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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6 (7일)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6 (7일) 국내외 여행정보 2008.09.09 11:58

미친놈의 서유럽 원정기6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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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척이나 피로하게 느껴진다. 어제 꽤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서 그런가? 사실 여행 오기 전에는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일정보다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더 많이 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 와서 생각해보니 더 많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고(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만), 또 잠시 들렀다가 사진 몇 장 찍고 이동하는 것도 이젠 질릴 지경이다. 조금만 더 제대로 관람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아마도 그건 나의 과도한 희망사항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빡빡한 일정과 제대로 된 관람은 모순된 것일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4시 30분부터 난리다. 일본인이나 다른 유럽 관광객들은 여유롭게 관광한다던데. 패키지여행의 큰 단점 중 하나이면서 큰 장점이기도 하다. 힘든 것이 단점이지만 남들이 일찍 일어나니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만큼 자유여행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다.)

5시 30분쯤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먹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레퀴프를 꺼내들어 읽었는데, 뭐야? 어제 신문이랑 똑같잖아? 신문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건가? 하여간 크로아상과 주스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잠을 떨쳐버리기 위해 에스프레소 커피를 병아리 눈물만큼 마셨다. 무척이나 쓰다.

6시 30분에 호텔에서 출발했다. 오늘이 실질적으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만큼 제대로 돌아다녀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출발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사 아저씨(청년)가 짐을 실어준다. 얼마 안 되어 파리 역에 도착했다. 우린 여기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게 된다. 해저터널을 지나가는 기차인데, 런던까지는 겨우 2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시차 덕분에 한 시간 벌기 때문에 8시쯤에 출발해 9시 30분에 도착한다.)

우린 대략 7시경부터 도착해 랜딩 카드를 작성하고 출국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런던으로 가는 길은 같은 EU 국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보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부 통과하는데 우리 일행은 대략 30분을 가만히 서서 보냈다.

7시 30분경이 되자 우리의 이혜경 가이드님이 드디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린 그룹이라 그런지 일반 승객들과는 다른 통로로 빠르게 수속을 했다. 그런데 내가 영국인 수속 직원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한 프랑스 여성이 프랑스어와 영어로 ‘7시 45분’을 반복해서 외친다. 7시 45분 기차가 거의 출발 직전이었기 때문에 수속을 8시 몇 분 기차였던 우리보다 먼저 해주었다.

결국 내 차례가 되어 영국인 수속 직원 앞에 섰다. Morning. 이라고 인사하니 저도 Morning. 이라고 답한다. 하하! 인사는 정말 재밌다. 여권을 주니까 얼마나 머물 건지 물어본다. 하루 머문다고 답했다. 왜 가냐고 물어본다. 관광하러 간다고 답했다. 그러니 저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당신 일행이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말했다. 당신이 투어 리더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가이드 누님이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그러니까 들여보내 준다.

언제나 그랬듯이 외투와 가방을 풀어 엑스레이 검사대에 올려놓고 금속 탐지기를 통과했다. 다행히 이번엔 검색을 당하지 않고 바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검색대 통과 과정이 정말 일이 아닌 일이다. 뭘 많이 들고 가면 짐 풀고 검색도 받아야 되기 때문에 힘들다. 간단히,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챙겨가는 것이 장기간 여행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여기 면세점에서 잠깐 쇼핑할 시간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그냥 벤치에 앉아있었다. 영국인 꼬마를 구경하면서. 애들은 무척이나 귀엽다. Eminem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이 많다. 한 꼬마 녀석이 걸어 다니는데 무척이나 잘 넘어진다. 우리 일행이 앉아있는 벤치 앞에서 계속 넘어지기에 아버지 되시는 분이 ‘얘는 항상 넘어져요.’ 이렇게 설명해준다. 하하. 너무 귀엽다.

시간이 되어 유로스타 플랫폼으로 향했다. 유로스타는 엄청나게 길었다. 우리가 4번 Coach(칸)였는데, 플랫폼 입구에서 그까지 걸어가려니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다. 신혼부부 아저씨는 “아니, 이거 왜 이렇게 먼 거예요?” 하시며 불평하셨다. 왜 이렇게 먼 건지는 나도 알 길이 없지만 그 분은 할 말은 꼭 하시는 분이신 것 같았다.

가족이 3명이다보니 좌석은 엄마와 동생, 내가 또 따로 배정되었다. 2인 좌석 하나, 1인 개인 좌석 하나. 고로 한 명은 다른 사람과 앉아야 한다는 말이다. 역시나 내가 개인 좌석에 앉았다. 영국으로 가는 만큼 30대 영국인 남성 축구팬이 옆에 앉기를 바랐다. 역시나 불가능한 바람이다. 대신 슬기 누님이 옆에 앉으셨다. 이런. 싫은 건 아니었지만 정말 친하지 않은 여자가 아니고서는 무슨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는 나로서는 약간의 단점이었다.

유로스타를 타면서 꼭 해저터널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절대로 잠을 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Linkin Park의 2007년 내한공연 음원을 음량 최대한으로 설정시켜놓고 들었다. 아, 유럽에서 내한공연의 즐거움을 되살리는 것 같아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마음 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헤드뱅잉을 하면서 설칠 수는 없었다. 옆에 누님이 앉아 계셨기 때문에. 설치지 않고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지루했다. 그래서 Pink Floyd의 Dark Side of the Moon 앨범을 듣다가 잤다. 허허.

자다가 한 정거장에서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몇 프랑스인들이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잤다. 계속 자기만 하다가 잠깐 일어나보니 사방이 깜깜했다. 와우! 해저터널 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방이 어두우니 창문이 거울 역할을 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이 현상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었다.) 찍으면 내 사진이 나왔다. 하하.

터널을 지나자 영국 땅에 도착한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이 초원이었다. 로밍폰도 갑자기 시간 설정을 다시 하겠냐고 물어본다. 프랑스보다는 한 시간 늦고, 한국보다는 9시간 늦다. 영국은 그리니치 표준시가 적용되는 지역이다. 대학생이 되면 그리니치에도 가보고 싶다. 영국 땅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기차 안의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화장실은 비행기 기내 화장실과 비슷했다. 별 놀라운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기내에서처럼 변기물이 폭탄 터지듯이 내려간다. 그것 때문에 살짝 놀랐다.)

