시내로 들어갔다. 가는 동안 성기자 가이드님이 나폴레옹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셨다. 우린 나폴레옹이 다녔던 옛 프랑스 육군 사관학교 건물에 도착했다.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ARTILLERIE라고 정문에 쓰여 있었다. 무슨 포병학교인가? 나폴레옹도 포병 출신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육군 사관학교 건물 앞에는 에펠탑이 바로 보였다. 에펠탑 바로 앞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 공원에는 어떤 프랑스의 장군 상이 세워져 있었고, 내가 난생 처음 보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평화’라고 쓰여 있는 유리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 아랍어 등으로 쓰여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예원이네 가족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에 내 나이 또래정도 되어 보이는 프랑스 소년 2명이 공을 가지고 공원에 마련된 작은 축구 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약간의 발재간을 선보이며 느릿느릿 구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내가 프리스타일 스킬을 선보여주지 못한 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다. 유럽에는 사람들이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진 것 같다.

공원에는 자전거 대여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파리 시는 점차 자동차를 없애는 분위기가 되어간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거리, 그렇게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도 2020년경이 되면 전부 인도로 변할 거라고 한다. 샹젤리제 거리도 인도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파리 시민들은 자전거 대여 카드를 만들어서 카드를 기계에 찍고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아무 목적지에나 자전거를 30분 이내에만 가져다 놓으면 이용료는 없다. 그러나 이용시간이 30분씩 늘어날 때마다 2유로, 4유로, 8유로 이런 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단다. 파리 시민이 아닌 경우 150유로 정도? 분실 시를 대비해 자전거 값을 담당 기관의 통장에 예치해 두어야 한단다. 유럽은 자전거가 다니기 편한 동네이다. 한국은 자동차가 없으면 안 되는 사회인데, 여기선 담배피고 자동차 끌고 다니는 사람이 제일 부자란다.

장 드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파리 시 곳곳을 보면 JCDecaux라고 쓰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는데, 이 드꼬라는 사람이 옛날에 파리의 광고권을 사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꼬는 옛날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회사는 아직까지 파리 시내의 광고권을 갖고 있는가보다. 아까 그 자전거 대여기에도 광고권을 가지고 있단다. 광고권을 갖는 대신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참 대단하다. (심지어 런던에서도 JCDecaux를 볼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한식이었다. Dammie(다미)라는 식당이었다.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고 식당도 작았다. 현지인은 볼 수 없었다. 이 식당은 로마에서의 한식당과는 달리 꽤 만족스러웠다. 식당 외벽의 작은 모니터에서는 대장금 드라마가 상영 중이었다. 인테리어도 깔끔했다. 음식은 한국의 여느 식당들과 비슷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만족스러웠다. 여기는 큰 테이블에다가 자리도 널찍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앉았다. (현지 식당은 테이블도 너무 작고 좌석도 너무 좁았다. 서양인들은 덩치가 큰데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예원이네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향했다. 대신 우리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몽마르뜨는 Mont Martre(?), 순교자의 산, 대충 이런 의미이다. 영어의 순교자란 뜻의 Martyr가 여기서 몽마르뜨의 마르뜨에서 유래한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 어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는데 그걸 기리기 위해 언덕 위에 성당이 세워졌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몽마르뜨에 도착하자 점점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성기자 가이드님이 꼭 붙어 다니라고 했다. 그래도 꼭 붙어 다니라고 붙어 다니는 내가 아니지 않는가? 막 떨어져서 다니다가 웬 흑인이 하나 접근한다. 이런 제기랄! 인터넷에서 봤던 그 흑인이잖아! 이 녀석들은 손가락에 실을 감아주면서 행운을 빌어줬다며 돈을 요구한다. 인터넷에 여행기를 올렸던 한 분은 한 흑인 녀석의 주먹에 맞았다고 했다. 망할! 이 흑인 놈이 나한테 접근하잖아! 단박에 그런 놈임을 알아챈 나는 No, no, no, no! 하며 거리를 두었다. 뭔가를 시도하려고 했던 녀석은 나한테 걱정하지 말라며 Don't worry, no problem. 이러면서 그냥 지나가란다. 호, 이 자식은 그래도 약간의 매너는 갖춘 모양이군. 그걸 보며 성기자 가이드님이 꼭 붙어 있으라신다. 엄마와 동생은 날 보고 웃는다. 젠장.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당당하게 맞섰다가 주먹으로 맞으면 책임질 거야?)

