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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육림 고사 속 지금보다 개방적인 고대 성풍속

주지육림 고사 속 지금보다 개방적인 고대 성풍속 건강한 성생활 2008.09.12 10:58

주지육림 고사 속 지금보다 개방적인 고대 성풍속 
 



 

중국 상(은) 왕조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중국에서 포악하고 음탕한 군주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인물이다. 주왕은 백성을 착취하고 충신을 무참히 살해하는 한편, 달기(?己)를 총애하여 하루 종일 달기와 함께 궁중에서 술을 마시며 유희를 즐겼다. 그가 궁중에 연못을 파서 그 안에 술을 가득 채워 주지(酒池)를 만들고, 육림(肉林)에 가 나무에 매달린 고기를 따먹은 데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나오기도 했다.


<사기 은본기>에 주왕의 음탕함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주왕은) 술과 음탕한 음악을 즐기고 여자를 좋아하였다. 그는 달기를 특히 총애하여 오직 달기의 말만 들었다…… 또한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이루어 남녀가 밤새 나체로 뛰놀게 하였다.” 특히 여기서 나체의 남녀를 주지육림에서 뛰놀게 하였다는 구절은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으로, 이 내용 때문에 후대에 주왕이 음탕한 폭군의 대명사로 기억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이 반드시 주왕의 음탕함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남녀가 숲에서 뛰노는 행위는 ‘환락곡(歡樂谷)’이라 하여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일반적인 풍습이기 때문. ‘환락곡’은 미혼남녀에게 짝을 지어주기 위해 행해진 풍습으로 상이 망한 후 주나라 때까지도 이어졌다. <주례(周禮)>에도 연중 한 계절을 정하여 주 왕실이 특정 장소를 환락곡으로 지정하면, 미혼 남녀가 그곳에서 만나 섹스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때 결혼 절차를 밟지 않고 동거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원초적’인 환락곡 풍습은 왜 존재했을까? 원시시대 인류에겐 혼인이란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씨족사회에 들어서면서 한 씨족의 남성이나 여성이 다른 씨족과 단체로 결혼하는 단체혼인제도가 생겨나며 결혼제도의 초석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사유제사회 때부터 비로소 일부일처 혹은 일부다처의 고정적인 혼인제도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아내는 남편 사유재산의 일부로 여겨졌다.

 
상나라(기원전 1600?- 기원전 1046), 주나라(기원전 1122- 기원전 256) 때까지도 결혼제도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락곡 같은 풍습이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환락곡에서 성립된 동거 관계는 혼인처럼 안정적이지 않았으며, 일정 기간 동거 후 다음 번 환락곡에서 새로운 연인을 찾을 수도 있었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이 약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다른 연구결과를 봐도 상, 주나라 때의 무덤은 배우자 혹은 가족과 함께 묻힌 경우보다는 혼자만 묻힌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한다. 이 역시 당시까지만 해도 결혼과 가정이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의 반증으로 원시 사회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주왕이 음탕하여 주지육림에서 남녀를 뛰놀게 했다기 보다는, 당시에 행해졌던 일반적인 풍속을 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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