영국 땅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런던 St. Pancras 역에 도착했다. 와! 감회가 남달랐다. 내가 9년간 영어를 배운 것이 오늘을 위해서였던가? 처음으로 영어권 국가에 도착했다. 특히 영국식 영어는 내가 정말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런던에 도착해서 엄청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9시 30분쯤에 St. Pancras 역에서 내려 수많은 영국인들을 보았다. 역 내에는 영어로 Way Out과 불어로 Sortie가 병기되어 있었다. Way Out을 보고 정말 내가 영국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영국! Great Britain! 수많은 영국인 밴드들과 그들의 음악, 그들의 문화, Monty Python 등 영국에 관한 것들이 죄다 떠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동경만 하던 그들의 문화를 이제 직접 느낄 수 있다니! 또 영국은 Newton이 태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앞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역할 모델들 중 한명인 뉴턴의 고향이 바로 여기, 영국이다!

St. Pancras 역에서 간단한 입국 수속을 하고 역 내를 걸었다. 매우 깨끗했다. 영국식 악센트가 곳곳에서 들렸다. 혓바닥을 내밀고 발음하는 것 같은 강한 영국식 악센트는 꼭 독일어나 불어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쨌든 듣기 좋다.

역에서 얼마를 걸어가니 버스가 보였다. 우리가 하루 동안 타고 다닐 버스이다. 좌석이 일본처럼 한국과 반대였다. (프랑스와 반대로 하려고 그랬다지?) 버스 기사는 인도인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흑인들이 무척 많았던 것 같은데, 여긴 인도 출신이 꽤 많았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 흑인들이 잡일을 많이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인도, 아랍 출신이 역이나 공항 청소와 같은 기피 업종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 같았다. 계급 사회가 없다고는 하지만 계급 사회가 있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영국은 진짜 계급 사회가 있다. 귀족과 평민, 왕족이 구분된다.)

버스에서 내 고정 좌석(비상 출구 바로 뒤)에 앉으려고 했는데, 거기 쓰레기봉투가 걸려있었다. 오물이 뚝뚝 떨어졌다. 뭣도 모르고 앉았다가 손에 오물을 묻혔다. 냄새가 심했다. 젠장. 청소를 안 하는 건가? 나중에 느낀 거지만 한국 버스가 최고다. 정말로.

버스 안에서 런던 일정을 책임질 가이드를 볼 수 있었다. 30~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 분이셨는데, 푸근한 인상이 좋았다. 이 가이드는 초장부터 영국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영국 집은 허름해 보이지만 속은 정말 살기 좋다. 도시 가스가 다 들어온다. 과학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이작 뉴턴과 스티븐 호킹이 여기 출신이다. 영국에는 계급 사회가 있다. 영국 왕실이 오랜 군 복무 전통을 자랑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왕실을 자랑스러워한다. 이혼녀들은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복지가 잘 되어있다. 학생들은 박물관 출입이 무료다. 학생들에게 엄청난 편의를 제공해준다. 의료 혜택이 무료다. 뭐, 이런 내용을 줄줄 읊으셨다.

런던 이동 중에 Kings Cross역과 Pink Floyd의 앨범 Animal의 표지에 나왔던 공장을 볼 수 있었다. Kings Cross역은 해리 포터에 등장했던 역으로, 9와 4분의 3 승강장이었나? 그걸로 유명하다. 정말 거기 들어가 보고 싶었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그 부근은 관광객들로 넘쳐나겠지. (진짜 벽에 카트를 들이받는 바보들도 넘쳐나겠지.) Animal 앨범 표지에 나왔던 그 공장은 옛날 화력 발전소 공장이었다고 한다. 옛날 잭 더 리퍼가 날뛰던 영국의 19세기 후반은 (셜록 홈즈가 살던 그 시절) 석탄 시대였으니 화력으로 발전을 해야 했겠지. 그러면 당연히 매연이 발생할거고, 그래서 런던의 하늘이 우중충한가보다. (추측) 하여간 런던의 하늘은 엄청 우중충하다. 그래도 비는 중간에 아주 찔끔 내리다 그쳤다. (다행히 우산 필요 없었음.) The London Dungeon 이란 곳도 있었다. 입구에 Enter at your peril 이라고 쓰여 있는데, 가상의 잭 더 리퍼도 볼 수 있는 가상의 공포 체험 공간 같았다. 이것도 먼 훗날의 자유여행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 유명한 2층 버스와 맥도날드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맥도날드 없는 대도시는 정말 있을까?

런던 시내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대법원 건물 앞에서 내렸다. 법관들이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담배 피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얼마 걸어서 달걀 모양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혁신적인 형태의 신식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달걀 모양의 건물은 런던의 랜드 마크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 건물 앞 광장에서 그 유명한 타워브리지를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시간은 45분 준다고 했다. 오? 꽤 많은 시간이다. 간단한 타워 브리지 관광에 45분이나? 로마의 가이드는 그냥 스쳐지나갈 정도로만 시간을 줬는데. 시간 많이 주는 점은 좋았다.

난 뛰어서 타워브리지까지 올라갔다. 차가 많이 다녔다. 몇몇 관광객들도 보였다. 그러나 타워브리지 건물 꼭대기로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문이 잠겨있었다. 그래서 다리 위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왔다. 왕관이 보관되어 있다는 성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차례의 절도 시도만 있었단다.)광장 근처에 탬즈 강변에 영국 해군의 군함이 있었다. HMS Belfast였다. 퇴역 후 지금은 박물관 정도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까지 또 뛰어갔다. 영국인들은 학생에게 박물관 출입 요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가려했더니 상점처럼 보이는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야 했다. 시간이 없어 상점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학생용 티켓은 무료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겐 돈이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문제였다. 제길. 프랑스 학생들 천지였던 HMS Belfast호를 뒤로 하고 버스로 돌아갔다. (근데 이건 엄마가 해준 이야기인데 어떤 행인이 걷다가 자전거에 치일 뻔하자 자전거 타던 사람이 IDIOT! 하고 외쳤단다. 하하.)