사진은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서야 찍을 수 있었다. 올라가는 도중에 상점들도 많았지만 소매치기 같은 못된 놈들이 있을까봐, 또 가이드의 주의 때문에 찍지 못했다. 걸어서 대충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리프트가 있었다. 표를 끊어 리프트를 타고 최종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데 옆에 프랑스 여자 애(10살 정도? 자매처럼 보였음.) 2명이 나란히 앉았는데, 너무 예쁘다. 크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애들은 너무 귀엽고 예쁜 것이 이 나라인 것 같다.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서 여러 상점들을 구경했다. 꼭대기에는 로마의 나보나 광장에서처럼 화가들이 잔뜩 있었다. 개중에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Five minutes! 라며 호객 행위를 하는 초상화 작가도 많았다. 제길. 아무리 값이 싸고 아무리 빨리 그려도 미안하지만 들고 가는 게 곤란해서 못 산답니다. 이 화가들도 아무래도 영업 방식을 바꿔야 될 것 같다. 누가 한국어로 ‘쉽게 들고 갈 수 있어요!’ 그랬다면 하나 샀을지도 모른다.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 주변에는 상점들, 까페, 특히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는 피아노 까페들이 많았다. 밖으로 웨이터들이 나와서 호객 행위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다 둘러보진 못했다. 몽마르뜨에서 만났던 일행들도 시간이 없어서 너무 아쉽다며 하소연한다. 패키지로 와서 볼게 아니라 이런 걸 다 둘러보려면 자유여행을 와야 한다. (그런데 왜 한국의 카페나 레스토랑, 식당들은 인테리어나 외관을 유럽처럼 깔끔하게 해 놓질 못할까? 한국에 오니 다들 너무 똑같아서 삭막한 느낌을 준다.)

대충 보고 나서 몽마르뜨 꼭대기의 큰 성당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엄청나게 엄숙한 분위기였다! 여긴 관광지가 아닌가보다! 조명은 촛불로만 밝혀져 있고 현지인 6명 정도가 출입구에서 먼 쪽에서 찬송가 같은 걸 부르고 있었다. 여기가 성심성당이라고 했나? 하여간 정말 엄숙한 분위기였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온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근처의 의자에 앉아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인의 신, 하느님께 ‘내가 당신이 우주를 창조하신 질서를 인간들 중 가장 먼저 알게 해 달라’고 빌면서 기도했다. 하하. 주제넘은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언덕을 내려와 다시 리프트가 있는 곳까지 왔다. 이번에는 걸어 내려가야 했다. 계단이 엄청나게 많았다. 게다가 가파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계단 옆으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그 집들 안에 사람이 정말 살고 있다! 유럽에 와서 놀라게 되는 점들 중 하나는, 정말 한국에서는 유적지처럼 보이는 건물들 안에도 사람이 산다는 점이다. 몽마르뜨에서 내려오는 길에 내 발 근처에 작은 창문이 있길래 들여다봤더니, 서재가 마련되어있고 한 아저씨가 거기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갑자기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았다. 하! 이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우리에겐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그래도 여긴 여전히 일본인이 많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또 흑인을 만났다. 아까와는 다른 녀석이었지만 이 흑인들은 수가 많았다. 이번에도 놈은 나한테 달라붙는다. 내가 No, no, no. 라고 거부하니까 막 It's a tradition here. Look!(이건 여기 전통이야, 저거 봐!)하면서 옆에 진짜 하는 사람을 보여준다. 그 사람이 불쌍하다. 일본인이었던 것 같다. 해놓고 돈 달라 하겠지. 그래도 No를 반복하니 Augh! 하며 포기한다. 그 후로는 계속 일행 곁에 붙어 있게 되었다. 하.