그런데 이번 런던 가이드는 정말 무척이나 무심하다. 대체 손님들을 챙기는 거야, 안 챙기는 거야? 약속장소에 대충 사람들이 모인 것 같으니까 그냥 버스로 자기 혼자 멀찍이 떨어져서 간다. 16년 동안 여기서 가이드 일을 해서 손님들 상태는 대충 꿰고 있다더니.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사람 수는 세보고 가야지. 허허허. 그래도 설명하는 것은 잘 해주신다. 결국 버스까지 5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기다리다가 다 모이자 출발했다. 가이드의 어떠한 허술함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에는 빅벤과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했다. 잠깐 내려 걸어서 이동했는데, 신호등이 이상하게 생겼다. 버튼이 있었고, WAIT 라고 불이 들어와 있었다. 버튼은 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WAIT 불이 꺼지니 걸어가도 되었다. 신호등도 신기하군. 걷다가 누가 손가락으로 툭툭 친다. 선주 누님이 나한테 “그, 에단 호크 나오는 분수대에서 뽀뽀하는 영화 있잖아, 그 영화 이름 뭔지 알아?” 하고 물어보신다. 응? 그 신혼부부 아저씨에 이어 이해하기 힘든 질문 작렬이다. 내가 알 것 같이 생겼나? 난 영화에 대해선 잘 모른다. (밀리터리, 미스터리 영화 쪽은 좀 알지만.) 그때는 에단 호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에단 호크와 귀네스 팰트로 주연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아저씨가 지난번에 레만 호에 관한 소설 있냐고 물어본 것과 비슷한 맥락이겠다. 생각해보면 서울 사람과 경상도 사람의 차이가 아닌 그저 내가 ‘똑똑해보여서’ 물어본 것 같다. 하하. 몰라서 당황하긴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계속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진짜 빅벤과 국회의사당 앞으로 간 것이 아니고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국회의사당은 강 건너편에 있었다. 잘 보이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는데. 이번 여행은 가히 사진 촬영 여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면세점에선 1시간 30분 시간 주면서. 제발 쓸데없는데서 시간 보내지 말고 제대로 된 데서 제대로 된 관광을 좀 합시다! 이것이 대한민국 패키지여행의 크나큰 문제점 중 하나이다. (돈 싼 건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거기서 아주 런던에 온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난 기분에 취해서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Part 2), Radiohead의 Creep, Idioteque 등을 불렀다. 제길! 너무 기분이 좋아! 기분이 너무 좋아 당시에는 불평할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성에 안차서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의 첫 번째, 세 번째 Scene의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 남들은 날 미친놈으로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때 너무 즐거웠다.

빅벤에서 버스를 타고 피카딜리 광장으로 이동했다. 피카딜리 광장은 영화 Das Boot (한국명 특전유보트)에서 U보트 승무원들이 부르던 It's a Long Way to Tiperarry에 등장하기도 한다. (밀리터리 영화에 대해서나 좀 물어봐주지.) Good bye Picadilly, farewell Leicester square! It's a long, long way to Tiperarry, but my heart's right there! 이 구절을 계속 반복하면서 피카딜리 광장에 온 기분을 만끽했다. (그 광경을 보고 혹시나 놀란 영국 수병이 있을지도?)

피카딜리 광장에는 런던에서 유일하게 전광판 광고가 실시되고 있단다. 거기에 당당하게 박혀있는 제일 큰 광고판이 바로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의 광고였다. 정말, 세계 곳곳을 다니다보면 삼성 광고판 없는 지역이 없다. 로마의 퓨미치노 공항은 완전히 삼성 광고판으로 도배를 해 놓았었다. (정말 뻥 안치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삼성 광고였음.) 하지만 내가 눈 여겨 본 것은 삼성 광고가 아니었다. 바로 Monty Python 광고였다! 젠장! Monty Python이 여기 런던에서 상영 중이란다. 비행기 안에서도 Monty Python 틀어준다더니 (못 봤지만) 영국에서 Monty Python의 인기는 정말 대단한가보다. 하긴, 아는 외국인들도 전부 Have you ever heard about Monty Python? 하면 전부 Sure, Definitely, Absolutely hilarious, You should watch it 등의 답변을 했었다. 그게 내가 Monty Python을 보게 된 계기였다. 어쨌든 2, 30년 전의 코미디를 지금도 공연 형식으로 극장에서 한다니, 정말 놀라웠다.

피카딜리 광장에서도 역시나 사진 촬영만 하고 나왔다. 점심때가 다 되었기에 우린 한식을 먹으러 런던의 골목을 걸었다. Korean Kitchen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는 파리에서보다 더 훌륭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버스 안에서 너무 배가 고파 기사 몰래 몽쉘 카카오를 몇 개 먹었더니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많이는 못 먹고 밥 한 공기만 먹었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꼭 한명이 2인분을 먹을까? 그러면 처음부터 2인분 분량을 1인분으로 정하면 되잖아?) 옆에 앉으셨던 성진이네 아저씨가 나보고 더 먹으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성진이네 아저씨는 정말 좋으신 분 같았다. 나에게 배낭여행 하는 법도 몇 가지 알려주셨다. 3일중에 하루는 일정을 잡고 이틀은 무 일정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좋고, 친구 한 두 명 정도 같이 다녀야 외롭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아저씨는 테이블마다 소주도 돌리셨다. 소주가 꽤 비쌌던 것 같다. 한 병에 우리 돈으로 약 만원 했던 것 같다. 통이 크셨다.

식당에는 현지인 3명이 우리와는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 한번 와 본적이 있었던 사람들 같았다. 자기가 김치 먹어봤다면서 뭐 이거 시키면 괜찮겠네 이런다.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 이었던 것 같다. 뭘 시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식을 먹는 현지인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한국에 와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카페인 Redcafe.net에서 알게 된 건데, 여기 사람들은 한국 음식에 대해서 꽤 알고 있었다. 한 팬은 Park이 Kimchi와 Ginseng(인삼)을 먹어서 Fulham전에서 활약했다면서 Ginseng은 자기도 영국에서 Ginseng을 try 해 보겠단다.)

식사 후에 면세점으로 이동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 봤던 한 백화점이 있었는데, 이름은 일본식으로 Mitsukoshi(미쯔꼬시)였다. ‘어, 여긴 백화점 이름도 일본식이네. 한국식 이름은 없겠지.’ 이렇게 생각해보았던 백화점이 바로 우리가 들른 면세점이었다. 점원들도 거의 다 일본인들이었고 손님들도 전부 일본인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런데 더욱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것은 여기서 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간에 대영박물관에 조금 더 일찍 갔더라면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이집트와 중남미의 유적들을 더 많이 보고 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이집트와 중남미 문명 유적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게 메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쨌거나 불만은 일단 접고 미쯔꼬시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하 1층에는 명품 가방이나 지갑 등을 팔았고 2층에서는 옷을 팔았다. 지하에는 일본 서점과 기념품점이 있었다. 한국인 직원의 설명을 대충 듣고 면세 카드를 받은 후 쇼핑을 시작했다. 사실 지상 1, 2층에서는 살 게 없었다. 엄마와 동생을 내버려두고 바로 지하로 내려갔다. 일본인 천지였다. 서점에 들어갔다. 영어책을 파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부 일본어 책이었다. 일본 만화책도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염색하고 화장 떡칠한 젊은 일본 여자 두 명이 서점에 들어와 하는 말이, “에, 여긴 일본이잖아. 영국이 아냐.” “맞아, 여긴 일본이야. 딴 데로 가자.” 바로 옆에 있는 기념품점으로 가서는 귀여운 척을 하면서 “아, 여긴 일본이 아냐. 이 초콜릿이 뭐지?” 하며 두 명이 입을 맞춰 귀엽게 (나한텐 역겹게) “고!” “디!” “바!” 한다. 으허허.

나도 기념품점을 둘러보았다. 초콜릿, 홍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청난 코너를 발견했다. 축구 기념품 코너! 눈이 돌아갔다. 아까 피카딜리 광장 주변의 가판대에서 잉글랜드 국가 대표나 런던의 유명 구단 레플리카를 팔았었다. 그런데 시간과 파운드가 없어서(아쉽게도 유로로만 환전했음. 스위스 프랑과 파운드로 환전을 했으면 좀 나았을걸.) 거기서는 사지 못했다. 런던에선 기념품을 못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유로를 받는 면세점에서 드디어 구입할 기회가 생겼다! 여러 가지 기념품들이 있었다. 비니, 머그 컵, 목도리, 담요, 공, 열쇠고리, 깃발, 필기구 등이 있었다. 하여간 종류는 엄청 많았다.

종호 형님을 거기서 만났는데 그 형님은 공을 두 세 개 정도 사셨다. 그런데 공은 정말 질이 떨어졌다. 한국 마트에서 5000원 정도 하는 공 수준이었다. 그 형님은 그걸 친구들한테 선물해 준다는데, 만약 친구들이 공 좀 볼 줄 안다면 꽤 난처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공은 좀 안 좋아 보인다고 했지만 그냥 구매하셨다. 맨유 마크가 붙어있는 공은 한국의 어느 마트에서든 살 수 있다. 맨유 마크 붙어있으면 축구를 눈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다 사니까. 좋은 줄 알고.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공 좀 차 본 사람들은 안 산다. (종호 형님이 축구를 많이 안 해 봤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했다.)

난 잉글랜드 현지 팬들처럼 목도리를 사려고 했다. 스탬포드 브리지든 어디든 응원에는 목도리가 빠질 수 없지. 응원용으로 쓸 뿐만 아니라 방한용으로도 훌륭해보였다. 그런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돈은 엄마가 갖고 있는데? 뭐야? 온 건물을 다 뒤져도 안 보인다. 나갔나? 전화를 해 보았는데 연결이 안 된다! 면세점 안에 있다는 소리 같았다.

한참을 찾은 끝에 엄마와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한테 50유로를 받아서 바로 계산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첼시 목도리는 7.99 파운드였다. 거스름돈이 꽤나 나올 것 같았다. 역시나 계산하러가니 거스름돈이 꽤 되는데 잔돈은 전부 파운드로만 나온단다. 이런. 우물쭈물하고 있던 차에 뒤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선주 누님이 내 50유로를 5유로 10장으로 교환해 주셨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일로는 여겨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정말 사고 싶긴 한데, 돈 바꾸는 것 때문에 안 살 순 없고, 난처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백골난망할 따름이다. 고맙습니다! 1시 30분까지 면세점 입구에 있으면 되었는데 시간은 약 30분정도 남았던 것 같다. 그래서 런던 시내 거리를 걸어 다녔다. 헤헤, 나도 어엿한 Chelsea의 Blues라구!

쇼핑을 끝내고 버스를 타고 세계 3대 박물관 중 마지막 코스인 대영박물관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Monty Python이 상영되는 극장과 엄청 웃긴 광고들도 보았다.) 약 2시경이었다. 가이드는 3시 30분까지 북쪽 게이트로 오면 일행을 안 따라다녀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난 그리스 로마시대의 조각이 있는 곳까지만 따라다니고 나머지는 자유로 돌아다녔다. 오히려 그게 훨씬 나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겐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 없었으니까. 가이드(모든 가이드들)의 설명은 유익했지만 오히려 관광을 거슬리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이게 뭔지, 솔직히 돌아가서 기억도 못할 것들을 괜히 길게 설명해서 정작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놓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웬만한 설명들은 다 영어로 나와 있었으니 이해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대영박물관 건물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델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영박물관 안에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중국 유물 전시회를 하는 듯 했다. First Emperor이란 이름의 전시회였다. 그건 유료였던 것 같아 볼 수는 없었다. 아, 대영박물관의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박물관 입장이 완전 무료라는 점이다. 가이드님의 말로는 대부분의 소장품들이 외국에서 약탈한 것들이기 때문에 체면상 입장료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은 가이드를 따라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본 유물은 아주 아주 유명한 로제타스톤이다. 로제타스톤은 큰 바위에 히에로글리프, 민중문자, 그리스어로 적힌 비문인데, 자세한 내용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로제타스톤은 고대 언어 해독, 비문 해독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돌덩어리다. 프랑스의 샹폴리옹이 로제타스톤을 통해 고대 이집트어 해독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동안은 이집트어가 표의문자라고 생각했었다.) 히에로글리프는 분명 표음문자이고, 암호학 역사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로제타스톤 실물을 보고 잠깐 접었던 히에로글리프의 해독 공부를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대영박물관에선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이라고 상형문자 해독의 베스트셀러도 출간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도 LP 내한공연의 힘으로 가운데로 파고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글자가 자세하게 나오진 않는다. 정말 아쉽다.

다음으로 본 유물들은 아시리아의 유물들이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아시리아의 반인반마의 괴물상(?)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아시리아 유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쐐기문자였다. 암호와 비문 해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런데 쐐기문자의 해독에 관한 책은 왜 별로 없지? 나중에 꼭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 옛날 아시리아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조각을 했을까?)