이번엔 에펠탑의 발광 쇼를 보러 갔다. 오후 8시가 되면 에펠탑이 10분 동안 번쩍거리는 쇼이다. 어두워지면 에펠탑은 새벽 2시까지는 조명을 켜고 있는데, 번쩍거리는 발광 쇼는 10분간만 진행한다. (2000년도부터 8년간 계속한 일이라고 한다. 앞으로 2년 동안 더 한다나?) 성기자 가이드님이 프랑스의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는데, 2000년 밀레니엄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하는 시계가 프랑스 거리 곳곳에 놓여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밀레니엄을 맞아 샴페인을 사들고 집 근처의 카운트다운 시계에 모여 축하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각국 신문사들의 기자들도 여기에 모여 취재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을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0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밀레니엄의 순간에 시계들이 한꺼번에 고장이 난 것이란다. 하하하. Y2K 버그인가? 정말 웃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온 샴페인을 전부 버려 청소부들이 샴페인을 수거해서 팔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우리가 내린 곳은 파리에서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는데, 이곳은 영화 러시아워3에서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8시가 되자, 에펠탑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친 듯이 발광한다. 우린 그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일본인들이 역시나 많았다. 일본인들은 행색이 한국인들과는 분명 다르다. 여행 온 게 아니라 놀러 온 것 같다. 사진을 찍고 버스로 8시 10분까지 돌아와야 했다. 8시 30분에 센느강 유람선을 타야했으니까. 그런데 5명이 안 온다. 그러자 카리스마 있는 성기자 가이드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직접 나가서 그 5명을 찾는다. 그 5명은 슬기 누님네 3명과 정아 누님네 2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성기자 가이드님은 “여긴 항상 5명이 분위기에 심하게 취하시네요.” 이러셨던 것 같다. (전부 고려대 가족이네.)

다행히 유람선 시간에는 늦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온 것 같았다. 승선권을 받아 기계에 넣었다. 기계가 승선권의 일부를 찢는 형식이었다. 찢긴 승선권은 다시 사용할 수가 없는가보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바또무슈라는 회사의 소유였다. 파리에서 가장 큰 유람선 회사란다. 지금까지 1억 명(?)의 승객을 나른 유람선 회사란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이니 음료수를 사 마시면서 기분 좀 내 보려고 했는데 잔돈이 없어서 그냥 안 샀다. 사실 안사길 잘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강바람의 영향으로 2층은 무척이나 추웠으니까. 추위에 강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바람막이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도 추워서 떨었다. 물론 처음엔 괜찮았다. 그런데 한 9시쯤 되니까 점점 바람이 심해지더니 9시 30분쯤에는 1층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살 것 같더군.

추위 이야기는 이쯤하고, 센느강 유람선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다. 유람선 안에서는 안내방송을 불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이렇게 6개 국어로 방송하였다. 그 6개 국어 안에 한국어가 들어간다는 게 신기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긴 한가보다. 사실 유람선 안에선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한국인 60%, 프랑스인 25%, 중국인 10%, 일본인 5% 정도 되었던 것 같다.(체감) 한강 유람선도 서울사람들은 잘 안탄다더니, 여기서도 그게 맞는 법칙인 것 같았다. 죄다 동양인이다. 지나가면서 어느 고급 유람선(레스토랑 있는 유람선)이 지나갔는데, 사람들 전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가 내가 손을 크게 흔드니까 그쪽에서도 손을 흔들어준다. 여기서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 등 파리 시내의 유명 건물들을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시내 유명 건물들이 센느강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유람선이 처음에는 정말 로맨틱하고 좋았는데 나중에 10개정도 되는 다리를 통과하고 나면(수많은 다리를 통과한다.)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배 위에서 랩을 했다. Eminem의 Big Weenie, The Way I Am, Lose Yourself 등 몇 개의 명곡들과 몇 개의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불렀다. 한 6곡정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부르다보면 추워서 입이 저절로 다물어지고 지친다. 1시간 20분짜리니까. 결국 9시 30분에 1층으로 내려가 안내 방송, 풍경 따위는 다 무시하고 지쳐서 잤다. (그래도 센느강에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봤다. 미국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 자유의 여신상을 축소해서 보내준 선물이란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선물해 준 것이다.)

유람선 일정까지 모두 마치고 버스로 귀환했다. 성기자 가이드는 유람선에 타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타세요. 나중에 사진으로 찍어뒀다가 안내 책자 보면서 확인하는 게 더 편합니다. 저게 뭘까 고민하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입니다.” 이러시고는 우리가 도착할 선착장으로 가셨다. 도착해서 가이드를 만나 버스에 탄 후, 가이드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외곽의 Relais Hotel로 향했다.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

도착하고 나서 버스에서 내린 후 늘 그랬듯이 호텔 안에 들어가 키를 받고 방 안에 가방을 내려놓은 후 씻고 렌즈를 끼고 누워 잤다. 오늘은 정말 고단한 하루였다. 내일은 지금까지의 최고 수준인 4시 반, 5시 반, 6시 반이다. 런던까지 유로스타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하. 기운이 쭉 빠진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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