다음 장소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들이었다. 터키에서 가져왔다는 어느 신전을 보았다. 파르테논 신전을 본 딴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여러 자기, 그릇 조각, 조각상(어느 유명한 비너스상도 봤음.)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 잘 몰랐으니까. 아는 게 힘이다. 그런데 아는 것이 하나 나왔다. 페리클레스의 흉상이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페리클레스를 여기서 보다니. 기억은 가물가물했지만 페리클레스 하면 항상 나오는 사진이 이 조각상이었다. 그래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시 벤치에 앉아있었다.(박물관내 벤치에서 뽀뽀하는 커플은 뭐야?) 그러자 가이드 선생님이 가까이 오시더니 힘드냐고 물어보셨다. 물론, 힘들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북쪽 게이트로 3시 30분까지만 오라신다. 오! 그 말을 들은 즉시 난 다리 아픈 것도 모르고 뛰쳐나갔다.

역시 난 한국인이니까 대영박물관에 신설된 한국관이 꼭 보고 싶었다. 가이드를 따라간 엄마와 동생도 한국관을 보았다고 했지만, 난 사실 그런 생각도 못하고 바로 한국관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대영박물관은 너무나 넓었다. 그래서 면세점에서 거슬러 받은 동전으로 지도를 하나 샀다. (젠장! 지도 하나가 거의 4000원이야! 한국에선 공짜로 줄 것 같은 지도였는데. 무료입장이라 이런 걸로 수익을 내는 것 같았다.) 지도를 보면서 한국관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탐색했다.

내가 간 길이 가장 빠른 길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한국관으로 가는 길을 디카를 들고 다니며 전부 녹화했다. 먼저 King's Library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왕의 도서관인가? 진짜 왕이 이용하는 도서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고서들이 꽂혀있었는데, 책은 꺼낼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도서관 안에 로제타스톤이 있었다. 이게 왠일? 어느 영국인 모자가 로제타스톤을 만지고 있었다. 귀여운 꼬마 녀석이 말하길, “엄마, 이거 진짜야?” 엄마 왈, “아니, 이것 봐, PLEASE TOUCH IT 이라고 되어 있잖니. 한번 만져봐.” 애도 실컷 만진다. 호. 비록 가짜였지만 진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손을 대 보면서 내가 해석할 줄 아는 히에로글리프 몇 개를 발견했다. 샹폴리옹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King's Library를 지나 잘 모르는 유물들이 있는 복도(너무 빨리 지나가서 뭔지 잘 기억을 못하겠다.)를 지나 중국, 인도관에 도착했다. 중국, 인도관에는 어린이들이 50여명정도 앉아서 어느 선생님의 열정적인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젊은 선생님은 온갖 의성어를 내며 (ex. 룰룰룰룰룰~, 피유~BLOAH!) 어린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그 뒤에선 몇몇 어린이들이 마분지 따위를 잘라 모자를 만들고 쓰고 있었다. 뭔가 연극 같은 걸 할 모양이었다. 그 재미있는 선생님을 잠깐 보다가 바로 중국, 인도관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면서 본 유물들은 융성했던 중국과 인도의 문명답게 무척 화려했다. 앉아서 인도의 어느 유물을 관찰하던 한 여성 관람객의 엉덩이 골이 보여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여러 계단을 올라가고 헤맨 끝에 드디어 한국관에 도착했다. 한국관은 매우 조용했다. 한 노인 관람객이 내 앞을 가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약간 서운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나 적다니. 관람객이 2, 3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도자기, 보자기, 불교 관련 그림, 항아리와 선사 시대 유물 등을 볼 수 있었다. 꽤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국관 안에 재현된 사랑방의 모습이었다. 기와집의 형태로 양반들이 살던 사랑방이 지어져 있었다. 한 현지인 학생이 그 사랑방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올라가지 말라는 표지판 때문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미를 어느 정도 외국인이 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표현해 놓았던 것 같다. (엄마는 화려하고 복잡해서 정신 사나웠던 다른 문화의 관들보다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한국관이 더 좋았다고 했다.)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난 한국관이 인기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국관 안의 경비원에게 Non-Korean들이 여기 자주 오냐고 물어봤다. 경비원은 “Yeah."하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오? 그것 다행이로군. Redcafe에서 현지 팬들이 박지성을 인정할 때 느꼈던 쾌감처럼 Yeah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도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더 많은 현지인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려면 다양한 방면의 문화적 가치들을 대영박물관 안으로 옮겨 놓아야한다. (박지성이 더 성장해야 하듯이.) (사료를 기증한 어느 한국인 박사에 대한 감사의 글도 볼 수 있었다.)

한국관을 지나 근처에 있던 일본관에도 들렀다. 엥? 이게 뭐야?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잖아! 왜 이런 거야? 일본인처럼 보이는 어느 할머니께서 영어로 일본의 다도를 설명하고 계셨고, 현지인들에게 실제 차를 마셔보는 기회도 주어졌다. 하. 일본은 벌써부터 이렇게 앞서가는군. 그 현장을 녹화하려는데 저장 공간이 부족하단다. 몇 개의 동영상과 사진을 지우고 촬영을 재개했다.

일본관의 유물들도 관람했다. 일본의 고대 유물들은 내가 볼 때에는 중국, 인도, 한국과 비교해서는 보잘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유물 수는 꽤 많았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제국주의를 부르짖을 당시의 유물들이었다. 이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한 적이 있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것은 ‘일만교역대쌍육(맞나?)’이라고 Monopoly 게임같은 것이 있었다. (한국의 부루마블처럼.) 그런데 이 게임엔 여러 도시가 등장하는데, 중국의 몇 도시와 한국의 경성이 등장한다! 경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숭례문이 등장한다. 일본인들은 조선을 완전한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나보지? 또 자신들이 세운 만주 괴뢰국의 국기와 일본 국기를 여기저기 그려놓았다. 아마 만주국 설치 기념으로 만든 게임인 듯 했다. 이런.

일본은 이미 1990년부터 방금 본 THE MITSUBISHI CORPORATION JAPANESE GALLERIES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명단도 볼 수 있었는데, 미쯔비시 상사를 포함한 아사히신문, 코니카 미놀타 등 여러 대기업들의 이름도 볼 수 있었다. 일본이 못된 짓을 많이 하긴 하지만 배울 점도 분명히 있다. 한국도 한국 문화 알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시늉만 하지 말고.)

일본관을 보고 나서 돌아가려는데 일행들을 만났다. 엄마를 만나 디카를 돌려주고 이집트 미라들과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제기랄! 이집트 미라들이야! 물론 더 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그럴 수가 없었다. 이집트관을 재빨리 넘어간 후, 중세 유럽, 로만 브리튼 시대 유적, 중동지역 유물들을 보고는 북쪽 게이트로 갔다.

북쪽 게이트에 사람들이 와 있었다. 바로 앞에 있던 노점상에서 콜라 한 병을 샀다. 콜라 700ml가 0.9파운드, 우리 돈으로 1600원이 조금 넘는다. 한국에서 1.5리터 페트병을 살 수 있을 가격이다.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대영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버스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이동했다. 난 웨스트민스터 사원 방문을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Newton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꼭 Newton의 묘를 참배하고 싶었다. 나의 장래와 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Newton은 나의 분명한 우상이다. 참배의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또 Newton의 묘는 소설 다빈치 코드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크립텍스의 열쇠는 APPLE이었다지? 다빈치 코드에 묘사된 대로 행성들의 모형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시간상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망할! 그럼 면세점 갈 시간은 어디서 난거냐? Newton의 묘를 코앞에 두고 사진만 찍으라고? 멍청이들! 속으로 짜증이 났다. 빅벤이랑 국회의사당 직접 안 간 것도 참고 있었더니. 일행들 때문에 혼자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뉴턴에게 빌었다. “Sir Isaac Newton, please let thy little fellow figure out the order of the universe. Amen." Newton이 제발 내 바람을 들어주기를. 여기서도 후일의 자유여행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충 사진을 찍고, 버킹검 궁전으로 향했다. 버킹검 궁전을 가는 줄은 몰랐다. 일정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버킹검 궁전은 생각보다 작았다. 베르사유보다 많이 작았다. 어쩌면 조금 실망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만약 첫 날에 버킹검 궁전을 봤다면 반응이 달랐을지 모른다. 하도 큰 건물들을 많이 보다 보니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또 악재가 생겼다. 배터리가 다 된 것이었다. 여분 배터리를 가져왔는데 버스에 두고 왔다. 허허허. 그냥 눈으로만 담아두기로 했다. 투구 쓰고 말 탄 병사도 볼 수 있었다. 하. 사진 찍지 못 한 걸 애석하게 생각한다. 결국 버스에 타서 살짝 지나갈 때 몇 번 찍었다.

버킹검 궁전이 우리 런던 일정의 마지막 관광지였다. 이제 저녁 식사를 현지식으로 먹고 나면 모든 관광 일정이 끝이다. 내일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저녁 식사는 영국식 식사라는데, 영국 음식이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라고 한다. 과연 어느 정도나 맛이 없을는지?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데, 영국 음식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국에 왔으니 맛없는 것도 한번 먹어봐야지. 맛으로 뇌에 강력한 기억을 새기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걸어갔다. 영국의 주택가도 꽤 운치가 있었다. 피렌체만큼은 아니었지만, 살기 좋아보였다. Monty Python에 나올법한 거리와 집들을 내가 실제로 걸으며 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식당에 도착했다. 이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되어 있었다. 뭐? 이탈리안? 왜 영국에 와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여행사의 기이한 레스토랑 선정에 또 한 번 불만스러웠지만 뭐, 어쩔 수 있겠나. 이 식당에는 한국인도, 현지인도 아무도 없었다. 우리 일행뿐이었는데 또 2층 구석진 곳에 또 무척이나 비좁은 좌석에 꽉 들어차 앉아야했다. (역시나 가이드는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성진이네 아저씨와 신혼부부 아저씨네와 함께 앉았다. 우린 신혼부부 아저씨의 일(강남의 어느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신다고 하셨다.)과 울산 이야기(울산이 전국에서 제일 잘사는 동네라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난 지 시간이 꽤 되었지만 아직도 대화거리가 부족해 중간 중간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벽 곳곳에는 영국 왕들의 초상화와 그에 관한 설명이 붙어있었다. 우리가 앉았던 식탁 옆의 벽에는 그 유명한 헨리8세가 그려져 있었다. 식탁에는 유럽의 여느 식당들과 똑같이 딱딱한 빵과 버터가 놓여있었다. 그걸 먹었는데 목이 너무 건조해졌다. 빵은 너무 딱딱했다. 가루는 사방으로 떨어졌다.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들어 올렸는데 물병이 엄청나게 무거웠다. 유리 물병에 물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두 손으로 들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였다. (사실 한 손으로 들기는 무리였다.)

곧 수프가 나왔다. 대략 색깔은 뻘건 색이었고, 당근, 양송이 등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 있었다. (내 생각엔 그 갖가지 재료들을 그냥 냄비에 아무렇게나 넣고 끓인 것 같았다.) 맛을 보았다. 어르신들은 한국의 육개장과 비슷한 맛이라고 하셨는데, 난 동의할 수 없었다. 육개장과 약간 비슷했지만 육개장이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아닌 육개장에 케첩이나 머스터드소스를 넣은듯한 기괴한 맛이 났다. 먹을 만은 했다. 절반 이상 먹었다. 기름이 둥둥 떠 있었지만 먹을 만 했다. 그 맛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에 그 맛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그러나 처음 먹어본 듯한 맛이어서 에스까르고처럼 묘사하지는 못하겠다.)

수프가 나온 후 메인으로 쇠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이건 사실 스테이크가 아니었다. 아주 얇았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 패티보다 얇았다. 고기는 질겼고, 짰다. 옆에 감자도 함께 나왔는데, 다 타있었다. 감자를 씹으니 탄소 맛이 느껴졌다. 으허허. 이건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잖아! 영국 음식이잖아! 그런데 Ramsey's Kitchen Nightmare나 여왕의 만찬 같은 프로를 보면 영국 음식도 맛있어 보이던데. 실력 있는 요리사도 많았던 것 같은데. 먹을 수는 있지만 돈 주고 먹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음식이었다.

식사를 마친 우린 식당에서 다시 버스로 돌아 가야했다. 종호 형님이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다. 영국 음식이 제일 맛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슨 나라의 무엇이 제일 어떻다는 형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죄다 다른 것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많이 변형이 되는 것 같았다. 종호 형님이 하나 확실하게 말했던 것은 결혼상대로는 일본 여자가 최고라는 것. 순종적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에. 난 거기에 그다지 수긍하지 않는다. 결혼상대로 좋은 여자 같은 건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 여자가 ‘다른 민족에 비해’ 순종적인 건 맞는 것 같다. 종호 형님은 또 군대 이야기도 하셨다. 작년 12월에 공군 제대하셨단다. 나보고도 공군 가라신다. 누구한테 비행장 청소가 할 일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건 운 좋은 사람이란다. 그리고 군대도 사실 편하단다. 군대에서 살찌우고 왔다고 하셨으니. 고등학교 졸업도 금방이고 금방 군대 간다고 날 겁주셨다. 제길. 잡소리는 그만해야겠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묵을 호텔인 St. Giles 호텔로 이동했다. 이 호텔은 런던 근교 Heathrow에 있다. 공항이 매우 가깝다. 여행 출발 전 한국에서 조사해본 결과 St. Giles는 꽤 큰 호텔 체인이었던 것 같았다. 버스에서 짐을 모두 내리고 방 키를 받았다. 방 키가 열쇠 형식이 아니고 카드 형식이었다. 유럽에선 처음 보는 방식이었다. 저급 호텔에선 쓰지 않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가이드가 숙박 명렬표까지 나눠주었다. 누가 몇 호실에 묵는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여행이 다 끝나니까 이런 것도 주는군. 이 호텔은 10층까지 있었던 것 같다. 가이드가 이 호텔은 정말 좋다고 말했다. 특히 아침식사가 좋다고 한다.

우린 216호였다. 객실 안은 정말 훌륭했다. 일본에서 묵었던 젠닛쿠 호텔을 연상케 했다. 엄마는 오히려 그 호텔보다 더 좋았다고 했다. 침대는 정말 푹신푹신했고, 더운 물도 잘 나왔다. 무척 만족했다. TV를 틀어보니 칼링컵 결승전에 관한 뉴스가 쉴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결승전에서는 토트넘과 첼시가 경기를 하게 되는데, 난 첼시가 이길 거라고 확신했다. 전력상으로 훨씬 우세하니까. 또 나는 첼시의 팬이다. 비록 제일 좋아라하는 Shevchenko는 부진하지만 첼시는 나의 팀이다. 하지만 토트넘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뉴스에 나오던 여러 사람들이 첼시 60 토트넘 40 퍼센트의 확률로 승리를 점쳤다. 첼시 서포터즈 회장과 토트넘 서포터즈 회장이 뉴스에 나와 서로 자기 팀이 이길 거라고 토론하는 모습도 정말 재미있었다. (결국 토트넘이 우승했다. 예상 밖의 결과다. 라모스 감독에게 그 공이 있을 것이다.)

TV를 보던 중 엄마가 하나 제안을 했다. 함께 여행 온 남자들, 나랑 종호 형님, 성진이랑 호텔 로비의 바에 내려가서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를 하면서 여행을 마치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도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종호 형님과는 조금 말이 되지만 성진이와는 대화가 어려웠다. 이번 기회에 한번 말을 터보고 싶었다. 엄마가 부르는 김에 성진이네 아저씨도 불러보라고 했다.

난 기념품으로 산 AC밀란 레플리카와 첼시 목도리를 입고 종호 형님의 방을 찾아갔다. 종호 형님은 똥 좀 누고 내려간다고 하셨다. 하여간 정말 재미있는 분이다. 성진이네 방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니 성진이가 나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성진이도 내려오겠단다. 근데 아버지는 샤워를 하고 계셔서 나중에 말씀드리겠단다.

난 바에 내려가서 기다렸다. 직원에게 유로를 받냐고 물어봤다. 파운드만 받는단다. 그러니 유로는 건너편 노란 가게에 가서 바꾸란다. 횡단보도를 건너 노란 가게에 갔다. 그 가게의 점원은 옆의 초록색 가게에 가서 바꾸란다. 이건 뭐야? 다시 녹색 가게에 갔더니 바꿔주었다. 근데 나중에 자기 전에 계산해보니 점원이 틀리게 준 것 같았다. 허허. 당한 건가. 그런데 이 직원들은 전부 토종 영국인들이 아니었다. 아랍인, 인도인 등 다른 인종들이었다. 그래서 발음과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

환전을 하고 바에 갔더니 성진이네 아저씨가 계셨다. 성진이네 아저씨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계셨다. 성진이네 아저씨께 들어가자고 말씀드렸더니 무슨 딴 소리를 자꾸 하셨다. (이건 정말 못 알아들어서 기억이 안 난다.) 엥? 왜 이러시지? 또 서울 사람들의 말장난인가? 내 생각엔 성진이가 제대로 전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저씨는 내가 내려오라고 한 것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설명을 드렸더니 그럼 일행 전원을 다 부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신다. 그래서 똥 누고 내려오셨던 종호 형님과 난 가이드 누님의 방을 찾아가 모든 방에 전화를 돌렸다.

그래서 바에 내려오신 분들은 엄마, 나, 동생, 성진이, 성진이네 아저씨, 종호 형님, 종호 형님 어머님, 슬기 누님, 선주 누님, 슬기 누님 어머님, 가이드 누님 이렇게 11명이었다. 난 성진이와 말을 해보고 싶었기에 옆에 앉았다. 성진이도 축구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처럼 학교에서 공도 차는 녀석이었다. (너무 얌전해서 실전은 안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질문, 대답 같은 말은 거의 내가 다하고 성진이는 네, 아니오 같은 간단한 대답만 한다. 어유, 축구에 관심이 있으면 나한테 조금만이라도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성진이가 한 질문이라곤 ‘축구화 뭐 신으세요?’ 뿐이었다. 간간히 경기 결과가 어땠나, 이런 것도 물었지만 자기가 스스로 한 제대로 된 질문은 축구화 질문뿐이었다. 그때 난 설명을 하려 했지만 축구를 오랜 시간 안 한 탓에 잊어버렸다. 젠장. 하필 이런 때에. 난 그저 아디다스 프레데터라고만 설명했다. 아디다스 프레데터 압솔라도 TRX HG 하와이안 블루라고 설명했어야 되는데.

아쉽게도 성진이는 먼저 가보겠다며 가버렸다. 자기 친구들과 축구할 때는 그렇게 과묵하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축구할 땐 과묵하면 안 되니까. 에이. 그래도 공통 관심사에다가 축구 좋아하는 남자는 의사소통이 만나자 마자 바로 된다던데. 성진이에게 프리스타일 축구를 배우라는 소리만 하고는 나머진 했던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성진이가 먼저 일어나자, 가이드 누님도 먼저 가보겠다며 일어났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난 주위 어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성진이네 아저씨께서 내게 성진이랑 말 해보니까 어땠냐고 물어보셨다. 성진이가 말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니 약간 섭섭해 하셨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가 또 성진이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언제나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살짝 감도니까 종호 형님네 아주머니께서 이 일을 주최한 내가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난 이런 거 시켜주면 잘 한다. 그냥 이 일의 원래 목적을 말씀드렸다. 원래 남자들끼리 모이려고 했던 건데, 아저씨께서 다 부르라고 하셔서 이렇게 되었다고. 그러니 옆에서 슬기 누님네 아주머니께서 너 공부 잘하지, 너 뭐 될 거야 이런 걸 물어보셨다. 근데 공부 잘하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잘 한다하면 자랑하는 거고 못 한다하면 거짓말한다고 하니. 뭐 될 거냐고 물어보셔서 물리학자 되고 싶다고 했더니 놀라시는 눈치다. 하긴. 물리학자 된다는 사람은 거의 없지. 선주 누님이 너 잘하는 건 잘하고 못하는 건 못하지?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하게 잘하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하게 못한다고 내 생각대로 말씀드렸더니 됐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그럼 왜 물어 보신거야?

그러다가 또 주제가 종호 형님으로 넘어갔다. 종호 형님 어머님께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형님보고 넌 직업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한 일을 설명하셨다. 너무 웃겨서 코미디언은 따 논 당상이라고 하셨단다. 정말 형님은 웃기셨다. 그런데 여기선 한 마디도 안하셨다. 허. 정말 이상할 따름이다. 주위에서 누님들이 띄워줬는데도 뭐 별 반응이 없으시다. 나중에 털어놓으시길, 군대에서 갓 제대해보니 여자들이 불편하단다. 예전에는 여자 앞에서도 말 잘했는데 지금은 정말 어색하단다. “야, 너도 군대 한번 갔다와봐. 나처럼 돼.” 이러신다. 나 앞에선 말 잘하시네. 근데 난 군대 안 갔다 왔는데도 불편한데.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내가 대학생인줄 알고 엄마가 내 누나, 동생이 엄마 딸인줄 알았다고. 슬기 누님네 아주머니께서 엄마 나이를 물으셨다. 엄마가 그냥 40대 초반이라고 그랬다. 하하하. 난 그걸 들으면서 엄마가 나이를 얼버무려서 속으로 너무 웃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파리의 에스까르고를 주던 레스토랑에서 한국말 하는 웨이터가 엄마랑 젊은 누님들에겐 ‘언니’라고 부르고 그 아주머니께는 ‘아줌마’라고 불렀었다. 여자는 나이에 민감하다던데 기분이 상하셨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난 처음에 3 자매인줄 알았으니 그 분도 정말 젊어 보이신다. 그 분은 가게를 하신다던데, 40대 중후반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결국 소재가 다 떨어지자 대화가 또 끊기고 말았다. 어색한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성진이네 아저씨가 일어나자고 말씀하셨다. 우린 전부 해산했다. 에이. 여행 마지막 날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난 엄마한테 근처에 맥도날드가 있다던데 한번 가보자고 제안했다. 엄마는 별로 내키지 않는 듯 했지만 일단 갔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호텔 오른편에 있다고 그랬다. 그런데 맥도날드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안 보였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로비에서 종호 형님을 만났고, 형님과 맥도날드 찾기에 다시 도전했다. 로비에서 만났던 누님들이 맥도날드가 아직 열었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가보기로 했다.

어이쿠, 종호 형님은 정말 재밌으시고 말도 많으시다. 아까와는 어찌나 다른지. 그 조용하고 과묵하던 형님이 나랑 둘이 있으니 입이 술술 열리신다. 군대, 학교 이야기, 우리 일행들에 대한 이야기, 이 나라 사람들, 유럽 풍습 등 여러 가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또 맥도날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가게를 찾아 그곳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혀있었는데 열리지 않는 자동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갔다. 거기 점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래서 내가 이유를 설명하고 맥도날드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한 직원이 친절하게도 정말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무슨 다리 위인데, 저기 앰뷸런스 지나가는 거 보이시죠? 이런 식으로. 계속 걸어 맥도날드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 제길! 우리가 가니까 이제 문을 닫고 있었다. 마지막 손님이 거기서 먹고 있었다. 망할! 결국 거기를 그냥 쳐다만 보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종호 형님도 바에서 그냥 일을 이렇게 끝낸 게 정말 아쉽다고 하셨다. 나 또한 그랬다. 여행 마지막 날이니 오버버닝 할 수도 있었다. 밤새고 놀고 돌아다니고 싶었다. 마지막인데. 종호 형님은 우리 일행들 뒷담화도 하셨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정말 미남 미녀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형님은 그렇게 놀랄 정도의 사람들은 못 봤다고 했다. 딱 3번 보셨단다. 이탈리아에서 한번, 프랑스에서 한번, 또 한 번은 모르겠다. TGV 열차 짐칸에 앉아 쉬고 있는데 웬 아리따운 프랑스 여인이 똑같이 바로 앞에 앉아 전화를 걸더란다. 그러다가 갑자기 형님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나왔다고 한다. 잘 됐을 수도 있는데 하면서 아쉬워하셨다. 그리고 유럽 오니까 한국 여자들 못 사귀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호텔로 귀환했다. 종호 형님은 심심하면 올라오라는 작별인사를 하고는 올라가셨다. 난 방에서 씻고 그걸로 바로 잠이 들었다. 아, 내일은 정말 한국으로 가는구나. 이젠 정말 끝이야. 무척이나 아쉬웠다. 두 달 동안이나 공부를 하면서 외국어도 배우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공부하고 준비를 많이 하고 설레였었는데 이렇게 일주일 만에 끝난다니까 허무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작이 있는 모든 일에는 끝도 있는 법. 내일도 행운이 있기만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v3pro2004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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